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동래구 명륜동에 동래교회가 있습니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소속으로, 정식 명칭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동래교회'라고 하네요. 교회에 대해선 잘 모르니 이런 표면적인 이야기 밖에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앞에 나무들이 심어져 있는 곳엔 기념비 2기가 있습니다.
성산(星山) 배경수 목사 순교자 추모기념비 (Memorial Monument of Bae KyungSo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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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8.20.-1945.5.13 | 목사님의 순교 70주년을 기리며 숭고한 삶과 신앙을 기억하며.... Commemorating the 70th anniversary of the martyrdom of Elder Bae KyungSoo who lived a noble life of faithful service... |
2015.6.13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동래교회 Seventh-day Adventist DongNae Church |
용호교회에 따르면, 한의사였던 배경수 목사는 평양에서 장로교회 계통의 숭실신학교를 졸업하고 전라도 지역에서 순회목사를 하다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문서전도인 한효선씨를 만나 '영원한 복음'을 받아들이고 김항모 목사에게 침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후, 1923년에 부산 동래에 와서 2년간 문서전도를 하며 교회를 도왔고, 이후에 전라남도 광양에서 목회를 하다가 1933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에서 4곳에 교회를 개척하며 일본에서 정규 목회자로 채용되었다고 하네요.
태평양 전쟁(1941~1945)이 치열했던 1943년 치열했을 때, 재림신앙을 믿는다는 이유로 성결교회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문을 닫게 되었으며, 이 때 42명의 재림교인들이 체포되었는데, 배경수 목사도 그들 가운데 한 명이었답니다.
그는 옥중 고문으로 4명이 사망(교회의 표현을 빌리면 4명의 순교자가 나옴)했을 정도로 혹독한 고문을 겨우겨우 버티고 1944년 8월에 감옥에서 내보내집니다. 이후 부산 동래로 돌아온 배경수 목사는 1945년 5월 23일 고문의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영원한 잠에 빠지게 되었다고 하네요.
한국선교 첫발지 기념비 (A Memorial of the First Step to Korean Miss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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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조 옹 (H. J. SON) |
구니야히데 목사 (HIDE. KOONIYA) |
스미스 선교사 (W. R. SMITH) |
도착일 : 1904.6.15. | 도착일 : 1904.8.4. | 도착일 : 1905.10.20. |
용호교회의 설명에 따르면, 1904년에 이민 길에 올랐던 이응현과 손흥조(孫興祚)는 그 해 6월 11일, 쿠니야 히데(国谷 秀) 전도사의 주도로 일본 고베(神戸)의 누노비키 폭포(布引の滝)에서 침례를 받은 이응현은 하와이로 떠나고, 손흥조는 한국으로 돌아와 6월 15일 동래에 발을 디뎠습니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30여명의 신자들을 모으며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를 세웠죠.
그가 귀국하는 선실 안에서 하와이에서 귀국하는 임형주(林衡柱, 이후 임기반(林基盤))을 만나 안식일 기별을 전했다고 하네요. 임기반은 진남포로 올라가 30여 명의 안식일 준수자들을 모아놓고 쿠니야 히데 목사를 초청했다. 쿠니야 히데 목사는 진남포로 가는 길에 8월 4일 부산 동래를 방문하여 부산에 교회를 세운 손흥조씨를 만났습니다.
이후 1905년 10월 20일, 스미스(Smith,W.R.) 목사가 초대 선교사로 부임하여 남포에서 평안남도 순안으로 선교본부를 옮겨 정하고, 본격적인 교회 사업 조직에 착수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계기로 한반도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들어서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산 동래교회가 설립된 지 110년이 된 2015년 10월, 이 교회 앞에는 미국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한국선교 첫발지 기념 110주년과, 배경수 목사 순교 70주년을 맞아 기념비 제막식이 열렸습니다.
한 교회가 110년이나 되었다는 것. 그건 그 교회와 종파 입장에서 기념할 만한 일인 것 같습니다.
2023년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선 설립 118주년이 되었겠네요. 지나가다 슬쩍 봤는데 이런 종교사가 숨겨져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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