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2038) 썸네일형 리스트형 스포원, 철마, 금정IC, 두구동 자연마을들을 이어주는 임석교 오늘은 수영강으로 이어지는 임석천 위를 건너며 스포원과 임석마을, 수내마을, 대두마을, 중리마을, 신천마을 등 두구동 동쪽의 자연마을과 기장군 철마면, 금정 IC 입구까지도 이어주는 임석교를 찾았습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다리 안내문은 페인트칠이 되어 있더군요... 누가 언제 지은 것인지 확인하지 못해 좀 아쉬웠습니다.이곳은 임석천이라고 하는 세척소류지에서 발하여 수영강으로 합류하는 작은 하천을 볼 수 있습니다.그래도 임석교(林石橋)라는 다리명은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스포원쪽에서 임석교로 나오면 선두구동목욕탕을 포함한 임석사거리로 갈 수 있는 길이 쭉 뻗어 있습니다~임석교의 남편으로는 최근에 지어진 듯한 보행로가 있습니다. 이곳을 통해 수영강까지 산책할 수 있는데요~ 밤에는 조명이 거의 없어 어둡기에 .. 110년 넘게 다리 역할을 톡톡히 하는 남산본동교((구)유석교) 부산 금정구 남산동의 온천천의 복개된 구간 상부 온천천에서 남쪽에서 첫번째 다리가 바로 남산본동교입니다.다이쇼 2년(大正二年, 서기 1913년) 11월에 세워진 유석교(維石橋)가 지금은 남산본동교로 불리고 있죠.이 비석의 아래쪽에는 당시 김해 김씨 삼현파 집성촌이던 '남산리(南山里)'의 '주관(主管)'이라고 그 주관 행정구역이 쓰여 있으며, 그 아래에 오른쪽부터, '김장우(金章禹), 김기수(金基壽), 김도희(金道希), 김기하(金基夏)' 등 건설에 공을 세운 김해 김씨 삼현파 네 분의 이름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부산광역시 문화유산과 시사편찬실에서 발행한 에 따르면, 1913년에 김해 김씨 문중과 몇몇 사람들이 돈을 모아 당시 남산마을과 머들마을을 연결하는 온천천을 건너가는 다리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당.. 요산문학로와 온천천이 만나는 곳의 작은 쉼터 요산문학로를 걷다보면, 요산의 흔적을 기리는 조형물과 의자가 보입니다. 지역민들의 쉼터나 만남의 장소가 되기도 하는 곳이죠.요산문학로사람답게 살아가라.요산 김정한 선생생가요산 김정한 선생(1908~1996)은 격동의 20세기를 온몸으로 겪어내며 우리 현대문학사에서 민족문학의 눈부신 성취를 이끈 위대한 작가 가운데 한 분이다. 1936년 단편소설 으로 등단한 뒤 선생은 민족사의 질곡을 민중과 더불어 견뎌 내면서, 소외되고 억압받는 주변부 인간의 현실을 양심적인 시선으로 고발하였으며, 분단극복이라는 민족의 숙원을 자신의 문학적 과제로 삼았다. 선생은 불의와 부자유에 맞서 싸운 양심적 지사였으며, 평생 부산 경남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삶의 텃밭을 지켜낸 파수꾼이었다.요산이 세상을 떠나신 뒤 금정산 자라게 생가를.. 청도새마을휴게소 휴게시설의 청도 명물 조형물 2기 2006년 1월에 개장한 청도새마을휴게소(대구방면)의 청도휴게시설에는 동상 2기가 있습니다.2006.01.-2013.08.청도휴게소2013.08.-청도새마을휴게소이 청도휴게시설 자체는 청도새마을휴게소의 남쪽편 끝에 화장실에서 나와 남쪽으로 조금 걸어오면 보입니다.이곳엔 두 기의 조형물과 흡연장, 쓰레기분리수거장소, 자판기 등이 있습니다.작품명격돌(청도소싸움)작가정길택작품의 보존과 고객의 안전을 위하여 만지거나 올라타지 마세요.정길택 작가의 '격돌'이라는 작품이 보입니다. 우렁차게 싸우고 있는 소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2007년경 청도군이 5천700만원의 예산을 투입해 설치한 '씨없는 감 청도 반시' 상징조형물도 볼 수 있습니다. 반시의 모양이 잘 묘사된 것 같아요.앞에는 돌로 만들어진 반시 모양의 조.. 계명대학교 교육 발전에 이바지한 선박왕을 기리다, 계명대학교 동영관의 유래 계명대학교 성서캠퍼스는 대구 달서구 신당동과 호산동에 걸쳐 있습니다.