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불멸의 화가 빈 센트 반 고흐 레플리카전>, 19세기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화가를 부산에서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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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불멸의 화가 빈 센트 반 고흐 레플리카전>, 19세기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화가를 부산에서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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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문화플랫폼 부산 동구 중앙대로 380

불멸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 레플리카전 포스터 (출처 : https://www.busanjin.go.kr/)와 전시가 열렸던 부산동구문화플랫폼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아 어머니와 동생과 부산 동구 좌천동의 동구문화플랫폼에서 열리는 <불멸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 레플리카전>을 찾았습니다.

이번 전시의 주인공인 빈센트 빌럼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53-1890)는 네덜란드 출신의 후기인상주의 화가로, 27세쯤인 1880년에 전도사로 임명을 받지 못해 좌절하던 중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미술 공부를 시작하면서 안톤 헤라르드 알렉산더 반 라파르트(Anthon Gerard Alexander van Rappard, 1858-1892)에게 드로잉을 배우기 시작하는데요. 이때부터 1890년 7월에 권총으로 자해하고 사망하기 전까지 약 10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2000여 점 이상의 회화와 습작을 제작한 천재이기도 하죠.

전시회의 설명에 따르면, 그는 회화의 3가지 근본 요소(색, 선, 구성)를 새로운 의미를 지닌 조형 언어로 발전시켰고, 색과 움직임으로 가득한 세계를 화폭에 담아내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그의 영향은 후기인상주의, 야수파(fauvism), 초기추상미술(early abstract art)과 같은 20세기 미술 전반에 걸쳐 다양하게 나타났다고 하죠. 또한 그가 흔히 '테오 반 고흐'라고도 불리는 그의 동생 테오도루스 반 고흐(Theodorus van Gogh, 1857-1891)를 비롯한 지인들에게 보낸 수많은 편지는 중요한 서간문학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크뢸러 뮐러 미술관과 반 고흐 미술관 (출처 : google map)

현재 빈센트의 주요 작품들은 네덜란드 헨데를란트주(Gelderland) 오테를로(Otterlo) 크뢸러 뮐러 박물관(크뢸러 뮐러 미술관, Kröller-Müller Museum, 1938-)과 암스테르담(Amsterdam)의 반 고흐 박물관(반 고흐 미술관, Van Gogh Museum, 1973-) 등에 소장되어 있으니 네덜란드로 여행을 간다면 한 번 찾고 싶네요~

덴하흐(Den Haag, 헤이그)에서 시골 농민을 주로 그렸던 사촌 매형 안톤 루돌프 마우베(Anthonij Rudolf Mauve, 1838-1888)의 화실에서 정물화를 그리기 시작했는데요. 이 시기 그는 어둡고 무거운 색조를 써서 농민의 거친 손과 고된 일상이 담긴 순간들을 사실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고통과 노동이 깃든 삶의 깊이를 존중하는 그의 태도는 그의 예술적 신념의 출발점이 되었고, 인간 존엄에 대한 관심을 확고히 드러낸 시기였습니다. 이 당시의 작품 중 <감자 먹는 사람들(The Potato Eaters, 1885)>, <감자 캐는 농부 여인(Peasant Woman Digging Up Potatoes, 1885)>이 유명합니다.

1886년 1월, 빈센트는 1885년 11월에 입학했던 벨기에 안트베르펜의 안트베르펜왕립예술학교(Koninklijke Academie voor Schone Kunsten Antwerpen, 1663-)를 떠나 활기찬 분위기의 프랑스 파리로 갔습니다. 이때부터 프랑스 남부의 아를(Arles)로 떠나기 전인 1888년 초까지 고흐는 다양한 예술가들과 교류했고, 일본 목판화도 접하면서 그 단순하고 대담한 구도로 그림을 그려봤는데, 이 과정 속에서 그는 점차 밝고 경쾌한 색감을 사용하기 시작했죠. 파리에서 보낸 약 3년의 시간은 고흐가 상징적인 색채의 화가로 성장하도록 이끄는 기반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당시에 유명한 작품은 <탕기 영감의 초상(Le Père Tanguy, 1887)>, <오이란, Oiran, 1887)>, <비 내리는 다리(Bridge in the Rain, 1887)> 등이 있습니다.

