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광역 행정구역 도도부현 시리즈 1편(https://mspproject2023.tistory.com/553) 3편(https://mspproject2023.tistory.com/565) |
1. 켄(県)
1871년 8월, 일본에서는 중국의 제도와 미국, 프랑스, 프로이센에서 영향을 받아 메이지 유신 이후의 근대화 정책의 일환으로서, 에도 시대까지 사용하던 번(藩)을 폐지하고 현(県)을 두는 하이한치켄(廃藩置県, 폐번치헌)이라는 행정 개혁을 하면서 현대에 이르는 지방자치단체와 지방공공단체의 기반을 닦았다.
이후 1947년, <지방자치법>에 따라 켄(県)이 보통지방공공단체로서 새롭게 정의되며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참고로 현재 일본의 県[켄]을 영어로 prefecture라고 번역한다.
1. 보통지방공공단체는 토도후켄(都道府県) 및 시쵸손(市町村)으로 한다. - <지방자치법 제1편 총칙 제1조의3> |
이제 각 현의 이름의 유래에 대해 알아보자.
1-1. 아이치현(愛知県)
愛知[아이치]는 愛知[애지]라는 한자의 음독으로 원칙상 한국어 음독 발음인 [애지]라고 읽을 수 있겠지만, 고유 지명으로 간주해 [아이치]라고 부른다.
이 이름은 일본 고대 시가집 <만엽집(万葉集)><권2 271>에 등장하는 구절에서 유래했다.
桜田へ鶴が鳴き渡ってゆくよ。年魚市潟は潮が引いたらしい。鶴が鳴き渡ってゆくよ。
벚꽃밭(桜田)에 두루미가 울어건너가네. 아유치 호(年魚市潟)은 바닷물이 빠진 듯 하다. 학이 울어건너가네.
- 타케치노무라지쿠로히토(高市連黒人)
이 시 구절에 등장하는 아유치가타(年魚市潟)는 사쿠라타(桜田, 현 나고야시 북부)를 포함한 지역으로, 현재의 아이치현 지역 일부분이었다. '석호, 포구(하구)'를 뜻하는 潟[카타]의 앞부분 아유치(年魚市)가 바로 지명이었으며, 이 '아유치'라는 이름을 아유치(年魚市, 鮎市, 吾湯市, 阿由知) 등으로 쓰이다가 아이치(愛智, 愛知)로 바뀌면서 현재까지 이어져왔다.
오와리번 (尾張藩, 1610~1868) |
나고야현 (名古屋藩, 1868~1871) |
나고야현 (名古屋県, 1871~1872) |
아이치현 (愛知県, 1872~) |
1-2. 아오모리현(青森県)
青森[아오모리]는 '푸른 숲'이라는 뜻이다.
현재의 아오모리현 지역을 히로사키번(弘前藩, 1590'~1871)이 다스리고 있었다. 그 지역의 바닷가에 소나무가 푸른 숲이 하나 있었는데, 어부들은 그 숲을 항로의 표지로 삼았다.
오늘은 저 푸른 숲이 거의 안 보이는 곳에서 낚시를 할거라네.
그러던 중 히로사키번 제2대 번주 쓰가루 노부히라(津軽信枚, 1586~1631)가 푸른 숲이 있는 지역에 번항(藩港, 번의 항구) 개발을 명했고, 당시 어부들이 부르던 青森[아오모리]라는 이름을 그대로 따와 아오모리무라(青森村)를 설치했다. 이 이름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이곳에서 사라진 건 '푸른 숲'이라고 불렸던 그 숲이었다.
히로사키번 (弘前藩, 1590'~1871) |
히로사키현 (弘前県, 1871) |
아오모리현 (青森県, 1871~) |
1-3. 아키타현(秋田県)
秋田[아키타]는 '가을논'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진짜 이런 의미에서 온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8세기 초에 완성된 <일본서기>에 齶田[아기타], 飽田[아쿠타]라는 지명이 기록되어 있으며, 8세기 말에 완성된 <속일본기>에는 秋田村[아키타무라]라는 지명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오래전부터 그 지역을 [아키타] 혹은 그와 비슷한 발음으로 불렀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지명은 '물이 뿜어져 나오는 곳'이라는 뜻의 일본어 わいた[와이타] 혹은 あいた[아이타]에서 유래했다고도 하고, '저습지'를 뜻하는 일본어 あくた[아쿠타], 농사에 적합하지 않은 '나쁜 밭'이라는 뜻의 悪田[아쿠타]에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또, '갈대 이삭이 무성한 곳'이라는 뜻의 아이누어 あきたい[아키타이]에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쿠보타번 (久保田藩, 1602~1871) |
아키타번 (秋田藩, 1871) |
아키타현 (秋田県, 1871~) |
1-4. 이시카와현(石川県)
石川[이시카와]는 '돌내'라는 뜻이다.
이 말 그대로 이 지역에는 테도리가와(手取川)라는 강이 있는데, 이 지역은 옛부터 범람을 반복했기 때문에 강변에 돌멩이가 쌓여 있었다. 이 모습을 보고 그 지역을 돌내(石川)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카가번 (加賀藩, 1639~1869) |
카자나와번 (金沢藩, 1869~1871) |
카나자와현 (金沢県, 1871~1872) |
이시카와현 (石川県, 1872~) |
1-5. 이바라키현(茨城県)
茨城[이바라키]는 '가시나무성'이라는 뜻이다.
