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러시아에 감상주의를 처음 펼친 카람진의 <가련한 리자(Бедная Лиза)> (https://mspproject2023.tistory.com/1274) 러시아 문학 속 낭만주의, 개인의 문학적 감상을 깨우다! (https://mspproject2023.tistory.com/1310) 19세기 러시아 고전문학의 황금기의 대표적인 작가들과 대표 소설류 정리 (https://mspproject2023.tistory.com/1276) 19세기 러시아 문학가들과 함께한 <러시아 회보> (https://mspproject2023.tistory.com/1299) 멋진 사람만 관심받던 시절에 러시아 문학에 등장한 '작은 인간' (https://mspproject2023.tistory.com/1890) |
<가련한 리자(Бедная Лиза)>는 니콜라이 미하일로비치 카람진(Николай Михайлович Карамзин, 1766~1826)이 1792년에 <모스크바 저널(Московский журнал)>에 발표한 감상주의(sentimentalism) 중편소설(по́весть)입니다. 그리고 이 책은 1796년에 별도의 판본으로 출판됩니다. 이 글에선 이 작품에 대한 배경 지식을 늘릴 요량으로 조사한 것을 정리했습니다. |
1. <가련한 리자>의 줄거리
시골 농사꾼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린 리자(Лиза)는 자신과 어머니가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어머니를 도와 열심히 일해야 했습니다. 그녀는 봄엔 모스크바로 은방울꽃(ла́ндыш)을 팔러 가는데, 그곳에서 그녀에게 한눈에 반해버린 젊은 귀족 에라스트(Эраст)를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함께 저녁을 보냈는데, 리자의 순수함을 잃게 되어, 에라스트는 더 이상 그녀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소속 연대가 출정한다는 말을 전하면서 그러면서 헤어져야 할 때가 왔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에라스트는 며칠 뒤 그곳을 떠납니다.
몇 달이 지나고, 모스크바에 있는 동안, 엘리자베타(Елизавета, 리자)는 우연히 커다란 4두 4륜 마차(каре́та)에 올라타는 에라스트를 봤고, 그가 약혼했다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이후 그와 만나 이야기를 나눠서 알게 되었는데, 그는 전쟁에 참가했지만, 카드놀이로 영지를 다 날려버리고 큰 빚더미 위에 앉게 되었다는 사실을 전해주죠. 그러면서 그녀의 주머니에 100 루블을 넣어주며 부유한 미망인과 결혼해야 하니 잊어달라고 말합니다. 이후 리자는 절망적으로 그들이 자주 거닐었던 백 년 묵은 떡갈나무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호수에 몸을 던져 자살하며 이야기가 끝납니다.
2. <가련한 리자>의 예술적 특징
<가련한 리자>의 줄거리 자체는 유럽 사랑 문학에서 니콜라이 미하일로비치 카람진(Никола́й Миха́йлович Карамзи́н, 1766~1826)을 통해 러시아로 도입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유럽 대륙 자체로 본다면 특별한 중편소설은 아닙니다만, 러시아에 거의 처음 소개되면서 다양한 사회 문화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특히 카람진은 이 줄거리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임을 강조하기 위해 러시아 문학으로 옮기면서, 시모노프 수도원(Симонов монастырь, 1370~1920), 다닐로프 수도원(Данилов монастырь, 1282~), 참새 언덕(Воробьёвы горы)과 같이 당시에 있었던 실제 건물과 지역을 작품 속 화자가 말하게 함으로써 진실성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냈습니다.
특히 이 작품은 '한 도시에서(в одном городе)'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러시아인이라면 그 한 도시가 바로 '모스크바'라는 것을 쉽게 알아챌 수 있었을 겁니다. 이 작품을 읽었던 당대 일부 여성들은 리자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실제로 시모노프 수도원 아래에 위치한 지금은 사라진 리진 연못(Лизин пруд) 등으로 뛰어들어 명을 다 채우지 못한 일도 일어났다고 합니다..ㅜ
이 이야기가 미천한 신분의 여성과 귀족 청년의 불같은 사랑을 담은 감상적인 사랑 이야기인 한편, 이 이야기에 묘사된 세계는 감상주의적인 목가적(idyllic) 세계였습니다. 시골 소녀 리자와 그의 어머니는 감상주의의 특성에 걸맞게 감각과 지각에 대한 섬세함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의 화법이나 문체는 에라스트와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로 적절히 문학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이 또한 감상주의의 특징을 잘 보여주죠.
카람진은 이 이야기가 지금까지의 고전주의와 고전적 정신 숭배와 대조적인 감정, 민감성, 연민에의 숭배에 대한 이야기라고 어필합니다. 그리고 주인공 둘 모두를 똑같은 입장에서 보려고 하죠. 그래서 카람진은 리자와 에라스트 모두를 동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른 말로 인간의 평등을 강조한 것으로도 볼 수 있어요. 그리고 카람진은 이 작품이 읽기 쉽게할 목적으로 지금까지의 고대슬라브주의(старославянизмы), 과장된 문체를 포기했으며, 기존의 고전주의 소설과는 달리 <가난한 리자>는 도덕, 교육, 교화적인 목적 같이 작가가 무언가를 가르치려고 하지 않고, 독자들에게 그 주인공들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키게 만듭니다. 이를 두고 어떤 분은 '문학의 민주화'라고도 말했습니다.
추가로 카람진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과 연관시키기도 했는데요. 이 때 주인공 리자는 자연으로,에라스트는 도시의 사람으로 묘사했습니다. 에라스트가 리자에게 끌린 것도 작가의 순수한 자연에 대한 동경의 흔적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3. 18세기 말, 러시아에 감상주의가 들어오다.
1780년대부터 1790년대 초,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 새뮤얼 리처드슨(Samuel Richardson, 1689~1761)의 <클러리사 할로(Clarissa; or, The History of a Young Lady)>, <파멜라(Pamela; or, Virtue Rewarded)>, <그랜디슨 경의 이야기(The History of Sir Charles Grandison)>, 베르나르댕 드 생피에르(Bernardin de Saint-Pierre, 1737~1814)의 <폴과 비르지니(Paul et Virginie)> 과 같은 작품들이 러시아어로 번역되며 감상주의 러시아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영향을 받은 카람진이 러시아 감상주의 시대를 열게 되었죠. 이후 카람진 문학의 서정적인 감성을 기초로 해서 이후 러시아에는 낭만주의와 사실주의 문학이 펼쳐지게 됩니다. 카람진이 이 소설을 발표한 것은 18세기 말이었지만, 이후 진행될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황금기(낭만주의->사실주의)에 큰 발자취를 처음 찍었던 인물이 되었습니다. 한편, 기존의 문학 작품이 어렵고, 난해하고, 권위적이었던 반면, 카람진 이후의 문학 작품은 시민과 민중, 그리고 개인의 내면이 어떠한가를 시작해 인간 자체는 어떠한가에 대한 문학적 질문을 던지는 소설들의 시대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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