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칭대명사 "그"에 관한 소고 - 한민족어문학 - 한민족어문학회 - KISS
본고에서는 현대 국어에서 3인칭대명사로 쓰이는 ‘그’의 기원에 대해 논의하였다. 선행연구에서는 20세기 초에 김동인을 비롯한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에 ‘그’를 3인칭대명사로 쓰게 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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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리말
범언어적으로 3인칭 대명사는 화자와 청자를 직접 가리키지 않고 대상을 지시하는 표현이라는 점에서 1·2인칭 대명사와 구별됩니다. 그런데, 한국어에서, '나', '너'는 구어와 문어 모두에서 사용되지만, 3인칭 대명사 '그'는 주로 소설이나 신문 같은 문어에서 사용되는 것처럼, '그'는 사용 양상과 기원에서 다른 인칭대명사와 차이를 보입니다.
선행 연구에서는 20세기 초 김동인(金東仁, 1900-1951) 등 근대 작가들이 서양어의 he/she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그'를 3인칭 대명사로 사용하면서 정착되었다고 설명해 왔으나, 논문은 문법 범주에 속하는 인칭대명사가 특정 작가 개인의 선택만으로 정착되었다고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문법 범주에 가까운 인칭대명사는 폐쇄류(closed-class)의 일부이므로, 언중 전체의 필요와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새로운 형태가 정착될 수 있기 때문이죠.
이에 논문은 '그'의 3인칭 대명사화가 개별 작가의 창안이 아니라, 개화기 언중의 요구와 사회·언어 환경의 변화 속에서 이루어진 결과라고 평가하는데, 특히 19세기말 사회관과 세계관의 확대, 호칭어 체계의 변화, 근대적 서사체 서술 방식의 변화 등이 결합하면서 '그'가 3인칭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는 점을 밝히는 것을 연구 목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2. 선행 연구 검토
선행 연구는 국어 3인칭 대명사 '그'의 기원에 대해 크게 두 가지 견해로 나뉩니다.
첫 번째 견해는 이기문(1978)과 김형철(1981)의 주장으로, 중세 국어에는 독립된 3인칭 대명사가 없었으며 원칭 지시 대명사 '뎌(현대국어 '저')'가 그 역할을 수행했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이 견해에 따르면, 이후 20세기 초 김동인, 이광수 등 근대 작가들이 작품에서 '그'를 3인칭 대명사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저'를 대신하여 '그'가 현대 국어의 3인칭 대명사로 정착했다고 설명합니다.
반면, 두 번째 견해는 양영희(2006), 김성남(2006), 김미형(2012) 등은 중세 국어부터 '이, 그, 뎌' 모두가 문맥에서 앞서 언급된 인물을 대신하는 3인칭 대명사로 사용되었다고 견해입니다. 또한 근대 국어에서도 이러한 용법이 계속 이어졌으며, '그녀'와 같은 형태 역시 근대 이전 문헌에서 확인된다고 보았죠. 따라서 현대 국어의 '그'는 20세기에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존재하던 용법이 지속된 결과라고 설명합니다.
논문은 두 견해 모두 일정한 타당성을 인정하면서도 각각 한계를 지적하는데요.
첫 번째 견해는 중세 국어에서 '이'와 '그' 역시 3인칭 대명사로 사용된 실제 용례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며, 두 번째 견해는 왜 '이'와 '저'는 사라지고 '그'만이 현대 국어의 3인칭 대명사로 고정되었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고 지적합니다. 따라서 논문은 기존 논의의 한계를 보완하여, 왜 20세기에 '그'만이 3인칭 대명사로 정착하게 되었는가를 새롭게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3. 한국어 3인칭 대명사의 특징
논문은 선행 연구에서 서로 다른 견해가 나타난 이유를 국어 3인칭 대명사의 고유한 특성과 3인칭 대명사를 규정하는 기준의 차이에서 찾습니다. 국어의 3인칭 대명사는 '그', '그녀'뿐만 아니라 '그이', '이이', '저이', '그분', '이분', '저분'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며, 실제 언어생활에서는 대명사 대신 '이, 그, 저'와 명사의 결합형(김일웅(1982)에서는 '지시사+대용사'라고 표현한다), 명사, 호칭어 형태의 복합어 등이 3인칭 대명사의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따라서 특정한 형태만을 기준으로 3인칭 대명사를 정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먼저 3인칭 대명사를 규정하는 문법적 속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논문은 대명사의 핵심 속성으로 지시성(어떤 대상이나 인물을 가리키는 성질), 대용성(지시 대상을 대신할 수 있는 성질), 범용성(상황에 따라 대상을 대신할 수 있는 성질)이 있다고 합니다. 즉, 대명사는 특정 대상을 가리키면서도 상황에 따라 다양한 대상을 대신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죠.
