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성 독립운동가의 거목, 박차정 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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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 독립운동가의 거목, 박차정 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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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동상은 독립운동가 박차정을 기리는 박차정 동상 혹은 박차정 의사상이다.

 

1. 박차정 의사의 생애

1910년 5월에 박차정은 아버지 박용한, 어머니 김맹련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박용한은 순종 때 탁지부 주사를 역임한 측량 기사였으나, 일제의 무단 통치에 분노하고 울분하여 1918년 1월 유서 한 통을 남기고 자결했다. 어머니 김맹련은 김두봉, 김약수(김두전)과 같은 항일 독립운동가의 사촌들을 두었던 인물이었기에 항일 정신의 영향을 어느정도 받은 사람이었다.

 

1925년 4월, 15살이 된 박차정은 호주장로교 선교부가 세운 동래일신여학교(1925~1940, 동래여자고등학교의 전신)에 입학한다.

 

1928년 5월, 근우회(勤友會, 1927.05~1930')가 근우회 동래지회(槿友會 東萊支會, 1928.05~1931.04)를 세웠고, 이곳에 입회한 박차정은 1929년 7월말, 근우회 동래지회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중앙상무위원으로 선임되어 선전 조직과 출판부의 책임을 맡았으며, 근우회 동래지회와 도연합회 규칙 세칙 제정위원으로 선정된다. 그렇게 이 때부터 박차정은 근우회의 핵심 인물로 활동하게 되었다.

 

1930년 1월, '대중적 위력으로 민족적 항의를 보여줌으로써 구속 학생을 석방하고 민족적 기치를 들기 위해, 시내 각 여학교의 시위를 적극적으로 지도하자'라고 주장하며, 근우회 사건이라고도 불리는 경성 제2차 만세운동(경성 여학생 운동)을 일으켰으나 결국 구속된다. 이후 풀려난 뒤에는 중국에서 의열단 활동을 하던 둘째 오빠 박문호가 보낸 청년을 따라 중국으로 망명한다.

 

중국으로 망명 후부터 의열단에 합류해 조선공산당재건동맹 중앙부 위원으로 활동하다가 의열단의 핵심 인물로써 활약한다.

박차정(좌측)과 그의 남편 김원봉(우측)의 결혼사진(1931) (출처 : 뉴스와이어)

1931년에는 의열단장 김원봉(1898~1958)과 결혼했고, 중화민국 국민정부의 장제스의 지원을 받아 남경에 설립했던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1932~1935.09)에서 여자부 교관으로 교양과 훈련을 담당하기도 했다.

 

1935년 7월에 중화민국 난징에서 결성된 조선민족혁명당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1938년 10월에는 조선민족전선연맹 산하 조선의용대 부녀복무단 단장을 맡았지만, 1939년 2월 장시 성(江西省)의 곤륜산 전투에서 입은 부상으로 1944년 5월에 34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2. 박차정 의사상(박차정 동상)

금정문화회관 부지에 있는 박차정의사상 (출처 : 네이버지도)

금정문화회관의 만남의 광장 끝부분에 박차정 의사상이 세워져 있다.

대공연장길 부근 주차장을 가로질러 쭈욱 가면

이렇게 주차장 끝에 박차정 의사상이 보인다.

이 동상이 있는 곳에서 동쪽으로 쭉 올라 가면 박차정 의사의 모교라고도 할 수 있는 동래여고, 동래여중, 동래초, 부산예중, 부산예고쪽으로 갈 수 있는 길이 나온다.

이렇게 기품있게 서있는 동상을 본 적이 있는가?

박차정의사 상

1910년 5월 8일 동래읍 복천동에서 출생한 박차정 의사는 1929년 2월 동래일신여학교(현, 동래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그 해부터 '근우회' 중앙집행위원으로 출발, 국내에서 여러 항일운동을 주도하다가 일제에 의해 옥고를 겪었다. 이후 중국으로 망명하였으며 1931년 김원봉과 결혼. 이듬해 남편과 함께 '조선혁명간부학교'를 설립하여 제1기 여자교관으로 활약하였다. 또한 민족혁명당 부인회(조선부인회)를 결성하기도 했으며 조선의용대 복무단장으로 중국 강서성 곤륜산에서 일본군과 전투 중 어깨에 총상을 입은 그 후유증으로 1944년 34세의 나이로 순국하기까지 한국 여성 독립운동의 거목으로 활동한 점이 인정되어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상. 우리 민족의 자존심과 정기를 올곧게 하였으므로 그의 숭고한 넋을 기려 동상을 세운다.

 

동상이 원형 재단 형식으로 세워져 있다.

동상 정면 기준 뒤쪽 좌측편에는 최규장씨의 헌시와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새겼으며,

동상 정면 기준 뒤쪽 우측편에는 건립취지문과 건립단체가 적혀 있다.

 

집 근처에 항일운동가 동상이 있다고 해서 한 번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가봤는데, 약력을 읽고 동상을 다시 바라보니 좀 더 무겁지만 감사하다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 힘든 시대에서 나라와 민족이라는 것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셨을 박차정 의사분의 그 희생 정신을 이어받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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