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공신과 그 후손을 모시는 우봉 김씨 재실, 덕수당·백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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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공신과 그 후손을 모시는 우봉 김씨 재실, 덕수당·백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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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덕수당·백산단 가는길

부산 기장군 철마면의 곰내길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다보면 부산외곽순환도로를 잇는 백길교 아래로 지나가게 됩니다. 이 때 오른쪽에 작은 운동장을 끼고 올라가게 됩니다.

거기서 몇m만 더 가면 '백산단'이라고 쓰인 안내석이 있습니다.

이 안내석이 이끄는 샛길로 들어가면 백산단으로 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세갈래길에 도착하면 저 터널로 들어가면 됩니다.

 

2. 덕수당·백산단

그럼 이런 풍경의 건물이 우리를 맞이해줍니다. 저 뒷쪽에 있는 큰 지붕이 있는 곳이 바로 덕수당·백산단입니다.

재실 옆에는 집이 있습니다. 아마 이 우봉 김씨 사당을 관리하시는 분이 살고 계시는 듯 합니다. 옆엔 강아지도 키우고 있습니다. 소리가 어찌나 우렁차던지요!

우봉 김씨가 부산 기장 땅에 오게 된 연유는 이렇습니다.

조선 명종 때(1545~1567) 의정부 좌참찬(左參贊)으로 있던 김계장(金繼長)이 을사사화(乙巳士禍, 1545)로 화를 입고 양산 땅(지금의 울산 울주군 서생면)에 귀양살이를 하면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렇게 그가 가졌던 좌참찬이란 직책을 통해 그는 참찬공(參贊公) 김계장(金繼長)이 되었고, 그의 후손은 우봉 김씨 참찬공파가 됩니다.

 

참찬공 김계장의 손자 김대연(金大連)은 친했던 동래부사 송상현의 추천으로 관직을 받았으며, 동래읍성의 한 문을 지키다가 장렬히 순국하게 됩니다. 이후 그의 현손(玄孫)인 김상경(金尙涇) 때가 되어 기장 철마로 이사와 자리를 다시 잡고 지금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그 후손 중 김운일(金運鎰)은 1919년 3.1 운동 때 적극적으로 만세 운동을 하는 등 항일독립운동을 했던 분입니다. 그 당시에 그가 쓴 <백산정기(栢山亭記)>, <앵림사(鶯林寺)>와 같은 글과 시를 쓰기도 했습니다.

덕수당·백산단의 정면입니다. 이 대문 옆엔 비석 하나가 있습니다.

우봉 김씨 지홍공 기공비(牛峰金氏址洪公記功碑)라는 비석이 보입니다.

 

기공비 뒷면 기공비 정면 기준 우측면
공(公)은 호(號)가 정명(正明), 명(名)은 지홍(址洪)(1921년 7월 9일~2010년 2월 16일)으로 우봉 김씨(牛峰金氏) 32세이며, 참찬공파(參贊公派) 익도(益都) 대연공(大連公)의 13세이고, 무암(茂菴) 상경공(尙涇公)의 9세손이다. 기장군 철마면 백길리에서 태어나 시례(詩禮)의  엄친가풍(嚴親家風) 속에 성장하였으며 사업을 경영하여 가사(家事)를 안정시켰다. 공은 숭조정신(崇朝精神)이 지극하여 파중(派中)의 제위답(祭位畓)과 상석(床石)을 마련한 것은 물론 숭선경종(崇先敬宗)하며 친지(親知)와 상조보인(相助輔仁)하고 특히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웃들을 도와 우리 사회의 모범(模範)이 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32년에 종조부(從祖父) 후봉(後峯) 김운일(金運鎰), 당숙(堂叔) 야은(野隱) 김재곤(金在坤), 문장(門長)을 지내신 김호일(金浩鎰), 김재로(金在魯), 김경일(金埛鎰), 김기일(金淇鎰)  등 여러 어른들이 힘을 모아 익도(益都) 할아버지와 무암(茂菴) 할아버지의 향제(享祭)를 드리고자 당우(堂宇)를 세워 놓았으나 익도공(益都公)이 임란공신(壬亂功臣)이며 후봉공(後峯公)이 항일독립운동가이었음을 알게된 일본헌병의 만류로 인하여 향제(享祭)를 모시지 못하였던 것이 가슴 아픈 역사이었는데 공은 조국이 광복되자 강호군자(江湖君子)들의 사단향문(賜壇享文)으로 허락(許諾)을 받아 당우(堂宇) 후원(後園)에 1990년에 설단(設壇)하고 제향(祭享)을 드리게 되는 업적을 이루게 되었다. 그리고 공은 파중(派中)의 후학을 위하여 정명장학회(正明奬學會)를 설립하여 학생들에게 학비를 지원하였으며 제향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파중회관(派中會館)을 마련하는 등 우리 가문을 위하여 헌신한 공적이 크므로 이에 파중전회원(派中全會員)의 이름으로 이 비를 세워 천추(千秋)에 전하고자 한다. 임진년(2012) 4월 28일 윤 3월 8일
김기생(金羈生) 지음[撰]
김윤홍(金潤洪) 글[書]
동독(董督) 김오출(金五出)

저 멀리 보이는 기왓집이 제사를 관장하는 덕수당(德修堂)이며, 그 뒤에 보이는 제단이 바로 백산단(栢山壇)입니다. 이곳에선 매년 음력 3월 그믐에 백산단에서 유림제를 지내고 있으며, 무암공수계(茂菴公修稧, '무암수계'라고도 부름)를 매년 4월 29일에 행하고 있다고 하네요.

우봉김씨 백산단 춘기향사 (출처 : 정관타임스)

1932년, 우봉 김씨 참찬공파의 문중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김대연과 그 후손 김상경의 업적과 덕망을 기리기 위해 백산정(栢山亭)을 건립합니다. 그리고 제사를 지내려 했으나 일제의 방해로 하지 못하고 방치되었죠. 조국이 광복을 맞이한 뒤인 1989년, 우봉 김씨 가문의 문장(門長)을 지냈던 정명(正明) 김지홍(金址洪, 1921~2010)이 백산정의 뒤에 제단 백산단(栢山壇)을 세우면서 기존의 '백산정'을 '덕수당(德修堂)'이라 부르며 유림제를 제대로 지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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