또한 국어의 대명사는 사용 환경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데, 예문의 '이것', '쟤'와 같은 표현은 화자와 청자가 함께하는 담화 상황에서 주로 사용되는 반면, '그', '자기'는 화자와 청자가 직접 전제되지 않는 문맥 상황에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특히 '자기'는 문장 안의 선행어만 가리키는 재귀성을 가지지만, '그'는 문장 밖의 인물까지 지시할 수 있어 문맥적 독립성이 더 크죠.

이를 바탕으로 논문은 국어의 대명사가 화자와 청자가 전제되는 화맥적 상황에서 화자와 청자가 전제되지 않는 문맥적 상황으로 이어지는 연속체를 이룬다고 설명합니다.
이 관점에서, '이것, 쟤'는 화맥에 가장 의존적이고, '그'는 그 중간에, '자기'는 문맥 의존성이 가장 높은 표현에 해당한다고 하죠.

또한 국어에서는 이러한 특성 때문에 호칭어나 친족어도 대명사처럼 사용될 수 있으며, 실제로 예문에서 '어머니'와 같은 명사가 앞서 언급된 인물을 대신하는 기능을 수행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논문은 기존 연구의 차이를 새롭게 해석합니다.
중세 국어부터 '이, 그, 뎌'가 모두 3인칭 대명사였다고 본 두 번째 입장은 화맥적 상황에서의 용법까지 3인칭 대명사에 포함한 것이고, 반대로 '그'가 20세기부터 3인칭 대명사로 사용되었다고 본 첫 번째 입장은 문맥적 상황에서 독립적으로 사용되는 형태만을 3인칭 대명사로 인정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결국 논문은 20세기에 '이'와 '저'가 배제되고 '그'만이 현대 국어의 3인칭 대명사로 정착한 것은 특정 작가 개인의 선택 때문이 아니라, 근대 이후 문맥 중심의 서술 방식이 발달하면서 문맥에서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고정된 3인칭 대명사가 필요해졌고, 언중의 사회적 합의 속에서 '그'가 선택된 결과라고 결론짓습니다.
4. 서사체 서술 방식의 변환과 ‘그’의 선택
논문은 '그'가 현대 국어의 3인칭 대명사로 정착한 결정적인 배경을 개화기의 사회·언어적 변화와 서사체 서술 방식의 변화에서 찾습니다.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에 이르러 서양 문물의 유입, 신분 질서의 붕괴, 새로운 호칭어의 등장, 성경과 서양 서적의 번역 등으로 언어 환경이 크게 변화하였는데, 이러한 변화는 기존에는 크게 필요하지 않았던 문맥적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고정된 3인칭 대명사를 요구하게 만들었습니다.
논문은 특히 국문 서사체의 종결어미 변화에 주목합니다.
중세 국어에서는 '-라'형과 '-다'형 종결어미가 함께 사용되었는데, '-라'형은 화자가 청자에게 내용을 설명하는 화맥 중심의 서술 방식을 나타낸 반면, '-다'형은 화자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사건 자체를 직접 서술하는 문맥 중심의 서술 방식을 나타냅니다. 이때, 개화기를 거치면서 '-라'형은 점차 사라지고 '-다'형이 일반화되었으며, 이는 화자와 청자를 전제로 하던 서술 방식에서 사건 중심의 객관적 서술 방식으로 전환되었음을 의미하죠.
이러한 서술 방식의 변화는 3인칭 대명사의 사용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화자와 청자의 위치 관계가 중요한 화맥적 상황에서는 '이, 그, 저'나 '이 사람', '그 사람'과 같은 지시사 통합형을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었는데요. 시간이 흘러, 더 이상 화자와 청자의 위치 관계를 전제로 하지 않는 새로운 글쓰기 방식이 등장하면서, 문맥 속에서 독립적으로 대상을 안정되게 지시할 수 있는 고정된 3인칭 대명사가 필수적으로 요구되었습니다.
