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철의 도시에서 산업수도로|울산의 역사를 따라가 본 울산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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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과 표로 보는 역사 시리즈/어원과 표로 보는 한국사, 한국문화

[울산] 철의 도시에서 산업수도로|울산의 역사를 따라가 본 울산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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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박물관 울산 남구 두왕로 277

1. 울산박물관

2011년 6월 22일, 울산의 문화 인프라를 구축하고 울산 시민의 문화 의식을 함양하며 울산의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울산박물관이 개관합니다. 지역 박물관 중 비교적 최근에 생긴 이 박물관에서 울산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1-1. 역사실

가장 먼저 울산의 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의 이야기를 살펴보는 역사실에 들어갑니다.

가장 먼저 1971년 12월 25일, 동국대학교 불교유적 조사단에 의해 처음 발견되어 1982년 8월 2일에 경상도 기념물로 지정되고, 1995년 6월 23일에 국보로 지정되었다가, 2025년 7월에 '반구천의 암각화'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의 모형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는 울산을 가로지르는 태화강 상류의 대곡천 절벽에 위치하며, 너비 약 8m에 높이 약 5m의 편평한 바위와 주변 바위에 그려진 암각화들을 말합니다. 황성동 세죽 유적에서 고래 사냥과 관련된 유물도 출토되며 이 암각화는 신석기시대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네요.

한반도의 신석기 시대에는 토기를 만들고, 사냥과 어로 생활을 하면서도 농사도 시작합니다.

청동기 시대가 되면서 태화강과 형산강 유역 등 비옥한 강 하류를 중심으로 대규모 마을이 형성되고, 배수구 시설을 갖춘 독특한 울산식 집터와 민무늬토기, 벼농사 중심의 농경 사회가 본격적으로 발달합니다. 이 시대의 알려진 유적지로는 울주군 지역의 유적(활천리 유적, 인보리 유적, 서하리 유적, 봉계리 유적, 구미리 유적, 삼정리 유적, 길천리 유적, 서부리 남천 유적, 구수리 유적, 신화리 유적, 교동리 유적, 방기리 유적, 천상리 유적, 굴화리 장검 유적, 구영리 유적, 조일리 유적, 검단리 유적, 외광리 유적), 남구 지역의 유적(무거동 옥현 유적, 신정동 유적, 야음동 유적), 중구 지역의 유적(다운동 유적, 우정동 유적, 태화동 유적, 장현동 유적, 약사동 유적), 북구 지역의 유적(천곡동 유적, 신천동 유적, 매곡동 유적, 창평동 유적, 산하동 유적, 정자동 유적, 연암동 유적, 신현동 황토전 유적, 효문동 유적), 서구 지역의 유적(서부동 유적), 동구 지역의 유적(화정동 유적)이 있습니다.

한반도는 삼한시대에 들어서며 처음 철을 받아들이면서 널무덤과 덧띠토기, 한국식 동검도 제작하기 시작하며 성장해 나갔는데요. 특히 달천철장 지역에서 철의 원료인 토철과 철광석을 캐며 낙랑과 야요이 시대 일본과 교류하며 유력한 정치 집단으로 성장하여 후에는 사로국이 고대국가로 성장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 시기에는 북구 지역의 유적(달천 유적, 창평동 유적), 울주군 지역의 유적(교동리 유적) 등이 유명합니다.

 

일본사 - 일본의 형성부터 고훈 시대까지

1. 일본사 연표(6분법에 따른 시대 구분)일본사를 '원시시대'를 제외한 서양식 5분법에 맞춰 시대를 분류하면 고대(300~1185), 중세(1185~1600), 근세(1600~1868), 근대(1868~1945), 현대(1945~)로 나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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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리 유적은 울산 울주군 삼납읍의 구릉에 위치하며, 삼한시대의 건물과 무덤 그리고 목책열(木柵列, 나무 울타리의 열)이 발견됩니다. 발견 당시부터 최근까지도 삼한시대의 유적 중 가장 큰 규모의 마을 유적으로, 조사 결과 기원 전후에 세력을 가지고 있던 집단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박물관은 <삼국지><위서><동이전>에 나오는 우유국(憂由國)과 <삼국사기>에 나오는 우시산국(于尸山國)과 굴아화촌(屈阿火村) 그리고 거지벌촌(居智伐村)을 울산 지역의 정치 세력으로 추정합니다. 이 시기에는 북구에 위치한 대량의 철 생산지 달천철장, 울주군에 위치한 대규모 마을 유적인 교동리 유적, 중국제 유물이 출토되는 북구에 위치한 창평동 유적과 울주군 지역의 대대리 하대 유적, 북구에 위치한 무덤군으로 유명한 중산동 유적이 대표적인 울산의 삼한 시대 유적이라고 합니다.

