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공원 황기 2600년 기념비, 금강공원의 바위에 새겨진 일제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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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과 표로 보는 역사 시리즈/어원과 표로 보는 한국사, 한국문화

금강공원 황기 2600년 기념비, 금강공원의 바위에 새겨진 일제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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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공원 내 일제 시설물 위치도 13층석탑(후락탑)
금강연못(청룡담)
금강원표지석
황기 2600년 기념비

금강연못(청룡담)에서 더 위로 조금 올라가면

저 멀리 산행 관련 안내문이 보이고, 그 오른편으로 돌계단이 보입니다. 이 계단을 몇 걸음만 올라가면 '황기 2600년 기념비'를 볼 수 있는 계단이 보입니다. 딱 보면 거대한 누워있는 돌이 보이는데 그리로 올라가면 됩니다.

저 가려진 나무 사이로 하늘을 향해 무언가를 내비치는 저 거대한 돌이 바로 '금강공원 황기 2600년 기념비'입니다. 정식명칭은 '황기 2600년 기념비(皇紀二千六百年記念碑)'이지만, 실제로 이런 이름을 가진 비석이 일본을 중심으로 많이 있기 때문에, 앞에 그 기념비가 위치한 '금강공원'을 덧붙여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고 합니다.

크기가 정말 장난이 아닙니다. 높이 4m에, 너비 6m라고 하더군요.... 솔직히 소름돋았습니다. 여기서 황기라고 하면 일본 초대 덴노인 진무 덴노가 즉위한 해를 기준으로 하는 일본의 연호라고 합니다. 이 기년법에 따르면, 일본의 진무 덴노는 기원전 660년에 즉위했다고 여기는 것이죠. 

皇紀二千六百年記念碑

金剛園誌

園ハ 金井連峰南ニ 盡クル 處ニ 在リ 山ヲ 負ヒ 谷ヲ 抱キ 奇巖累積翠松鬱蒼別乾坤ニ 遊ブガ 如シ 昭和六年 釜山東原嘉次郞君ノ 有トナルヤ 苑池ヲ 開キ 樓門ヲ 設ケ 巨資ヲ 投シ 經營頗ルカム 今年 皇紀二千六百年ニ 當リ 全園ヲ 擧ケチ 本邑ニ 寄贈ス 邑乃チ此ノ 擧ヲ 讚シ 整理擴張山城東南兩門ニ 通スル 回遊林道ヲ 倂ヤ以テ 溫泉公園ト 爲シ 遊覽觀光ノ 勝地タラシメントス 因テ 記念碑ヲ 建テ 由來ヲ 勒シ 之ヲ 後昆ニ 傳フ 云爾 皇紀 二千六百年 昭和 十五年 十一月 十日 東來邑長從七位 山口 精
皇紀二千六百年記念碑

金剛園誌

園は 金井連峰南に 盡くる 處に 在り 山を 負ひ 谷を 抱き 奇巖累積翠松鬱蒼別乾坤に 遊ぶが 如し 昭和六年 釜山東原嘉次郞君の 有となるや 苑池を 開き 樓門を 設け 巨資を 投し 經營頗るかむ 今年 皇紀二千六百年に 當り 全園を 擧けち 本邑に 寄贈す 邑乃ち此の 擧を 讚し 整理擴張山城東南兩門に 通する 回遊林道を 倂や以て 溫泉公園と 爲し 遊覽觀光の 勝地たらしめんとす 因て 記念碑を 建て 由來を 勒し 之を 後昆に 傳ふ 云爾 皇紀 二千六百年 昭和 十五年 十一月 十日 東來邑長從七位 山口 精
황기 2600년 기념비

금강원지(金剛園誌)

원(園, 금강원)은 금정연봉(金井連峰) 남쪽에 다하는 곳에 있으며, 산을 (등)지고 계곡을 끼고 기암누적(奇巖累積, 기암이 여럿 쌓여있음) 취송울창(翠松鬱蒼, 푸른 소나무가 울창함) 별건곤(別乾坤, 별천지)에서 노니는 것과 같다. 쇼와[昭和] 6년(1931년) 부산(釜山) 히가시하라 카지로(東原 嘉次郞) 군의 소유로 되자 원지(苑池, 동산과 못)를 열고 누문(樓門, 누각의 문)을 설치해 거금을 투자하여 경영(經營)이 대단히 맞물렸다. 금년 황기 2600년을 맞이하여 전 동산[全園]을 받들어 본읍(本邑, 동래읍)에 기증한다.
읍(은) 곧 이 거(擧, 받듬)를 칭찬하고 정리확장(하여,) 산성(山城) 동남양문(東南兩門)으로 통하는 회유(回遊) 임도(林道, 숲길)를  아울러 함께 온천공원(溫泉公園)으로 하는 유람관광의 승지(勝地, 명승지)에 이르게 한다. 이에 기념비를 세우고 유래를 새겨 이를 후곤(後昆, 후손)에게 전하고자 하노라.
황기 2600년 쇼와 15년(1940년) 11월 10일 동래읍장(東來邑長) 종7위(從七位) 야마구치 키요시(山口 精)

1920년대에 담배 장사로 큰 부를 축적한 히가시하라 카지로(히가시바라 카지로, 東原 嘉次郞)가 1931년, 동래금강원(東莱金剛苑)이란 이름으로 개인 정원을 하나 만듭니다. 그는 계곡물을 끌어와 현재의 금강못을 만들고 큰 탑도 세우며 대형 일본식 정원을 만들었죠. 이곳을 1940년 11월 10일, 황기 2600년이 된 해를 기념해 이를 동래읍에 기증합니다. 이를 기념해 글을 하나 썼는데, 이 글은 당시 동래읍장 야마구치 키요시(山口 )가 큰 돌에 새겼다고 하네요.

 

근현대 부산 동래 지역 역사의 저편에 히가시하라 카지로(히가시바라 카지로)라는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이 번 돈으로 지금의 금강공원(당시 금강원)이 탄생했습니다. 그의 의중은 확인하기 어렵지만, 이 정원이 일본인의 산물이었다는 것을 알고 크게 놀랬고, 거기다 당당하게 최초의 덴노가 즉위한 지 2600년이 흘렀다고 전해지는 1940년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 동래에 이 공원을 기증했다는 것도 놀랬습니다. 물론, 당연히 당시 동래 또한 중앙 정부와 마찬가지로 일본에게 관리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일본 민족적인 의도도 깔려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네요. 정말 최근 방문했던 기념비 중 가장 소름돋고 무서웠던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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