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구 회동수원지 인근 강릉 김씨의 위인을 섬기는 상현당(상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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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과 표로 보는 역사 시리즈/어원과 표로 보는 한국사, 한국문화

금정구 회동수원지 인근 강릉 김씨의 위인을 섬기는 상현당(상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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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금정구 선동 전체도 (출처 : 네이버 지도)

부산광역시 금정구 선동에도 볼거리가 꽤 된다. 특히 회동수원지 산책로의 중심지로서 그 역할을 다해내고 있는데, 그곳 말고도 오르막길만 좀 익숙하다면 한 번쯤 바람 쐬러 지나가봐도 좋을 곳이 있다.

회동수원지에 도착해 좀 더 쭉 가보면 선동교라는 다리가 나온다. 선동교를 지날 때 동쪽의 철마천 방향으로 바라보면 저 멀리 작은 고풍스러운 기와집이 보인다. 바로 저기가 오늘 가볼 상현사(상현당)이다.

선동교를 다 지나고 왼편으로 꺾으면 강릉(江陵) 김씨(金氏) 상현당(尙賢堂)이라고 적인 돌이 보인다. 이 좁은 길로 올라가면 된다. 근데 경사가 꽤 되니 숨 크게 들이마시고 도전해보길 바란다~

높은 오르막길을 오르고 다시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아주 이쁜 집들이 있고, 조금 더 가면 상현사 주차장이 나온다.

입구에는 두 개의 안내문이 있는데, 왼편의 안내문은 강릉 김씨의 역사와 그 성씨를 가진 김시습, 이조참의 김선, 의병장 김정서의 이야기를 간략히 다루고 있으며, 오른편의 안내문은 상현당이 어떤 곳인지를 정의하고, 북계 선생의 묘비문 일부분을 인용해 북계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김정서 장군의 임진왜란 관련 뉴스 기사를 소개하고 있다.

안내문
강릉김씨 시조 주원공(周元公)은 신라 29대 태종 무열대왕(太宗 武烈大王) 김춘추공의 6세손이다
.
신라 38대 원성왕(787)은 주원공이 왕위 계승의 대사를 재삼고양(再三固讓, 두번 세번 굳게 사양함)한 덕망에 감동받아 강릉, 삼척, 양양, 울진 등을 관할 통피하겠큼 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책봉 하였는 바 이에 강릉 김씨 시조이시다.

이곳 금정구 선동 상현당 재실은 시조 주원공의 22세손 일성(日省)과 일신(日新) 형제에 따르며, 형 일성은 청간공(淸簡公)파의 파조로서 매월당 김시습(金時習) 선생의 부친이며, 여기 깁시습 선생의 영정이 묘셔져 있고, 동생 일신은 충순공(忠順公) 파조로서 손자 북계 김선(北溪 金璿) 선생의 그 높은 충절과 충의의 선비정신을 추모하며 또한 북계 김선 선생의 두 분을 봉안, 매년 음역(음력) 4월 첫 정일(丁日)에 제향을 모시는 사당이다.

일찍이 북계 김선(北溪 金璿) 선생은 조선왕조 문종 때 이조참의(吏曹 參議)를 엮임(역임)한 분으로써 세조 왕조 때 병자육신지화(丙子六臣之禍:1456)로 울산군수로 제수되었으나 벼슬을 버리고 천리 밖 이곳까지 동생과 부친을 모시고 이곳에서 은둔생활하면서 충신불사이군(忠臣 不事二君)의 충절을 지키고, 백이숙제(伯夷 叔齊)와 같은 대의를 몸소 실천하시고 인근 수재들에게 학문을 가르쳤든 높은 선비정신과 충절의 의미를 후손들께 전수하였다.

일면 백취 김정서 의병장군은 일찌기 담략과 지모가 출중하여 장재(將材)로 촉망받든 중 1592.4.13. 임진왜란을 당해 열세의 위기에 처할 무렵 조국을 지키려는 충의정신이 강한 선비 66명으로부터 추대를 받아 의병장군이 되었다. 그는 왜적 토벌에 진두하여 적들이 소산역(현, 금정구 선동 하정마을)에 주둔하자 적진 야음을 틈타 투석기를 설치, 소수정예전공에 의한 전법으로 일시에 적진진입 야습낙살된 왜군의 시체가 골짜기를 가득 메우는 전과가 있었다.

