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졌을 때는 여기 있는 우리 모두, 현해탄에 몸을 던져야 한다!" 꼬꼬무 영상을 보다가 '현해탄'이 무슨뜻인지 궁금해 조사해봤다. |
1. 현해탄
현해탄(玄海灘) 대한 해협 남쪽, 일본 후쿠오카현(福岡縣) 서북쪽에 있는 바다. 우리나라와 일본 규슈(九州)를 잇는 통로로, 수심이 얕고 풍파가 심하다. 쓰시마(對馬) 해류가 동북쪽으로 흐르고 동해 해류가 남쪽으로 흐르며, 방어ㆍ정어리 따위의 난류성 어류가 많이 잡힌다. -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
현해탄은 바다 이름이었다. 대한 해협의 남쪽, 일본 후쿠오카현의 서북쪽에 있는 지리상으로 일본에 가까운 바다를 말한 것이다. 여기서 탄(灘)이란 여울. 즉, 강이나 바다 등의 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 물살이 세게 흐르는 곳을 말한다. 보통 물의 바닥이 얕다면 육지와 가깝기 때문에 해당 지역은 일본과 가깝다고 볼 수 있으며, 현해탄을 직역하면 현해여울, 현해목이라고 부를 수 있다.
2. 겐카이나다
2-1. 겐카이나다에 대해
일본어로 보면 좀 더 알기 쉽다. 왜냐하면 이 단어 자체가 일본에서 건너온 단어로, 일본어로 겐카이나다(げんかいなだ)라고 쓰는 현계탄(玄界灘)과 현해탄(玄海灘)의 한역어이기 때문이다.
玄界灘 [げんかいなだ/겐카이나다] 玄海灘 [げんかいなだ/겐카이나다] 규슈(九州) 북부의 해역. 서쪽으로는 쓰시마 해협(対馬海峡)에, 동쪽으로는 히비키나다(響灘)에 잇닿아 있다. 겨울에는 바람과 파도가 매섭다. - goo 사전 |
겐카이나다의 가장 일반적인 범위로서 후쿠오카현 무나카타시의 카네노미사키(鐘ノ岬)부터 시카노시마(志賀島), 이토시마반도(糸島半島), 가라쓰시만(唐津湾)을 지나 사가현 가라쓰시시의 히가시마츠우라반도까지의 규슈 해안부터 난바다는 오시마(大島), 지노시마(地島) 오키노시마(沖ノ島), 나가사키현의 이키노시마(壱岐島), 쓰시마까지의 해역을 가리킨다.
일본 해상보안청이 발행한 일본 수로도지(水路図誌, 해도)에서도 이런 범위로 게재하고 있다.
玄界灘{겐카이나다, Genkai Nada} 동측을 히비키나다(響灘), 서측을 이키수도(壱岐水道, Iki Suido)~쓰시마 해협(対馬海峡, Tsushima Kaikyo), 남측을 규슈(九州)에 에워쌓인 난바다 해역 - 출처 : 일본 해상보안청 |
겐카이나다의 남측은 전부 수심 200m 이상의 대륙붕이며, 남서쪽에서 북동쪽으로 쓰시마 해류가 흐른다.
신생대부터 일본열도의 원형이 형성될 무렵 서해는 한반도와 연결된 거대한 호수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후 신생대 제4기에 겐카이나다(玄界灘)에 해당하는 해역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 겐카이나다에는 미지의 해저단층이 존재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후쿠오카시의 게고단층(警固断層)과의 연관성도 지적되고 있어 학술기관에서 조사 및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큐슈 및 야마구치현 연안부의 기후는 온난하지만, 겨울에는 서해쪽의 기후의 특징이 나타난다. 북서계절풍과 쓰시마 해류의 영향으로 구름이 생겨 흐린 날이 많고, 연안부에는 비나 눈이 내리기도 한다.
이 곳을 지나는 쓰시마 해류는 눈과 비, 구름을 이고 올 뿐 아니라 많은 물고기도 데려온다. 이로써 겐카이나다 지역의 가네사키항(鐘崎港), 하카타어항(博多漁港), 가라쓰시항(唐津港), 요부코항(呼子港)과 같은 지역 항구에서 많은 어패류가 잡힌다.
