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찌질남의 괴상한 논설, <지하로부터의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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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한 찌질남의 괴상한 논설, <지하로부터의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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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하로부터의 수기>

1866년판 <지하로부터의 수기>

<지하로부터의 수기(Запи́ски из подпо́лья)>1864년에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Фёдор Миха́йлович Достое́вский, 1821~1881)가 쓰고 출판한 '상페테르부르크에 살고 있는 전직 관리'를 서술자로 하는 중편소설입니다. 이 작품은 개인의 선택을 통해 자아를 형성하며 인간이 실존하게 된다는 실존주의(existentialism, экзистенциали́зм)의 등장을 예고하는 한편, 19세기말부터 20세기에 나타난 기존의 전통적인 방식의 글쓰기에서 벗어난 모더니즘 문학(modernist literature)을 주류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이 소설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살고 있는 씁쓸하고 외롭고 이름없는 은퇴한 공무원인 이야기전달자의 장황한 회고록에서 발췌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비평가들은 이 은퇴한 공무원을 '지하생활자(подпольщик)'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래선지 실제로 이 책은 국내에서 <지하생활자의 수기>로 더 유명하죠.


소설의 첫 번째 부분은 지하생활자의 일기를 통해 줄거리 없는 단순한 독백으로 전달되며 현대 러시아 철학, 특히 니콜라이 가브릴로비치 체르니솁스키(Никола́й Гаври́лович Черныше́вский, 1828~1889)의 <무엇을 할 것인가?(Что делать?)>를 맹공격하고 있습니다.

 

<젖은 눈에 대해(По поводу мокрого снега)>라고 불리는 소설의 두 번째 부분은 1인칭 화자이자 믿을 수 없는 서술자면서 반영웅(antihero)인 지하생활자를 파괴하거나 때론 새롭게 만드는 것처럼 보이는 사건(경험담)들을 묘사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이 소설의 스토리 타임은 증명하는 이야기인 제2부에서 주장을 펼치는 제1부로 흘러간다는 거죠.

  제2부 제1부
'나'의 나이 24살 40살

그래서 소설의 흐름을 더 쉽게 이해하고 싶다면 2부를 먼저 읽고 1부를 읽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2. <지하로부터의 수기>의 주인공으로 보는 간단한 줄거리

수기를 쓴 지하생활자 (출처 : fedordostoevsky)

나(я) 혹은 지하생활자는 소설의 익명의 서술자이자 주인공입니다. 그는 19세기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사는 젊은 공무원이었으며, 이후 사회로부터 완전히 소외되고 고립된 상태인 이른바 '지하'로 은퇴하게 됩니다. 심각할 정도로 비인간적인 그는 자신이 세상의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보다 더 지적이고 통찰력이 있다고 믿는 한편, 스스로를 경멸하고 자신이 열등하다고 느끼거나 굴욕감을 자주 느낍니다. 요즘 흔히 쓰는 표현으로 피해의식이 좀 있는 것같이 느껴질 정도죠. 독자는 소설 속의 모든 사건과 인물들을 이 지하생활자의 편향된 시각에서 봅니다.

이상한 설교만 듣고 자존심만 상해 지하생활자의 집을 뛰쳐나가는 리자 (출처 : онлайн-читать)

리자(Лиза)는 지하생활자가 매춘굴에서 그녀와 동침한 후 그녀를 구하려고 결심하게 되는 20대의 젊은 매춘부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직업에도 불구하고 다소 수줍음이 많고 순진하며, 자신의 방식의 오류를 설득하려는 그의 노력에 감정적으로 반응합니다. 그녀는 천성적으로 사랑스럽고 동정심이 많지만 자부심과 고귀함도 가지고 있습니다는 점에서 멋있는 여성이라고 볼수 있겠네요.

 

시모노프(Симонов)는 지하생활자의 학창 시절 친구로, 그와 현재 관계를 맺고 있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지하생활자는 시모노프를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편협하지 않은 정직하고 독립적인 남자로 바라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시모노프가 자신을 경멸하고 자신과의 우정을 부담스러워한다고 의심하기도 합니다.

 

즈베르코프(Зверков)는 시모노프의 친구이자 지하생활자의 또 다른 학교 친구로, 군대에서 성공한 장교이며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지하생활자는 학창 시절 즈베르코프를 거칠고, 허풍스럽고, 멍청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를 싫어했습니다. 그는 또한 즈베르코프의 부와 자신감, 그리고 인기를 질투합니다. 그의 이름은 '짐승(зверь)'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입니다.