713년에 쓰인 <히타치노쿠니풍토기(常陸国風土記)>에 등장하는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오래전, 산사에키(山の佐伯), 들사이키(野の佐伯)라는 (선주민) 쿠즈(国栖, 속칭 이치쿠모(つちくも), 야츠카하기(やつかはぎ)이라고도 부른다)가 있었다. 평소에는 굴을 파고 그곳에 살다가, 사람이 오면 굴에 숨었다가, (사람이) 떠나면 들에 나가 놀았다. 마치 이리(狼)나 올빼미(梟)라도 되듯이, 여기저기에 숨어 있는 물건을 훔치고, 제사에 초대되어도 모습을 감추고, 풍습이 (야마토인과) 전혀 달랐다.
어느날, 오오오미(大臣) 일족인 쿠로사카노미코토(黒坂命)가 들에 사냥을 나가 미리 그들이 사는 구멍에 가시나무(茨) 덤불을 두고, 돌연히, 기병(騎兵)을 쏘아 그들을 몰아세웠다. 사에키들은 당황하며 구멍으로 도망쳐 돌아왔으나, 설치되어 있던 가시나무덤불이 온몸에 박혀 모두 죽고 말았다. 이 때 설치된 가시나무(茨)로부터, 가시나무성(茨城, 우바라키)라는 이름이 되었다. 속담으로 '물에 빠진 가시나무의 나라(水泳る茨城の国)'라고도 한다.
다른 이야기에서는, 산의 사에키, 들의 사이키는 산과 들의 적들을 거느리고 스스로 우두머리가 되어, 온나라를 훔치거나 죽이려고 돌아나니고 있었다. 이들과 싸우기 위해, 쿠로사카노미코토는 가시나무(茨)를 써서 성(城)을 쌓았다. (그래서) 그 땅의 이름을 가시나무성(茨城, 우바라키)라고 부른다고 한다.
- <히타치노쿠니풍토기>
이 전설에 따르면 '이바라키(가시나무성)'라는 이름은 야마토인 쿠로사카노미코토는 현재의 이바라키 지역의 원주민인 쿠즈(国栖)를 몰아내기 위해 준비한 성책 혹은 함정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추측된다.
이게 사실이든 아니든 당시에 이 지역을 [우바라키]와 비슷한 발음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19세기경까지는 [우바라키]라고 부르다가 현재에 와서는 [이바라키]라고 부르고 있다.
히타치 지현사 (常陸知県事, 1868~1869) |
와카모리현 (若森県, 1869~1871) |
니이하리현 (新治県, 1871) |
이바라키현 (茨城県, 1871~) |
1-6. 이와테현(岩手県)
岩手[이와테]는 '바윗손'이라는 뜻이다. 비슷한 이름의 식물 바위손(Selaginella involvens)은 일본어로 岩檜葉[이와히바]라고 부르며, 또 다른 비슷한 이름의 따개비류 바위손(Capitulum mitella)은 일본어로 亀の手[카메노테]라고 부르니 혼동하지 않길 바란다.
오래전 이곳에는 나찰귀가 있었다. 이 오니는 마을 사람들과 지나가는 여행자들을 괴롭혔고, 이에 마을 사람들은 미쯔이시노카미(三ツ石の神)라는 신에게 도깨비를 없애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미쯔이시노카미는 곧 나찰귀를 3개의 큰 돌에 묶었다. 놀란 나찰귀는 항복하여 다시는 못된 짓을 하지 않고, 이 땅에 오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돌에 손증거(手形)를 남기고 난쇼우산(南昌山, 남창산) 너머로 달아났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이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미츠이시 신사(三ツ石神社)를 짓게 된다. 이에 이 지역은 '바위에 새긴 손증거'라는 뜻의 岩手[이와테]라고 불리게 되었다. 한편, 이렇게 오니를 내쫓은 마을 사람들을 기뻐서 '산사산사'하면서 춤을 추며 놀았는데 이것이 모리오카산사오도리(盛岡さんさ踊り)의 유래가 되었다.
이 마을은 이 사건이 있은 뒤부터 한자로 岩手[암수]라고 적어왔지만 간혹 磐手[반수]라고 쓰기도 했다.
또, 황제는 사냥을 아주 좋아하셨다. 무츠노쿠니(陸奥国) 이와테군(磐手郡)에서 진상된 매가 세상 어느 때보다도 현명했기 때문에 더없이 아끼고 기르셨다. (따라서 그 매의) 이름을 이와테(磐手)라고 지었다. 매사냥의 길에 대한 소양이 있어서 매를 맡아 돌보는 역할을 맡은 다이나곤(大納言, 대납언)에게 맡겨져 있었다.(...)
궁중에 와서 기른 매가 없어졌다는 것을 아뢰니, 황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못들으셨나 싶어 다시 한번 아뢰니 황제는 깊게 생각하다가 말했다.
'이와테를 입 밖에 내지 않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입 밖에 내는 것보다 더 괴롭다'
- <야마토모노가타리(大和物語)>
모리오카번 (盛岡藩, 1600~1870) |
모리오카현 (盛岡県, 1870~1872) |
이와테현 (岩手県, 1872~) |
1-7. 에히메현(愛媛県)
愛媛[에히메]에 대한 직역은 없다. 媛[히메]는 '여인, 공주, 유녀'로 번역할 수 있지만, 愛[에]는 愛[아이]의 음독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자와 그 발음 자체만 보면 '사랑하는 여인(공주)'라는 뜻이겠지만, 이 뜻에서 현의 명칭이 유래한 것은 아니다.
이요노쿠니(伊予ノ国)를 에히메(愛比売)라고 이른다.
