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기마을 당산할배신을 모시는 양산 법기당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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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과 표로 보는 역사 시리즈/어원과 표로 보는 한국사, 한국문화

법기마을 당산할배신을 모시는 양산 법기당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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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동면 법기수원지로 가는 길목 '법기당산나무'라는 버스정류장이 있고, 그 뒷편으로 당산나무 한 그루가 서있습니다.

논밭 뒤 기와담장이 있는 곳에 3그루의 나무가 있는데, 가장 왼쪽 뒷편에 있는 나무가 당산나무입니다. 입구에서도 큰 나무 한 그루가 오는 사람들을 맞아줍니다.

조금 더 들어오면 본법정(本法亭)이라는 마을 어르신 쉼터가 있고, 그 뒷편으로 당산나무와 그것보다 작지만 그늘을 만들어주는 큰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습니다.

저 웅장한 자태를 보십시오. 수령이 무려 250년은 된 느티나무라고 합니다.

그 옆에는 이렇게 방문객이 쉴 수 있는 공간과 그 공간을 덮고 있는 나무도 있구요. 한쪽엔 식수대도 있습니다만, 방문했던 24년 5월 19일에는 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식수대 쪽 그러니까 당산나무 정면 기준 왼편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그 모습이 너무 거대해 저도 모르게 압도당했습니다. 

양산 동면 법기리 본법마을의 어르신들이 야외에서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세워진 본법정(本法亭)입니다. 안내판에 따르면, 마을 어르신 전용이라고 하며, 방문객은 그 앞의 나무 데크에 앉아서 쉬면 됩니다.

법기리 당산나무입니다. 땅 밖으로는 2개의 그루가 나온 듯 한데요. 하나의 나무인지 두 개의 나무인지는 육안으로 구분하기 어렵네요. 아시는 분 있으면 댓글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무 앞의 제단에서 매년 정월대보름날에 당산할배신을 모시며 제를 올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 아래에는 당산나무의 유래와 법기리 본법 마을에 사람들이 언제부터 살게 되었는지를 적은 비석이 있습니다. 글씨가 희미하고, 돌에 많은 더러운 흔적이 있어, 글자 하나하나를 쓸어가며 판독했으니, 궁금하신 분은 아래 설명문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당산나무 유래
마을에 최초 형성 시기는 본법 고분군이 법기리 536번지 일대에 산포(산포)되어 있다.
출토된 토기 등이 5세기 경으로 추정되어 이때부터 사람이 살아왔다고 믿어지나, 정확한 자료는 없고 다만 본격적인 형성 시기는 임진왜란 때 단양 우씨가 기장군에서 난을 피해 이곳 본의곡으로 이주하여 살게 되면서 부터라고 전한다. 당산나무의 유래도 법기리 고분군 형성시기인 5세기와 같이 추정하고 있다.

지금의 당산나무는 작고하신 마을어른들의 수전에 의하면 수령이 약 250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실제 나무의 상태를 보면 웅장함과 장엄한 자태로 수백년의 역사가 담겨 있다고 본다. 마을에서는 당산할배신으로 모시고 마을의 편안과 번영을 기원하는 주민들이 음력 정월보름과 10월 보름날을 기하여 제사를 모시다가 해방 이후부터는 정월대보름날에만 제사를 모시고 있다. 2011년 6월 주변 환경을 정비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준공하게 되었다.
소재지 : 양산시 동면 법기리 1068-1번지
수종 : 느티나무 수령 : 250년 수고 : 약 20m(둘레 약 4m)
준공일자 : 2011년 6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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