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키예프 루스(Ки́евская Русь)의 명칭
교회 슬라브어 | рѹсь (루스) рѹсьскаѧ землѧ (루스의 땅) |
그리스어 | Ῥωσία (로시) |
라틴어 | Rossia (로시아) Russia (루시아) |
루테니아어 | Ruscia (루씨아) Ruzzia (루찌아) |
고대 노르드어 | Garðar (가르바르) -> Garðaríki (가르바리키 : 가르바르국) |
고대 노르드어로 이들을 처음엔 '울타리, 요새, 뜰, 농장, 마을, 궁정'이란 뜻의 가르블(garðr)에서 따온 가르바르(Garðar)에서 유래했는데, 현대 러시아어에서 '도시'를 뜻하는 고라트(го́род)와 그 유래가 같다고 여겨진다. 이에 따르면 가르바르(Garðar)는 '요새를 짓고 사는 도시 사람들'이란 뜻이 된다. 이후엔 '~의 나라'라는 뜻의 -ki [-키]가 붙어 '도시민의 나라(Garðaríki)'라고 불렀다.
한편 그들은 스스로를 로시(рѹсь)라고 불렀는데, 그 유래에 대해 명확히 밝혀진 것은 없다.
2. 키예프 루스(Ки́евская Русь) 약사
키예프 루스(Ки́евская Русь)는 9세기에 류리크 왕조(Рю́риковичи)의 권력 아래 동슬라브족과 핀우그리아족이 연합해 북동유럽 지역에 형성된 중세국가다.
전성기에 키예프 루스는 서쪽의 비스와 강(Wisła) 지류에서 동쪽의 오카 강(Ока́)과 볼가 강(Во́лга)까지, 복쪽의 백해(Бе́лое мо́ре)에서 남쪽의 흑해(Чёрное мо́ре) 윗부분까지의 영토를 차지했다고 한다.
12세기 중반엔 봉건적 분열(feudal fragmentation) 상태에 들어갔고, 실제로 류리크 왕조의 여러 분계가 각각 통치권을 나눠 여러 나라로 분열되었다.
거기다 몽골의 침입(1223, 1237~1241)까지 일어나며 키예프 공국은 정치적으로 힘을 완전히 잃게 되었고, 단순히 민족문화적인 의미에서의 키예프 루스만이 남아 이후 슬라브 민족들의 주도로 이뤄진 영토의 통일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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