- 고사기
이자나기노카미(伊耶那岐神)와 이자나미노카미(伊耶那美神)가 낳은 오오야시마구니(大八島国) 중 2번째 섬인 이요노후타나시마(伊豫之二名島)는 접하는 면이 4개였는데, 그 중 이요노쿠니(伊予国)를 에히메(愛比売)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이름은 그 나라를 의인화한 여신의 이름이기도 하다.
마츠야마현 (松山県, 1871) |
이시즈치현 (石鉄県, 1871~1873) |
애히메현 (愛媛県, 1873~) |
우와지마현 (宇和島県, 1871~1872) |
카미야마현 (神山県, 1872~18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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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가와현 (香川県, 1875~1876) |
1-8. 오이타현(大分県)
大分[오-이타] 또한 직역할 수가 없다. 分[분]은 음독, 훈독을 포함한 어떠한 방법으로도 [이타]라고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 지명의 유래는 8세기 초기에 쓰여진 <분고노쿠니풍토기(豊後国風土記)>의 제12대 덴노 게이코 텐노(景行天皇, -13~130)와 관련된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게이코 텐노(景行天皇, -13~130)가 이 곳에 왔을 때 감탄했다.
'이 군(郡)은 광대하구나. 부디 오오키타노쿠니(碩田国)라고 부르도록 하라'
- <분고노쿠니풍토기(豊後国風土記)>
'크다'라는 뜻의 碩[오오키-]에 '논'을 뜻하는 田[타]가 합쳐져 '큰논'이라는 뜻의 碩田[오-키타]라고 부르다가 大分[오-이타]라고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공식 발표에 따르면 '많은 논'이라는 뜻의 多き田[오-키다]가 현재의 현명의 유래라고 한다. 어찌되었든 이 지역은 '크거나 많은 논'과 관련되어 있음은 틀림없다. 그런데 왜 지금은 이전의 한자를 쓰지 않고 '크게 나누다'라는 뜻의 大分[대분]이라는 한자를 썼을까?
아즈치모모야마시대(1573~1603)와 에도시대(1603~1868) 초기를 지나면서 이 지역에 있던 8번(八藩)이 분립하게 되었다. 그렇게 여러 번으로 나누어져 있다가 대일본제국(1868~1947)에 들어오면서 부번현3치제(府藩県三治制), 폐번치헌 등으로 인해 다시 크게(大) 나뉘었던(分) 현들을 합치게 되었고, 이에 따라 大分[대분]이라는 글자를 쓰게 되었다.
키츠키번 (杵築藩, 1632~1871) |
키츠키현 (杵築県, 1871) |
오이타현 (大分県, 1871~) |
히지번 (日出藩, 1600~1871) |
히지현 (日出県, 18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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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나이번 (府内藩, 1601~1871) |
후나이현 (府内県, 18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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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키번 (臼杵藩, 1600~1871) |
우스키현 (臼杵県, 18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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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타현(日田県, 1868~1871) | ||
모리번(森藩, 1601~1871) | 모리현(森県, 1871) | |
오카번(岡藩, 1594~1871) | 오카현(岡県, 1871) | |
사이키번(佐伯藩, 1601~1871) | 사이키현(佐伯県, 1871) |
1-9. 오카야마현(岡山県)
오카야마(岡山)는 '언덕산'이라는 뜻이다.
이 뜻에 걸맞게 해당 지역에는 큰 언덕들이 있었다.
아사히가와 강(旭川) 하구에는 여러 개의 강들이 분기하며 뻗어나가고 있었는데, 그 중 오오즈하라(大洲原)라고 불리는 삼각주가 만들어졌다. 이 삼각주에는 3개의 붙어있는 큰 언덕이 있었는데, 각각 시바오카(柴岡)라고도 불린 '언덕산'이라는 뜻의 중앙부의 오카야마(岡山), 서부의 이시야마(石山), 텐마야마(天満山)라고도 불린 북서부의 텐진야마(天神山)가 있었다. 현의 이름은 이 지명에서 따온 것이다.
이후 14세기 중후반에 이 오카야마에 같은 지명을 따 우에카미씨(上神氏)가 성을 짓게 되었는데, 그 성이 오카야마성(岡山城)이다.
오카야마번 (岡山藩, 1603~1871) |
오카야마현 (岡山県, 1871~) |
오다현 (小田県, 1871~18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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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쿠죠우현 (北条県, 1871~1876) |
1-10. 오키나와현(沖縄県)
오키나와(沖縄)는 '먼바닷줄'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는 직접적인 어원은 아니다.
8세기에 아코나와지마(阿児奈波)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으며, 13세기에도 오키나와(おきなは)라고 부른 기록이 있다. 16세기에는 오키나와(おきなわ)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18세기에 들어서 아테지로 沖縄[충승]이라는 한자를 사용해 오키나와라고 읽게 되었다. 이 글(https://mspproject2023.tistory.com/67)도 참고하길 바란다.
おきなは[오키나와]는 '먼바다의 어장', '먼 장소'라는 뜻으로 추측될 뿐이다.
류큐왕국 (1429~1872) |
류큐번 (1872~1879) |
류큐현 (1879~1945) |
류큐열도 미국 군정부 (1945~1950) |
류큐열도 미국민정부 (1950~1972) |
오키나와현 (19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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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류큐 자순위원회 (1950~1951) |
류큐 임시중앙정부 (1951~1952) |
류큐 정부 (1952~1972) |
1-11. 카가와현(가가와현, 香川県)
카가와(香川)는 '향내(향이 나는 내)'라는 뜻이다.
