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대까지 민족혼은 죽지 않았다! 부산어린이대공원의 부산항일학생의거기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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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대까지 민족혼은 죽지 않았다! 부산어린이대공원의 부산항일학생의거기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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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부산진구 초읍동 어린이대공원의 부산학생교육문화회관 광장 서쪽에 '부산항일학생의거기념탑'이 세워져 있습니다.

부산항일학생의거 기념탑
국가보훈처지정 현충시설
부산항일학생의거는 1940년 11월 23일 당시 부산공설운동장(현 구덕운동장)에서 개최된 제2회 경남학도전력증강 국방경기대회에서 일제의 한국 학생들에 대한 차별과 편파판정이 도화선이 되어 발생하였다. 동래중학(현 동래고)과 부산제2상(현 개성고)을 중심으로 1,000여 명의 학생들은 격렬한 가두시위를 전개하고 심판장 일본군 육군 대좌(≒대령) 노다이 켄지[乃台兼治]의 관사를 습격하였다. 이 과정에서 학생 200여명이 체포되어 온갖 고문을 당하고 주모자로 지목된 학생 15명은 투옥되었다. 이 의거는 일제 말기 전시체제하에서 전개된 국내 최대 규모의 항일학생독립운동이었다.

이 탑은 일제의 민족적 차별에 항쟁한 부산항일학생의거를 기념하고 선현들의 애국심과 그 숭고한 뜻을 시민정신의 큰 뿌리로 승화시키고자 건립되었다.

일본의 편파판정에 반감을 품고 들고 일어선 부산 동래중학(현 동래고등학교)과 부산제2상(현 개성고등학교) 학생들의 항일 의지를 보여주는 동상들이 가운데 태양으로 둘러싸인 태극무늬를 수호하는 듯한 모습이 보입니다.

기념탑 뒤편에는 그 의거에 참가한 동래중학 학생 52명과 부산제2상 학생 37명, 즉 총합 89명의 의거 참여 학생의 이름이 형을 받은 학생과 처벌받은 학생으로 구분해 새겨져 있습니다. 그 외에도 1000여 명에 달하는 많은 학생들이 당시 거세게 가두시위를 하며 저항했습니다.

  동래중학
(현 동래고등학교)
부산제2상
(현 부산상업고등학교)
(현 개성고등학교)
형을 받은 학생 김명수 김영조 김인규 김재한 안장원
이달희 이도윤 정두열 추유복 (9명)
김선갑 김종배 이병도 이세기 이인희
홍병희 (6명)
처벌 받은 학생 김기준 김명수 김세영 김영기 김영조
김영진 김영찬 김은두 김인규 김일동
김재한 김준배 김진곤 김창환 남기명
문인갑 문주오 문태환 박상원 박순흥
백기호 성도호 성한경 손태준 숭덕수
안병철 안장원 양원택 양   장 이달희
이도윤 이문규 이조율 이종영 이종전
이진형 임규호 정무열 장종기 장종대
조영식 최명율 추유복 (43명)
김기완 김기호 김무영 김선갑 김성윤
김유근 김종배 김종순 김종희 김진문
나병연 민병표 박규태 박자환 박정세
박준홍 배기옥 배차순 양재환 윤희산
이병도 이선학 이세기 이인희 이정희
이추수 이태영 정상권 장준한 좌달하
최이택 홍병희 (31명)

기념탑을 세우면서
부산항일학생의거는 1940년 11월 23일 당시 부산공설운동장(현 구덕운동장)에서 개최된 제2회 경남학도전력증강 국방경기대회에서 일제의 한국 학생들에 대한 차별과 편파판정이 도화선이 되어 발생하였다. 동래중학(현 동래고)과 부산제2상(현 개성고) 중심으로 1,000여 명의 학생들은 격렬한 가두시위를 전개하고 심판장 일본군 육군 대좌 노다이 켄지[乃台兼治]의 관사를 습격하였다. 이 과정에서 학생 200여명이 체포되어 온갖 고문을 당하고 주모자로 지목된 학생 15명은 투옥되었다. 이 의거는 일제 말기 전시체제하에서 전개된 국내 최대 규모의 항일학생독립운동이었다.

만시지탄은 있으나 이제 선배님들의 드높은 애국심과 의연함에 깊이 머리 숙이며 그 숭고한 뜻을 이 탑에 담아 시민정신의 큰 뿌리로 승화시켜 영원히 기리고자 한다.
2004년 11월 23일
부산항일학생의거기념사업회
집행위원장 강대민 삼가 짓고 김진희 삼가 쓰다

기념탑의 뒤편에서도 이 기념탑이 어떤 기념탑인지 알아볼 수 있게 명칭이 적혀 있으며, 일제에 항거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더 전율 있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앞에선 쓰러진 동료를 지키면서도 우렁찬 함성을 내지르는 듯한 모습이었다면, 뒤에서 본 동상들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려는 움직임이 더 강하게 느껴졌어요.

 

일제강점기 말기에도 이런 학생운동이 있었다는 사실은 그 때까지도 민족혼이 죽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부산항일학생의거기념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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