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치와 모루 전술 그리고 낫과 망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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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치와 모루 전술 그리고 낫과 망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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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에서 있었던 일이에요. 페르시아 전쟁에서 그리스가 이길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망치와 모루' 전술입니다."
이 말을 듣고 "망치와 모루? 그거 사회주의의 상징 아니야?"라고 대답했고, 후임은 답했다. "망치와 모루는 전술 이름입니다.

1. 헷갈리는 용어들

최근 용어에 대한 의미를 헷갈리기 시작했다. 괴슈탈트 붕괴현상을 설명하는데 스톡홀름 증후군이 아니냐고 답하지 않나, 에펠탑 효과가 뭔지 물어보는 질문에 파리 증후군을 설명하지 않나, 그리고 오늘 처럼 망치와 모루 전술과 낫과 망치를 헷갈리기까지... 최근 이런 일들이 자주 일어나는 것 같아 내가 아는 지식들을 재점검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단어를 보면서 내가 아는 정보를 말하고, 그게 맞는지 찾아보고 읽는 공부를 하고 있다.

 

이번에 정리하는 글도 그 공부의 연장선으로, 정확하게 개념을 숙지하려는 노력으로 봐주시면 좋겠다. 망치와 모루, 낫과 망치. 이건 도무지 연결이 될려야 될 수 없는 것들인데 당시 상황을 생각해보면 웃기다. ㅋㅋㅋㅋ 이제 본격적으로 용어 정리를 시작하겠다.

 

2. 망치와 모루 전술

2-1. 망치와 모루 전술이란? 

망치와 모루는 적의 이동을 막는 병력과 그 병력으로 인해 기동이 지연되는 적을 포위해서 격파하는 병력, 이렇게 두 개의 주요 병력을 사용하는 군사 전술이다. 영상을 먼저 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JtBaw5pBQFQ 

2017년에 출시한 토탈 워 : 워해머2를 플레이한 유튜버 WhiteCheeto의 망치와 모루 전술. 영상의 20초부터 보면 이해가 쉽다.

모루 편대(적의 이동을 막는 병력)가 먼저 적을 전방에서 직접 공격하거나, 방패 등으로 이동을 막는다. 이후 망치 편대(기병과 같은 적 측면과 후면을 에워싼 기동 병력)가 결정타를 먹여 적의 기동을 철저히 파괴한다. 간단히 말해 일단 앞을 막고 주먹으로 옆과 후두부를 강타하는 전술인 셈이다. 당연히 이 전법은 오늘날도 유효하다.

 

2-2. 어떻게 사용되었으며, 이 전법을 사용한 대표적인 전투가 궁금해! 

이 병법은 기병을 이용했기 때문에, 기병을 이끌던 고대 어느 지역에서든 사용되었는데, 그 중 그리스와 로마의 전투에서 주로 쓰였다. 당시 지중해 유역을 공포로 떨게 했던 고대 중동의 기갑기병 카타프락토스(Κατάφρακτος, cataphract)들에게도 이 전술은 통했고, 이로 인해 이 전법은 그리스에서부터 널리 퍼져나갔다.

파란색 네모 상자는 알렉산더군이며, 빨간색 네모 상자는 페르시아군이다.

기원전 334년 소아시아 지역의 대부분을 손에 넣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은 아케메네스 제국을 무찌르기 위해 진격하던 중 기원전 333년 11월에 이수스 만 인근에서 만나게 된다. 마케도니아군은 4만여 명, 아케메네스군은 10만여 명으로, 수적으로 열세였던 알렉산더 대왕의 군대는 보병대 팔랑크스(Φάλαγγα, Phalanx)를 전면에 배치하고, 기병을 좌우익에 배치했다. 팔랑크스는 전진하려는 아케메네스군을 막았고, 기병은 곧장 우측에 화력을 집중해, 아케메네스군의 좌측이 깨져버렸다.

곧장 후미로 돌아 아케메네스군의 왼쪽과 뒷쪽을 타격해 마케도니아는 큰 승리를 얻었다.(이소스 전투, -333)

 

이 때 뿐 아니라, 디아코도이 전쟁(-322 ~ -275)에서는 가자 전투(-312)에서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가 데메트리오스를 이기게 되었다. 이 선구적인 전법은 로마, 카르타고에서도 쓰였는데, 제2차 포에니 전쟁(-218~ -201) 중인 칸나에 전투(-216), 자마 전투(-202)에서도 이 전법이 쓰이며 각각 카르타고와 로마에게 큰 승리를 안겨주었으며, 로마 내전 중 파르살루스 전투(-48)에서 카이사르가 이기게 되는 계기도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추축국은 이 전술로 프랑스 공방전(1940.05.~1940.06.)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으며, 대독일국은 키예프 전투(1941.08.~1941.09.), 스몰렌스크 전투(1941.07.~1941.09.)까지도 승리하며 자신감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 그 유명한 인천 상륙작전(1950.09.15~1950.09.16)에서도 이 전법이 사용되었다. 9월 16일에 인천 상륙을 성공시켰고 9월 28일에 서울까지 수복하며, 서울과 낙동강 전선 사이의 보급로를 끊어 버려 한반도 남부의 북한군을 전멸시키는 큰 성과를 내기도 했다.

