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당시 철마면을 지키려다 순직한 경찰들을 기리는 철마 순직 경찰·의용경찰 추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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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철마면을 지키려다 순직한 경찰들을 기리는 철마 순직 경찰·의용경찰 추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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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기장군 철마면의 철마체육공원 한 편에는 철마 순직 경찰·의용경찰 추모비라는 자그마한 추모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철마체육공원 주차장 북쪽에 작은 추모비가 있어요.

입구의 오른쪽 세월의 흔적이 담긴 처음 세워졌던 순직 의용경찰 위령비가 세워져 있으며, 그 왼쪽에는 새롭게 단장한 추모비와 그 뒤로 작은 뜰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1952년 9월에 일어난 나암봉 전투에 대해 정리한 글이 있어 잠깐 인용했으니 읽어보길 바랍니다.

1952년 9월 2일 오후 8시경에 기장군 철마면 이곡리에서 공비가 출현하였다는 당시 이곡리 이장 이철재의 전화 연락을 받고 동래경찰서 철마지서 의용 경찰 1개 분대원 9명은 철마지서를 출발하여 이곡리로 향하였다. 때마침 철마면 연구리 보림 정미소 주인 정기용의 아들 정호길(鄭浩吉)[당시 12세]이 아버지 심부름으로 철마면 와여리 오재춘이 경영하는 술도가에서 탁주를 사서 주전자에 담아 집으로 돌아가던 중 옛 철마면 창고 근처에서 이곡리로 출동 중인 전투 경찰 대원을 만나 몇 마디 대화를 나눈 후 의용 경찰보다 약 20m 정도 앞서 갔다.

나암봉을 조금 지나서 기와 공장 근처에 이르렀을 무렵 나암봉 양쪽 기슭에 미리 대기 중이던 공비들이 뒤따라오던 의용 경찰들을 습격하여 순경 이경섭을 비롯하여 철마면 출신 의용 경찰 6명이 전사하였다. 한편 정호길은 총소리에 정신을 잃고 기와 공장 옆 무논에 엎드렸는데, 그때 공비들이 사격한 구구식 총구에서 나간 총알 한 방이 오른쪽 머리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정호길은 논두렁 밑으로 기어 겨우 집에 도착하여 된장으로 총상을 치료하였다. 총상을 입은 정호길은 아버지를 따라 곧 부산으로 이사를 하였고, 생존한 사람들도 아픈 기억을 간직한 채 살았다.

- 부산역사문화대전 순직 의용 경찰 위령비 중

위령비 앞면 위령비 뒷면
순직 의용경찰 위령비
아! 어찌 잊으랴
1952.9.2.
붉은 무리에 한치의 땅도
더럽히지 않으려다
이곳에서 젊음을 산화한
7위의 호국영령을 달래며
그 넋을 이 돌에 새겨
후세에 전하노라.
순직자
순경
이경섭
의용경찰 김성수
김수상
송만조
송갑조
신유택
정경은
1985.1
철마면민일동

이 위령비는 1984년 12월 철마초등학교 강당에서 이재우 국회의원이 귀향 보고를 할 때 1952년 당시 살아남은 동료 의용 경찰 오재오가 "전사한 동료들의 위령비라도 세워 주어야만 살아남은 자들이 편히 잠들 수 있겠다"라고 건의하여 건립이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차규철 철마면장이 비문을 짓고 현재의 실로암공원묘원에서 위령비를 만들었으나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해 20여 년간 그 자리에 두었다가 2005년 12월 15일 철마면사무소 청사 내 왼쪽 화단에 세우게 되었던 것이죠.

추모비 앞 추모비 윗면
추모비 조성 취지

1952년 9월 2일 철마면 나암봉 전투에서 생존한 의용경찰 오재오의 건의로 1985년 1월에 '순직 의용경찰 위령비'가 만들어졌으나 세울 터가 없어 방치되었다.

2005년 12월 15일에 이르러 철마면사무소 내에 설치되었으나 오가는 사람이 없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갔다.

이를 안타까워한 기장경찰서장 정명시의 제안으로 기장군수, 기장군의회 그리고 기장군민이 마음을 모아 숭고한 희생을 기리자는 뜻으로 이곳에 새롭게 '철마 순직 경찰·의용경찰 추모비'를 세우고 주민 친화적인 공원 형태로 조성하였다.