 

페르피치킨(Ферфичкин)은 지하생활자와 즈베르코프의 학창 시절 친구로, 즈베르코프 옆에 같이 다니는 친구입니다. 학교에서, 그는 지하생활자에게의 최악의 적이었다고 합니다. 지하생활자는 그를 뻔뻔하고, 어리석고, 비겁하다고 묘사하고 있으며, 페르피치킨은 즈베르코프에게 자주 돈을 빌린다고 언급합니다.

 

트루돌류보프(Трудолюбов)는 지하생활자의 또 다른 학창 시절 친구이자 즈베르코프의 먼 친척입니다. 그는 어느 정도의 예의를 갖춰 지하생활자를 대하는 정직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하생활자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 종류의 성공을 바라고 있다고 여깁니다. 그의 이름은 '근면(부지런)'을 뜻하는 트루도류비예(трудолюбие)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폴론(Аполлон)은 지하생활자의 늙은 하인으로, 지하생활자와 함께 살면서 그를 위해 집안일을 마지못해 합니다. 지하생활자는 아폴론이 끊임없이 자신을 판단하고 있으며, 용서할 수 없을 정도로 허영심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선지 지하생활자는 그의 외모와 말투를 싫어합니다.

 

안톤 안토노비치 세토치킨(Антон Антонович Сеточкин)은 그가 일하던 부서의 최종책임자로, 지하생활자와 가장 가까운 존재입니다. 지하생활자는 때때로 안톤에게 돈을 빌리기도 하구요. 사교적으로 되고 싶은 충동이 들 땐, 화요일에 안톤의 집을 방문하기도 합니다.

 

장교(Офицер)는 어느 날 밤 선술집에서 지하생활자를 무시했던 군 장교로, 몇 년 동안 지하생활자의 강박적인 복수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지하생활자는 그의 계급, 부유함, 신체적 기량, 그리고 자신감에 대해 그 장교를 원망하지만, 또한 같은 이유로 그에게 겁을 먹기 때문에 절대로 그에게 대항할 수 없습니다. 우연히 지하생활자가 길을 가던 중 그를 마주쳤고, 그래서 일부러 어깨를 퍽 치면서 지나가면서 자신이 복수에 성공했다고 느꼈을 때 그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바삐 갈 길을 걸어갔다고 합니다...

 

3. <지하로부터의 수기>의 예술적 특징

비록 이 소설은 1인칭 서술로 쓰여있지만, '나'는 소설 속에서 제대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소설 속 문장들은 간혹 다층적으로 보이죠. 이야기전달가자 자신만의 개념을 계속 반복 설명한다던지, 주어와 동사는 자주 문장의 맨 처음에 있는데 반해, 목적어는 서술자의 생각의 깊은 곳에 가라앉기 직전에 갑자기 나타난다던지 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갸우뚱하게 만드는 식으로 말이죠.

 

이런 복잡한 방식으로 쓰인 소설은 풍자하는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인은 적극적인 의지를 '멍청한 것'이라 여기고 의지가 약한 사람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혁명적으로 극적인 활동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약간의 망설임 끝에, 지하생활자는 비이성적이고 단순하며 오만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긴 하지만, 지적이고 반성적이면서 의지가 없는 쪽으로 더 기울어집니다. 행동하지 않고 바라기만 하는 마음을 풍자하고 있는 것이죠.

 

주인공 '나'는 마지막에 스스로를 부르는 대로, '불행하고 불쌍'하지만, 살아 있는 동안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을 즐깁니다. 이건 그가 지금껏 받아왔던 멸시와 조롱, 은근한 무시를 다시 스스로와 자기 보다 낮아보이는 사람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죠. 이 소설 속 '나'와 같은 인간의 성향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뿐 아니라, 덴마크의 쇠렌 오뷔에 키르케고르(Søren Aabye Kierkegaard, 1813~1855), 독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로 이어지는 철학과 현대 심리학으로 드러나곤 합니다.

 

소설 속 수정궁(хрустальный дворец)은 이성의 법칙에 근거한 조화롭고 질서가 완성된 다가오는 새로운 사회와 보편적 행복의 의인화(олицетворение)입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인간이 완전히 합리적이란 이유로, 이성에 근거한 보편적인 조화를 거부하거나 이유 없는 자기 주장을 위해 거절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죠. 그러면 수정궁은 무너져 내릴 것이라는 것이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주장입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이후 많은 실존주의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당대의 정치적 사상에 큰 반기를 든 작품이기도 했는데요. 이 소설은 당대의 정치 풍토에 대한 이념적 암시와 복잡한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이 소설을 이념적 담론의 도구로 사용함으로써 그의 시대의 이념, 특히 신이나 진리, 구원같은 절대적 가치와 권위가 없다는 허무주의(nihilism)와 어떤 행동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경우에만 이성적인 것이라 여기는 이성적 이기주의(rational egoism)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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