기원전 4세기쯤에 한반도로 철 문화가 전해진 이후, 전국적으로 철기 문화는 기원전 1세기 경에 보급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2세기 후반에 울산 지역은 영남에서 가장 많은 철기를 사용하는 지역이 되었고, 그렇제 진한의 철 생산 중심지로 성장합니다. 

양산 우불산 위쪽에 있는 울산 울주군 대대리 하대 마을 뒷산에서 81기의 덧널무덤(목곽묘)이 확인되었는데, 이 안에서 엄청 많은 와질 토기와 껴묻거리가 발견되었는데, 특히 중국제 청동솥이 발견된 23호 덧널무덤은 아직까지도 대한민국에서 발견된 삼한시대 후기 무덤 중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박물관은 이 지역이 우시산국의 중심 지역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하며, 그렇다면, 우시산국은 부산 지역의 거칠산국과 경주 지역의 사로국과 비견될 강력한 소국이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삼국지><위서><동이전><한조>에는 '영주(구슬, 瓔珠)를 재보(財寶, 재물과 보물)로 삼거나, 옷에 꿰매어 장식하기도 하고, 목이나 귀에 달기도 하지만, 금은과 금수(錦繡, 수를 놓은 비단)는 보배[珍]로 여기지 않는다'라고 쓰여 있을 정도로, 삼한 사람들은 옥을 더 귀하게 여겼고, 이러한 현상은 삼국시대까지 이어집니다.

삼한의 소국들이 점차 합쳐지는 과정에서 울산은 3세기 무렵부터 서서히 신라에 통합되어 4세기경에는 신라의 지방으로 편입됩니다. 그래서 그 이후 발견되는 유적에서는 신라 양식이 나타나는 경향을 보이면서도 신라의 핵심 철 생산지이자 수도 근교의 핵심 거점 도시로 거듭나게 되었죠. 이 시기 유명한 유적으로는 북구 지역의 유적(중산동 유적, 매곡동 유적, 효문동 율동 유적, 산하동 고분군,), 중구 지역의 유적(다운동 유적, 약사동 유적), 울주군 지역의 유적(조일리 고분군, 삼정리 하삼정 고분군, 교동리 고분군, 천상리 평천 유적, 대대리 중대 고분군과 대대리 하대 고분군, 운화리 고분군, 대안리 유적, 명산리 유적, 화산리 고분군, 처용리 유적), 남구 지역의 유적(두왕동 유적), 동구 지역의 유적(주전동 중마을 고분군) 등이 있습니다.

삼정리 하삼정 고분군에서 금동관도 발굴되었는데, 이를 통해 당시 대곡천 지역에서 중요한 인물이 살았고, 그 세력도 대단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울산의 신라의 수도 경주 남쪽 근교에 위치한 지리적으로 중요한 곳이었을 뿐 아니라, 불교가 들어오는 길이기도 했습니다. 그 흔적을 둘러보게 됩니다. 중앙에는 태화사지 12지상 사리탑이 있습니다.

 

[울산] 태화사지 12지상 사리탑, 울산박물관에서 사라진 태화사의 흔적을 찾다

울산박물관 울산 남구 두왕로 277 울산 중구 태화동의 태화강 북쪽 강변에는 신라의 자장(慈藏, 590-658)이 7세기에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태화사의 흔적인 태화루가 세워져 있습니다. 물론 이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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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울주군 청량읍 율리의 영축산에 신라 신문왕 재위기에 건립된 영축사의 터에는 금당(金堂, 부처상을 모신 법당)과 동서의 삼층석탑, 출입시설인 중문(中門), 절을 감싸는 회랑, 설법을 전하는 강당 등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며, 초창기의 규모는 경주의 감은사와 비슷한 규모로 추정되고, 이후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상당한 규모를 갖추고 번성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고 하네요.

