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의 위인들을 기념하는 산책하기 좋은 근린공원, 춘추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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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의 위인들을 기념하는 산책하기 좋은 근린공원, 춘추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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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교동의 춘추공원을 찾았습니다~

 6월에 호국보훈 깃발서예전이 열렸어요~

그래서 공원 시작 지점에서 공원 입구까지 가는 길에 다양한 서예 작품을 볼 수 있었습니다~

춘추공원으로 가는 길은 여러 곳입니다.

충렬로와 교동5길이 만나는 지점 쪽 버스정류장 부근에서 계단을 올라올 수도 있습니다~

처음엔 이 공원에서 기념하는 위인 김서현, 이원수, 윤현진, 박계상, 김원현, 조영규에 대한 간략한 정보와 이 공원이 세워진 유래에 대해 간단하게 쓰여 있습니다.

[춘추공원에서 만나는 위인들]
양주총관 김서현
김유신 장군의 아버지
문무대왕의 외조부

고향의 봄 이원수
독립열사 윤현진

왜적에 대항한 삼조의열
신라의 충신 박계상
고려의 양주방어사 김원현
조선의 양산군수 조영규
"공원의 유래"
삼조의열 비석을 군수와 춘추계원들이
한곳에 모아 장충단이라 이름
붙이고 공원 이름을 춘추원이라 함

신라대양주도독김서현장군기적비(新羅大梁州都督金舒玄將軍紀蹟碑)
김서현 장군 기적비(1966년, 현대)
이 비석은 삽량주시대 양주총관良州摠管, 양산군수)을 지낸 김서현(金舒玄, ?~?) 장군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김서현 장군은 신라의 명장 김유신(金庾信, 595~673)의 아버지로 법흥왕 19년(532년)에 가야에서 신라로 귀순하였다. 이후 여러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내용와 양주 도독에 있었을 때 선정을 베푼 내용을 기록하였다. 비석은 비석을 받치는 귀부(龜趺)와 비석머리인 이수(螭首)를 지닌 전통형이다.

이제 계단을 올라갈겁니다.

출처 : 카카오맵

계단을 올라오면 이런 풍경이 펼쳐집니다. 오른쪽으로는 절로 가는 길이 이어져 있고, 왼쪽엔 비석과 흉상이 있죠. 가운뎃길로 올라가면 공원 산책로로 이어집니다~

대한국사 윤현진선생 기념비
관리번호 : 41-1-13
관리자 : 양산시
건립일자 : 1959년
우산 윤현진 의사(1892.09.16.~1921.09.17.)
윤현진 의사양산 출신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서 1914년 일본 동경(도쿄)으로 건너가 메이지대학에서 법과대학 재학 중 조선유학생학우회(1912~?)를 조직하고 총무로 선임되어 항일투쟁을 하였으며, 귀국 후 1916년 백산 안희재 등과 대동청년당을 조직하여 활동하는 한편, 양산에 의춘학원(宜春學院)을 설립하여 후진양성에 노력하였다. 이후 단신으로 상해(상하이)로 망명, 이시영, 이동녕, 김구, 노택린, 여운형, 신익희 등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조직에 참여하여 초대 재무차장과 재무위원장, 내무위원으로서 활동하였다.

1920년에는 독립신문사를 확장하고 안창호와 같이 주금(株金, 주식출자금) 모집의 발기인이 되었으며, 1921년 5월에는 국민대표회의기성회(國民代表大會期成會, 1921~?)를 조직해 활동하는 등 구국투쟁에 헌신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으며, 1959년 당시 양산군민 성금으로 이 기념비가 건립되었다.

우산 윤현진 선생 흉상
윤현진의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명구(明九), 호는 우산(右山)이다. 윤현진은 7세 때 고향인 경남 양산의 만성재서숙(晩惺齋書塾)에서 한학을 공부하였고, 15세 때인 1907년에 숙부 윤상은(尹相殷)이 설립한 구포의 사립 구명학교(龜明學校, 현) 구포초등학교)를 1회로 졸업하였다.

17세가 되던 1909년에는 중국의 난징, 베이징, 상아이 등지를 돌아다니면서 국제 정세를 익혔다. 1912년에는 일본 도쿄로 건거나 메이지 대학 법학과에 입학하였다. 메이지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면서 신익희·김성수·장덕수·송진우 등과 함께 '조선유학생학우회'와 '조국광복동맹결사단'을 조직하여 국권 회복 은동을 전개하였다.

1916년 2월에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하였다. 귀국 후 안희제의 백산상회에 입회하였고, '대동청년단'에서도 활동하였으며, 양산에 의춘학원(宜春學院)을 설립하여 후진들에게 독립사상을 고취하였다.

