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죄와 벌>
<죄와 벌(Преступле́ние и наказа́ние)>은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Фёдор Миха́йлович Достое́вский, 1821~1881)가 1865년부터 1866년까지 쓰고 1866년부터 <아버지와 아들>이 실린적 있던 <러시아 회보(Ру́сский ве́стник, 1856~1906)>에 연재된 사회심리소설이자 사회철학소설입니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는 오래전부터 이 <죄와 벌>의 아이디어를 구상해왔으나, 핵심적인 주제인 범인(凡人, обыкновенные люди), 비범인(非凡人, необыкновенные люди)에 대한 것 1863년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중에 구상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소설 작업을 직접 시작한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는 처음엔 마르멜라도프(Мармеладов) 가족에 대한 스토리 라인을 설명한 미완성 중편소설 <술고래들(Пьяненькие)>의 초고와 죄수의 솔직한 고백으로 생각되는 참회 소설 초안을 하나로 모았습니다.
작업 과정에서 계획이 확장되었고 줄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늙은 전당포 할머니를 죽인 법학생 로디온 로마노비치 라스콜니코프(Родио́н Рома́нович Раско́льников)의 범죄를 기반으로 했습니다.
범죄 이야기는 저자에게 주제일 뿐만 아니라,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도록 강요하는 사회적 상황에 대한 성찰의 계기가 되었으며, 이는 범죄로 사람을 몰아넣는 사람들의 영혼 속에서 어떤 복잡한 '화학적' 과정이 발생하는가를 글로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소설의 이미지 중 하나는 삶이 갈등과 드라마로 가득 찬 19세기 후반의 대도시였습니다. 시간의 흐름을 눈으로 읽을 수 있는 이 작품은 그 '대도시'가 바로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죄와 벌>의 출시는 러시아 문학계에서 열띤 논쟁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평론가들은 엄청난 감탄부터 시작해서 노골적인 혐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고 하죠. 당시 이 작품을 근본적으로 분석한 사람은 Д. И. 피사레프(Д. И. Писарев, 1840~1868), Н. Н. 스트라호프(Н. Н. Страхов, 1828~1896), Н. Д. 아흐샤루모프(Н. Д. Ахшарумов, 1820~1893)와 같은 19세기 후반의 유명한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유명한 평론가들이었습니다.
어찌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지, 발표한 지 20년도 안되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웨덴어, 영어, 폴란드어, 헝가리어, 이탈리아어, 덴마크어, 노르웨이어, 핀란드어 등 다양한 유럽 언어로 번역되었고, 단막극과 같은 여러 극으로 각색되었으며, 20세기 초부터 계속 영화화되기도 하는 등 세계 문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2. <죄와 벌>의 주요 등장 인물
로디온 로마노비치 라스콜니코프(Родиóн Ромáнович Раскóльников)
로디온 라스콜니코프는 주인공이며 소설은 주로 그의 관점을 중점으로 전개됩니다. 23세의 남성이자 법대생이지만, 궁핍해서 휴학합니. 소설에서 그는 '매우 잘생겼고 키가 평균보다 크고 날씬하고 잘생겼으며 아름다운 검은 눈과 어두운 갈색 머리를 가졌다'고 묘사됩니다. 그러나 그는 차갑고 냉담하며 반사회적인 인물이죠. 이와 역설적으로 그는 놀랍도록 따뜻하고 동정심이 많은 사람일 수도 있다고 볼 수 있죠. 그는 충동적으로 자선을 배풀 뿐 아니라 어느날 살인까지 저질렀습니다. 그의 외부세계와의 혼란스러운 상호작용과 허무주의적 세계관은 그의 사회적 소외의 원인이거나 그 결과라고 볼 수 있다는 안타까운 평가도 들 수 있죠.