울산 울주군 상북면 알프스온천4길 15에 흔적이 남아 있는 간월사지는 삼국시대 신라 진덕여왕 시기 자장율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하며, 이곳에는 석조여래좌상, 쌍탑, 석조물 등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 옆에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청량읍 율리 지역에 19세기까지도 있었다고 전하는 삼국시대의 사찰터 청송사지의 삼층석탑에서 출토된 유물들도 볼 수 있습니다.

통일신라시대에 융성했던 울산의 불교 문화는 고려시대에도 지속되었는데요. 이후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으로 쇠퇴하다가 임진왜란 이후 민간을 중심으로 그 명맥을 이어갑니다. 이는 청송사지, 운흥사지, 가천리 사지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석남사 등에서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전시에서 <불정심다라니경>, <대승기신론소>, <금강반야바라밀경>, 문수사 아미타여래좌상(1787), <동축사 반야용선도> 등을 살펴볼 수 있으며, 고속도로 건설 공사에 따른 구제발굴로 확인된 울주 가천리 사지에서 출토된 유적들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긴 세월 동안의 유구와 유적이 발견된 울산 중구 반구동 유적은 과거에 바다였던 곳으로, 경주 황룡사의 연꽃무늬 수막새와 유사한 기와가 발견된 것에서 이곳에는 삼국시대부터 중요한 건물이 있었고, 통일신라부터 고려시대에는 목책시설과 토성과 같은 항구 관련 시설을 갖추고, 신라의 대외 창구이자 국제항이었을 뿐 아니라 중심지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나말여초의 울산 지역 호족 박윤웅(朴允雄)을 시조로 하는 울산 박씨의 족보인 <울산 박씨 족보>도 이곳에서 볼 수 있는데요. 이 울산 박씨 등을 중심으로 울산 지역의 호족은 고려의 건국에 힘을 보탰기에, 후에 이 지역은 '고려를 흥하게 한 부'라는 뜻의 흥려부(興麗府)로 격상됩니다. 이후 고려 시대에 들어서 울주 천전리 지역에는 고려시대의 건물지가 세워졌는데요. 이곳은 고려시대의 관리가 근무하던 치소(治所)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고려의 흔적은 건물지에서만 드러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울산 울주군 온산읍 당월리에 있었던 연자도는 온산국가공단 조성 당시 공장부지로 쓰기 위해 매립되었습니다. 이 과정 속에 12-13세기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지 21동, 수혈식 주거지 6동, 수혈 유구 278기가 조사되었고, 이 중 청자와 도기는 12-13세기 유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임시 거처로 추정되는 섬에서도 고려의 다양한 기억들이 발견됩니다.

고려시대에 울주라고 불렸던 이곳은 1413년에 울산군으로 바뀌며 지금의 이름으로 남아 있습니다. 지역 자체가 일본과 가까웠기에 군사 요충지였고, 이에 따라 병영(兵營, 경상좌도 병영성)과 수영(水營)도 설치되며 군영, 성곽, 목장(방어진 목장(1454?1464?~1899), 간봉 봉수대(임을랑포 봉수대(임랑포 봉수대), 아이포 봉수대, 이길 봉수대, 하산 봉수대, 가리 봉수대(가리산 봉수대), 천내 봉수대, 남목 봉수대(남목천 봉수대, 주전 봉수대), 유등포 봉수대(유포 봉수대)) 등 군사시설이 들어섰죠. 역사적으로 1407년에 서생포만호를 폐지하고, 장생포만호로 겸임시켰고, 장생포에 개운포의 병선을 옮겨 정박시켜 방어하게 했습니다. 이후 1459년에 동래((현)부산)에 있던 경상좌수영을 개운포로 옮겨 1592년까지 134년간 경상좌수영 기지로 가능하게 됩니다. 경상좌도 병영성을 본진으로 하는 경상좌병영은 처음 경주에 설치되었다가 1417년 울산에 설치되었고, 1894년 군사제도 개편으로 사라질 때까지 477년간 남아 있었습니다.

지리적인 특성으로 울산 지역은 일본인들의 잦은 방문과 침략이 이어졌습니다. 조선이 일본 무로마치 막부와 국교를 맺었고, 1426년에 삼포 개항을 하여 지금의 웅천((현)진해)의 내이포(제포), 동래((현)부산)의 부산포와 더불어 울산의 염포를 개항하며 조선 전기 대일 교류의 중요 거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후 이 지역에 왜관도 설치하며 활발한 교류를 이어가다 삼포왜란(1510)으로 일본인을 쫓아내고 왜관도 폐쇄했죠.