 

2-3. 이 전법은 백전백승이야?

원초적이면서도 확실한 이 전법이 꼭 성공한 것만 아니었다.

만일 모루가 약하다면? 칸나에 전투에서 로마가 패배한 이유 혹은 카르타고가 성공한 이유가 바로 로마군의 모루 편대의 힘이 상대적으로 약했기 때문이었다. 아래 두 그림을 보며 설명하겠다.

전쟁의 시작

로마는 역사적인 전법인 망치와 모루 전술을 사용했고, 그들의 보병을 앞에 배치했다. 그러나 카르타고의 보병이 뛰어난 바람에 기병이 힘을 쓰기도 전에 이 전열을 쉽게 무너져버렸다.

결국 전투에서 패한 로마군은 카르타고 군에 둘러싸여 전투에 참여했던 로마 군인 절반 정도가 사망하고 나머지는 거의 포로가 되었다. 이 전투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보병의 힘이 강해야 한다는 것! 라인하르트급이 되야하나? 

 

그러나 보병만 강하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보병이 상대 진영의 움직임을 막기 시작한 순간부터 기병이 재빨리 양측이나 후미로 이동하여 전열을 부수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쿠르스크 전투(1943.07.~1943.08.)의 독일처럼 쉽게 패망하게 된다.

 

모루 역할을 하는 보병과 망치 역할을 하는 기병의 케미와 힘이 잘 어울려 상대를 완벽하게 진압하는 전법인 망치와 모루 전술은 고대 그리스, 로마 시기부터 쓰였으며, 아직까지도 쓰이는 유효한 전법의 하나다.

 

3. 낫과 망치

3-1. 낫과 망치란?

지금까지는 전술 '망치와 모루'에 대해서 알아봤다. 이번에는 '낫과 망치'라는 기호에 대해서 알아보자.

미국은 이 빨간색 상징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러시아어로 셰르쁘 이 모라뜨(Серп и молот)라고도 부르는 낫과 망치(Hammer and sickle)는 프롤레타리아(Proletarier) 연대를 상징하는 기호다. 여기서 낫은 농민을, 망치는 노동자 혹은 노동계급을 뜻한다. 이 기호는 러시아 혁명(1917.03.~1923.06.) 때 처음 채택되어 널리 사용되었다.

 

3-2. 농민은 알겠는데... 프롤레타리아는 뭐야?

19세기초, 사회과학과 경제를 다루던 서유럽 자유주의 학자들은 급속한 성장을 이루는 산업 노동자 계급과 고전적 무산계급의 사회경제적 유사성을 발견했다. 프랑스 가톨릭 사제이자 정치과학자 펠리시테 드 라므네(Félicité de La Mennais, 1782~1854)는 연구 결과를 1807년에 <De l'esclavage moderne(mordern slavery, 현대판 노예제)>를 발표했고, 1840년에는 영어로 번역하여 영어권 국가에게 이 책이 널리 읽혀지게 되었다. 또, 스위스의 자유주의 경제학자이자 역사가인 장 샤를 레오나르 드 시스몽디(Jean Charles Léonard de Sismondi, 1773~1842)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자본주의 하에서 만들어진 노동자 계급'이라고 주장했는데, 시스몽디의 이 주장은 독일 출신의 카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에 의해 연구되어 이 개념이 더욱 확대되었다. 런데 왜 하필 Proletarier를 고른 걸까? 이유는 라틴어에서 찾을 수 있다. 라틴어 형용사 prōlētārius[플로레타리우스]는 '자식이 국가에 대한 유일한 공헌인 최하층 시민에 속하는'이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애낳는 것밖에 못하는 사람인'이라는 뜻이다.

 

로마법을 전공했던 마르크스는 자신의 사상인 마르크스주의에서 프롤레타리아는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가 거의 없는 사회계급으로, 사유재산에 오염되지 않고 혁명적 행동을 통해 자본주의를 무너뜨리고 사회계급을 폐지함으로써 사회를 더 높은 수준의 번영으로 이끌 수 있는 계층이라고 주장했다.

