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금정중학교 교문 옆에 있는 비들
범어사역 2번 출구로 나오면 경찰서 바로 옆에 금정중학교가 있다.
이 금정중학교 입구에 이렇게 큰 2개의 비와 작은 타임캡슐 한 개가 있다.
1-1. 삼일운동 유공비
가장 우측에 있는 큰 비는 삼일운동유공비다. 4개의 단이 쌓여 있고 그 위에 하늘로 솟을 듯한 위가 뾰족한 검은 비가 놓여져 있고, 앞에는 헌화가 있다.
유공비의 정면 기준으로 좌측에는 42분의 3.1운동 유공자분의 성함이 적혀 있다.
허영호 | 양수근 | 정성은 (혹은 정성언) |
김한기 | 김법린 | 유공자 |
황학동 | 손태연 | 윤상은 | 이달실 | 김태준 | |
황만우 | 양춘도 | 박영주 | 김영규 | 오병준 | |
김상환 | 오시근 (혹은 오시권) |
김봉환 | 박영환 | 김재호 | |
최응관 | 이근우 | 김해관 | 김상기 | 차상명 | |
신종기 | 김충염 (혹은 김충념) |
김상헌 | 박정국 | 박창두 | |
김영식 | 손군호 | 지용준 | 이영우 | 오점술 | |
유석규 | 안경환 (혹은 안경한) |
강성안 | 이재훈 | 배석이 | |
박재삼 | 양태문 |
위표에서 괄호친 부분은 범어사 인근에 위치한 3.1 운동 유공비의 명칭이었다. 기재된 이름은 조금 다르지만 발음은 비슷하기에 동일인물이라 여기고 이에 덧붙여 적었다.
유공비 정면 기준 우측에는 이 비를 세우는데 도움을 주신 분들이 적혀 있다.
범어사 학생 3.1 운동 유공비 일본 제국주의에 잃어버린 주권을 되찾겠다는 겨례의 염원을 담은 독립선언문이 1919년 3월 1일 우렁차게 선포되었을 때, 대한독립 만세소리는 삼천리 강산에 울려퍼졌다. 이곳 금정산 기슭, 호국의 전통이 스며있는 청정도량 범어사에서도 한용운 스님이 서울에서 내려와 오성월 스님 등과 중대사를 의논하였다. 김법린과 김상헌은 3월 4일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범어사에 도착하여 본교 전신인 명정학교와 지방학림 학생들을 중심으로 동래장날에 의거를 단행하기로 결정하였다. 범어사 학생 의거는 일제의 총칼 앞에 민족정기와 애국심을 드높인 젊은 학생들의 피끓는 의거였으며, 32명이나 옥고를 치렀다. 세월은 흘러 임들은 가셨어도 그날의 함성은 해방된 조국에서 자유를 누리는 후학들의 가슴에 찬란한 불멸의 빛이 되고 엄숙한 교훈이 될 것이다. 이 뜻을 기려 1970년 3월 1일 이 자리에 3.1운동 유공비를 건립하였고, 국가보훈처는 2009년 9월 22일 이를 현충시설로 지정하였다. 2010년 6월 25일 유공비를 새롭게 단장하면서 임들의 고귀하고 거룩한 애국정신을 영원히 계승하고자 한다. 금정중학교 |
이전 글(https://mspproject2023.tistory.com/929)에 나온 명정학교와 범어사 지방학림을 중심으로 동래장날에 3.1 의거가 진행되었던 것에 대한 유공비는 명정학교의 후신 중 하나인 금정중학교에서도 그 뜻을 이어가기 위해 기려지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동래장터에서 일어났던 불교계 학생들의 만세 운동을 묘사한 벽화다. 당시 총까지 들고 진압을 하는 일본 순사들에 맞서 우리 학생들은 태극기를 휘날리며 평화적인 운동을 벌였다.
1-2. 4.19혁명 추념탑 & 고 신정융 추모비
신정융 열사를 기리는 금정도서관 앞 벅구산(금구산)에 세워진 4.19혁명 신정융열사 추모비는 이 글(https://mspproject2023.tistory.com/1970)을 참고바란다.
삼일운동 유공비의 좌측에 큰 비는 4.19혁명 추념탑과 그 위에 세워진 고 신정융 추모비다.
고 신정융 추모비 여기 민주와 민권의 수호를 위하여 망울진 꽃봉오리 채 피워 보지도 못하고 우국의 피를 뿌린 넋이 고히 잠들고 있다. 인명은 허무해도 불의에 노호하던 정신과 혼은 사욕을 버리고 나라 위해 목숨 바친 선구자이고 큰 발자국 남기고 홀연히 떠난 그 기개는 영원할 것이다. 장하고 의로웠던 행적과 민주 수호의 숭고한 정신을 우리들의 귀감으로 삼고 그의 넋을 위로하고자 뜻있는 이들의 정성을 모아 한 조각 마음의 증표로 세운다. 1981. 4. 18. 추념탑건립추진위원 일동 |
1940년, 현재의 금정구 노포동 지역에서 태어난 신정융 열사는 3.1운동의 뜻을 이은 청룡초등학교와 금정중학교를 졸업하고 이후 동래고등학교까지 나왔다. 그러던 중 1960년 자유당의 3.15 부정선거에 항의해 일어난 4.19 혁명이 일어났고, 그는 직장인이 되었지만 이 혁명에 동참했다. 4월 20일, 진압 경찰의 총탄을 맞고 신정융 열사는 결국 20세의 나이에 순국하게 된다... 그 피가 헛되이 땅으로 스며든 것은 아닌듯 26일이 되자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 발표를 하곤 하와이로 망명했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라는 목표로 한 발 더 나아가게 되었다.
앞선 1919년의 3.1운동의 뜻과 1960년의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이 지금의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조금 가슴이 먹먹해진다. 거기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있었다는 것도 더 생각이 많아지게 한다. 오늘 밤도 무사히 큰 걱정 없이 잠들 수 있게 도와주신 과거의, 현재의 많은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개교 100주년 기념 (타임캡슐 봉안) 30년 후 우리 여기 다시 모여 그 꿈을 펼쳐 보리라! 2006.10.20 금정중학교 |
이 2개의 비와 탑 사이에 작은 타임캡슐이 봉안되어 있다. 금정중학교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지은 타임캡슐로 이곳은 2036년 10월 20일에 열릴 예정이다. 과연 무엇이 들어있을지 꽤 기대가 된다ㅎㅎ 그 당시를 다녔던 학생들의 추억일까? 아님 그 오래전 선배들의 뜻과 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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