1828년에 발표된 <전찬사(全讃史)>에서는 현명이 산에 있는 오래된 자작나무의 향기가 냇물에 배여 좋은 향기가 났다는 설화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카가와군(香川郡)은, 이 군의 오쿠야마(奥山)에 카바가와(樺川, 樺河)라는 마을(郷, 사토)가 있다.
아주 오래전에 자작나무(樺, 카바)라는 오래된 나무가 있어 향긋한 향기가 났다. 이 나무 아래에서부터 나오는 향기가 내(川)에 흘러, 군의 중앙을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그래서) 군내에 좋은 향기가 널리 떠돌고 있었다. 따라서 카가와군(香川郡)이라고한다.
- <전찬사(全讃史)>
1970년에 발간된 <시오노에정사(塩江町史)>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시오노에지구(塩江地区)의 카바가와(椛川)는 안쪽에 면직물에 오르는 타니구치촌(谷口付) 부근은 '오이다시(おいだし)'라고 부른다. 그곳에는 자작나무(樺の木, 카바노키)가 몇그루 자생하고 있었다. 그 꽃의 향기는 (그 향기가) 불어올 때에, 강의 흐름을 타고 가는 곳마다 향기로웠고, 사람들은 이로 인해 계절이 반복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강을 코우토우가와(香東川), 그 강과 관계있는 지역을 카가와현(香川県) 카가와군(香川郡)이라고 이름짓고, (자작나무)꽃이 자라던 곳을 카바가와(椛川)라고 부르며 칭송하게 되었다. 그러나 60년전쯤에는 이미 그 나무는 없었다고 한다.
- <시오노에정사(塩江町史)>
타카마츠현 (高松県, 1871) |
카가와현 (香川県, 1871~1873) |
묘우도우현 (名東県, 1871~1876) |
카가와현 (香川県, 1875~1876) |
에히메현 (愛媛県, 1873~) |
카가와현 (香川県, 1888~) |
마루가메현 (丸亀県, 1871) |
1-12. 카고시마현(가고시마현, 鹿児島県)
鹿児島[카고시마]에 대한 직역은 없다. 鹿[카]는 훈독으로 '사슴'을 뜻하는 しか[시카]의 옛말이며, 児[코]는 음독으로 '아이'라는 뜻이다. 한자와 그 발음 자체만 보면 '사슴아이섬'이라는 뜻이겠지만, 이 뜻에서 현의 명칭이 유래한 것은 아니다.
진무 덴노의 할아버지인 호노오리노미코토(火折尊)가 와타쓰미(海神宮)에 갈 때 탄 배가 가고야마(鹿児山)에서 만들어졌다는 설이나, '신이 깃든 섬'이라는 뜻의 神籠もる島[카미코모루시마]에서 유래했다는 설, '벼랑섬'이라는 뜻의 崖島[카케시마]에서 유래했다는 설, 많은 뱃사람들이 살았기 때문에 '뱃사람'을 뜻하는 水夫[카코]에서 유래했다는 설 등이 있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신사가 바로 카고시마 신궁(鹿児島神宮)인데, 이곳에서 모시는 주신이 진무 덴노의 할아버지인 호노오리노미코토(火折尊)와 진무덴노의 할머니인 토요타마히메(豊玉姫)로, 일본 덴노 가문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장소다.
사쓰마번 (薩摩藩, 1600~1869) |
가고시마번 (鹿児島藩, 1869~1871) |
가고시마현 (鹿児島県, 1871) |
1-13. 카나가와현(가나가와현, 神奈川県)
神奈川[카나가와] 또한 직역하기 힘들다. 神[카]와 川[카와]는 음독이라고 볼 수 있고, 奈[나]는 음독이다.
현재의 카나가와현 지역에 있던 슈큐바(宿場, 역참) 카나가와슈쿠(神奈川宿)의 나카노정(仲之町)과 니시노정(西之町) 사이에 흐르던 300m 길이의 작은 내(小川)가 있었는데, 그 강의 수원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윗부분(수원)을 알 수 없는 내'라는 뜻의 카미나시가와(上無川)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어느새 발음이 일부 탈락되어 かな川[카나가와]라고 불리게 되었다.
일본신화에 등장하는 영웅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日本武尊)가 동방으로 정벌을 나갈 때 카미나시가와(上無川)에서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때 숙모 야마토히메노미코토(倭姫命) 받은 옥검(宝剣)이 수면에 비쳐, 금빛으로 빛났기 때문에 이 땅을 카나가와(金川)라고 지었다고 한다.
이후,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朝)가 그 땅을 찾았을 때, 카나가와(金川)의 풍광을 칭송하며 '금은 서쪽을 관장한다. 서쪽은 위쪽에 해당하며, 황성의 방향이기도 하다. 이곳은 신(神)이 크게 가리키는(奈) 땅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신이 크게 가리키는 내'라는 뜻의 카나가와(神奈川)로 이름을 고쳤다고 한다.
위와 같은 전설과 별개로 이 지역을 카나가와(神奈河, 神名川, かな川) 혹은 카노가와(狩野川, かの川)라고 기록한 책이 많이 있었다.
가나가와 봉행소 (神奈川奉行所, 1859~1868) |
요코하마 재판소 (横浜裁判所, 1868) |
카나가와 재판소 (神奈川裁判所, 1868) |
카나가와부 (神奈川府, 1868) |
카나가와현 (神奈川県, 1868~) |
1-14. 기후현(岐阜県)
岐阜[기후]는 愛知[기부]라는 한자의 음독으로 원칙상 한국어 음독 발음인 [기부]라고 읽을 수 있겠지만, 고유 지명으로 간주해 [기후]라고 부른다.