또 일본 상인에 대항하기 위해 '의춘상행(宜春商行)'이란 소비조합을 설립하여 운영하였는데,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민소비조합운동이다. 
1919년 3·1운동 때에는 경남은행 마산지점장을 지내면서 고향에 일어난 만세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일본의 탄압이 심해지자 4월에 상하이로 망명하여 이시영, 이동녕, 김구, 노백린, 여운형, 신익희 등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조직하였다. 임시정부의 초대 재무차장에 선임되어 임시정부의 재정 문제를 해결하는데 힘썼으며, 미국 선교사를 통해 고향의 사유재산 30만원을 임시정부에 헌납하였다. 그 후에도 임시정부의 재무위원장과 내무위원 등을 맡아 나라를 위하여 활발한 활동을 펼치다가 1921년 9월 17일 갑작스레 얻은 병으로 숨을 거두었다.

선생은 순국하기 전에 "조국이 독립하지 못하면 내 유골을 고향의 선산에 묻지 말며, 내 자녀를 결혼시키지 말라"라는 유언을 남겼다.

정부는 1962년에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으며, 상하이 정안사(静安寺, 징안쓰) 외인묘지(지금의 만국공묘(萬國公墓))에 안장되었던 선생의 유해는 1995년 6월 23일 대전 국립묘지에 이장되었다.

춘추공원으로 올라가는 길 오른편엔 춘추원사(春秋園寺)로 들어가는 길이 있습니다만, 밧줄로 묶여 있어 들어가 보진 않았습니다.

어릴 때 자주 불렀던 '고향의 봄'입니다~ 원래 이 노래는 동시였는데, 그 시를 양산출신 아동문학가 이원수가 썼던 것이죠~ 아무래도 양산이 배출한 문학가이기 때문에 이곳에 그의 노래비가 세워진 듯합니다.

이원수 노래비
고향의 봄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꽃동네 새동네 나의 옛고향
파란 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참고로 노래는 이일래와 홍난파가 각각 자신만의 버전으로 작곡했는데,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건 홍난파 버전 고향의 봄입니다! 그래서 이 시비를 '이원수 시비'라고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금 올라가다 보면 '충렬사까지 300m, 현충탑까지 200m'라고 쓰인 안내판이 보이는데요. 이 안내판 뒤에는  '충을 장려하는 제단'이란 뜻의 장충단(奬忠壇)이라는 표지석이 있습니다. 원래 이곳에 삼조의열의 비석을 이곳에 모아 '장충단'을 세웠는데, 이제는 뒤편에 있는 양산 충렬사로 옮겨 모시고 있습니다.

 

양산의 정신 삼조의열과 임란공신, 독립운동가를 모신 양산 충렬사

양산 교동 춘추공원 위쪽에 충렬사(忠烈祠)가 있습니다. 충렬사(忠烈祠) 자체가 충렬(忠烈, 충성스러운 열사)을 모시는 사당(祠)이기 때문에 한 곳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한국, 중국, 대만 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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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사쪽으로 가는 길에는 춘추 유아숲 체험원양산시립독립기념관으로도 갈 수 있습니다.

넓은 공간이 나옵니다.

오른편에는 화장실이 보입니다.

지도 출처 : 카카오맵

정면에 춘추공원 지도가 보이는데요. 대략적인 시설물을 지도에 표시해 봤습니다.

한편에는 국제로타리에서 세운 '숲속의 대화(對話)'라는 동상도 세워져 있습니다.

그날이 오면
심훈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올리오리다
두 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딩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심훈의 <그날이 오면> 시비 뒷편 초록색 보도블럭이 깔린 길을 따라가다보면 정자도 나옵니다.

현충탑 방향으로 계속 옆으로 올라갑니다.

조국의 별
- 고은
별 하나 우러러 보며 젊자
어둠 속에서
내 자식들의 초롱초롱한 가슴이자
내 가슴으로
한밤중 몇 백 광년의 조국이자
아무리 멍든 몸으로 쓰러질지라도
지금 진리에 가장 가까운 건 젊은이다
땅 위의 모든 이들아 젊자
긴 밤 두 눈 두 눈물로
내 조국은
저 별과 나 사이의 가득찬 기쁨 아니냐
별 우러러보며 젊자
결코 욕될 수 없는
내 조국의 뜨거운 별 하나로
네 자식 내 자식의 그 날을 삼자

그렇다 이 아름다움의 끝
항상 끝에서 태어난다 아침이자
내 아침 햇빛 떨리는 조국
오늘 여기 부여안은 일체결합의 젊음이자

조금 올라가니 고은이 쓴 <조국의 별> 시비도 보입니다.

그 시비를 돌아 더 올라왔습니다. 이제 여기서 뒤돌면 현충탑으로 갈 수 있게 됩니다.

 

양산 출신 한국전쟁 유공자 794분을 모신 양산 춘추공원 현충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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