소설의 제목이 <죄와 벌>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로디온 라스콜니코프가 저지른 법적 결과보다는 그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양심의 고통으로 인한 투쟁에 더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자신의 행위로 사회가 더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 라스콜니코프는 자신이 그 결과를 손쉽게 처리할 수 있는 충분한 지적, 정서적 강인함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으로 살인을 저지르지만, 그의 죄책감은 곧 그를 심리적, 신체적 고통에 압도당합니다. 그러던 그가 계속 갈등하다가 에필로그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사회로부터의 소외를 끝내기로 결정한 그가 공식적인 '처벌'을 깨닫게 되며 한 인간이 내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과정을 보여주죠.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 라스콜니코바(Авдо́тья Рома́новна Раско́льникова) 혹은 두냐(Дуня)
두냐는 가정교사로 일하는 로디온 라스콜니코프의 아름답고 삶의 의지가 강한 여동생입니다. 그녀는 처음에 부유하지만 성격이 찌질한 변호사 루진과 결혼할 계획이었는데, 그것이 그녀 가족의 절망적인 재정 상황을 해결하고, 그녀를 가정교사로 고용했던 호색한 지주 스비드리가일로프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이러한 상황은 주인공 로디온 라스콜리니코프가 살인을 저지르기로 결정한 요인이 되기도 했죠. 다양한 살인 동기가 있었지만, '노파를 죽이고 돈을 뿌리고 우리도 어느 정도 가진다면, 두냐가 더 이상 스비드리가일로프에게 희롱 당하는 것을 막을 수 있어'라고 생각하며 주인공이 살인을 저지르기도 한 것이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그녀는 결국 찌질한 변호사 루진과 호색한 지주 스비드리가일로프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고, 나중에 라주미힌과 결혼합니다.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 라스콜니코바(Пульхери́я Алексáндровна Раско́льникова)
풀헤리야는 로디온과 두냐의 어머니입니다. 작중에서 잘 등장하진 않지만, 자식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죠. 원래 연락이 잘 되었던 아들 로디온 라스콜니코프가 살인 자백으로 체포되고 연락이 끊겨버려 걱정을 하다가 사망하게 되는 안타까운 분이었습니다.
드미트리 프로코피이치 브라주미힌(Дмитрий Прокофьич Вразумихин) 혹은 라주미힌(Разумихин)
그는 주인공 로디온 라스콜니코프의 충실한 친구이자 전직 법대생입니다. 그의 성 브라주미힌은 '이성, 지성'이란 뜻의 남성명사 разум[라줌]에서 유래했죠. 그래서 소설 속 라주미힌은 '믿음'과 '이성' 사이의 타협과 화해를 나타내는 역할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종종 그는 자신의 실제 성이 '브라주미힌(Вразумихин)'이라고 강조하며 장난치기도 합니다. 그의 성은 '이해시키다, 설득시키다, 정신차리게 하다'라는 뜻의 완료상 타동사 вразуми́ть[브라주미찌]와 어감이 비슷한 것을 생각해봤을 때, 재밌는 장난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그는 정직하고, 강하고, 재치있으며, 똑똑하지만, 다소 순진하기도 합니다. 절박한 상황에 처한 주인공 로디온 라스콜니코프에게 매우 중요한 특색이었죠... 만일 주인공이 이런 성격이었다면 분명 그 범죄 현장을 잘 처리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는 라스콜니코프의 지성과 성격을 존중하고, 다른 사람의 의심을 믿지 않으며 항상 그를 지지합니다. 참친구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또한 그는 라스콜니코프의 가족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온 순간부터 그의 여동생 두냐와 사랑에 빠지고 나중에 결혼까지 성공합니다.
알료나 이바노브나(Алёна Ивановна)
그녀는 돈을 쌓아두고 그녀의 고객에게 무자비한 수상한 늙은 전당포 노파입니다. 그녀는 주인공 라스콜니코프의 계획된 살인 목표 대상이었으며 소설의 도입부에서 도끼로 맞아 죽게 됩니다.
리자베타 이바노브나(Лизавета Ивановна)
그녀는 알료나 이바노브나의 여동생으로 조금 모자란 성격을 가진 순진하고 순종적인 여동생으로 묘사됩니다. 라스콜니코프는 그가 전당포 노파 알료나를 죽인 직후 들어온 그녀를 보고 리자베타 또한 살해합니다. 정말 여러모로 불쌍한 사람이었죠. 또한 그녀는 소냐의 친구였습니다.
세묜 자하로비치 마르멜라도프(Семён Захарович Мармеладов)
그는 로디온 라스콜니코프가 노파 살인 계획을 세우고 있을 때 맥주집에서 마주친 실직한 전 9등관 관리로, 알코올 중독자입니다. 라스콜니코프는 그 자신의 비열한 알코올 중독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황폐화시키고, 아내와 아이들을 가난하게 만들었으며, 결국 첫째 딸 소냐를 매춘으로 내몰았는지에 대한 열정적이면서도 황홀한 고백에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그는 노파 살인을 다시 한 번 결심하게 되었죠.