 

일본사 - 무로마치 막부부터 아즈치모모야마 시대까지

1. 무로마치 막부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는 일본 사상 2번째 무가 정권으로, 정이대장군(征夷大将軍) 아시카가 타카우지(足利 尊氏, 1305~1358)이 현재의 교토에 창시한 막부다. '무로마치'라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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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울산 지역의 대일 교류에서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학성 이씨의 이예(李藝, 1373-1445)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그는 대마도 정벌(1419)에도 참가하고, 대마도주와 조선 무역에 관한 조약인 <계해약조(1443)>를 체결하기도 하였으며, 포로를 송환하거나, 일본의 기술을 들여오는 등 대마도(쓰시마 섬)와 류쿠 왕국을 포함한 일본 열도 지역에 파견되어 다양한 활약을 펼쳤습니다. 그와 관련된 기록 중 <학파실기>, <중추원사>, <이공실기>, <중추 이예 연보>, <보한재집>, <해동제국기>,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6세기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은 초기에 울산을 차지하면서 오랫동안 주둔했습니다. 평양성 전투(1593) 이후 전세가 불리해진 일본군은 한반도 남쪽에 왜성을 쌓기 시작했는데, 그중 가토 기요마사(加藤清正, 1562-1611)는 울산 서생포 지역에 서생포수군만호진성의 돌들을 빼서 서생포 왜성(1593-1598)을 세우기도 했으며, 지금의 울산 중구 학성동에 위치한 도산성(島山城, 1597-1598, 울산왜성)도 세우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의 흔적들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이 전쟁 당시에 활약한 이응춘, 장희춘과 같은 의병들에 관한 기록도 볼 수 있었구요. 실제 그 공으로 인해 이덕형은 왜적 토벌에 울산읍민들의 공이 컸다고 보고했고, 조정은 1598년 울산도호부로 승격시켜 주었습니다.

1420년부터 시작된 조선 통신사는 1443년 체찰사 이예를 필두로 <계해약조(1443)>를 체결하여 대일 통교의 근간이 되었는데, 임진왜란으로 중단되었다가 1607년에 조선이 일본 에도 막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파견한 회답겸쇄환사(回答兼刷還使)를 파견하고 국교 재개를 준비합니다 그렇게, 1609년에 <기유약조(己酉約條, 1609)>를 맺으며 공식적은 조선 통신사가 파견되며 1811년까지 12번이나 파견되었습니다. 이와 관련된 <사의사실기>, <서신유사(書信類事)>, <근강명소도회(近江名所圖會>, <정덕조선통신사행렬> 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울산의 토성(土姓)은 박, 김, 이, 목, 전, 오, 윤, 문, 임 등이 유명하며, 울산 이씨를 포함한 이들 유력 성씨는 나말여초에 읍사(邑司, 향리의 집무처 및 행정 조직)를 구성하여 고을을 지배했었죠. 이들 중 임진왜란 중 활양한 의병장들, 현종대부터 숙종대까지 구강서원(鷗江書院)을 설립하고 운영한 사람들, <울산부선생안>에 등재된 좌수와 별감들이 있었을 정도로 당시 대단한 가문들이었습니다.

언양현감 윤병관과 관련된 기록

또, 언양 지역의 토성으로는 박, 김이 있었으며, 추가로 언양 6대 양반 가문에는 동래 정씨, 계림 김씨, 경주 이씨, 연안 송씨, 진주 강씨, 영산 신씨가 포함되었습니다.

19세기 후반 갑오개혁(1894-1896), 을미개혁(1895) 등을 거쳐 대한제국(1897-1910)이 성립되며 울산도호부는 울산군으로 개편됩니다. 그렇게 여러 행정 구역 개편을 거치면서 1962년에 경상남도 울산시와 경상남도 울주군이 되었고, 1995년 울주군은 울산시 울주구로 개편됩니다. 이후 1997년 울산시가 광역시로 승격되면서 지금의 울산광역시가 등장합니다.

