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산성 부설비를 찾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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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성 부설비를 찾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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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금정산성 부설비를 찾아가다.

부산대학교 남쪽, 장전중학교 동쪽에 있는 장전디자인시티 벽산블루밍 안에는 금정산성 부설비라는 웅장한 비석 하나가 놓여져 있다. 이 비석의 공식적인 이름은 금정산성 부설비(金井山城復說碑)인데, 말 그대로 금정산성(金井山城)을 복설(復說)하고 세운 비석(碑)이라는 뜻이다. 조금 의문인건 '없어진 것을 다시(復) 설치하다(說)'라는 뜻은 사전상으로는 復說[복설]이라고 한다. 근데, 復[부/복]는 '다시'라는 뜻으로 쓸 때는 復[복]으로 읽어야 하는데, 왜 사전에는 같은 뜻을 [부설]이 아닌 [복설]이라고 하는지 궁금하다.

오전 수업이 끝나고 금정산성 부설비를 찾아가는 길에서 본 아주 작은 새였다. 내가 손이 작은 편인데도 크기가 그 작은 내 손보다 작은 새였다. 어떤 새인지 궁금한데, 찾을 수가 없어서 지식인에 우선 물어봤는데, 딱새 수컷이라고 한다! 너무 귀여웠다ㅎㅎ

아파트 내부로 쭉쭉 가다보면 아래에 좀 넓은 공원이 하나 나온다. 벽돌계단으로 내려가도 되고 아니면

밑에 잘 정리된 크고 완만한 경사로로 쭉 내려가면 비석이 나온다. 사실 이 길로 가서 그런가 이 비석에 압도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여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산책하러 나오거나 바람 쐬러 종종 나오는 것 같다. 사진엔 잘 안보이지만 저 뒤쪽으로 가면 작은 운동기구들도 있다.

 

2. 금정산성 부설비

금정산성 부설비에 다다르면, 부설비보다 이 안내판이 더 가까이 설치되어 있다. 우선 안내판의 내용을 적어두겠다.

금정산성 부설비(金井山城 復設碑)

부산광역시 지정기념물 제15호
소재지 : 부산광역시 금정구 장전동 482

이 비는 1808년에 금정산성을 보수한 사실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금정산에 처음 쌓은 것이 언제인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지금 남아 있는 산성의 기초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후인 1703년(숙종 29)에 국방에 대한 중요성 때문에 축성되었다. 그 후 금정산성은 폐허화되었는데, 1808년(순조 8) 동래부사 오한원(吳翰源)이 산성을 대대적으로 보수하여 면모를 새롭게 하였다. 비의 크기는 높이 185cm, 두께 35cm이며, 화강암으로 만들었다. 비의 앞 면에는 16행으로 금정산성을 처음 쌓은 때부터 다시 설치하기까지의 경위와 부설공사의 내용 등이 기록되어 있다. 비의 뒷면에는 마멸되어 판독하기 어려우나 공사감독인 동역(董役, 감독인)들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한편 이 비는 커다란 바위 에 구멍을 파서 세워 놓은 까닭에 처음 세워진 후 한 차례도 이전되지 않았다. 때문에 동래부에서 금정산성으로 가는 출입구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다. 이 비는 금정산성의 치폐(致斃) 및 부설 경위를 밝혀주는 소중한 비석이다.

금정산성은 이미 삼국시대 때부터 축성되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본격적으로 조선시대에 들어와 보수하고 세운 것은 1703년부터다.

1703년(숙종 29년) 동래부사 박태항, 이야 등의 축성(보수)
1707년(숙종 33년) 동래부사 한배하 중성 신축
1808년(순조 8년) 동래부사 오한원 무너지고 없어진 성 부설

비석의 우측에서 찍은 금정산성 부설비 전경

비석은 정말 크다. 사실 비석도 180cm 이상으로 큰데, 그 비석을 박아둔 큰 바위도 엄청 커서 놀라웠다.

1986년 이전에 촬영된 금정산성 부설비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이 비석과 큰 돌은 오래전부터 이 자리에 있었음은 틀림없다. 이전에 찍힌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 주변을 지나가기도 힘들 정도로 길고 큰 돌위에 비석이 박혀있었다. 옛 조상님들은 이 돌이 절대 움직이지 않을 걸 알고 이 곳에 비석을 세웠을까 궁금해졌다.

비석 설명문과 별개로 어떤 비석인지 한글로 표기한 작은 한글 비석이 금정산성 부설비 앞에 놓여있다.

금정산성 부설비의 앞면을 기준으로 우측앞편. 금정산성 부설과 관련된 다양한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비석 앞면을 기준으로 우측뒷편. 금정산성 부설과 관련된 다양한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금정산성 부설비 앞면이다. 맨 위에 금정산성 부설비(金井山城 復設碑)라고 적혀 있다. 이 앞면에는 왜관이 가까이 있으므로 일본을 경계하며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성을 쌓게 되었다는 사유와 더불어 재축성하기까지의 결정과정, 공사비 마련 경위 및 규모, 방어에 필요한 인력배치와 관리방법, 공사의 진척순서 등 성을 쌓으면서 있었던 모든 일을 세로 16행(行)으로 상세히 새겨 놓았다.

금정산성 부설비 뒷면이다. 뒷면에는 공사를 담당한 사람들의 명단이 새겨져 있지만, 잘 보이진 않는다... 그럼에도  기록이 부족한 금정산성에 대한 확실한 자료이며, 향토사 연구에 따른 금석문으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다.

비석의 좌측에서 찍은 금정산성 부설비 전경

장전동에 있는 큰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거대한 비석이 어떤 비석인지 늘 궁금했다가 오늘 시간내서 찾아가봤다.

이 비석을 통해 옛날 이 부근에서 생각보다 엄청난 공사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많은 건물들이 재개발되고 재건축되고 있는 요즘은 별거 아니겠지만, 그 당시 군용 건축물을 대대적으로 부설한다는 것은 큰 노력과 시간과 땀이 필요했다. 그 시간, 그 땀, 그 노력으로 인해 금정산성이 다시 일어났고, 어느 정도 왜척을 막을 방비는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이 땅을 지키고 보존해주신 조상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며 글을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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