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10.21.조선일보, 히틀러독총통 조선수재에 금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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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10.21.조선일보, 히틀러독총통 조선수재에 금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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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히틀러랑 조선?? 그 둘 사이에 뭐가 있었어?

출처 : 조선일보

원본은 아래와 같다.

히틀러독총통(獨總統)

조선수재(朝鮮水災)에금일봉(金一封)

대련(大連)삐숍총영사(總領事)를통(通)하야

십구일총독부(十九日總督府)에전뢰(傳賴)

독일대총통 히틀러씨는 대련(대련(大連))에잇는 독일령사『에른스트·삐쇼프』박사를보내어지난번조선내의 중수해위문을하고 리재민제로 금일봉을 보냇디

동령사는 십구일 총독부를 방문하고 남총독을 회견한다음 그뜻을 전하엿는데남총독은 감격하야 이를밧고 곳 감사의뜻을 전달하여주도록 독일주재대사관에타전하엿다

긔자는조선호텔로『삐쇼프』령사(군사(軍事))를 왕방하야 성의를 감사한즉 씨는 다음과가티 말한다

『조선에는 작년오월 동경주재 우리나라 대사 반데클리젠박사가 이곳유람을 왓슬때에 나도 함께 다녓기때문에조선사정은 비교적자세히 알고잇고 그만큼 친밀한 생각을항상가지고잇다 전번의 수해에대하햐는 중심으로 동정하는맘을금치 못하야 본국정부에 자세한 보고를하얏드니『히틀러』총통은 특히 극동(극동(極東))에 대한관심을 만히가지고잇슴으로일부러나에게 소절수를보내여 전달케한것이다 남총독대야정무총감은 신경(신경(新京))에서 여러번 만나본일도잇섯는데 이번에조선총독과 정무총감이된 그두분을 서울에서만나게된것은 퍽깃본일이엿다조선은 참일긔조코 경치조흔곳 이다 금강산의인상은 이즘수가업다』

하면서 본사의카메라에 향하엿다

(사진상은 히틀러총통 하는 삐숍총령사부처)

해석본은 아래와 같다.

히틀러(Adolf Hitler) 독일(獨逸) 총통(總統)

조선(朝鮮)에서 일어난 수재(水災)에 금일봉(金一封, 기부금)

(중화민국) 대련(大連) 비쇼프(Bischoff) 총영사(總領事)를 통해

19일, 조선총독부에 전달

독일 대총통 히틀러씨는 대련에 있는 독일 령사(領事)『에른스트 비쇼프(Ernst Bischoff)』박사를 보내 지난번 조선 안에서 일어난 심한 수해를 위문하고 이재민 구제를 위한 금일봉을 보냈다.

비쇼프 영사는 19일 총독부를 방문하고 미나미(南) 총독을 회견한 다음, 그뜻을 전했는데 미나미 총독은 감격해 이를 받고 곧 감사의 뜻을 전달해주도록 독일 주재 대사관에 전보를 쳤다.

기자는 조선 호텔로『비쇼프』영사를 가서 찾아보고 성의를 감사했고, (비쇼프)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조선에는 작년 5월 도쿄 주재 우리나라(=독일) 대사 폰 디르크센(von Dirksen)박사가 이곳에 유람을 왔을 때에 나도 함께 다녔기 때문에 조선의 사정은 비교적 자세히 알고 있고 그만큼 친밀한 생각을 항상가지고 있다. 저번의 수해에 대해서는 마음 깊이 동정하는 마음을 금치 못해 본국(=독일) 정부에 자세한 보고를 했더니『히틀러』총통은 특히 극동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기에 일부러 나에게 작은 수표를 보내 전달케한 것이다. 미나미 총독, 오노(大野) 정무총감은 신징(新京)에서 여러번 만나본 일도 있었는데 이번에 조선총독과 정무총감이 된 그 두 분을 서울에서 만나게 된 것은 퍽 기쁜 일이었다. 조선은 참 날씨 좋고 경치 좋은 곳이다. 금강산의 인상은 잊을 수가 없다.』

하면서 본사(=조선일보)의 카메라에 (얼굴을) 향했다.

(사진(위)은 히틀러총통, 사진(아래)는 비숍 총영사와 아내)

때는 1936년(쇼와 11년) 7월 말부터 9월 초까지 조선 강원도에서는 폭우와 홍수로 인한 큰 물난리를 겪었다. 이 사실은 당시 다롄 총영사 에른스트 비쇼프(Ernst Bischoff)에게 전달되었고, 그는 이 사실을 당시 독일국 총통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에게 보고했다. 그리고 히틀러는 조선의 수해에 큰 도움을 주기 위해 친히 돈을 보냈다는 내용이다.

2. 응? 도대체 왜 히틀러가 조선에 도움을 준걸까?

시간을 조금 뒤로 돌려보자. 1935년에 독일국(나치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의 '군 관련 조약'들을 파기했고, 곧장 재군비 선언(Aufrüstung der Wehrmacht)을 했다. 이후 국방군(Wehrmacht)까지 신설하여 군사력을 뽐내기 시작했다.

이 막강한 군사력으로 1936년 3월, 독일은 당시 비무장지대였던 라인란트 지역에 자국의 부족한 병력을 이동시켜 재무장했으며(라인란트 재무장), 1936년 8월, 독일국 베를린에서 열렸던 하계 올림픽. 독일은 이 올림픽에서 자신의 국력이 뛰어남을 과시했다. 올림픽이 끝나고 열린 제8차 뉘른베르크 전당대회에서 라인란트 재무장과 성공적인 하계 올림픽을 언급하며 당의 사기를 높였다.

 

라인란트를 재무장하고 난 뒤부터 독일은 극동지역에 큰 관심을 가졌는데, 결국 소련을 견제해야하는 자신과 비슷한 일본과 협약을 맺었다. 바로, 1936년 10월 25일 맺어진 반코민테른 협정(Antikominternpakt)이었다. 이 협정은 일본과 독일은 독일이나 일본이 소련의 침략을 받을 경우 양국 모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특별한 조치를 취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협정에 나중에 이탈리아가 동참하여 추축국이 형성되었으며, 3년뒤인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다.

 

1920년대 바이마르 공화국 때부터 중화민국과 협력을 맺고 또, 중국과 일본 사이의 관계에서 저울질을 했을 정도로 독일은 동방에 관심이 많았다. 이러한 이해선상에서 독일은 일본제국령 조선의 수해에 도움을 주고자 금일봉을 준 것으로 보인다.

3. 둘의 연관성에 대해 느낀점

'히틀러와 나치 독일=>추축국=>일본과 동료'로 연결되는 생각의 흐름과 '히틀러와 조선은 크게 연관성이 없을 것'이라는 막연한 판단을 가지고 있었는데, '독일은 일본의 당시 식민지였던 조선에 도움을 주었다'라는 내용의 신문 기사를 읽고 나서 서로의 이해관계를 위해 조선에 도움을 주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굉장히 충격이었지만, 신문 기사를 읽고 그런 일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유연한 판단을 하게되었다.

아 참! 그렇다고 당시의 나치 독일과 일본제국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서를 보다가 생각지도 못한 일을 발견해서 공유하려고 이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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