이 과정 속에서 울산 지역은 1898년에 우편 업무가 시작되었으며, 1908년에 시내 전화가 개통되었습니다. 1918년에 울산자동차조합의 8인승 포장형 승합차가 물금-언양-울산-장생포간을 1일 1회 왕복하며 교통로도 확장되었고, 1921년에 동해남부선(울산-경주) 철도 개통, 1923년 전등 개통, 1924년 철근콘크리트로 지은 삼호교 개통, 1928년 12월에 일본항공수송주식회사가 수송을 담당했던 비행장 개장 1935년 동해남부선(좌천-울산) 철도 개통을 통한 부산-울산-경주 노선(동해남부선) 완성되었습니다. 그 흔적을 사진으로 훑어봅니다.

1876년 개항 이후 일본인의 이주로 조선의 자연경제는 붕괴되기 시작합니다. 울산지역에 이주해 온 일본인 대부분은 방어진, 장생포, 울산 읍내의 요지에서 상업, 어업 특히 포경업, 미곡상, 고급 식당, 고리대금업, 운수업, 양조장, 조선업 등 다양한 업종을 경영하였는데, 이들은 해방 이전까지 울산 경제를 지배했습니다. 특히 조선축항주식회사(1938-1495) 대표였던 이케다 스케타다(池田佐忠, 1885-?)는 1930-40년대 울산의 입지 조건에 주목하여 울산 공업항 건설 계획을 수립하여 1941년 조선총독부의 수정 허가를 받아 공업항 및 공업지대 개발과 항로 신설을 진행하였으나 1945년 광복 후 일본으로 돌아가며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조선은행에서 발행한 1월 지폐, 10원 지폐, 100원 지폐뿐 아니라 방어진금융조합 발행 국채저금통장, 방어진금융조합 발행 저축예금통장, 조선상업은행 방어진지점 발행 특별당좌예금통장, 조선총독부체신국 방어진우편국 발급 보험료영수장 등의 경제 자료를 볼 수 있으며, 방어진 엽서, 방어진 사누키야 여관 사진엽서, 1936년 제작 울산군 미포리 앞바다 제1종 면허어업 어장도, 조선총독부 발행 통계회 엽서(수산), 방어진지서 사진, 방어진 수협 기념사진, 방어진 화진초등학교 전경 사진과 같은 사진 자료도 볼 수 있습니다.

개항 후 울산의 산업 확장 과정 중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가 바로 1890년대 러시아 제국이 장생포항 조차권을 획득하고 국책회사인 태평양포경회사(Тихоокеанское китобойное акционерное общество)가 포경업에 착수하며 장생포 포경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이후 일본은 포경특허권을 획득하고 일본원양어업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장생포항을 중심으로 참고래를 잡아갑니다. 

1905년 울산군 상부면에 임시우체국이 개설되어 업무를 개시하였고, 1908년에 전화가 도입, 1910년에 울산-방어진간 전화선이 가설되어 전화가 개통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1922년 12월 20일 자본금 10만원으로 울산전기주식회사((현) 방어진삼거리에서 방어진초등학교 방향의 오른쪽 공터 지역)가 설립되었고, 1923년에 5월 8일에 울산 최초로 방어진에 전기가 개통되었습니다. 그렇게 울산 지역에 전화와 전기가 들어오며 많은 변화를 일으켰죠.

이런 근대적인 요소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울산은 국권을 잃은 것에 큰 슬픔과 분노를 느꼈습니다.

1905년에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울산의 김선일, 김치일, 김기준, 김춘길, 박선익 등은 산남의진(山南義陣)이라는 의병부대에 가담해 언양읍내를 공격하여 일본의 부속 기관들을 습격하고 의병 자금을 모으기도 했다고 합니다. 울산 출신 박상진은 1910년대에는 광복단, 조선국권회복단, 대동상점 등을 통합한 광복회를 운영했으며, 1919년 4월에는 언양, 병영, 남창 등에서 4회에 걸쳐 독립만세운동을 펼칩니다. 1920년대에는 울산청년회, 신간회 울산지회 등이 세워지며 독립운동을 이어나갑니다. 1937년 중일 전쟁 이후에도 울산은 일본 제국의 폐망까지 다양한 전국적인 독립운동에 가담합니다. 이와 관련된 <한국독립운동지혈사>, <이재락 간찰>, <김교경 천도교 언양군교구장 임명 증서>, <조선어표준말 모음>, <중등조선말본>, <광복회 창립 포고문>, <미쓰이물산청구서>, <공주감옥에서 보낸 박상진 자필 편지> 등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후 기증실에서 2011년 6월 22일 박물관 개관 이래로 500명 이상의 기증자가 2만점 이상의 유물을 기증하였는데요. 실제 울산박물관 소장유물 중 70% 이상이 기증유물일 정도라고 하네요! 울산박물관은 기증자 예우를 위해 감사패와 기증증서를 발급하고 있으며, 이렇게 기증실에서 일부 기념물들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1-2. 울산의 성곽

