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의 취객을 구하려다 숨진 그를 기리는 내성고 앞 이수현 의행 기념비
본문 바로가기

어원과 표로 보는 역사 시리즈/어원과 표로 보는 한국사, 한국문화

타국의 취객을 구하려다 숨진 그를 기리는 내성고 앞 이수현 의행 기념비

728x90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곡4동의 내성고등학교 입구로 가는 길목에 기념비 하나가 있습니다.

위치는 오른쪽과 같으며, 기념비 입구엔 이렇게 잘 정리된 나무와 돌계단이 있습니다.

올라가면 '이수현 의행(義行) 기념비'와 주변의 의자같은 조형물이 보입니다.

기념비 앞면에는 그를 기리는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기념비 앞면
아름다운 청년이여 영원히 기억되리라
장하고 의롭다. 그대 불꽃보다 더 뜨거운 젊음 현해탄
건너 이국 땅에서 온몸으로 타올라 영원히 꺼지지
않는 인간애의 횃불이 되다.
순수한 그 용기 살신성인의 이름으로 만인의 가슴속에
살아 있으매 진정 갸륵하고 자랑스럽다.
여기 그대가 청운의 꿈을 기르던 윤산의 길목에
숭고한 희생정신 아로새겨 널리 전하고자 유족과
내성고 동문 및 교육가족의 뜻을 모아 기념비를
세우노니 그 의기 길이길이 남아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리라.
무언의 교훈이 되어 참된 사람의 길을
인도하리라.

2001년 10월 6일
내성고등학교
내성고등학교 총동창회
 義人 이수현님은 일본 도쿄에 있는 일본어학교 아카몬카이에 유학중
2001년 1월 26일 오후7시15분경 신오쿠보 전철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출하려고 뛰어들었다가 달려오던 전동차를
피하지 못하고 안타깝게 숨졌다.
이웃은 아랑곳없이 나만의 안락과 이익을 추구하려는 사람이 많은
이 세상에 온몸을 던진 그의 의로운 행동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한
인간애의 귀감이며 혼탁한 사회를 일깨우는 경종이다. 순간에서
영원으로 승화한 그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통하여 우리는 새로이
양심의 눈을 뜨고 참다운 용기가 무언인지 알 수 있다.
義人 이수현님은 스물 일곱 꽃다운 나이에 숨졌으나 화산처럼
뜨거운 가슴으로 배움에 열중하고, 예술을 사랑했으며, 끈기와
의지로 미래를 개척하던 불굴의 청년이었다. 남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성품은 타고난 천성이었다.
더불어 사는 것이 참된 인간의 도리라는 신념으로
일거에 한국과 일본열도를 감동케한 그는
이곳 내성고를 나와 고려대에 진학하여
한일 교류의 가교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일본에 건너가 수학 중이었다.
아무나 따를 수 없는 그의 의행을 기려
우리 정부에서는 국민훈장 석류장을,
일본에서는 목배훈장을 추서하였다.

의인 이수현 (출처 : 세계일보)

2001년 1월 26일 금요일 오후 7시 15분경, 일본 도쿄도 신주쿠구의 신오쿠보역(新大久保駅)에서 한 취객이 비틀거리다 선로에 떨어집니다. 그 때 한 일본인 사진작과와 한국인 유학생이 철로에 뛰어들어 그 취객을 끌어 올리려 했으나....

결국 빠른 속도로 진입하던 열차에 부딪혀 취객을 포함한 셋 모두 사망하고 맙니다...

기념비의 뒷면에는 그가 걸어온 길과 기념비 건립 위원의 명단이 적혀 있습니다.

기념비 뒷면
 義人 이수현의 약력 이수현 義行 기념비 건립위원
1974.7.13. 울산광역시 우정동에서  부 이성대씨와 
                     모 신윤찬씨의 장남으로 출생
1987.2.20. 낙민초등학교 졸업
1990.2.14. 동래중학교 졸업
1993.2.11.  내성고등학교 졸업
1993.3.5.    고려대학교 무역학과 입학
2001.1.26.  일본도쿄에서  義死 일본 정부의 목배훈장 받음
2001.1.30. 우리 정부에서 의사자 증서 제106호
2001.2.24. 고려대학교 무역학과 명예 졸업
2001.2.27. 국민훈장 석류장 받음

내성고등학교장 한경동
내성고등학교 총동창회장 정성원
내성고등학교 학교운영위원장 김문곤
비문은 한경동이 짓고
비제는 허경무가 썼으며
조상철이 제작하였다.

의인 이수현을 기리는 이 비석은 그가 졸업한 내성고등학교의 입구에 서서 그 이야기를 간직하고 기념하고 있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