1553년, 임제종 묘우신지파(妙心寺派)의 승려 타쿠겐소우온(沢彦宗恩, ~1587)은 이세이슈우지(政秀寺, 정수사)를 건립했다. 어느날, 센고쿠시대(1467~1590)를 종식시켰다고 평가받는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1534~1582)는 현재의 기후 지역의 이름을 짓기로 결정했고, 이 때 승려가 타쿠켄소우온이 글 하나를 올렸다.
기산(岐山)은 주 태왕이 정착한 곳이며, 주 문왕이 덕이 넘쳐 그에 감복한 봉황이 울었던 곳이자 주를 세운 곳입니다. 그리고 곡부(曲阜)는 학문의 조상이신 공자(孔子)가 태어난 곳이자 유학의 발상지입니다. 여기서 기산의 기(岐),곡부의 후(阜)를 합쳐 이 지역을 '태평하고 학문이 발달한 곳'이라는 뜻으로 기후(岐阜)라고 부르는 안을 올립니다.
17세기 초 완성된 신쵸우코우기(信長公記, 신장공기)>에서는 '오다 노부나가가 미노노쿠니(美濃国)를 공격할 때(1567년), 이나바야마(稲葉山)의 성 아래에 있 이노구치(井口)를 기후(岐阜)로 고쳤다'고 한다.
이 외에도 1679년에 발표된 <아즈치창업록(安土創業録)>, 1747년 발표된 <농양지략(濃陽志略)>에서도 오다 노부나가의 명령으로 지명이 岐阜[기후]라고 바뀌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1885년 발표된 <기후지략(岐阜志略)>에서도 <아즈치창업록(安土創業録)>를 인용하며 오다 노부나가가 처음 기후(岐阜)라고 이름지었다고 전한다.
그 외, <토키츠구향기(言継卿記)>, <호소카와양국기(細川両家記)>, <타몬인일기(多聞院日記>, <신장공기(信長公記)> 등에서 1568년경 이후에 이 지명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이 이름이 처음 나타난 것이 이 시기경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한편, 1915년에 발간된 <기후시안나이(岐阜市案内, 기후시안내)>에서는 기후라는 이름이 오다 노부나가가 쓴 것은 아니라고 반론한다.
일설에는, 옛부터, (기후현을) 키후(岐府), 키요우(岐陽), 키잔(岐山), 키가(岐下) 등으로 썼으며, 메이오우(明応, 1492~1501)-에이쇼우(永正, 1504~1521)경의 옛 기록에 기후(岐阜)라는 것이 보인다면, (오다) 노부나가의 명령으로 지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 <기후시안내(岐阜市案内)>
이렇게 강하게 부정하지는 않지만, 오다 노부나가가 원래 있던 지명을 수정했다는 의견도 있다.
이나바야마(稲葉山)를 기잔(岐山), 마을을 기후(岐阜)라고 부르고, (오다) 노부나가가 기후(岐阜), 츄우세츠(中節), 이노구치(井之口), 이마이즈미(今泉), 쿠와타(桑田)를 병합하여 기후(岐府)라고 불렀다.
- <미노노쿠니제구기(美濃国諸旧記)>
논란이 있지만 岐阜[기후]라는 지명은 센고쿠시대를 누비던 무사 오다 노부가나와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노무라번 (野村藩, 1600~1871) |
노무라현 (野村県, 1871) |
기후현 (岐阜県, 18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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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토미번 (高富藩, 1709~1871) |
타카토미현 (高富県, 18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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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죠우번 (郡上藩, 1600~1871) |
쿠죠우현 (郡上県, 18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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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무라번 (岩村藩, 1601~1871) |
이와무라현 (岩村県, 18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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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기번 (苗木藩, 1600~1871) |
나에기현 (苗木県, 18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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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노우번 (加納藩, 1601~1871) |
카노우현 (加納県, 18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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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오번 (今尾藩, 1589~1610) |
야바세번 (矢橋藩, 1610~1616) |
산죠우번 (三条藩, 1616~1620) |
이마오령 (今尾領, 1607~1871) |
이마오번 (今尾藩, 1868~1871) |
이마오현 (今尾県, 1871) |
1-15. 쿠마모토현(구마모토현, 熊本県)
熊本[쿠마모토]는 '원래의 곰'이라는 뜻으로 번역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뜻에서 유래한 것은 아니다!
옛날에는 이 지역을 '구석지고 으슥한 중심지'이라는 뜻의 隈本[쿠마모토]라고 썼다. 이 말은 헤이안 시대의 키쿠치 노리타카(菊池則隆)에게서 유래했다고 한다. 隈本[쿠마모토]라는 말은 난보쿠쵸시대(1337~1392) 이후에 처음 문헌에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 이 隈本[쿠마모토]는 무슨 뜻일까?
시간이 지나고 카토 키요마사(加藤清正, 1562~1611)가 쿠마모토번의 번주가 되었을 때, 畏[외]라는 글자가 '두려워하다, 황공하여 삼가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장수가 거처하는 성의 이름으로는 걸맞지 않다고 판단해 발음이 같은 熊[쿠마]를 써서 熊本[쿠마모토]라고 부르게 되었다.
먼저, '저지대와 고지대가 얽혀 있는 굴곡진 곳'을 くま[쿠마]라고 하고, もと[모토]는 '중심지'를 뜻한다. 즉, '굴곡진 지역의 중심지'라는 뜻의 曲本[쿠마모토]가 유래했다고 하며, 이 뜻에서 확장되어 시라카와(白川)로 비정되는 '굽이져서 흐르는 구불구불한 내'라는 뜻의 曲本[쿠마모토]에서유래했다고도 한다.