전시관 밖에는 울산의 대표적인 성곽 세 곳의 축소 모형과 함께 울산의 다양한 관방유적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서생포왜성, 울산 경상좌도병영성, 언양읍성의 모습을 살펴봅니다.

 

1-3. 산업사실1

대한민국 산업 수도 울산의 산업은 2000년 전 달천철장에서 시작되어 고대부터 울산지역을 부강하게 만들었습니다.

달천철장의 쇠부리 기술에서 출발하여 그 정신을 계승한 산업화의 도약점인 울산공업센터의 설립으로 이어진 울산의 기술은 대한민국 산업과 경제의 심장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울산은 미래 산업도시로 걸어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 산업의 역사를 살펴보러 갑니다. 

가장 먼저 마주친 것은 울산공업센타건립기념탑(공업탑) 모형입니다. 그리고 그 뒤를 울산의 산업이 걸어온 길을 살펴볼 수 있는 파노라마 영상이 틀어져 있죠.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울산은 1962년 시작된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에서 특정공업지구로 설정되며 산업화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렇게 울산특별건설국이 중심이 되어 울산공업센터에 1960년대 초기에는 정유공장과 비료공장이, 1960년대 후기에는 조선과 자동차와 같은 기계공업이 입지 하여 울산은 대한민국 산업화 핵심 도시가 되었습니다.

 

[울산] '공업탑'이라고 불리며, 대한민국산업화의 첫 삽을 상징하는 울산공업센타 건립 기념탑

공업탑 울산 남구 신정동 720-4 울산 남구 신정동의 공업탑로터리 가운데에는 23m에 달하는 탑 하나가 쏟아 있습니다. 경제개발5개년계획의 성공과 인구 50만 울산의 건설을 상징하는 8.8m의 5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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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울산의 주력 산업 패러다임이 대전환을 맞이한 역사적 시발점인 1970년대를 중심으로 울산의 산업화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봅니다.

1962년 2월 3일, 박정희 대통령은 울산 장생포 납도에서 울산공업센터 기공식에서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치사문>을 읽으며, 한국 산업화의 출발을 선언하며, 울산을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그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울산이 이 계획에 선택된 이유 중에는 울산은 공업용지와 공업용수 확보가 비교적 쉬웠으며, 항만과 같은 우수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흐름에 맞춰, 1964년, 울산에는 한국 최초의 대규모 석유 정제 시설인 정유 공장이 건설되었습니다. 울산항이라는 대형 항구에서 석유를 바로 들여와 이곳에서 정제를 한 뒤 다양한 석유제품을 수출하며 국가 경제를 성장시켜 나갔습니다.

1970년대가 되자 울산은 한국 산업화의 중추가 되었으며 중화학 공업 중심지로 급성장합니다.

1970년대 초 대형 선박 건조를 시작으로 대규모의 조선소가 세워졌으며, 1975년에는 최초의 국산 자동차가 생산되기 시작했으며, 1978년에는 온산국가산업단지에서 비철금속인 아연이 처음 생산되는 등 석유화학, 비철금속, 조선업, 자동차 산업 등 여러 산업 분야에서 중요한 발전을 이루게 됩니다.

울산에서 현대가 세운 조선소의 미니어처만 봐도 그 어마어마한 역사가 눈에 맺히는 듯하네요...

 

1970년에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었고, 이후 현대자동차는 1974년에 토리노 자동차 박람회(Salone Auto Torino, 1900-)에서 현대 포니를 처음 선보였으며, 1975년부터 1990년까지 포니를 생산하며 한국 자동차의 시대가 개막되었습니다.