그 성서캠퍼스 안 국제처 건물을 동영관이라고 부르죠.선박왕 권영호는 성공한 후부터 후학 양성을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시행했는데요. 특히 2008년에는 거액의 부동산을 계명대학교에 기부하는 등 계명대학교의 대학 발전에 크게 기여를 했습니다. 이에 대한 공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호 동영(東榮)을 딴 동영관으로 명명하게 되었습니다.권영호(權榮浩) 박사의 약전(略傳) 권영호(權榮浩. 1940~) 박사는 1940년 8월 17일 경북 울진에서 권철이 공과 최봉선 여사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평생 바다와 함께 살아온 분이다. 권 박사는 28세 때 원양어선의 선원이 되어 오대양을 누볐고 1979년 폐선 직전의 선박 1척으로 수산업을 시작, 20여년 만.. 지금은 사라진 부산 최초의 물류창고, 남선창고터 지금의 탑마트 초량점이 있던 곳엔 남선창고가 있었습니다. 이곳은 현재 부산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죠. 과연 어떤 곳일까요? 남선창고 터(Namsan old store)초량동 393-1번지1910년 부산상인 정치국(鄭致國)*을 중심으로 부산 최초로 1천여 평이 디는 해산물 보관창고를 세웠다. 처음엔 '회흥사(會興社)'로 불리다, 이후 북선창고(北鮮倉庫) 또는 명태고방(明太庫房)이라 불렀다. 이 창고는 1천평이나 되는 떡논 넓은 대지에 붉은 벽돌로 벽을 두르고 서까래와 기둥들은 나무를 써서 지은 부산 최초의 창고였다. 내부는 통칸으로 배수구 시설 등이 완벽하게 되어있고, 온도가 항상 일정해 바깥 기온과 무관했다.함경도의 특산물인 명태를 비롯하여 해산물을 해상을 통하여 선박으로 부산항까지 운송해 와서 경부선 철도.. 호찌민을 기리며 베트남과의 우호를 다진, 영산대 베트남광장 이곳은 부산 해운대구 반송동에 위치한 영산대학교 해운대캠퍼스입니다!이 드넓은 공간은 '베트남광장(2005~)'입니다. 도대체 어떤 인연으로 이곳에 베트남광장이 세워진걸까요?한겨례의 한 기사에 따르면, 2005년 11월 17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에 베트남 6대 국가주석 쩐 득 르엉(Trần Đức Lương, 1937~)이 호찌민을 기리기 위해 이름붙이는 영산대학교 베트남 광장에 찾아옵니다. 이를 통해 한국-베트남간 유대와 공동발전, 학술 및 문화 교류를 확장할 것을 약속하였죠. 영산대, 캠퍼스안 ‘베트남 광장’ 명명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아펙) 정상회의 기간 쩐 득 르엉 베트남 주석이 영산대 부산캠퍼스를 방문해 베트남 광장 명명식에 참석한다. 영산대는 17일 오후 4시 부산.. 영산대생들의 추억, 영산대 해운대캠퍼스 A동 앞 코끼리동상 영산대학교 해운대캠퍼스 A동 앞에는 높고 큰 동상 하나가 서 있습니다.카카오맵 기준 2008년에도 이미 자리잡고 있던 석상으로 오랜 세월 영산대와 함께한 것을 알 수 있어요~바로 해운대캠퍼스의 명물 '코끼리상'이죠. 영산대인터넷방송국에 따르면, 지혜를 상징하는 코끼리는 영산대학교의 교훈인 '원융무애(圓融无涯, 모든 존재가 서로 방해됨이 없이 융합한다)'를 상징한다고 하네요.아랫 대에서 코끼리상까지는 크기가 엄청납니다. 영산대학교에 따르면, 코끼리 코를 만지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하고 시험도 잘 본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누군가는 이 코끼리를 타려고도, 누군가는 코끼리 코를 만지다 부러뜨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시멘트로 코를 붙였는데, 부러진 흔적은 남아있어요. 영산대생들과 오랜 시간을 보낸 이 석상은 영.. 이전 1 ··· 15 16 17 18 19 20 21 ··· 25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