또, '벼랑 아래'라는 뜻의 くま[쿠마]와 '습지'라는 뜻의 むた[무타]가 합쳐져 '벼랑 아래의 습지'라는 뜻의 くまむた[쿠마무타]에서 발음이 바뀌었다고도 한다.
隈[쿠마]라는 글자 자체에 '굴곡지고 굽이지다'라는 뜻이 있었기 때문에, 앞에 말한 설들이 유력하지만, くまもと[쿠마모토]라는 발음에 隈本[외본]이라는 글자를 붙였다면 이 한자 지명은 처음부터 아테지일 수도 있다.
참고로 아테지란 뜻에 상관없이 한자의 발음만 빌려와 쓰는 한자 표기법을 말한다.
다른 한편, '고구려(-37~668)'를 뜻하는 こま[코마]의 방언 くま[쿠마]와 '본거지'라는 뜻의 もと[모토]가 합쳐진 '고(구)려인의 본거지'라는 뜻의 高麗本[쿠마모토]에서 왔다는 민간어원설도 있다.
덧붙여, 내웅(来熊, 라이유-), 방유(訪熊
쿠마모토번 (熊本藩, 1600~1871) |
쿠마모토현 (熊本県, 1871) |
시라카와현 (白川県, 1871~1876) |
쿠마모토현 (熊本県, 18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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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토요시번 (人吉藩, 1585~1871) |
히토요시현 (人吉県, 1871) |
야츠시로현 (八代県, 1871~1873) |
시라카와현 (白川県, 1871~18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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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미오카현 (富岡県, 1868) |
아마쿠사현 (天草県, 1868) |
1-16. 군마현(群馬県)
群馬[군마]는 群くるま[쿠루마]馬[군마]라는 한자의 음독으로 원칙상 한국어 음독 발음인 [애지]라고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고유 지명으로 간주해 [군마]라고 부른다. 한국어로 표시하니 발음이 똑같아 보이지만 실제 발음은 조금 다르다.
아주 오래전에는 이 지역을 '쿠루마 고을'이라는 뜻의 くるまのこおり[쿠루마노코오리]라고 불렀다. 여기서 고을의 이름인 くるま[쿠루마]가 ぐんま[군마]로 이름이 바뀌었고 그에 맞는 한자 群馬[군마]로 적어 그 이름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하필 群馬[군마]라고 적은 이유는 한 때 이곳에 조정에 바칠 말을 키웠기 때문이라는 민간어원설이 있다.
720년에 세워진 카나이자와 비(金井沢碑)에 이미 群馬[군마]라는 글자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이미 그 전부터 이 지역을 이렇게 불렀을 가능성이 높다.
코우즈케노쿠니(上野国) 군마군(群馬郡) 시모사누노사토(下賛郷) 타카다노고자토(高田里)
- 카나이자와 비(金井沢碑)
그럼 이 群馬[군마]는 어떤 뜻에서 유래했을까?
고대에 한반도에서 건너온 외래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대륙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는 뜻의 呉人[쿠레비토]가 사는 토지라는 뜻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고대 호족 중 하나인 쿠루마모치노키미(車持君)가 살았던 곳에서 유래했다거나, '강이 굽어 흐르는 곳'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나노카이치번 (七日市藩, 1616~1871) |
나노카이치현 (七日市県, 1871) |
군마현 (群馬県, 1871~1873) |
쿠마가야현 熊谷県, 1873~1876) |
군마현 (群馬県, 1876~) |
오바타번 (小幡藩, 1617~1871) |
오바타현 (小幡県, 18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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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카번 (安中藩, 1615~1871) |
안나카현 (安中県, 18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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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마타번 (沼田藩, 1658~1871) |
누마타현 (沼田県, 18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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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바시번 (前橋藩, 1867~1871) |
마에바시현 (前橋県, 18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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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사키번 (高崎藩, 1590~1871) |
타카사키현 (高崎県, 18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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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사키번 (伊勢崎藩, 1681~1871) |
이세사키현 (伊勢崎県, 18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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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하나 대관소 (岩鼻代官所, 1868) |
이와하나현 (岩鼻県, 1868~1871) |
1-17. 코우치현(고치현, 高知県)
高知[코-치]는 高知[고지]라는 한자의 음독으로 원칙상 한국어 음독 발음인 [고지]라고 읽을 수 있겠지만, 고유 지명으로 간주해 [코-치]라고 부른다.
1603년, 토사번 초대 번주 야마우치 가즈토요(山内一豊, 1545~1605)가 오오타카사카야마성(大高坂山城)에 입성했을 때, 그 성이 카가미가와(鏡川)와 에노쿠치가와(江の口川)에 둘러싸인 땅에 있었다. 이를 안 신니죠(真如寺, 진여사) 스님 자이센(在川, 재천)에 의해 땅의 모양에서 기인해 성의 이름을 '강가운뎃산의 성'이라는 뜻의 코우치야마죠우(河中山城, 코우치야마성)으로 바뀌게 되었다.
1610년, 거듭되는 홍수로 수해를 입게 되자 토사번 2대 번주 야마우치 타다요시(山内忠義, 1592~1665)는 성의 이름에 적힌 '강가운데'라는 뜻의 코우치(河中)라는 단어를 싫어하게 되었고 즉시 이 이름 대신 다른 이름을 만들라고 지시한다. 이에 치쿠린지(竹林寺, 죽림사)의 스님 쿠우쿄유(空鏡)에 의해 코우치야마죠우(高智山城, 코우치야마성)라고 고치게 된다.