소피야 세묘노브나 마르멜라도바(Софья Семёновна Мармеладова) 혹은 소냐(Со́ня)
소냐는 소설 초반에 로디온 라스콜니코프가 선술집에서 만난 세묜 자하로비치 마르멜라도프라는 술고래의 딸입니다.
그녀는 가족의 생계를 돕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매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자기 희생적이고 수줍음이 많으며 순진한 성격을 가졌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주인공 로디온 라스콜니코프는 그녀에게서 그가 느끼게 되는 수치심과 소외감을 알아차리고, 그렇게 그녀는 그가 스스로의 범죄를 고백한 첫 번째 사람이 됩니다. 로디온 라스콜니코프의 깊은 불행을 느낀 그녀는 피해자 중 한 명인 노파의 여동생 리자베타 이바노브나과 친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응원합니다. 소설 전체를 통틀어 이 소냐라는 여성은 주인공 라스콜니코프의 도덕적 힘과 부활(혹은 재활)의 중요한 원천이 되었죠.
카테리나 이바노브나 마르멜라도바(Катерина Ивановна Мармеладова)
그녀는 분수에 맞지 않게 허영심이 과하고 과소비적인 성미가 고약한 세묜의 두 번째 아내이자 소냐의 계모입니다. 그녀는 남편이 가계를 망친 것에 항상 신경을 쓰고 있었으며, 화가 나서 소냐를 매춘부로 몰아넣기도 하지만, 나중에는 후회합니다. 그녀는 그 성격 때문에 아이들을 때리지만, 그들의 삶의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맹렬히 일합니다. 그녀는 빈민가 생활이 자신의 지위보다 훨씬 낮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집착합니다. 그래서 가난해보이는 방주인과 항상 신경전을 벌였으며, 남편의 장례식을 호화스럽게 꾸미기도 했죠. 결국 남편 세묜 마르멜라도프가 죽은 후, 그녀는 주인공 라스콜니코프가 그녀에게 준 돈을 장례식에 사용합니다. 결국엔 각혈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하게 됩니다. 그의 장례는 스비드리가일로프가 대주었죠.
아르카디 이바노비치 스비드리가일로프(Аркадий Иванович Свидригайлов)
그는 호색한에 관능적이고 타락한 부유한 지주로, 가정교사로 두냐를 고용하고, 그녀에게 지금까지 느꼈던 것과 다른 진정한 사랑을 느껴 온갖 구애와 희롱을 가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주인공 라스콜니코프가 소냐에게 한 살인 고백을 우연히 듣고 이 사실을 사용하여 두냐와 라스콜니코프 모두 괴롭히지만 경찰에 알리진 않았습니다.
그가 명백한 악의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나중에는 관대함과 동정심이 있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하는데요. 두냐가 그를 총으로 쏘려고 시도한 뒤, 그를 결코 사랑할 수 없다고 말했을 때, 그는 그녀를 놓아주게 된 것에서도 그가 지금껏 여자를 생각하고 대하는 방식과 그의 심정이 바뀐 것같이 보입니다.
또한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소냐에게 그녀의 계모 카테리나 마르멜라도바의 아이들이 고아원에 들어갈 수 있도록 재정적인 준비를 했다고 말하고 그녀가 라스콜니코프를 따라 시베리아로 갈 수 있도록 거금 3,000 루블을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돈을 미성년이었던 약혼자에게 맡기고 권총으로 자살합니다.
표트르 페트로비치 루진(Пётр Петрович Лужин)
루진은 소설 초반에 주인공 로디온의 여동생 두냐와 약혼한 부유한 변호사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결혼에 대한 동기는 모호했죠. 그는 자신에게 완전히 몸과 마음을 기댈 수 있는 가난한 여성을 찾았다고 말할 정도로 이상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후 그와 두냐의 약혼이 깨지자, 로디온 라스콜니코프와 그의 가족 관계를 망치려고 발악을 했죠. 그렇게 소냐에게 절도 혐의를 씌운 뒤 거짓으로 비난하기 시작했지만, 루진과 같은 방을 썼던 안드레이 세묘뇨비치 레베자트니코프(Андрей Семенович Лебезятников)라는 사람이 이를 보고 폭로하면서 그는 혼자 빡쳐서 방을 뛰쳐나가버립니다.
루진은 스비드리가일로프의 무도덕성(amorality, 도덕 관념이 없는 상태)와 주인공 로디온 라스콜니코프의 잘못된 도덕성과는 대조적으로 부도덕성(immorality)을 나타냅니다.