일본 열도와 한반도 남부를 잇는 대한 해협의 동쪽 수로(쓰시마섬~규슈)를 쓰시마 해협이라고 하는데, 그 해협 내에서 규슈 북부의 작고 얕은 물살이 센 여울 지역을 겐카이나다라고 부른다. 그런데 왜 하필 이 지역을 어둔여울(玄界灘), 어둔바다여울(玄海灘)이라고 부르는 걸까?
2-2. 겐카이나다의 유래
겐카이나다(げんかいなだ)는 한자로 현계탄(玄界灘) 혹은 현해탄(玄海灘)이라고 쓴다. 각각의 단어를 풀어보면 어둔여울(玄界灘), 어둔바다여울(玄海灘)이 된다.
먼저, 한자 각각의 뜻으로 보자.
한자 및 발음 | 한자 본 뜻 | 겐카이나다에서의 유래 |
玄 [음독 : 겐(げん)] |
적색(赤) 혹은 황색(黄)을 띤 검정색 깊고 어둡다 깊숙한 도리(道理) 아득히 멀다 북쪽(北) |
1. 중국인이 봤을 때, 중국의 바다보다 어두웠음 2. 헤이안시대~가마쿠라시대 때의 뱃사람들이 세토 내해(瀬戸内海)를 지나 쓰시마 해협으로 넘어갈 때 그 바다가 어두웠음 |
界 [음독 : 카이(かい)] |
공간을 나눈 단락, 사물의 경계선 범위를 구분한 특정한 장소 |
북쪽과의 경게를 이루는 해역 |
海 [음독 : 카이(かい)] [훈독 : 우미(うみ)] |
うみ : 바다 | 바다 |
灘 [음독 : 단(だん), 탄(たん)] [훈독 : 나다(なだ), 하야세(はやせ)] |
なだ : 여울(조류가 사납고 파도가 거센 바다) はやせ : 여울(암석이 많아 물살이 가파른 곳) |
조류의 흐름이 빠르고 풍랑이 심해 항해가 어려운 곳 |
먼저 현해탄(玄海灘)에는 바다를 뜻하는 단어가 2개(海, 灘)가 들어있기 때문에 그렇게 쓰는 대신 여울을 뜻하는 탄(灘)을 뺀 현해(玄海)로 쓰거나 현계탄(玄界灘)으로 쓴다.
이 지역의 이름이 만들어질 당시 사람들은 해당 지역의 바다가 조류도 빠르고 풍랑도 심한 항해하기 어려운 바다였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세토 내해를 통해 북쪽으로 올라가면 보이는 바다였으며, 다른 지역의 바다에 비해 어두웠다고 여겼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어진 것이다.
2-3. 한국에 현해탄이 알려지다.
그럼 우리나라에서는 이 말이 어떻게 유래되었을까? 당연히 짐작했겠지만 일제강점기였다.