시간이 흘러 성의 이름에서 山[야마]가 빠지며 코우치죠우(高智城, 코우치성)으로 불리게 되었고, 죠우카마치(城下町, 성 주변에 발달한 도시) 또한 코우치(高知)라고 불리게 되었다.
토사번 (土佐藩, 1601~1868) |
코우치번 (高知藩, 1868~1871) |
코우치현 (高知県, 18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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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쿠시마번 (徳島藩, 1641~1871) |
토쿠시마현 (徳島県, 1871) |
묘우도우현 (名東県, 1871~1876) |
1-18. 사이타마현(埼玉県)
埼玉[사이타마]는 '곶옥' 혹은 '튀어나온 옥'이라는 뜻이지만 그 뜻에서 온 것은 아니다.
이 [사이타마]라는 이름은 일본 고대 시가집 <만엽집>에서 찾을 수 있었다.
사키타마(前玉)의 오사키늪(小崎沼)에 오리(鴨)가 날개를 다듬는다.
스스로의 꼬리에 쌓인 서리를 치우고 있겠지
-<만엽집><권9 1744>
사키타마(佐吉多万) 마루에 있는 배는 바람이 강하게 불어제쳐 밧줄이 끊어질 듯 말 듯 하네.
배의 밧줄이 끊어질지언정, 제게 하는 말은 멈추지 말아주오.
-<만엽집><권14 3380>
위의 두 시가를 통해 [사이타마]라는 지명을 8세기경에는 사키타마(前玉, 佐吉多万)라고 불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埼玉[佐伊太末]
사이타마(埼玉, 佐伊太末)
- <화명류취초><권5-국군부(国郡部) 제12-토우카이군(東海郡) 제61-무사시노쿠니(武蔵国)>
10세기에 완성된 <화명류취초(和名類聚抄)>에는 이 지명이 [사이타마]라고 불리게 된 것을 보아, 이즈음부터 [사이타마]라는 이름이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 [사이타마]라는 말은 어디서 온 것일까?
무사시노쿠니(武蔵国)의 타마군(多摩郡)에는 타마(多摩)라는 땅이 있는데, 그 지역 인근을 '타마 지역의 앞'이라는 뜻의 사키타마(前多摩, 先多摩)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이름이 무사시노쿠니 전체를 부르는 별칭이 되었다가,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사키타마는 '앞'이라는 뜻의 前[사키]와 '습지'를 뜻했던 たま[타마]가 합쳐 '습지 앞 지역'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행복을 가져오는 신의 움직임'이라는 뜻의 사키미타마(幸魂)에서 유래했다는 설 등이 있다.
참고로 이 땅은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에 나온 '타마 뉴타운'의 그 '타마'가 맞다. 자세한 내용은 이 글(https://mspproject2023.tistory.com/300)을 참고하길 바란다.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에 나오는 타마 뉴타운
고도성장을 시작한 도쿄 외곽에서는 주택 보충을 위해 농지와 산림을 개발하고 있었다. 땅을 무작정 개발하는 대신에 거주 환경이 좋은 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하려고 쇼와 42년(1967년)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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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번 (忍県, 1590~1871) |
오시현 (忍県, 1871) |
사이타마현 (埼玉県, 18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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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츠키번 (岩槻藩, 1590~1871) |
이와츠키현 (岩槻県, 18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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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지현사 (武蔵知県事, 1868~1869) |
오미야현 (大宮県, 1869) |
우라와현 (浦和県, 1869~18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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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바현 (千葉県, 18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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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마현(群馬県, 1871~1873) | 쿠마가야현 (熊谷県, 1873~1876) |
1-19. 사가현(佐賀県)
佐賀[사가]는 佐賀[좌하]라는 한자의 음독으로 원칙상 한국어 음독 발음인 [좌하]라고 읽을 수 있겠지만, 고유 지명으로 간주해 [사가]라고 부른다.
오래전, 녹나무(樟) 한 그루가 이 마을에 자라고 있었다. (그 나무의) 줄기와 가지가 빼어나고 높았다.
줄기와 잎은 번성하고 무성하며, 아침해의 그림자는 키시마군(杵島郡)의 가마가와야마(蒲川山)를 뒤덮고, 해질녘의 그림자는 야부군(養父郡)의 쿠사요코야마(草横山)를 뒤덮는다.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日本武尊)가 순행하던 때, 녹나무가 무성하고 영화로운 것을 보시고 말씀하시길, "이 나라(国)는 (영화로운 나라라는 뜻의) '사카노쿠니(栄国)'라고 가히 부를 수 있다"라 하였다. 이로 인해 (이곳을) 사카노코오리(栄郡)라고 부르게 되었다. 후에 사가군(佐嘉郡)이라고 고쳤다
- <히젠노쿠니풍토기(肥前国風土記)>
일본 신화 속 영웅인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 설화에 따르면, 그가 규슈 북부를 순행할 때, 아름답고 큰 녹나무 한 그루를 봤고, 그 나무에 감탄하며 '영화로운 나라'라는 뜻의 사카노쿠니(栄国)라고 부른 것이 현명의 유래라고 한다.
일설에 따르면, 군(郡)의 서쪽에는 내(川)가 있는데, 그 이름을 사가가와(佐嘉川)라고 했고, 은어(年魚)가 있으며, 그 수원은 군의 북쪽산에서 나와 남으로 흘러가 바다로 들어간다.
