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이후 반공반탁운동을 펼친 청년들을 기리 부산 건국청년운동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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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이후 반공반탁운동을 펼친 청년들을 기리 부산 건국청년운동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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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자유총연맹 부산광역시지부의 건물로 쓰고 있는 부산자유회관(부산통일관) 앞의 야외전시장이 보입니다. 주차장을 지나가면 볼 수 있죠.

부산역에서 시작되어 평양이라는 목적지까지 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든 통일열차 판넬에서 기관사처럼 사진을 찍을 수도 있는데요. 그 옆에 바로 ' 서쪽에 '건국청년운동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기념비의 정면에는'건국청년운동기념비'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항공사진을 보시면 알겠지만, 이전에는 부산통일관 앞에 전투기 2대가 있었고, 원래 건국청년운동기념비는 뒷편의 절 성문사 입구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비석은 부산통일관 바로 앞으로 옮겨졌습니다. 관련 자료를 카카오맵에 전달했으니 위치가 제대로 다시 표시되길 바래봅니다.

건국청년운동기념비(National Youth Movement Monument)
국가보훈부 지정 현충시설
전국 곳곳에서 조직된 조선민족청년단 등 8개 청년단체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까지 국익을 위한 계몽활동, 독립운동 및 건국운동에 앞장서서 대한민국의 정통성 수호를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대한민국이 소련 등 강대국들에게 식민지화  되어간다고 판단한 청년들은 완전한 자유민주주의 독립을 위해 반탁반공(신탁통치 및 공산주의 반대) 활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반탁반공을 외쳤던 수많은 청년들이 희생을 치렀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건국운동에 몸담은 청년들은 공산세력의 주적이 되어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위협당하였고, 6·25전쟁 이후 17,274명의 건국청년들이 희생당하였다.

"경찰도 아니고 군인도 아닌 청년들이 사상전(思想戰)의 희생자로 숨졌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통해 확실히 알았다. 사상전에 희생되지 않기 위해서는 확고한 국가관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이들의 올곧은 자주독립정신을 후손에게 전하고자 1963년 12월 23일 청년우인회를 조직하고 1995년 4월 20일에 대한민국건국회 유족과 후손들이 이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관리자 : 대한민국 건국회 부산본부, 대한민국건국회 유족회
관리번호 : 40-2-23

기념비 정면 기준 왼편
짧은 일생을 영원한 조국에

노산(鷺山) 이은상(李殷相, 1903~1982) 선생 지음

기념비 뒷면
서기 1945년 8월 15일 조국해방후 전국방방곡곡에서 민족정기를 환기, 청년과 학생들이 결기(決起)하여 공산당과 항쟁하여 대한민국 건국의 터전을 닦고 6·25 남침 때는 총을 메고 싸워 자유를 수호, 호국의 전통을 세웠다. 전국에서 1만 7274명의 순국동지영령을 추모하고 건국과 호국의 초석이 된 것을 영원히 기념코자 광복 50주년에 이곳 백양산 기슭 성지곡에 건국청년운동기념비를 세운다.

기념비 정면 기준 오른편
건국청년운동협의회 부산광역시지부 건립         서기1995년 4월 20일 건

건립위원 무순(無順, 순서 없음)
[관계자 35인의 이름이 새겨짐]

 

이 야외전시장에서 입구쪽을 바라보면 한국전쟁 때 우리나라를 도와줬던 나라들의 국기가 세워져 있습니다.

논란이 있고, 좀 더 아쉬운 점도 있지만 광복 이후 한국이 다시 식민지배에 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반공과 반탁을 들고 일어섰던 청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기리는 비석이 이 부산자유회관(부산통일관)에도 세워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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