1888년 2월, 빈센트는 파리 생활에 지쳐 프랑스 남부의 아름다운 자연을 머금은 아를로 내려갑니다. 이후 1889년 5월에 당시 정신병원으로 쓰였던 생폴 드 모졸 수도원(Monastery of Saint-Paul de Mausole)에 입원하기 전까지 아를에서 빈센트의 예술의 절정이자 폭발의 시기를 보냈습니다. 이때 그는 파리의 젊은 화가들을 노란 집(Het gele huis)으로 초대해 아틀리에를 만들고자 했으나,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만 이에 응해서 내려왔다고 합니다. 이윽고 한 달 정도 그와 함께 그림을 그렸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급격히 악화되었고, 그렇게 고객은 아를을 떠나고 다시는 빈센트를 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안내문에 따르면 이때부터 고흐는 회오리처럼 이어지는 붓질과 빛과 그림자의 극적 대비처럼 자연을 감정과 생명력을 지닌 존재로 바라보며 자신의 예술적 본질을 깊이 탐구했다고 합니다.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Starry Night Over the Rhône, 1888)> 혹은 <별이 빛나는 밤(La Nuit étoilée, 1888)>과 <밤의 카페테라스(Café Terrace at Night, 1888)> 혹은 <저녁의 카페테라스(Terrasse du café le soir, 1888)>이 유명합니다.

전시실 곳곳에는 체험존이 있습니다. 입구에서 받은 엽서에서 고흐의 작품을 단계별로 스탬프를 찍어 완성하는 <고흐 스텐실 엽서> 체험과 고흐의 작품을 움직이는 영상으로도 만나볼 수 있죠~

1889년 5월 초에 빈센트는 당시 정신병원으로 쓰였던 생레미(Saint-Rémy)의 생폴 드 모졸 수도원(Monastery of Saint-Paul de Mausole)에 입원합니다.

정신이 불안정한 시기엿음에도 빈센트는 자연의 움직임과 내면의 흔들림을 화면에 동시에 담아내는 독창적인 스타일을 완성합니다. 병원 창 밖의 풍경과 주변 정원은 그의 감정을 투영하는 소재가 되었고, 그 유명한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 1889.06.)>도 이때 그려진 작품이라고 하네요.

1890년 5월, 빈센트는 생레미의 생폴 드 모졸 수도원에서 퇴원했고,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나오는 발두아즈주(Val-d'Oise)의 오베르쉬르우아즈(Auvers-sur-Oise)에서 짧지만 폭발적인 창작 활동을 이어나갔습니다.

정신병원에서 빈센트를 치료했던 폴 가셰(Paul Gachet, 1828-1909)를 그린 <가셰 박사의 초상(Portrait of Doctor Gachet, 1890.06.)>를 포함해 <사이프러스와 별이 있는 길(Road with Cypress and Star, 1890.05.)>, <오베르의 교회(The Church at Auvers, 1890.06.)>같은 유명한 그림들도 이 당시 그려졌죠.

그 외에도 <꽃 피는 아몬드 나무(Almond Blossoms, 1890)>, <까마귀가 나는 밀밭(Korenveld met kraaien, 1890.07.)>, <나무뿌리 (Tree Roots, 1890.07.)>와 같은 그림들을 그리기도 했죠. 그러나 7월 27일, 빈센트는 총상으로 피를 흘린 채로 오베르주 라부(Auberge Ravoux, 라부 여인숙)의 다락방에 다다랐고, 라부 가족이 그를 발견하여 총알을 빼내었지만, 감염으로 인해 7월 29일에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렇게 지독하게 사람을 좋아했지만, 항상 고독하고 힘들었던 그의 삶은 끝이 납니다...마지막 그림들을 보며 많은 여운이 흘렀습니다.

이제 2층의 체험프로그램존으로 올라갑니다.

첫번째로 맞이해주는 체험존은 만져보는 유화 <손끝으로 느끼는 고흐>입니다. 원본은 아니겠지만, 거장의 작품을 이렇게 만져볼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그 다음에는 <나도 고흐의 조력자>라는 스티커 체험존도 있고, 그 옆에는 컬러링 체험도 할 수 있습니다. 정말 많은 방문객들의 예술적 솜씨를 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빈센트의 연작 중 해바라기 시리즈의 일곱 작품들을 볼 수 있는 전시도 2층에서 열리고 있었습니다.

고흐가 얼마나 해바라기를 사랑했는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전시가 끝납니다. 19세기 네덜란드의 대표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레플리카 작품전을 둘러보며, 고흐의 일생을 다시금 살펴볼 수 있었던 멋진 기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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