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산문학로와 온천천이 만나는 곳의 작은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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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과 표로 보는 역사 시리즈/어원과 표로 보는 한국사, 한국문화

요산문학로와 온천천이 만나는 곳의 작은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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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출처 : 카카오맵

요산문학로를 걷다보면, 요산의 흔적을 기리는 조형물과 의자가 보입니다. 지역민들의 쉼터나 만남의 장소가 되기도 하는 곳이죠.

요산문학로
사람답게 살아가라.
요산 김정한 선생 생가
요산 김정한 선생(1908~1996)은 격동의 20세기를 온몸으로 겪어내며 우리 현대문학사에서 민족문학의 눈부신 성취를 이끈 위대한 작가 가운데 한 분이다. 1936년 단편소설 <사하촌>으로 등단한 뒤 선생은 민족사의 질곡을 민중과 더불어 견뎌 내면서, 소외되고 억압받는 주변부 인간의 현실을 양심적인 시선으로 고발하였으며, 분단극복이라는 민족의 숙원을 자신의 문학적 과제로 삼았다. 선생은 불의와 부자유에 맞서 싸운 양심적 지사였으며, 평생 부산 경남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삶의 텃밭을 지켜낸 파수꾼이었다.

요산이 세상을 떠나신 뒤 금정산 자라게 생가를 복원하고 문학관을 지어 선생의 문학정신을 기리고 있다.
요산 선생이 태어난 동래구 북면 남산리는 예부터 김해 김씨(삼현파) 집성촌이었다. 본향이 경북 청도인 선조들이 이곳으로 세거한 때는 무오사화(1498년, 연산군 4년)로, 16대조 김일손이 참화를 입은 후이다.

조부 대에 와서 종가가 되고 요산은 7남매의 맏이이자 집안의 장손이었다. 생가에서 내려다보이는 아래동네와 찻길이, 드넓은 들이었을 시절, 선생은 서당을 다니다 집에서 가까운 범어사에서 운영하는 명정학교(지금의 청룡초등학교와 금정중학교의 전신)를 다니면서 3·1운동을 맞이하기도 했다.

선생이 떠나신 뒤,후배 작가들과 뜻있는 사회인사들이 생가복원 이야기를 시작해 부산광역시의 지원을 받아 그 해 12월 퇴락한 집을 헐고 2003년 6월에 공사를 마무리했다. 부산의 진산인 금정산을 뒤로 하고 오륜대를 멀리 바라보고 있는 생가는 팔작지붕에 일자형의 전통한옥이다.

2004년 11월 17일 바르게살기운동 남산동위원회가 세운 앞면엔 '바르게 살면 미래가 보인다'라고 쓰이고, 뒷면엔 '바르게 살자'라고 쓰인 비석도 세워져 있습니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300m를 올라가면 요산문학관이, 150m 올라가면 요산공영주차장이 있구요. 동쪽으로 380m를 가면 남산동주민센터와 범어사역이 나온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북쪽 방향으로 3.4km 올라가면 범어사가 나오죠~ 

이 작은 쉼터의 뒤쪽에는 작은 돌바닥길이 있어서 걸어지나갈 수도 있구요~

온천천 상부에서 흐르는 물과 그 풍경도 바라볼 수 있어요. 저~ 멀리 110여년간 다리 역할을 한 유석교라고도 불렸던 남산본동교도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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