1911년, 세계산업노동자연맹(IWW) 신문 만평 산업노동자'(Industrial Worker)'

1911년 세계산업노동자연맹(IWW)에서 발간하는 신문에 투고된 만평이다. 여기서 자본주의 체계가 어떻게 구성되는가, 또 노동자 계급은 어떤 위치에서 어떤 임무를 띄고 있는가에 대한 피라미드를 꾸밈없이 보여주고 있다. 해당 그림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아래 표를 참고하자. 그러나 이 표가 사회주의 계급 및 수저계급론과 일대일 대응이 되는 것은 아니기에 이에 염두해 두고 보자.

명칭
대사 사회주의 계급과의 비교 수저계급론
(순전히 소득을 기준으로 나눔)


자본주의
통치 계급 We rule you
우리는 당신을 다스린다.
부르주아 다이아몬드수저
플래티넘수저
금수저
성직자 계급 we fool you
우리는 당신을 속인다.
군사 고위 계급
(군 장병은 노동자 계급)
we shoot at you
우리는 당신에게 쏜다.
중산 계급
we eat for you
우리는 너희들을 위해 먹는다.
금수저
은수저
프롤레타리아 은수저
노동자 계급 we work for all
우리는 모두를 위해 일한다.


we feed all
우리는 모두를 먹인다.
동수저
나무수저
플라스틱수저
흙수저

부르주아는 프롤레타리아의 봉급을 줄이고 착취함으로서 이득을 챙기는데, 이를 막고 프롤레타리아 계층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 혁명(Proletarian revolution, Пролетарская революция)을 일으켜 부르주아 계급을 계획적이며 장기적으로 타도해야하며,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Proletarian internationalism, Пролетарский интернационализм)를 바탕으로 전 노동자가 연합해야한다고 주장했다.

 

3-3. 정치적 선전화로서의 수단으로 낫과 망치가 사용되다.

앞서 말했듯이 낫과 망치는 프롤레타리아(Proletarier) 연대를 상징하는 기호다. 여기서 낫은 농민을, 망치는 노동자 혹은 노동계급을 뜻한다. 농민과 노동자를 단순히 생각해보면 하층 농민 및 노동자가 힘을 합쳐 자신들의 뜻을 펼치기 위해 사용하는 상징적인 기호인 것이다. 

1895년부터 1940년까지 사용되었던 칠레의 1페소 동전

구 칠레 동전 1페소를 보면, 밑부분에 네모난 망치와 큰 낫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는 정치적인 의미보단 사회에서 산업과 농업의 중요성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다. 그냥 단순하게 농업과 산업에 대한 인식을 재고하기 위해 쓰였던 이 기호는 소련에 의해 정치적 선전화 수단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Серп и молот

1917년, 블라지미르 례닌(Владимир Ленин, 1870~1924)과 아나톨리 루나취알스키(Анатолий Луначарский, 1875~1933)가 소련의 상징을 만들기 위한 대회를 열었다. 최종적으로 채택된 디자인은 화가 예브게니 깜졸낀(Евгений Камзолкин, 1885~1957)이 디자인한 태양 광선을 받은 지구 위에 있는 망치와 낫이었다! 지구를 둘러싼 곡식 화환과 뾰족한 별 아래에는 6개 언어(러시아어, 우크라이나어, 벨라루스어, 그루지야어, 아르메니아어, 아제르바이잔어)로 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국기(1922.12.30~1923.12.11.12)

낫과 망치가 들어간 최초의 소련 국기이다. 이 국기는 1923년 7월에 개최된 제2차 소비에트 연방 중앙집행위원회(Центральный исполнительный комитет СССР, 1922~1938) 회의 전까지 사용되었다.

Пролетарии всех стран, соединяйтесь! :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1923년 7월 6일, 제2차 소비에트 연방 중앙집행위원회 회의에서 위 문양이 채택되었고, 공식적으로 소비에트 연방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이때부터 단순히 노동자와 농민을 뜻하던 낫과 망치는 마르크스주의, 공산주의 정당, 사회주의 국가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국기(1955.08.19~1991.12.26)

 1992년, 소련이 붕괴되고 이 낫과 망치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직도 중국 공산당, 베트남 공산당, 라오 인민혁명당과 같은 각국의 공산당기에는 낫과 망치가 존재하며, 러시아에도 2개 주(오블라스트)의 주기에서 이 낫과 망치를 사용하고 있다.

1998년 11월 5일에 채택된 브랸스크 주의 주기(좌측)와 1999년 4월 28일에 채택되고 2017년 7월 1에 수정된 블라디미르 주의 주기(우측)

또, 현 러시아의 국영 항공사인 아에로플로트(Аэрофлот)의 로고에서도 낫과 망치가 발견된다.

아에로플로트 로고

결론적으로 농민과 노동자층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사용되었다가 소련에 의해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기호로 바뀐 낫과 망치는 여전히 공산당의 뜻을 펼치기 위해 사용되고 있으며, 러시아의 일부 지역과 부처에서도 사용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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