현대자동차가 해외 디자인 회사 이탈디자인(Italdesin)과 협업하여 만든 자동차 포니 관련 잡지 기사, 대한민국 건설부가 지은 <고속도로의 노래(1970)> CD, 1968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포드(Ford)와 협력하여 조립 생산한 현대 코티나 모형, 울산종합자동차공장(현대자동차 울산공장, 1967-) 설립 사진, 이충구 전 현대자동차 사장이 1974년 대리 시절 이탈디자인에서 포니 개발을 위해 배우며 작성한 <이대리 노트>, 1974년에 열린 토리노 자동차 박람회에서 공개된 현대자동차 최초 독자 개발 포니 쿠페 콘셉트 관련 기사, 포니 설계 도면, 포니 모형, 포니 광고지, 2004년에 발간된 포니를 개발, 생산, 수출하는 과정 등 현대자동차의 성장사를 기록한 아카이브 책 <리트레이스 컬렉션 : 포니(RETRACE Collection : PONY, 2024)>의 한 장면도 볼 수 있었습니다.

철을 제외한 금속을 비철금속이라고 하는데, 열과 전기의 전도성이 뛰어나고 부식되지 않아 전자제품, 자동차, 건축자재 등 다양한 산업에 필수재로 쓰인다고 합니다. 당연히 중화학공업이 성장하며 비철금속도 많이 필요해졌는데요. 1969년 알루미늄 생산 공장을 시작으로 1973년 온산국가산업단지 조성 결정된 이후로 아연, 동, 알루미늄, 니켈 등이 지금까지도 울산에서 생산되고 있죠. 예를 들어, 1990년대에는 동제련공장에서 고에너지효율성과 친환경성 그리고 높은 생산성을 가지는 연속제련공법을 도입하는 등 계속 비철금속 생산 공법도 발전시키고 있다고 합니다.

현대자동차가 자체 개발한 알파 엔진(1991-2011)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대한민국은 자체 엔진 개발 기술도 가진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 뒤로 울산 기업들이 제작한 선박 진수판, 자동차 모형과 다양한 책자도 볼 수 있었어요.

울산의 산업은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높여 가고 있습니다. 조선 산업과 자동차 산업은 이미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으며, 석유화학과 같은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하면서 성장 동력을 강화하고 있죠. 한편, 이런 성장을 이룬 울산의 기업들은 사회적 책임과 지속 가능한 발전도 행하며, 지역과 주민, 자연 환경과의 상생을 위한 활동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는 울산의 산업 현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땀과 희망 그리고 꿈이 모여 울산은 대공업시대를 맞이했고, 그렇게 지금도 미래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노고에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1-4. 산업사실2

울산은 한국의 대표적인 산업도시로 성장했으며, 중화학공업의 강점을 바탕으로 친환경, 첨단기술 기반의 미래 산업으로 전환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울산은 자동차, 석유화학, 조선업 등 기존의 주력 산업은 저탄소·친환경 제품 생산과 공정으로 재편하며 고부가가치 산업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전국 최초의 수소 시범도시와 수소 교통 복합기지로 수소 경제를 선도하는 에너지 도시로 나아가고 있을 뿐 아니라,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등 디지털 전환을 통해 제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스마트 산업 생테계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차전지, 친환경 에너지, 디지털 산업과 같은 미래 산업으로의 전환을 가속화하여 글로벌 산업 혁신도시로서의 입지를 강화하고 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울산이 바꾸고 있는 에너지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체험해 볼 수 있으며,

석유화학, 자동차, 조선, 비철금속 기반으로 성장한 울산이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분야들을 살펴보고, AI 기술로 만들어진 울산 근로자와 함께 울산과 울산의 산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 수도 있죠.

마지막으로 <영원히 꺼지지 않는 빛의 도시 울산(Ulsan:The City of Light That Never Goes Out)>이라는 실감영상 미디어 콘텐츠를 보면서 꺼지지 않는 산업단지의 불꽃처럼 대한민국 산업의 역사를 써 내려온 해가 가장 먼저 뜨는 울산의 자연과

 그 울산이 나아갈 미래의 모습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집니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울산의 근로자와 사업가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어록을 읽어보며 관람을 마치게 됩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사람들의 땀과 시간으로 이렇게 거대한 산업의 시대를 연 울산의 이야기를 훑어보면서 정말 감격에 벅차 관람 후반부에는 진짜 눈물이 나오더군요. 진짜 울산에 관심이 있거나 울산에 사신다면 꼭 한 번 가보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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