포르피리 페트로비치(Порфирий Петрович)
포르피리는 소냐와 함께 라스콜니코프를 자백하게 만들었던 전당포 노파 자매 살인 사건을 담당한 수사 부서 책임자입니다. 그러나 소냐와 달리 포르피리는 심리적인 방법을 사용해 혼란스러워하고 변덕스러운 주인공 라스콜니코프를 자발적이거나 비자발적 고백을 하게 만들려고 그를 더욱 혼란시키고 자극합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이러한 심리적으로 잔인한 방법을 버리고, 라스콜니코프에게 그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고백하도록 진심으로 재촉합니다. 사실 그가 이렇게 행동한 것은 라스콜니코프가 완전한 악인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네요~
3. <죄와 벌>의 줄거리
소설은 더운 7월의 어느 날 대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시작됩니다.
돈이 부족해 대학을 떠나야만 했던 법학생 로디온 로마노비치 라스콜니코프는 '그의 사업을 시험'하기 위해 저녁에 전당포의 고리대금업자(процентщица) 알료나 이바노브나(Алёна Ивановна)의 방으로 가짜 은제 담배갑을 가지고 갑니다. 이 담배갑은 미끼였죠.
지난달 그의 마음 속에는 '더러운 노파(гадкая старушонка)'를 살해하려는 생각이 무르익었습니다. 라스콜니코프 본인에 따르면, 단 한 번의 범죄는 자신의 삶을 바꾸고 그의 여동생 두냐(Дуня)가 은인(благодетель)인 척 하는 표트르 페트로비치 루진(Пётр Петрович Лужин)과 결혼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 여깁니다.
범죄를 위한 사전 답사에도 불구하고 신중하게 생각한 계획은 전당포 노파 살해 이후 그녀가 가지고 있던 돈이나 귀중한 보물들을 찾을 수 없어 공황에 빠진 로디온의 상태로 무너져 버립니다.
거기에 더해, 예기치 못하게 그 집에 들어온 죽은 노파의 여동생 리자베타 이바노브나(Лизавета Ивановна)를 마주쳐 버렸죠.. 조용하고 착한 성품을 지녔던 그녀는 언니가 사망한 모습을 보고, 거기에 도끼를 들고 있는 로디온을 보고 두려워 했지만, 결국 그의 손에 들린 도끼에 맞아 같이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로디온은 범죄 전후에 많은 사람들을 길에서 만나왔습니다.
맥주집(술집)에서 그는 실직된 9등관 세묜 자하로비치 마르멜라도프를 만나고, 나중엔 그와 재혼한 카테리나 이바노브나 마르멜라도바와, 애칭인 소냐(Соня)로 더 많이 불리는 세묜의 큰 딸이자 가족의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몸을 팔게 된 소피야 세묘노브나 마르멜라도바를 만납니다.
소냐의 이웃은 지주 아르카디 이바노비치 스비드리가일로프(Аркадий Иванович Свидригайлов)였는데, 살인자의 고백을 도청하고, 이 고백으로 주인공 로디온의 여동생인 애칭 두냐(Дуня)로도 불리는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 라스콜니코바(Авдотья Романовна Раскольникова)를 가지려고 온갖 회유와 협박을 하기 시작했죠.
한편, 예심판사 포르피리 페트로비치(Порфирий Петрович)는 전당포 노파 살해 몇 주 전에 발행된 신문 <정기 연설(Периодическая речь)>에서 주인공 라스콜리코프의 <범죄에 대하여(О преступлении)>라는 기사를 발견한 사람입니다. 날카롭고 분석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그가 범죄자임을 한 눈에 알아보고 그를 심문하며 자수할 것을 권했습니다. 이후 갑자기 다른 (가짜) 범인이 나타나 잡히자 주인공에게 사과하기도 하는 성격이 나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Тварь ли я дрожащая или право имею...
내가 떨리는 놈(생물)인지 옳은 것인지...
- 로디온 로마노비치 라스콜니코프
이 소설에서 저자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는 모든 사람이 '떨리는 생물(тварь дрожащая)'이거나 '옳은 것(право имею)'인지이라는 견해를 보여줍니다. 위 구절은 바로 자신이 한낱 살인자일 뿐인지 아님 영웅인지에 대해 고민하다가 나온 말이었죠.
그리고 이미 이 대사를 통해 주인공은 자아 붕괴가 온 상태이며, 독자들은 그가 결국 자수하러 갈 것이라 예측할 수 있고, 실제로 그러합니다.
