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태화사지 12지상 사리탑, 울산박물관에서 사라진 태화사의 흔적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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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태화사지 12지상 사리탑, 울산박물관에서 사라진 태화사의 흔적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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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박물관 울산 남구 두왕로 277

태화루 위치(지도 출처 : 카카오맵)

울산 중구 태화동의 태화강 북쪽 강변에는 신라의 자장(慈藏, 590-658)이 7세기에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태화사의 흔적인 태화루가 세워져 있습니다. 물론 이 태화루가 태화사가 있던 곳인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며 단순히 그 전승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신라(新羅) 제27대 선덕왕(善徳王) 즉위 5년, 정관(貞觀) 10년 병신(丙申)(636년)에 자장법사(慈藏法師, 590-658)가 서학(西學, 당나라 유학)하여, 곧 오대(五䑓, 오대산)에서 문수(文殊, 문수보살)이 불법을 주는 것을 감응하였다.
(...)
중국(中國) 태화지(太和池) 변을 지날 때, 갑자기 신인(神人)이 나와서 물었다. "어찌 이곳에 이르렀는가?" 장(藏, 자장)은 답하여 말하기를, "보리(菩提)를 구하기 때문입니다." 신인이 예를 갖춰 절하고 또 묻기를, "너희 나라는 어떤 어려움이 머물러 있는가?" 장(藏, 지장)이 말하길, "우리나라는 북으로 말갈(靺鞨)과 잇닿고, 남으로 왜인(倭人)가 접하며, 여제(䴡濟,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가 번갈아 봉수(封陲, 변방)을 침범하여, 인구(隣冦, 이웃 도적)이 이리저리 날뛰니, 이것이 백성에게 장애가 됩니다." 신인이 말하길, "지금 너희 나라는 여자를 왕으로 하여 덕은 있으나 위엄이 없다. 고로 인국(隣國, 이웃 나라)들이 (너희 나라를) 도모한다. 마땅히 빨리 본국으로 돌아가라" 장(藏)이 묻기를, "고향으로 돌아가면 장차 어떤 이익이 있습니까?", 신(神, 신인)이 말하기를, "황룡사(皇龍寺) 호법룡(護法龍)은 나의 장자(長子)이며, 범왕(梵王)의 명을 받아 이 절을 수호하고 있으니, 본국으로 돌아가 절 안에 구층탑(九層塔)을 완성하면, 이웃 나라들이 항복하고, 구한(九韓)이 와서 조공할 것이니, 왕조(王祚, 왕업)가 영원히 편안할 것이다. 탑을 지은 후에, 팔관회(八關㑹)를 베풀고 죄인을 사면하면, 곧, 외적(外賊)이 해를 끼칠 수 없다. (그리고) 다시 나를 위하여 경기(亰畿) 남안(南岸, 남쪽 강안)에 한 정려(精廬, 정사)를 지어, 함께 나의 복을 빌어주면, 나 또한 그 은덕을 갚겠다." (신인은) 말을 마치자마자 왕 혹은 옥을 받들어 그 말씀을 전하고는 홀연히 모습을 감추어 나타나지 않았다.[<절중기(寺中記)>에는, '종남산(終南山) 원향선사(圎香禪師)의 처소에서, 탑을 세우게 된 연유(이유)를 받았다"고 한다.]
(...)
<찰주기(刹柱記)>에는, '(황룡사 구층목탑은) 철반(䥫盤) 이상의 높이가 42척, 이하는 183척이다."라고 하였다. 자장(慈藏)이 오대(五䑓, 오대산)에서 받은 사리(舎利) 100알을 (황룡사 구층목탑의) 기둥(柱)과 통도사(通度寺) 계단(戒壇)과 대화사(大和寺, 태화사) 탑(塔)에 나누어 안치하였는데, 지룡(池龍)의 청을 따른 것이다[ 대화사(大和寺, 태화사)는 아곡현(阿曲縣)의 남쪽에 있고, 지금의 울주(蔚州)이며, 또한 장사(藏師, 자장)이 지은 것이다.]. 탑을 세운 뒤, 천지가 개태(開泰, 태평성대를 열다)하고, 삼한(三韓)이 하나가 되었으니, 어찌 탑의 영음(霊䕃, 영험)이 아니겠는가.

후에 고려왕(髙䴡王)이 장차 나(羅, 신라)를 치고자 꾀하다가, 이내 "신라(新羅)는 삼보(三寳)가 있어서 침범할 수 없다고 하는데,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라고 하였다. (이에) "황룡(皇龍, 황룡사) 장육(丈六, 장육상)과 구층탑(九層塔) 그리고 진평왕(真平王)의천사옥대(天賜玉帶)입니다"(라고 하니), 마침내 그 계획을 그쳤다. 주(周)에 구정(九鼎)이 있어 초인(楚人, 초나라 사람)이 감히 엿보지 못하였다 하였는데, 이것이 비슷한 것이다.

- <삼국유사><탑상><황룡사구층탑>

<삼국유사>에 따르면 자장법사가 당나라에서 유학하던 중 태화지에서 만난 신인의 요청으로 정려(精廬, 정사)를 세워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며, 이후 울주 아곡현 남쪽에 태화사를 창건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후 진신사리를 보관하고 있었으며 고려 시대까지도 있었다고 전하는 태화사는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후대의 여러 기록을 통해 그 존재와 위치에 대한 전승이 이어졌으며, 오늘날에는 태화루가 태화사의 역사적 흔적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다만 태화사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있죠.

어쨌든 이 태화사의 이름을 오늘날까지 전하는 중요한 유물이 바로 태화사지 12지상 사리탑입니다.

 

1962년, 울산 중구 태화동의 반탕골에서 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리탑 하나가 발견됩니다.

 

처음에는 스님의 부도탑으로 여겨졌으나, 2010년에 진신사리를 보관하던 사리탑으로 판단되어 '태화사지 12지상 사리탑'이라고 불리게 되었죠.

 

탑신은 종 모양이며, 복숭아 연적과 무릎 연적을 연상할 수 있는 독특한 곡선을 그립니다. 앞면에는 감실(龕室, 석불 등을 모시는 작은 방)을 설치했습니다. 그리고 아래 표면에는 지금까지 발견되는 사리탑과 다르게 12간지에 나오는 열두마리 동물을 돋을새김했다는 큰 특징을 보입니다. 

 

1966년 보물로 지정된 이 사리탑은 현재 울산박물관에서 전시 및 관리되고 있습니다. 사라진 태화사의 흔적을 간직한 이 사리탑은 신라 불교문화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석조 사리탑에서는 보기 드문 12지상 표현으로도 주목할 만한 문화유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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