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내주축성비는 이쪽 인근에 있었다! 내주축성비 복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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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내주축성비는 이쪽 인근에 있었다! 내주축성비 복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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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읍성 남문터에서 부산동래경찰서쪽으로 길을 건너와 일호주차장 바로 왼편, 성완세띠앙 뒷편에 큰 비석 하나가 있습니다. 만약 동래읍성 북문쪽을 방문한 적이 있다면, 익숙한 크기와 모양의 비석일겁니다.

바로 내주축성비입니다. 내주(萊州, 동래부)에서 축성(築城)한 것을 기념하는 내주축성비(萊州築城碑)이죠.

내주축성비

부산광역시 지정 기념물 제16호
이 비문은 1731년(영조 7)에 동래부사 정언섭(鄭彦燮)이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동래읍성을 대대적으로 수축한 사실을 기념하기 위하여 1735년에 건립하였다.
비명에 의하면, 읍성은 둘레가 약 1.4km, 높이가 3.9m였다. 1731년 1월에 성터를 측량하고, 경상도 65개 군에서 52,000명의 인원을 동원하여 연인원 417,050명, 쌀 4,585석, 베 1,552필, 돈 13,454냥으로 4월에 성벽을 쌓았다. 
이어 5월에 성문, 7월에 문루를 완공하였다고 한다. 이 때 완성된 성은 둘레 약 3.8km, 높이 5.1m였다.

비문의 앞면에는 축성에 관한 사싷을 20행으로 기록하고, 뒷면에는 축성에 종사한 임원의 명단을 새겨 놓았다.
비의 높이는 422cm, 넓이(폭)는 108cm의 큰 비이다.
비두(碑頭)는 한 쌍의 이수(螭首)가 여의주를 물고 있으며, 비대(碑臺)에는 연꽃무늬가 조각되어 있는데, 소박하다.
비문은 황산도 찰방(察訪) 김광악(金光岳)이 짓고, 송광제(宋光濟)가 썼으며, 전자(篆字)는 현풍현감 유우기(兪宇基)의 글씨이다.
이 비석은 동래읍성 연구의 정확한 자료가 되며, 조선 후기 축성사(築城史)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본래 이 비는 동래읍성 남문 밖에 세워졌는데, 1930년경에 금강공원 내로 옮겨졌다가 2012년 10월 동래읍성지 북문 안쪽으로 다시 옮겨졌다.

이곳의 내주축성비는 성완세띠앙 신축공사를 계기로 원래 내주충성비가 있었던 인근 지역인 이곳에 지역주민의 역사의식을 고취하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역사교육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2005년 4월 내주축성비와 같은 모양과 크기로 복제·제작하여 설치한 것이다.

1731년부터 1735년까지 16세기 임진왜란으로 인해 폐허가 된 동래읍성을 새로 지었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지금 비석 복제품이 있던 자리에 내주축성비를 세웠습니다.

 

그 위상에 걸맞게 처음에는 신축 동래읍성 남문 앞에 세워져 있었지만, 일제강점기에 시가지 정비와 도로 확장 때문에 이섭교비와 함께 금강공원에 옮겨져 보존되었다가, 2012년, 효율적 보존 관리와 일제 잔재 청산을 위해 원래 있던 위치가 아닌 동래읍성 북문 앞으로 이전 복원했다고 하네요.

 

그러나 2005년 4월, 역사적 중요성을 따져 성완세띠앙 신축공사를 계기로 원래 내주축성비가 있던 곳에서 꽤 가까운 곳에 복제품을 만들어 세워둔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원래 위치에 복원할 수 있는 것들은 복원하는 것도 교육적으로 좋다고 생각해서 좋았습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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