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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러시아 회보(Ру́сский ве́стник, 1856~1906)>
1-1. 회보의 설립과 <모스크바 공보>에의 등단
1856년부터 1906년까지 발간된 <러시아 회보(Ру́сский ве́стник, 1856~1906)>는 정치가이자 저널리스트 미하일 니키포로비치 카트코프(Михаи́л Ники́форович Катко́в, 1818~1887)가 만든 러시아어 잡지입니다. 이 잡지는 19세기 후반 러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문학 및 사회 정치 잡지 중 하나였으며, 사회사상의 발전과 문학 생활의 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1856년, 대삼성 골목(大三聖-, Большой Трёхсвятительский переулок)의 한 집에서 저널리스트인 М. Н. 카트코프(М. Н. Катко́в)와 예브게니 표도로비치 코르시(Евге́ний Фёдорович Корш, 1810~1897), 모스크바 제국대학 교수 표트르 니콜라예비치 쿠드랴브쳬프(Пётр Никола́евич Кудря́вцев, 1816~1858), 철학자 파벨 미하일로비치 레온티예프(Павел Михайлович Лео́нтьев, 1822~1874)와 작가 알렉산드르 블라디미로비치 스탄케비치(Александр Владимирович Станкевич, 1821~1912)와 같은 자유주의 성향의 모스크바인들에 의해 <러시아 회보(Русский вестник)>가 창립되었고, М. Н. 카트코프가 편집을 담당합니다.
그런데, 1857년 가을에 잡지 창간자들 사이에선 의견이 나뉘게 되었고, 그렇게 몇몇 편집자들은 잡지 편찬일을 그만두고 떠나버립니다. 그렇게 인쇄소는 М. Н. 카트코프와 П. М. 레온티예프(П. М. Лео́нтьев)가 이끌게 되었죠. 이 때 너무 판매가 부진해서 모스크바의 자유주의 그룹 회원들이 이 회보를 사기도 했었다네요. 처음에 이 잡지는 격주간지로 발행되었는데, 1861년부턴 월간으로 바뀝니다.
각 호는 소설들과 과학적 성격의 기사들을 한 챕터로 묶은 제1부와 <현대 연대기(Современная летопись)>라고 불리는 정치면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여기서 정치부는 처음엔 Е. Ф. 코르시(Е. Ф. Корш)와 П. Н. 쿠드랴브쳬프(П. Н. Кудря́вцев)가 썼는데, 이후 코르시는 의견 차이로 나갔고, 쿠드랴브쳬프는 계속 남아서 글을 썼지만, 1858년 사망하게 되며, М. Н. 카트코프가 정치면 감독이자 주요 작가가 됩니다.
시간이 지난 1862년, 카트코프와 레온티예프가 <모스크바 공보(Московские ведомости)>에 신문 몇 칸을 빌렸고, 그렇게 <현대 연대기(Современная летопись)>는 1863년부터 1871년까지 주간 부록으로 싣게 됩니다. 그렇게 카트코프의 출판과 편집 활동은 <모스크바 공보>와 <현대 연대기>에 초점을 맞추었고, 그가 편찬한 잡지는 물리학자이자 출판가인 Н. А. 류비모프(Н. А. Любимов, 1830~1897)가 맡게 됩니다.
1-2. 자유주의 시대
알렉산더 2세의 통치기 중 사회적 번영이 일어나고 제1차 5개년 개혁(대개혁)이 펼쳐진 시대에 <모스크바 공보>는 <구베르니야 에세이(Губернские очерки)>와 М. Е. 살티코프셰드린(М. Е. Салтыков-Щедрин)의 희곡 <파주힌의 죽음(Смерть Пазухина)>, С. С. 그로메카(С. С. Громе́ка)의 저널리즘 에세이, П. И. 멜니코프페체르스키(П. И. Мельников-Печерский)와 마르코 포프초크(Марко Вовчок)의 작품들을 발표합니다.
문학부에는 С. Т. 악사코프(С. Т. Аксаков), М. П. 비비코프(М. П. Бибиков), И. А. 곤차로프(И. А. Гончаров), Н. 코하노프스카야(Н. Кохановская), В. С. 쿠로치킨(В. С. Курочкин), А. Н. 마이코프(А. Н. Майков), М. Л. 미하일로프(М. Л. Михайлов), А. Н. 플레셰예프(А. Н. Плещеев), А. А. 페트(А. А. Фет), Ф. И. 튜쳬프(Ф. И. Тютчев), 예브게니야 투르(Евгения Тур) 등의 작품과 А. Н. 오스트롭스키(А. Н. Островский)의 희곡 <남의 잔치에 숙취>를 발표합니다.
그 외 다양한 역사가, 철학자, 문헌학자들도 이 잡지에 글을 싣기 시작했죠.
