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동래구의 월성박씨 화전재, 그리고 애국지사 월성박공임갑 기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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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래구의 월성박씨 화전재, 그리고 애국지사 월성박공임갑 기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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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화전재

부산 동래구 안락동 안락로 99-5에 월성 박씨(月城朴氏) 화전재(花田齋)가 있습니다.

 

그 입구에서 첫번째 정문까지 조금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입구에 가니 보현문(寶峴門)이라 적힌 정문이 보이는군요. 이 정문의 '보현(寶峴)'이란 글자는 이 지역의 옛 지명인 화현(花峴) 보두곡(寶豆谷)에서 각각 '현()'과 '보(寶)'라는 글자를 따와 지었다고 합니다.

역시나 다른 재실처럼 여기도 굳게 잠겨 있었습니다. 다른 곳보다 더 경계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에 흩어져 있던 월성 박씨의 조상 묘 50기를 이곳에 모으면서 지은 이 재실은 근처 선산의 지명 꽃밭등[花田嶝]에서 따와 '화전(花田)'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이곳은 음력 9월 20일에 후손들이 모여 제사를 지낸다고 합니다.

화전재 (출처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대략적인 모습은 이와 같습니다.

 

2. 애국지사월성박공임갑기적비(愛國志士月城朴公壬甲紀績碑)

애국지사 월성박공임갑 기적비 (출처 : busanmf)

이 화전재 내에 애국지사월성박공임갑기적비(愛國志士月城朴公壬甲紀績碑)란 비석이 있습니다.

'애국지사(愛國志士)였던 월성 박씨 박임갑(朴壬甲, 1902~1990)이 쌓은(績) 업적을 기록(紀)한 비(碑)'란 뜻이죠.

높이 2.5m, 폭 0.6m의 이 비는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인 박임갑(1902∼1990)을 기리는 비석입니다.

박임갑 사진 (출처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1919년 3월 13일 오후 2시, 그는 동래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중이었는데, 그날 열린 동래군 동래읍 장날을 기하여 엄진영, 고영건, 김귀룡 등이 주도한 독립만세 시위운동에 함께 참가합니다. 같은 학교 학생 수백명과 장터에 모인 군중을 규합하여 태극기를 높이 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를 이어가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그해 4월 30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형을 언도받고 부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던 분이죠.

 

이후 정미소를 경영하거나, 모교 동래고등보통학교에서 수학 교사로도 있었으며, 경성고등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해 방적을 전공하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는 양산산업조합에 취업했고, 해방 후엔 한국독립당 양산지부장으로 활동하기도 했죠.

 

그가 사망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92년,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그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습니다.

그리고 1994년, 월성 박씨 동래 문중은 그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이 화전재 내에 비석을 세웠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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