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풍 곽씨 죽재공파 동래 산저문중회의 재실, 미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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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과 표로 보는 역사 시리즈/어원과 표로 보는 한국사, 한국문화

현풍 곽씨 죽재공파 동래 산저문중회의 재실, 미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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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남역에서 미산재까지 가는 길을 지도에 표시했습니다.

4호선 미남역 11번 출구에서 북구 방향으로 조금 올라가다가 

GS셀프주유소가 보이면 충렬대로 방향으로 꺾어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갈림길에서 다시 왼쪽으로 꺾어 올라가면 됩니다.

그럼 이런 잘 닦인 나무 계단이 보이는데요~ 여기가 미산재 입구입니다.

조금 더 올라가면 돌로 된 평지가 나오는데,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주시면 됩니다.

팻말엔 현풍곽씨죽재공파동래문중(玄風郭氏竹齋公派東萊門中)이라고 적혀 있네요.

말 그대로 현풍 곽씨 죽재공파 동래 문중의 재실입니다.

사전에 따르면 현풍 곽씨 죽재공파 동래 산저문중회(玄風郭氏竹齋公派東萊山底門中會)의 재실이라고 하네요.

1756년, 현재의 부산 동래구 온천2동 서쪽에 위치한 동래부 서면 도화촌(桃花村, 현 산저마을(山底-))로 현풍 곽씨 죽재공파 곽시회(郭時檜, 1740~1810)가 이주합니다.

 

그리고 그 후손들은 현풍 곽씨의 가문과 가훈을 숭상하는 충과 예를 실천하며 동래 향교의 향직(鄕職, 한 고을에 대물림으로 내려오던 품계나 벼슬)을 맡으면서 대대로 미남마을과 산저마을에서 살게 됩니다.

이후 그들은 1963년에 미남마을의 미(美)와 산저마을의 산(山)을 따와 미산재(美山齋)라는 재실을 세우게 됩니다.

그러다 1973년 만덕 제1터널이 개통되며 도로가 확장되어 1988년 지금의 위치로 이전해 다시 지었죠. 

옆의 문으로 들어가면 계단이 보이고, 저 멀리 미산재(美山齋)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으며, 그 아래에  현풍 곽씨 죽재공파 동래 산저문중회(玄風郭氏竹齋公派東萊山底門中會)라는 편액도 걸려 있습니다.

 

이곳 뒤에는 이 땅으로 이주한 곽시회, 그의 아들이자 부사로 있었던 곽창기(郭昌基), 그리고 그의 손자 곽순형(郭舜衡)의 3대의 묘소를 합장하고 있습니다. 거기까진 방문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자신들의 조상을 기리고, 또 같이 모이며 이야기를 하는 그런 대대로 이어져 오는 사회 문화를 기억하는 것 자체로 인상 깊었던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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