한편 편집자 카트코프는 <러시아 회보>에 <푸시킨(Пушкин, 1856)>이라는 기사를 시작으로, 러시아 시골 공동체에 대한 기사, 영국의 사회 구조를 바탕으로 한 선거 관련 기사, 잡지 <동시대인(Современник)>에 대한 여러 논쟁들을 발표하기 시작했고, 1862년에는 И. С. 투르게네프(И. С. Тургенев)의 <아버지와 아들(Отцы и дети)>과 같은 명작도 다루면서 당대의 사회 정치적, 문학적 주제에 대한 기사들의 모음집 역할을 하게 됩니다.
1-3. 러시아 고전 시대
곧 <현대 연대기>와 <러시아 회보>를 분리했는데, 이후 꽤 중립적이고 존경 받는 출판물을 싣게 되었다는 명성을 얻어 당대 러시아 고전 시대를 이끌던 주요 작가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합니다.
몇가지 예외를 제외하고 고전으로 분류된 19세기 후반 러시아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들은 대부분은 이 <러시아 회보>에서 처음 출판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И. С. 투르게네프의 <전날 밤(Накануне, 1860)>과 <아버지와 아들(1862)>, <연기(Дым, 1867)> 등이 있죠.
이 잡지에는 Л. Н. 톨스토이(Л. Н. Толсто́й)의 <가정의 행복(Семейное счастие, 1859)>, <카자크인들(Казаки, 1863), <1805 год(1805년, 1865~1866)>, <전쟁과 평화(Война и мир, 1865~1869)>, 안나 카레리나(Анна Каренина, 1875~1877)도 실렸습니다.
톨스토이 뿐일까요? Ф. М. 도스토옙스키(Ф. М. Достое́вский)가 쓴 <죄와 벌(Преступление и наказание, 1866)>, <백치(Идиот, 1868)>, <악령(Бесы, 1871~1872)>, <카라마조프의 형제들(Братья Карамазовы, 1879~1880)>도 이 잡지에 실렸습니다.
그 외, Н. С. 레스코프(Н. С. Лесков)도 <러시아 회보>에 <단검에서(На ножах, 1870~1871)>, <수도원의 사람들(Соборяне, 1872)와 같은 장편소설과 중편소설 <봉인된 천사(Запечатленный ангел)>, 연대기 <보잘것없는 가족(Захудалый род, 1874) 등을, А. К. 톨스토이(А. К. Толстой)는 <세레블랴니 왕자(Князь Серебряный, 1863)>를 발표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19세기 후반 러시아의 대표적인 문학 잡지로서 많은 명작을 출판하는 큰 역할을 이 <러시아 회보>가 해내고 있었던 겁니다.
1-4. 반동주의 시대
1861년부터 1863년까지 이념 투쟁이 격화되면서, <러시아 회보>는 점차 보수화되었고, 그 결과 러시아 자유주의자들과 소비에트의 문학과 언론, 역사가들에게서 개혁에 반대하는 '반동적인 잡지'로 낙인 찍혀버립니다.
А. А. 페트의 수기 <시골에서(Из деревни, 1863)>, В. В. 크레스톱스키(В. В. Крестовский)의 반허무주의적 희곡들인 <맹종자의 무리(Панургово стадо, 1869)>, <두 힘(Две силы, 1874)> 등을 출판하고부터는 그러한 반응이 더 심해졌죠.
이 작품들 말고도 이후에 다양한 비슷한 반개혁적 사상을 담은 К. Н. 레온티예프(К. Н. Леонтьев), К. П. 포베도노스쳬프(К. П. Победоносцев), И. Д. 델랴노프(И. Д. Делянов), Е. М. 페오크티스토프(Е. М. Феоктистов), А. И. 게오르기옙스키(А. И. Георгиевский) 등의 작품들이 이 저널에 실리곤 했습니다.
1887년 중반, 카트코프 사망 이후, 그의 부인이 발행인과 교정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그 해 말, <러시아 회보>는 회보의 후계자인 사회평론가면서 시인이자 번역가 표도르 니콜라예비치 베르크(Фёдор Никола́евич Берг, 1839~1909)에게 맡겨집니다. 그는 곧 잡지 발행사를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겼고 구독자 수를 6천명으로 늘리게 됩니다. 하지만, 8년 후인 1895년, 재정적인 어려움 때문에, 그는 <러시아 회보>를 포기해야만 했죠.
그리고 이 잡지는 М. Н. 카트코프의 조카 М. М. 카트코프(М. М. Катков)와 В. А. 그린그무트(В. А. Грингмут.)이 1906년 폐간될 때까지 책임자로 있게 됩니다. 이렇게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약 50년간 러시아 사회와 문학의 집합소 역할을 했던 여러 잡지 중 하나인 <러시아 회보>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이제는 19세기 후반 러시아 소설을 이끌었던 여러 작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실었던 잡지였다는 정도로 몇몇 사람들에게 기억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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