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검 속 와카타케루 대왕(獲加多支鹵大王), 야마토 왕권의 범위를 나타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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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검 속 와카타케루 대왕(獲加多支鹵大王), 야마토 왕권의 범위를 나타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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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와카타케루 대왕(獲加多支鹵大王)이라는 호칭이 적힌 철검이 발견되다.

(출처 : https://mspproject2023.tistory.com/886)

1873년, 일본 쿠마모토현의 에다후나야마 고분에서 한 철검이 발견되었고, 1968년에는 사이타마현의 이나리야마 고분에서 한 철검이 발견되었는데, 두 철검에 모두 와카타케루 대왕(獲加多支鹵大王)이라는 호칭이 적혀 있었다! 어떻게 이 먼 거리에서 비슷한 이름이 적힌 철검이 발견되었는지 조사해 봤다.

 

1-1. 에다후나야마 고분 철검(江田船山古墳出土鉄剣)

에다후나야마 고분(江田船山古墳) 풍경 (출처 : mikawaonsen.com)

1873년, 일본 쿠마모토현 타마나군(玉名郡) 나고미마치(和水町)에 있는 에다후나야마 고분(江田船山古墳)에서 횡구식(横口式, 세 벽만을 쌓고 한쪽 벽으로 드나든 후 밖에서 벽을 쌓아 막는 무덤 방식) 석관이 발견되었고, 그 내부에서 수많은 호화로운 부장품이 발견되었다.

현재 도쿄국립박물관에 전시중인 에다후나야마 고분 출토 철검 (출처 : 도쿄국립박물관)

이 가운데 길이 90.6cm로 슴베 부분이 빠져 짧아졌는데, 칼날 길이 85.3cm의 큰 칼(大刀)이 있고, 칼등에는 은으로 상감한 명문이 새겨져 있었다. 이 명문은 1920년대에 들어서 전문가에 의해 연마되어 글자수 75자임이 밝혀졌고, 그중 상당수는 벗겨 나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설에는 전문가가 복원하는 과정에서 벗겨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래도 나름 연구를 해 어느 정도 밝혀낸 내용은 아래와 같다.

治天下獲□□□鹵大王世奉事典曹人名无利弖八月中用大鉄釜并四尺廷刀八十練九十振三寸上好刊刀服此刀者長寿子孫洋洋得□恩也不失其所統作刀者名伊太和書者張安也
천하를 다스리는 와ㅇㅇㅇ루 대왕(獲□□□鹵大王)의 때에, 전조(典曹)에 봉사한 사람 (그의) 이름은 무리테(无利弖) 8월 중 큰 철가마(大鉄釜)를 써서, 4척의 정도(廷刀)를 80번 단련하고 90번 흔들었다. 삼촌상호(三寸上好)의 간도(刊刀, 새긴 칼)가 되었다. 이 칼을 착용한 자는 오래 살아 자손이 넘칠 것이고, ㅇ은(□恩)을 얻게 된다. 그 거느리는 곳을 잃지 않는다. 칼을 만든자의 이름은 이타오(伊太和), (글을) 쓴 자는 장안(張安)이다.

와카타케루 대왕 때 무리테(无利弖)가 전조(典曹)라는 문서를 관장하는 관공서에서 일했다. 어느 해 8월에 큰 철가마로 정성껏 만든 경사스러운 큰 칼 하나를 만들었는데, 이 칼을 가진 자는 장수로서 자손까지 번성하여 다스리는 일이 잘 된다고 하며, 이 큰 칼을 만든 것은 이타오(伊太和)로 명문을 쓴 것이 장안(張安)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실제로 '와카타케루 대왕', '무리테', '이타오', '장안'과 같은 인명은 실제 발음을 어떻게 했는지, 그 한자 표기가 맞는 표기인지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확실한 인명은 아님을 밝힌다.
과거에는 '치천하쟁□□□치대왕'으로 읽혀 다지히미도치대왕(반정천황)에 대한다는 설이 유력했으나 1978년 사이타마이나리산 고분 출토 철검에서 김상감의 명문이 발견됨에 따라 '치천하획□□□노대왕'으로 읽혀 취가지로대왕(와카타케르대왕, 웅략천황인가)이라는 설이 유력해졌다.

1-2. 이나리야마 고분 출토 철검(稲荷山古墳出土鉄剣)

이나리야마 고분 (출처 : Saigen Jiro)

1968년 사이타마현 쿄다시(行田市)의 이나리야마 고분(稲荷山古墳)에서 금착명철검(金錯銘鉄剣)이라고도 불리는 철검 하나가 발견되었다. 앞 뒤 모두 115자인 금으로 상감된 명문이 새겨져 있었으며, 전체 길이 73.5cm, 중앙의 몸통 부분의 폭은 3.15cm였다. 이 검은 앞에는 57자가, 뒤에는 58자가 새겨져 있었다.

앞면
辛亥年七月中記乎獲居臣上祖名意富比垝其児多加利足尼其児名弖已加利獲居其児名多加披次獲居其児名多沙鬼獲居其児名半弖比
신해년(辛亥年) 7월 중 기록한다. 오와케노오미(乎獲居臣). 시조의 이름은 오호히코(意富比垝), 그의 아이의 이름은 타카리노스쿠네(多加利足尼). 그의 아이는 테요카리와케(已加利獲居). 그의 아이의 이름 타카히시와케(타카하시와케, 多加披次獲居). 그의 아이의 이름은 타카시와케(多沙鬼獲居). 그의 아이 이름은 하테히(半弖比).
其児名加差披余其児名乎獲居臣世世為杖刀人首奉事来至今獲加多支鹵大王寺在斯鬼宮時吾左治天下令作此百練利刀記吾奉事根原也
그의(하테히의) 아이의 이름은 카사히요(카사하요, 加差披余). 그의 아이의 이름은 오와케노오미(乎獲居臣). 대를 거듭해 장도인(杖刀人)의 우두머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봉사하여 왔다. 와카타케루 대왕(콰쿠카타키루 대왕, 獲加多支鹵大王)의를 봉사하며 시키노미야(斯鬼宮)에 있을 때 나는 천하를 다스림을 도와서 이 백번 연마한 이도(百練利刀)를 만들게 하였으니, 내가 봉사한 근원을 적는다.

신해년(辛亥年)이 5세기 즈음의 언제인지, 오와케노오미(乎獲居臣)라고도 부르는 와카타케루 대왕(獲加多支鹵大王)이 누군지에 대해서도 다양한 관점과 학설이 존재한다. 그러나 같은 이름이 일본 열도의 동서 쪽에서 칼에 새겨진 상태로 발견되었다는 것은 당시 이 오오키미(대왕, 大王)의 권력 혹은 영향력이 서쪽의 규슈부터 동쪽의 아즈마노쿠니(東国)까지 이어졌을 거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 중 하나가 된다. 이전의 야마토 왕권과 관련된 글에서 간단히 그 영향력이 일본 동서를 아울렀다고 말했는데, 바로 이 철검에 새겨진 명문 등을 근거로 한 말이었다.

큰 칼 두 자루였을 뿐인 이 유물들은 이렇게 일본 역사적으로 꽤 중요한 위치를 가지게 된다.

 

야마토 왕권에 관한 내용은 이 글(https://mspproject2023.tistory.com/886)을 참고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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