연이어 언양과 울산으로 진격하는 왜적을 격퇴코져 결사 항전의 매복 유격전술로 토벌, 진로를 차단, 교두보를 선취하였고, 다시 화왕산(현 경남 창녕군 창녕음)으로 가서 망우단 곽재우(忘憂堂 郭再祐) 의병대장과 함유, 경상우도(慶尙右道) 군민 양식확보와 조달에 힘쓰며, 장기항전에 많은 전공을 세운바 있어, 선조 31년(1598) 다대포 첨사(多大浦僉使)에 제수되었으며, 선조 38년(1605) 선무원종공신 1등 서훈(宣武原從功臣一等敍勳)으로 추서되셨고, 그 후 영조 45년(1769) 6월에 가증통정대부병조참의(加增通政大夫兵曹參議)로 추증되어 오늘날 부산 충렬사(忠烈祠)에 24공신 중 수공신으로 봉안되어있고, 대구 임란호국영남 충의단(망우당 : 忘憂堂), 울산 임란공신숭모제(충의사 : 忠義祠), 언양선무원종 공신원모제(원모사 : 遠慕祠) 등 영남 방방곡곡에서 매년 춘추로 위국충절(爲國忠節)의 추모제향이 년중 배향되고 있다.

특히 왜군의 최초침략지가 부산 동래였으며 불시에 밀어닥처 관민의 허리를 찔린 사항에 의병장군의 장거를 결행한 것은 우리 의병사(義兵史)에 금자탑을 세웠든 것이다.

본 재실은 1907년 8월(정미년 : 丁未年) 신축 되었든 3개동을 100주기를 맞아 부산지역 문중의 뜻을 모아 재실 3개동을 증축 복원하고, 선령의 묘역을 단장하여, 선대의 호국충절 정신과 소홀해지고 있는 유교적 효의 정신문화유산을 지역사회의 후예들에게 고유문화 전례의 학습장으로 기여하기를 바라면서 우리 후손들의 정성을 시민들께 알립니다.


2007년 (丁亥, 정해) 10.
강릉김씨 충순공파 동래문중
상현당(尙賢堂)

상현당(尙賢堂)은 조선 시대 문종 때 이조참의를 지낸 북계(北溪) 김선(金璿)과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백취(栢翠) 
김정서(金廷瑞), 그리고 생육신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등 열조 3위를 모신 강릉 김씨 충순공파 동래문회(江陵金氏忠順公派東萊門會) 후손과 향내 유림이 모여 제향을 지내는 단사(壇祠)이다.
[북계선생묘갈]
-조선 문종 때 이조참의를 지낸 북계(北溪) 김선(金璿)의 묘비문-

북계선생강릉김공지묘
-北溪先生江陵金公之墓-

우리나라는 절의(節義)가 성대한 나라인데, 단종시대보다 성대한 적은 없었으니, 생육신과 사육신이 이르러 매월당(梅月堂) 김선생[金時習]이 그 중 한 분이시다. 김선생의 사촌형의 아들이신 북계(北溪)선생은 이름이 선(璿)이고, 자는 재옹(在翁)이다.

선생은 한양 반촌(泮村, 지금 명륜동)의 옛 집에서 태어났는데, 태어나서부터 재주가 영특하고 빼어났으며, 문장이 일찍 성취되었다. 일찍이 과거에 합격하자 매월당이 책을 주며 권면했고, 벼슬이 이조참의(吏曹參議)에 이르렀다. 하는 말이 왕의 뜻에 거슬려서 외직으로 좌천된 적이 있었는데, 울주에 이르렀을 때 풀려 돌아왔다. 세조가 왕위를 받았을 때, 북계선생은 동생 침랑공(寢浪公)과 함께 아버지를 모시고 달아나 바다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와 동래 북쪽 상현리(上賢里)에 이르러 문을 걸어닫고 흔적을 감추었다. 정축년(1457)에 단종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는 3일 동안 먹지 않고 7일 동안 통곡을 하여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였다.

계곡가에 집 하나를 지어 "북계(北溪)"라고 편액을 걸고 동생 김랑(金琅)과 함께 때때로 이곳에 올라와 북쪽을 바라보며 통곡했는데, 피눈물이 물들 지경이었다. 매번 달밤 빈 산에서 소쩍새 소리가 들리면 시를 지어 마음을 달래었다. 자리에 앉을 때도 반드시 북쪽을 끼고 앉았으며, 문도 반드시 북쪽을 향하게 했고, 계곡도 북계라고 불렀으니, 영월(寧越)이 북쪽에 있기 때문이다. 