2018년 12월 19일
철마 순직 경찰·의용경찰 추모비

1952년 9월 2일 동래경찰서 철마지서 경찰관과 의용경찰 등 8명이 철마면 나암봉에서 무장공비와 교전을 벌이다가 순경 이경섭을 비롯하여 철마면 출신 의용경찰 김성수, 김수상, 송갑조, 송만조, 신유택, 정경은 등 7명이 전사하였다.
이들의 고귀한 희생과 치안회복을 위한 주민들의 노력으로 이듬해인 1953년 3월 기장지역은 안정을 되찾았다.

조국과 마을을 목숨으로 지켜 낸 영령들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고자 이 추모비를 건립하게 되었고 7개의 비석이 태극문을 감싸고 있는 형태는 영령들이 조국과 민족을 수호하는 모습을 상징한다.

2018년 12월 19일

2018년 부산기장경찰서장으로 부임한 정명시 경찰서장은 이를 안타까워해 조국과 내 고장을 지킨 영령들의 명예를 다시 높이고 숭고한 희생을 널리 알리고 기념하자고 제안을 했고, 그래서 기장군수와 기장군의회 그리고 기장군민이 마음을 모아 2018년 12월 12월 19일 철마체육공원에 새롭게 철마 순직 경찰·의용경찰 추모비를 세웁니다.

그러면서 기존에 철마면에 세웠던 순직 의용경찰 위령비 또한 이곳으로 옮겨 지금의 모습이 되었죠.

뜰에 들어왔습니다. 가운데 태극 문양이 있고, 그 위쪽으로 7명의 순직자를 상징하는 7개의 검은 돌이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뎃돌에는 그들을 위로하는 시 한 편이 적혀 있어요.

이 시는 추모비 건립 때 시인이자 경찰이던 한주엽 경위(당시 기준)가 자작한 시였고, 이 시를 낭독하자 유족들은 눈시울을 붉혔다고 국제신문은 전합니다. 이 시인이자 경찰이신 한주엽 경위(당시 기준)의 다른 시와 그의 이야기를 더 보고 싶다면 직접 운영하시는 이 블로그(https://blog.naver.com/hanjy271/223112321059)를 방문해주세요~

 

시- 영혼의 빛이 되었으니

과거를 잃어버린 민족 살아남을 수 없다는데 누군가의 노력으로 우리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여야 겠네요 h...

blog.naver.com

영혼의 빛이 되었으니

한주엽

동족상잔의 비극 속에
날선 총칼이 춤을 추더니
천지 가득 울음이 메아리치고

낮에는 마을을 끌어안고
밤이면 붉은 꽃을 찾아
초개 같은 삶을 불태우다
산화하신 영령들이시여!

세월은 흘러도
찔레꽃은 무심한 듯
향기를 뿌리는데
자유를 꿈꾸다 식어간 당신
숭고한 영혼의 빛이 되었으니

조국을 위해 가신 임이시여
높고 푸른 하늘에 머리 숙이며
깊고 넓은 넋을 여기 새겨 드리니
고이 잠드소서!

2018년 12월 27일, 당시 의용경찰이었던 박길용 옹이 추모비에 국화를 올리고 있다. (출처 : 국제신문)

2018년 12월 19일에 철마체육공원에 철마 순직 경찰·의용경찰 추모비가 세워지고, 27일 오후에는 추모비 제막식이 열렸습니다. 당시 철마면 이곡리 인근에서 의용경찰로 활동했던 박길용 옹(당시 기준 95세)도 직접 제막식에 참여해 추모비에 국화를 올리며 그들을 다시 기억하기도 했습니다. 사진을 보니 슬프고도 안타깝지만, 그와 반대로 지켜주셔서 감사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지금도 몇몇이 공을 차며 뛰어노는 이 공간과 이 평화, 이 자유로운 시간을 주기 위해 7분의 순경과 의용경찰들은 자유를 앗아가려는 다른 세력의 공격에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살아남은 한 경찰은 그들을 기리는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잠시 철마체육공원 운동장에 들어와 사색에 잠겼습니다. 그들의 고귀한 희생 덕분에 지금의 부산 기장군 철마면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이 날은 유난히도 바람이 시원했고, 하늘도 맑았으며, 햇빛도 따스하게 내리쬐고 있었습니다.

 

추가) 이 추모비 오른편으로 몇 걸음 가보면 볼 수 있는 '동래군수 한기찬 공적비'도 관심이 있다면 보러가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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