즉, 새로운 문맥적 상황에서는 화자와 청자가 직접 전제되지 않으므로 '이'나 '저'와 같은 표현을 지속적으로 사용하기 어렵게 되었고, 문맥 속에서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독립된 3인칭 대명사가 필요해졌던 것이죠.


논문은 실제 자료를 통해 이러한 변화를 실증적으로 확인합니다.
1899년 <독립신문> 기사를 보면, 화자가 전면에 나서지 않고 사건을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문맥적 상황에서 이미 3인칭 대상을 가리키기 위해 '그'가 사용된 사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는 김동인의 소설 <약한 자의 슬픔(1919)>보다 앞선 시기의 자료로, '그'의 3인칭 대명사 용법이 김동인의 창안 이전부터 이미 개화기 언중들 사이에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음을 시사합니다. 이후 1919년 김동인의 소설에서 나타나는 '그'의 사용은 이러한 언어적 변화가 근대 문학 속에서 더욱 공고히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논문은 중세 국어에서는 '이, 그, 뎌'가 모두 3인칭을 지시할 수 있었지만, 개화기 이후 서사체가 화맥 중심에서 문맥 중심으로 변화하면서 원근을 전제로 하는 '이'와 '저(뎌)'는 문맥적 서술에 적합하지 않게 되었고, 상대적으로 가장 중립적인 성격을 가진 '그'가 언중의 선택을 받아 현대 국어의 3인칭 대명사로 정착하게 되었다고 결론짓습니다. 이는 특정 작가 개인의 창안이 아니라 사회적·언어적 변화와 언중의 합의가 만들어 낸 결과라는 것이 논문의 핵심 주장이다.
5. 맺음말
논문은 서양 문물의 유입과 함께 신문의 발행, 근대 소설의 등장, 성경 번역, 국문 사용의 확대, 문체와 글쓰기 방식의 변화, 호칭어 체계의 변화 등 언어 환경 전반에 큰 변화가 일어났던 개화기의 사회·문화적 변화가 국어 3인칭 대명사 '그'의 정착을 이끈 핵심 배경이라고 결론짓습니다.
특히 화자와 청자를 전제로 하던 전통적인 서사 방식이, 화자를 드러내지 않고 사건을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문맥 중심의 글쓰기 방식으로 전환되면서, 문맥 속에서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고정된 3인칭 대명사가 필요하게 되었죠. 이러한 시대적 요구 속에서 작가들은 기존의 '이, 그, 뎌' 가운데 가장 중립적인 '그'를 선택하여 3인칭 대명사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현대 국어의 대표적인 3인칭 대명사로 정착하게 되었다고 본다.
따라서 논문은 앞서 정리했듯, '그'의 3인칭 대명사화는 김동인 개인의 창안이나 몇몇 작가의 선택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개화기 언중과 작가들이 새로운 서술 방식을 사용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한 사회적·언어적 합의의 결과라고 결론짓습니다. 다만 개화기의 다양한 문헌 자료를 충분히 검토하지 못한 점은 연구의 한계로 인정하며, 이에 대한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고 제언합니다.
6. 제언
본 논문을 읽으면서, 문법 범주에 속하는 대명사가 특정 작가 개인의 선택만으로 정착될 수는 없다는 논문의 지적을 통해, 언어는 언중 전체의 요구와 사회적 합의의 산물임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이미 중세 국어부터 존재했던 '이, 그, 저'라는 지시사들이 개화기를 거치며 '-다'체 중심의 객관적 서술 방식과 결합하였고, 그 과정에서 가장 중립적이고 사실적인 묘사에 적합한 '그'가 시대적 요구에 따라 선택되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로운 발견이었습니다.
또, 본 논문을 접하기 전까지 '그'라는 3인칭 대명사가 한국어에서 매우 오랜 역사를 지녔을 것이라 막연히 짐작하였으나, 3인칭 대명사 '그'의 역사가 생각보다 길지 않다는 점은 국어의 변천사가 가진 역동성을 느끼게 해 줍니다. 이러한 언어적 흐름을 이해하고 나니,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사용하는 '그녀'나 '그것'과 같은 대명사들은 과연 어떠한 사회적 배경과 시대적 필요에 의해 형성되었는지 그 연원을 추적해 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특히 대명사 체계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분화하고 확장되었는지에 관한 후속 탐구는 우리말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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