돌아가실 무렵, 죽음으로 나라에 보답하지 못한 것을 깊은 통한으로 여겨 "충효(忠孝)" 두 글자로 자손들에게 권면하면서, "북계정 뒤 언덕에 묻어달라"고 하시고 명령에 따라 이곳에 묻었다.

- 후략 - 
부산일보 임란 첫 의병활동은 동래 '소산 전투'

평화로워 보이는 작은 산속에 강변을 끼고 여러 기와집이 있다. 이곳이 안내문에도 적혀 있듯 조선 시대 문종 때 이조참의를 지낸 북계(北溪) 김선(金璿)과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백취(栢翠) 김정서(金廷瑞), 그리고 생육신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등 열조 3위를 모신 강릉 김씨의 단사(제단사당, 壇祠)이다.

우선 구조도를 살짝 살펴보고 가자. 현재의 구조와 조금 다른 부분이 있는데, 현재의 삼전문, 상현당, 북계제, 선현관을 신축했기 때문에 이 때의 복원전 전경과 현재의 모습에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항공사진으로 표시해봤다. 원래는 노란선을 따라 들어가면 되었지만, 현재는 오른쪽에 삼전문과 종현문 2개의 문을 세우고, 삼전문으로 들어간 곳을 상현사(尙賢祠), 종현문으로 들어간 곳을 상현단(尙賢壇)으로 분리했다. 그리고 이 두 공간을 통틀어 상현당(尙賢堂)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상현당(尙賢堂)
상현사(尙賢祠) [문=삼전문]
상현단(尙賢壇) [문=종현문]
상현당 북계재 선현관 상현단

입구에 다다르기 전에 마주칠 수 있는 선현관(仙賢館)이다. 이쪽엔 입구가 없고, 삼전문을 거쳐 들어가야 한다.

그 옆엔 대문인 삼전문(三全門)이 있으며, 이 문을 통해 상현사(尙賢祠)에 진입할 수 있다. 현재 삼전문 앞에는 2개의 부적이 붙여져 있는데, 그 내용은 아래 표에 정리했다.

상현당 삼전문 앞에 붙어 있는 부적
(왼쪽 부적부터 읽기에, 和로 시작해 家로 끝나게 읽고 해석해야 한다.)
春光先到吉人家
[춘광선도길인가]
和氣自生君子宅
[화기생군자택]
봄 빛(春光)이 먼저 오니 길인(吉人)의 집이로다. 화기(和氣)가 스스로 생기니 군자(君子)의 집이요 

삼전문으로 들어가면 나오는 전체 공간을 상현사라고 하는데, 이곳에는 북계재(北溪齋), 선현관(仙賢館), 그리고 강릉 김씨의 시조, 김시습, 북계 김선, 백취 김정서의 사진과 상현당(구 상현정사)의 유래 등이 부착되어있는 상현당이 있다.

상현당(尙賢堂). 이곳엔 강릉 김씨의 시조, 김시습, 북계 김선, 백취 김정서의 사진과 상현당(구 상현정사)의 유래가 적힌 글이 있다고 한다.

상현사의 동쪽에는 종현문(從賢門)이 있는데, 이곳으로 들어가면 상현단(尙賢壇)이 나온다.

이 상현단은 상현정사(尙賢精舍, 현 상현당)의 별사(別祠)로, 김선과 김정서 2명을 조두(俎豆, 위패 없이 제기만 놓을 수 있는 석단)했다. 이전에는 이 전체 다 이어져 있었는데, 새로 중축하면서 상현당의 4면에 담장을 만들어 놓아, 종현문으로만 출입할 수 있게 되었다.