이 (내의) 상류에는 아라부루카미(荒神)가 있는데, 사람들과 왕래했으며, (사람의) 반은 죽이고 반은 살렸다. (이를 잠재우기 위해) 아가타누시(県主, 현주)의 조상 다이아라타(大荒田)가 점을 물었다. 그 때, 츠치구모(土蜘蛛)인 오오야마다노히메(大山田女)와 사야마다노히메(狭山田女) 두 여자가 말했다.
"시모다노무라(下田村)의 땅을 얻어, 사람인형과 말인형(馬形)을 만들어, 그 신에게 제사를 지내세요. (그러면) 반드시 응답과 평화가 찾아올 것입니다"
다이아라타는 즉시 그 말씀을 따랐고, 그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신이 그 제사를 흠향해서(받아서) 응답하고 평화를 주었다.
(나중에) 다이아라타가 말했다. "(이 일은) 어진 여자(賢女)들이 이룬 것과 같다"
이로 인해 나라의 이름을 사카시메(賢女)라고 정했으며,그로 인해 (군을) 사카시메군(賢女郡)라고 했다. 지금은 사가군(佐嘉郡)이라고 와전되었다.
- <히젠노쿠니풍토기(肥前国風土記)>
한편, 지금의 사가현 중동부를 흘러가는 카세가와(嘉瀬川)를 예전엔 사가가와(佐嘉川)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강이 흐르던 지역을 괴롭히던 아라부루카미라는 신을 진정시키기 위해 점을 치던 중 두 여인에게서 들은 방법으로 제사를 지내자 그 신이 잠잠해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에 그 두 어진 여인을 기린다는 뜻에서 사카시메(賢女)라고 부르던 것이 와전되어 사가(佐嘉)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설화가 아닌 단어 자체로만 해석한 설들도 많다.
'사주(砂洲), 저습지'를 뜻하는 すか[스카]가 さが[사가]로 바뀌었다는 설이나, '비탈길, 고개'라는 뜻의 坂[사카]나 '거꾸로 됨'이라는 뜻의 逆[사카]가 촉음화되어 さが[사가]가 되었다는 설 등이 있다.
1-20. 시가현(滋賀県)
滋賀[시가]는 佐賀[자하]라는 한자의 음독으로 원칙상 한국어 음독 발음인 [자하]라고 읽을 수 있겠지만, 고유 지명으로 간주해 [시가]라고 부른다.
이 지역은 '돌이 많은 곳'이라는 뜻의 石処[시카]나 '모래가 많은 곳'이라는 뜻의 砂処[스카], 혹은 '물가에 위치한 곳'이라는 뜻의 州処[스카]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1-21. 시즈오카현(静岡県)
静岡[시즈오카]는 '조용한 언덕'이라는 뜻이지만, 이 뜻에서 유래한 것은 아니다.
이 지역에는 한 때 스루가후츄우번(駿河府中藩)이라는 번이 있었는데, 1869년에 이 지명에서 '부(府) 가운데'라는 뜻의 '부중(府中)'이라는 글자가 '(덴노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불충(不忠)'과 발음이 같아 오해를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메이지 정부가 판단했다. 그래서 같은 해, 시즈오카번(静岡藩)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다.
그럼 왜 이 이름으로 바꾼 걸까?
이곳에는 스루가노쿠니(駿河国)를 만든 조상신인 오오쿠니누시노카미(大国主), 꽃의 신 코노하나노사쿠야비메(木花之佐久夜毘売), 우카노미타마노미코토(倉稲魂命)와 오오토시노카미(大年神)의 모신(母神)인 오오토시미오야노미코토(大歳御祖命)를 모신 시즈오카겐진신사(静岡浅間神社)가 있다. 이 신사의 뒷편에 있는 시즈하타야마(賤機山)의 이름에서 현명이 유래한 것이다.
처음에는 '시즈하타야마의 언덕'이라는 뜻의 시즈가오카(賤ヶ丘)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賤[시즈]라는 글자가 '천하다'라는 뜻이기 때문에, '고요하다'라는 뜻의 静[시즈]를 넣어 静岡[시즈오카]라고 부르게 되었다.
1-22. 시마네현(島根県)
島根[시마네]는 '섬뿌리'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뜻에서 온 것은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발견된 후지와라노미야 목간(藤原宮木簡) 중 하나에는 '이즈모노쿠니(出雲国) 시마네군(嶋根郡) 副良里) 후쿠라리(副良里)'라고 적혀 있었던 것을 보아 아주 오래전부터 이 지역을 '시마네'라고 불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10세기에 완성된 <화명류취초(和名類聚抄)>에는 이 지명을 시마네(島根郡)라고 기록한 것을 보아, 이 때 쯤에는 이미 지금의 현명의 발음과 한자 표기가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일설에 따르면, '섬들이 긴 봉우리를 이루는 곳'이라는 뜻의 시마네(島嶺)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한편, しま[시마]와 ね[네] 모두 '바위'라는 뜻을 함유하는데, 이 뜻에서 '바위가 많은 곳'이라는 뜻의 しまね[시마네]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로써 일본의 43개 현 중 22개의 현명의 유래를 알아봤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정리하고, 찾아본 자료만 몇 개던가?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는가? 앞으로 21개의 현명의 유래에 대한 글을 써야한다ㅋㅋㅋㅋㅋ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더 질좋고 중요한 자료들을 잘 정리해 곧 다시 돌아오도록 하겠다.
이번 시리즈는 전역하고 정리하는 글 중 처음으로 가장 방대하고 힘든 시리즈라고 생각하는 만큼 이 시리즈의 마지막 글 또한 조금 오래 걸릴 듯 하니 독자분들의 양해를 미리 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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