소설의 에필로그는 주인공 로디온이 와 있던 시베리아 감옥에서 시작합니다. 그 법원에서 2급 범죄로 여겨져 8년형의 고된 노동을 선고받습니다. 한편, 그를 위해 희생하기로 마음 먹은 희생적인 사랑과 이타심으로 상징되는 소냐도 그를 따라 함께 시베리아로 왔습니다. 로디온은 그렇게 새롭게 부활하게 되는데요. 그가 지금껏 생각했던 나폴레옹 사상에서 비롯한 '영웅심리'를 거부하고, 그가 마지막에 또 소냐에게 성경을 읽어달라고 하거나, 선물받은 성경책을 펼쳐보면서 소냐의 진정한 사랑과 헌신을 통해 모든 고통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게 됩니다.
4. <죄와 벌>의 문학적 특징
<죄와 벌>은 그 분량이 어마어마한 소설로, 읽기가 까다로웠습니다. 물론 그 분량은 <전쟁과 평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요...ㅎ
그런데 그보다 더 까다로웠던 것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고, 그들이 각각 이름, 성, 애칭으로 다양하게 불리기에 러시아어 인명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헷갈린 것과 그들 사이에 일어나는 갈고리처럼 엮이는 것들이 너무 많았던 것입니다.
이 읽기 힘든 소설은 처음엔 엄청 빠르고 급박하면서 혼란스럽게 진행됩니다. 숨 쉴 틈이 없어요. 그러다가 에필로그에 가서는 이야기의 속도가 느려지고 단조적으로 변합니다. 마치, 실제로 독자가 범죄를 저질러 그 내면의 복잡하고 빨라지는 갈등에 힘들어 하다가 결국 자신의 죄를 법적, 그리고 정신적으로 뉘우치며, 죄사함을 받아 구원받아 편안한 상태에 돌입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 듯 하죠.
이런 <죄와 벌>에서 주로 다루는 이념은 '허무주의(니힐리즘), 합리주의, 공리주의'입니다.
나는 다만 한 마리의 이(곧, 전당포 노파)를 죽였을 뿐이야, 쏘냐. 백해무익한 더러운 이를.
- 로디온 라스콜니코프
그의 발언에서 알 수 있듯, 그는 합리적이고 공리적인 관점에서 사람 한 명을 죽여 남은 만인의 행복을 일으킨다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는 행복해지지 않았고 스스로를 혐오하게 되었으며, 결국 사회와 인간성으로부터 단절되었죠. 도스토옙스키는 이러한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공리주의와 합리주의의 위험성을 지적했습니다. 이 공리주의와 합리주의가 극단적으로 러시아에 퍼졌고 결국 러시아 공산주의와 러시아 사회주의를 만들어내 한 때 세계의 절반을 대표했던 소련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그는 소련 건설에 찬성했을까요?
또한 노파 살해 이후 주인공의 허무주의적인 모습을 통해 당대 유행하던 허무주의의 실상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의 허무주의에 대한 생각은 이후 <악령>에서 자세히 다뤄집니다. 그렇지만, 주인공의 모습을 소련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그의 견해를 약간 엿볼 수 있습니다. 주인공은 노파 살해 이후 고통스러움에 빠지고 공허하게 지내게 됩니다. 이 모습을 통해 도스토옙스키는 소련은 결국 허무주의적인 것이 될 수 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여겼고, 정말 그렇게 되었죠.
이를 통해 누군가는 이 <죄와 벌>은 공산주의의 파멸을 예언한 책이라고도 했고, 또 공리주의 입장에서 누군가는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지지했으나 갑자기 미쳐버린 자라고 평하기도 했다네요~
소설 외적인 부분으로 보자면 그는 한 때 유행했던 영웅적 이야기에 심취했다가 스스로가 세상의 영웅이 되려고 행동했지만, 끝에 가서는 결국 종교에 귀의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미 <공산당 선언>이 발표되었고, 과학적으로도 많은 발전을 이루었으며, 종교와 같은 추상적이라고 여기는 대상보단 외적, 물질적 성장을 중요시했던 당시 사회에선 꽤 충격일 수 밖에 없었죠. 그럼에도 끝에 이 이야기를 쓴 것은 도스토옙스키 자신이 젊은 시절 휩쓸렸던 무신론과 혁명적인 서구의 사상과 그에 대한 후회와 반성을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주인공 로디온... 그는 사실 도스토옙스키였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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