비문 앞면 비문 뒷면
해진(海振, 호(號). 청호(晴湖)). 부갑(富甲, 호. 동은(東隱)). 공적비

본 상현당(上賢堂)은 강릉 김씨 시조 명주군왕(溟州郡王) 휘(諱) 주원공(周元公) 22세손 휘 일신공(日新公)의 손 휘 선공(璿公)과 현손(玄孫, 손자의 손자) 휘 정서공(廷瑞公)의 제향(祭享)을 봉존(奉尊, 받들어 높임)하여 오고 있으나 상현당하계(上賢堂下階)가 사면(斜面, 경사면)이 협소하고 노후되어 전 종인(宗人)의 염원인 상현당을 중축건립하기로 문중(門中)에서 의결하고 문장(門長)을 중심으로 문중유사정일종인(門中有祠正一宗人)과 동래향교(東萊鄕校) 감사(監査)이며 공사현장 총무 동규(東奎) 종인(宗人) 책임아래 임원 여러분과 합심하여 건립하게 되었다. 막대한 건축비는 문중 운영자금과 부산지역 전 강릉 김씨 종인의 특지(特志)헌금과 전 태종무열대왕릉(太宗武烈大王陵) 참봉(參奉) 동래향교 전교(典校) 및 충렬사안락서원장(忠烈祠安樂書院長)을 역임하신 해진(海振) 문장(門長)께서 사재 일금 일억원의 헌금과 경남 창원시 대산면 유등리 소재 대지:3필지:532평 등을 헌납하셨고, 부산강역시 지정 무형문화재 제5호 예능 보유자 및 충렬사 안락서원 증경원장(曾經院長)인 부갑(富甲) 원장께서 일금 5천만원을 헌금으로 장구한 기간에 걸쳐 전 임원은 고난을 극복(克服)하고 불면불휴로 심혈을 경주하여 준공을 보았다. 평소 남다른 효열사상(孝烈思想)과 숭조애친정신(崇祖愛親精神)을 후손에게 전하고자 해진 종인과 부갑 종인의 공적에 전 종인은 감사(感思)하여 영원히 기념하기 위하여 이 비석에 각명(刻銘)하여 후손에게는 충효와 숭조정신의 산 문화장(文化場)이 되고, 화합의 전당(殿堂)이 되어 종인의 단합(團合)과 친목을 촉진케 하면서 부산 문화 발상의 명소로서 만세에 길이 빛날 것이니 영세불멸(永世不滅)토록 세전(世傳)하기를 소망하면서 본 비문을 근기(謹記, 삼가 씀) 합니다.

서기 2008년 무자(戊子) 4월

강릉 김씨 충순공파 동래문중
강릉 김씨 충순공파 동래 문중 : 3파 종문 임원 명단
수내종문
(藪內宗門)
여고종문
(余古宗門)
산저종문
(山底宗門)
문회장 : 海振
이사 : 榮卿, 眞澤
          先起, 潤
          晃伎, 새삶
감사 : , 江振

총무 : 正一
회장 : 相魯
부회장 : 永, ㅇㅇ
이사 : , ㅇㅇ
          ㅇㅇ, ㅇㅇ
          ㅇㅇ, ㅇㅇ
          ㅇㅇ
감사 : 南卓

총무 : ㅇㅇ

고문 : ㅇㅇ, ㅇㅇ
회장 : ㅇㅇ
부회장 : 富甲
이사 : ㅇㅇ, ㅇㅇ, ㅇㅇ
          ㅇㅇ, ㅇㅇ, ㅇㅇ
          ㅇㅇ, ㅇㅇ, ㅇㅇ, ㅇㅇ
감사 : 南植, ㅇㅇ
총무 : 東奎

서기 2008년 무자(戊子) 4월

2007년에 시작된 복원 공사에 강릉 김씨 충순공파의 김해진씨, 김부갑씨가 총 1.5억원과 대지 532평 등을 헌금하고 헌납한 것에 감사하며 이 일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 비석을 세웠다고 적고 있다. 비석 뒤에는 강릉 김씨 충순공파 동래 문중의 3파인 수내종문, 여고종문, 산저종문의 핵심 구성원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 여러장 찍어둔 사진에서 몇 글자는 확인할 수 없어 ㅇㅇ으로 표시했다. 혹여나 사람 이름을 한자로 잘못 표시하는 것 자체가 실례이기 때문에 식별가능한 것만 적어뒀다. 만일 추후에 방문하게 되면 갱신할 예정이다.

 

조선 시대 문종 때 이조참의를 지낸 북계(北溪) 김선(金璿)과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백취(栢翠) 김정서(金廷瑞), 그리고 생육신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등 열조 3위를 모신 강릉 김씨의 단사(제단사당, 壇祠)인 상현당(尙賢堂)에서 그들을 기리며 또 강릉 김씨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러했던 과거를 기억하는 한 방식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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