현해탄(玄海灘) 격랑(激浪) 중(中)에 청년(靑年) 남녀(男女)의 정사(情死) 극작가와 음악가가 한떨기 꽃이되어 세상시비 던져두고 끝없는 물나라로 남자(男子)는 김우진(金祐鎭) 여자(女子)는 윤심덕(尹心悳) 지난 3일 오후 11시에 하관(下關, 시모노세키)을 떠나 부산(釜山)으로 향한 관부연락선(関釜連絡船, 부관연락선) 덕수환(徳壽丸, 도쿠주마루)이 4일 오전 4시경에 대마도(對馬島, 쓰시마섬) 옆을 지날 즈음에 양장을 한 여자 한 명과 중년 신사 한 명이 서로 껴안고 갑판으로 돌연히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을 하였는데 즉시 배를 멈추고 부근을 수색하였으나 그 종적을 찾지 못하였으며 그 선객 명부에는 남자는 전남(全南) 목포부(木浦府) 북교동(北橋洞) 김수산(金水山)이요, 여자는 경성부 서대문정(西大門町) 2정목 173번지 윤수선(尹水仙)이라 하였으나, 그것은 본명이 아니요, 남자는 김우진(金祐鎭)이요 여자는 윤심덕(尹心悳)이었으며,유류품으로는 윤심덕의 돈지갑에 현금 140원과 장식품이 있었고 김우진의 것으로는 현금 20원과 금시계가 들어 있었는데 연락선에서 조선 사람이 정사(情死)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더라. (부산전보) - 1926년 8월 5일, 동아일보 |
1926년 8월 3일 오후 11시, 일본 규슈 시모노세키에서 출발한 부관연락선 도쿠주마루(徳壽丸)에 2명의 남녀가 배를 탔다. 여자는 조선총독부에서 국비지원으로 예능을 배우는 관비유학생으로 발탁되어 아오야마 여학원(현재의 아오야마가쿠인, 일본 금수저들이 주로 가는 대학)에서 성악을 공부하고 귀국해 극단을 떠돌다가 레코드 녹음 일을 구하려 일본에 갔다. 남자는 전남의 한 백만장자의 장남으로 태어나 와세다대학 의예과와 영어를 전공한 극작가였으며, 당시 일본에서 독일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둘은 일본에서 만나서 사랑을 나눴고, 8월 3일 부산행 페리선(연락선)을 탔다. 배는 출발했고, 4일 새벽 4시경, 배가 대마도를 지나고 있을 때 갑판에서 풍덩 소리가 났다. 기장은 즉시 배를 멈췄고, 승객을 일일이 확인했다. 승객명부에 적힌 '김수산(김우진)과 윤수선(윤심덕)'가 짐만 남긴채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즉시 수색해서 찾았으나, 이미 2명의 남녀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신문은 이를 최초의 정사사건이라고 보도했다. (이 부분에 대해선 논란이 있지만 시적 허용에 따라 넘어가자) 여기서 정사(情死)란 sex를 뜻하는 정사(情事)가 아니다. 너무 사랑하고 정을 나누어서(情) 같이 죽는 것(死)을 말한다. 그들은 각자의 운명을 깨닫고 서로 가까워질 수 없음을 느끼고 같이 영원히 따뜻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매서운 파도가 뒤엉킨 차가운 바다로 몸을 던진 것이다.... 바다는 그 둘을 품었다. 그저 품었을 뿐이다. |
1926년 8월 4일에 일어난 현해탄 정사사건으로 현해탄이라는 단어가 한국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일을 시작으로 각종 문학 작품에 '현해탄'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며 당시 살던 사람들에게 '현해탄은 일본과 조선을 잇는 바다'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고, 어느샌가 대한해협의 문학적, 시적 대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과거로 돌아간
폐허의 거칠고 큰 비석 위
새벽 별이 그대들의 이름을 비칠 때,
현해탄의 물결은,
우리들이 어려서
고기떼를 쫓던 실내처럼
그대들의 일생을
아름다운 전설 가운데 속삭이리라.
- 1936년 3월에 발표된 임화의 '현해탄' 中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 우리나라에는 '일본과 한국을 오가다'라는 뜻의 '현해탄을 건너다'라는 관용구가 성인층 사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하다가 최근 사어화 되고 있다.
2019년 7월 24일, 더불어민주당(2015~)이 일본의 경제 정책에 대한 정부의 대책을 반대하는 자유한국당(2017~2020)을 비판하기 위해 만든 당 홍보물에 대한 논란에서도 볼 수 있다시피(제발 이 문장을 정치적 발언으로 해석하지 말아줬으면 한다... 그저 해당 단어의 사어화 및 언어순화운동에 관해 말하고 싶은 것이다!) 각종 언론계에서도 이 단어는 일본어에서 유래한 단어이니 대용어인 '대한해협이나 쓰시마해협' 등으로 수정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한 시대와 그 다음 세대까지 쓰이던 일본에서 유래한 한자 관용어 '현해탄'. 일본에서는 지명으로, 한국에서는 문학적, 지리학적 명칭으로 사용되던 이 단어는 국내에서 점차 사장되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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