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 280에는 동래 정씨의 재실인 상현당이 있습니다.
표지석 앞면 | 표지석 뒷면 |
상현당(尙賢堂) | 사정단(沙汀檀) |
동래정씨 재각(東萊鄭氏齋閣) | 임란공신단소(壬亂功臣壇所) |
이 곳의 상현당은 동래정씨 재각(재실)이라고 하며, 그 뒷편의 사정단은 임진왜란 당시 공신이었던 분들을 모시는 단소라고 합니다.
왼편으로 흐르는 철마천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저 멀리 상현당·사정단이 보입니다.
상현당·사정단의 대략적인 지도입니다.
상현당·사정단으로 가는 길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저 큰 건물이 상현다이고, 그 뒤에 제단인 사정단이 조금 보입니다.
가산 동래 정공 인준 기공비(珈山東萊鄭公寅準紀功碑)가 입구 맨 오른쪽 뒤에 보이네요. 사진 왼쪽 뒷편을 보시면 재실 이름인 '상현당(尙賢堂)'이라 쓰인 편액을 볼 수 있습니다.
1909년(순종 3년)에 기장향교의 전교를 지낸 가산(珈山) 정인준(鄭寅準)이 지금의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 중리 마을에 있는 이선(李選)의 수리정(愁離亭)에 관한 기문(記文)인 <수리정기(愁離亭記)>를 썼습니다. 그가 쓴 글은 지금도 그 정자 위에 걸려있습니다.
기증된 꽃나무도 보입니다.
도산 동래 정공 인정 선생 사적비(桃山東萊鄭公麟定先生事蹟碑)도 보입니다.
한양 도동(桃洞)에서 태어났던 도산(桃山) 정인정(鄭麟定, 1555~?)은 임진왜란 당시 그의 작은아버지인 정언룡과 이순신과 함께 작전을 수행하다, 작은아버지 정언룡의 늙은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지휘권을 그에게서 건네받게 됩니다. 그렇게 그는 임진왜란에서 이순신과 함께 여러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죠. 그러나 아쉽게도 임진왜란이 끝날 당시 공신명부에는 그의 이름이 들어가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선무원정공신(宣武原從功臣) 통정대부(通政大夫) 사복시정장(司僕寺正長) 노봉선생(老峰先生) 동래정공(東萊鄭公) 휘(諱) 언룡(彦龍) 사적비(事蹟碑)'도 보이네요.
정언룡(鄭彦龍, 1554~1637) 또한 임진왜란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던 분입니다. 그는 기장 쪽으로 회군하면서 일본군에 대한 유격전을 펼치면서 난민을 구제했었죠. 특히 임진왜란에서 이각, 이순신 등을 따라 적병을 막거나 물리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어머니가 위급하다는 전갈을 받고 당숙인 정인정에게 지휘권을 넘겨주고 300리를 달려 문안을 드리러 왔을 정도로 효심이 지극했다고 합니다. 다만, 그의 어머니는 그를 보자 오히려 나라가 난리인 상황에 굳이 왜 왔느냐고 노했다고 하죠. 어머니와 그의 아들 모두 큰 가치를 따르고 있었던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정문인 성경문(誠敬門)입니다. 여기서 '성경(誠敬)'은 '정성(誠)을 다해 공경(敬)함'이란 의미입니다.
동래 정씨의 상현당·사정단을 빠져나와 북쪽으로 올라가는 길에 또 한 장 찍었습니다. 여기서 북쪽으로 조금만 더 올라가면 곰내연밭과 홍연폭포가 나오니 7~8월에 방문해보시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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