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이 썼다고 전해지는 해운대의 유래, 해운대 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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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과 표로 보는 역사 시리즈/어원과 표로 보는 한국사, 한국문화

최치원이 썼다고 전해지는 해운대의 유래, 해운대 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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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해운대구 우동 동백섬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APEC 하우스를 지나면 '해운대 석각' 안내판이 보입니다. 이곳 옆 전망대로 내려가면 해운대 석각이 있죠~

해운대 석각(海雲臺 石刻, carved stone of Haeundae)
부산광역시 지정기념물 제45호
소재지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1동 710-1(동백섬)
이 석각은 신라 말의 시인이자 학자였던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908) 선생이 썼다고 한다.

최치원이 어지러운 정국을 떠나 가야산으로 입산하러 갈 때, 이곳을 지나가다 자연경관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대( 臺)를 쌓고 바다와 구름, 달과 산을 음미하면서 주변을 거닐다가 암석에다 해운대란 세 글자를 음각함으로써 이곳의 지명이 되었다고 전해온다.

석각에 새겨진 해운대란 각자(刻字)가 최치원의 자필이라고 할 만한 확실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고려시대의 문신인 정포(鄭誧, 1309~1345)의 시 가운데 '대는 황폐하여 흔적도 없고, 오직 해운의 이름만 남아 있구나'라고 하는 구절을 볼 때, 이미 당시부터 동백섬에 석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동백섬 일주도로 중 APEC 기념 전망대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오랜 세월 동안 비바람과 파도에 씻겨 세 글자 중 운(雲)자가 많이 마모된 상태이다.

전망대 오른편 저 아래편에 '해운대'라고 한자로 쓴 글자가 보입니다

확인된 사실에 따르면 최소 고려 시대부터는 저 글자가 적혀 있었다는 것이죠!

이곳에서 해운대 해수욕장을 바라본 모습도 참 절경입니다.

지금도 절경인데 신라 시대 때는 얼마나 더 아름다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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