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이 절로 풀어지는 기장 철마면의 수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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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이 절로 풀어지는 기장 철마면의 수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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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지도만 보고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에 많은 거리를 걸어서 대곡마을 정류장에서 버스를 탔습니다만... 버스를 타고 간다면, 철마면 인근에 내려서 '철마면행정복지센터 정류장(16309)'에서 184번을 타거나, '철마면행정복지센터 정류장(16176)'에서 73번을 타고 웅천 정류장에서 내려 가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웅천마을 버스 정류장에서 내렸습니다.

기장 3.1만세 운동을 주동했다는 기장 출신 독립운동가 구수암(具壽巖)의 간략한 이야기와 이 웅천마을 동편에 있는 '아홉산 대나무숲'에 대한 시가 적혀 있습니다. 저녁 약속이 있어, 저긴 못갔는데, 시간이 난다면 아홉산 대나무숲도 가보려고 합니다.

철마쪽에서 온 버스를 타고 내려 등을 돌리면 수리정이 보입니다.

맨 오른쪽에 붉은 글씨로 수리정(愁離亭)이라고 쓴 비석이 보입니다. '근심(愁)을 떠나게 하는(離) 정자(亭)'란 뜻입니다.

 

가운데는 집승정 유허비(集勝亭遺墟碑)라는 비석이 있습니다. 사실 이 수리정이 있기 전에 이 정자는 집승정(集勝亭)이라 불렸습니다.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문세명(文世鳴)이 세운 정자로, 이후 17세기에 유배온 이선이 그의 집에서 같이 은거하며 이곳에서 근심을 잊을 수 있었다하며 수리정이라고 바꾼 겁니다.

출처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맨 왼쪽엔 집승정십경시(集勝亭十景詩)라는 비석이 있습니다. 이곳의 경치를 본 한 사람이 한시를 쓰고, 그 밑에 번역을 새겨놓았습니다.

 하마석(下馬石)
일명 '노둣돌'이라 불리는 하마석(下馬石)은옛날 지체 높은 양반들이 말을 타고 내릴 때 발돋음용으로 쓰려고 대문이나 건물 앞에 놓아둔 큰 돌이다. 이곳 철마면 웅천리 중리마을은 예로부터 기장고을 효행실천의 으뜸마을로 이름 나 있었다.

1689년, 이조참의(吏曹參議)였던 지호(芝湖) 이선(李選, 1631~1692) 공(公)이 유배와서 수리정(愁離亭)에서 귀양살이의 시름을 달래었고, 이곳에서 대대로 세거(世居)한 남평 문씨(南平 文氏) 가문의 도움으로 지낼 수 있었다. <집승정유허비(集勝亭遺墟碑)>에 새겨진 정2품 정헌대부(正憲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문세명(文世鳴)공도 함께 사용하였던 이 돌이 여기 있는 하마석이다.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황구(黃龜)

수리정(愁離亭)
소재지 :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 422
이 정자는 1684년(숙종 10년) 삼도유수(三都留守)와 이조참판(吏曹參判)을 지낸 지호(芝湖) 이선(李選, 1631~1692) 공(公)이 숙종 15년(1689년)의 기사환국(己巳換局, 장희빈 소생의 원자정호(元子定號)에 관한 분규로 송시열 등 서인이 이를 지지한 남인에 의해 축출당한 일)으로 이곳에 유배와서 귀양살이의 근심(愁)을 달랠(離) 수 있는 곳이라 하여 수리정(愁離亭)이라 하였다.

(이선) 공은 파란만장한 삶 가운데서도 저서활동(著書活動)을 끊임없이 하였고, 특히 이곳에서 4년간(1689~1692)의 유배생활 중 송강(松江) 정철(鄭撤, 1536~1593)의 <송강가사(松江歌辭)> 가운데 흩어진 것을 간추리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본 마을 유란헌(幽蘭軒)에서 이선 공에 의해 국문학사에 그 빛을 크게 되살린 불후(不朽)의 작품인 <송강가사(松江歌辭) 이선본(李選本)>을 찬집하여 세상에 남김으로써 <송강가사>의 가치를 드높혔다.

하마석 오른편 계단을 올라가면 수리정에 대한 안내문이 있습니다.

수리정을 가까이서 본 모습입니다.

지호(芝湖) 이선(李選) 이조참판(吏曹參判) 후6정유(丁酉)
9월(九月) 21일(貮拾壹日) 경신(庚辰) 오시(午時) 수주(
竪柱)

동월(同月, 9월) 28일(貮拾八日)정해(丁亥) 오시(午時) 상량(上梁)

라고 적힌 현판이 걸려 있네요.

그 뒷편에는 라고 해서 단기 4245년(서기 1912년)에 기장향교 전교를 지낸 가산(珈山) 정인준(鄭寅準)이 삼가 짓고(撰), 단기 4338년(서기 2005년) 겨울에 남계(南溪) 박승록(朴承禄)이 삼가 쓴(謹書)  <수리정기(愁離亭記)>가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부산역사문화대전의 글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요약하면 '수리정의 이름이 이 참판(이선)에 의해 지어졌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입구에 앉아 남쪽을 바라보면, 철마천과 그 뒤의 아홉산이 잘 어우러진 풍경이 보입니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또 마을 입구와 그 뒤의 산들의 풍경도 볼 수 있습니다. 철마에서 정관으로, 혹은 정관에서 철마로 지나가다 바람을 쐬고 싶을 땐, 이곳에 잠시 앉아 쉬어가는 것도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수리정 뒷편의 언덕엔 묘 한 기와 웅천리 중리 당산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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