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토크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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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과 표로 보는 역사 시리즈/어원과 표로 보는 세계사, 세계문화

바스토크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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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스토크 호수가 뭐야?

러시아는 1957년 남위 77도, 동경 105도에 남극 기지 바스또끄(Восток)를 설치했다. 이 기지의 이름은 19세기 초 러시아 최초로 남극을 탐험했던 범선 바스또끄(Восток)호에서 유래했는데, 여기서 восток는 '동쪽'이라는 뜻이다.

남극 기지 보스토크의 위치
2020년의 보스토크 기지(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wYoEZnNR5Ao)

1977년, 러시아의 남극 기지 바스또끄에서 조금 남동쪽으로 내려가면 있는 곳(정확히는 남위 78도, 동경 106도)에 거대한 빙저호가 발견되었다. 이 기지의 이름을 따서 호수의 이름을 Восток라고 지었다. 범선 Восток와 남극 기지 Восток와 헷갈리는 것을 막기위해 '동쪽 호수'라는 뜻의 Озеро Восток[오지라 바스또끄]라고도 쓴다.

바스토크 호수의 위치
2005년경 NASA의 SPL 위성이 찍은 보스토크 호수

2. 어떻게 발견되었어?

1876년, 러시아의 지리학자 끄냐지 표뜨르 알릭셰이비치 끄라뽀트낀(Князь Пётр Алексеевич Кропоткин, 1842~1921)는 러시아 지리학계에 '남극 대륙의 빙하 아래에 민물이 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수천 미터 깊이의 두꺼운 얼음의 질량에 의해 가해지는 엄청난 압력은 얼음판의 가장 낮은 부분의 녹는점을 고체인 얼음이 액체인 물로 변하는 지점까지 감소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소련은 1955년부터 1962년까지 소비에트 남극 탐험(САЭ)을 주도하며 여러 남극 기지를 설치했는데, 이 때 설치된 바스또끄 기지에서 지리학자 안드례이 삐뜨로비치 까피챠(Андрей Петрович Капица, 1931~2011)는 위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다.지금껏 남극 전체 어딘가에 호수가 있을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면, 까삐챠 박사는 바스또끄 기지 인근을 지진 측정기를 사용해 얼음판의 두께를 측정했다. 연구 결과 그의 가설이 맞았음을 확인되었으며, 이 때부터 소련과 러시아는 바스또끄 호수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끄라뽀트낀의 이론은 1967년 빙하학자 이고르 알릭셰리비치 자티코브(Игорь Алексеевич Зотиков, 1926~2010)가 박사 학위 논문에서 다시 주장되었고, 남극 빙하 아래에 민물이 있다는 주장은 점점 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

 

 

사실 남극 지하 담수호에 대한 이야기는 소련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었다.

특히 영국은 남극 지하에 대한 연구를 위해 1971년부터 1979년까지 SPRI/NSF/TUD 레이더 음향 조사를 실시했고, 얼음 아래에 액체 담수호의 존재를 암시하는 특이한 레이더 판독값들을 탐지했다. 아래는 당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디지털화한 연구 결과다.

1970년대 실시된 SPRI-NSF-TUD 레이더 음향 조사 결과로 나타난 지표면 아래의 수치(파란색 선)와 고해상도 스캔 레이더 필름의 비행선을 이용한 조사로 새로 발견된 결과(분홍색 선), 그리고 특정 구간에 대한 수치(빨간색 선)

1991년,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의 물라드 우주과학 연구소(MSSL)의 위성 원격 탐사 전문가로 활동하던 제프 리들리(Jeff Ridley)는 ERS-1 위성의 레이저 고도계의 고주파 배열을 남극 만년설의 중심 쪽으로 돌린 뒤 연구를 진행했다. ERS-1의 레이더는  이 담수의 빙하 지역이 세계에서 가장 큰 호수 중 하나이며 남극 대륙의 140개의 빙하 호수 중 하나라는 것을 밝혀냈다. 하지만 학자들은 호수의 정확한 규모를 알고 싶었다. 결국 러시아와 영국의 과학자들은  얼음 투과 레이더 영상 관측 기술과 우주에 설치된 레이더 고도계를 포함한 다양한 데이터를 통합하여 호수를 완벽히 묘사했다!

SPRI 레이더가 비행한 궤도와 빙저호가 기록된 지역,  또 보스토크 호수의 윤곽을 나타낸 지도

 

그리고 이 사실을 1996년 6월 20일 <네이처>에 발표했다.

Published: 20 June 1996

A large deep freshwater lake beneath the ice of central East Antarctica(동남극 중부에 위치한 얼음 아래의 크고 깊은 담수호)

 A. P. Kapitsa, J. K. Ridley, G. de Q. Robin, M. spl satlateJ. Siegert & I. A. Zotikov 

바스또끄 호수는 3km가 넘는 두께의 만년설 아래에 많은 양의 액체 상태의 물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넓이는 약 12,500km2로,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의 1/2 정도이면서, 경상남도(10,533km2)보다 조금 더 크다. 길이는 250km이고, 최대깊이는 900m ~ 1km 정도이며, 부피는 5,400 ±1,600km3 정도이다. 이 호수는 2021년 9월 기준으로 남극에서 가장 큰 호수이자, 세계에서 가장 큰 빙저호다.

 

1999년 12월, NASA는 호수 인근의 얼음에서 미생물의 흔적을 발견하기도 했다.

돌대구(Lotella rhacina)

 

2003년, 남극조약협의당사국회의(ATCM)에서 바스또끄 호수 침투를 위한 포괄적 환경 영향평가(CEE)에 대한 논의되었으나, ATCM의 승인을 받은 남극 환경 보호 위원회(ACEP)의 조사 결과, 해당 건에 대해 불완전성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평가는 당연했다. 오래된 시추공에 묻어있거나 들어있는 시추액과 등유에 의한 호수 오염을 막기 위해 이런 결정을 내렸고, 이후 10여년간 이에 관한 수많은 회의가 열렸다. 러시아도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고 시추 결정을 번복했었다. 그러다가 2005년 12월 러시아는 시추를 재개했으나, 2007년, 시추 드릴이 얼어서 고장나고 만다. 우여곡절 끝에 드릴은 지상으로 올려졌지만, 상황을 고려해 시추를 다시 멈추었다. 그러나 2012년 드디어, 호수의 문이 열렸다! 바스또끄 호 시추에 성공한 것이다!

보스토크 호수를 시추하다.

2013년, 미국 출신 학자 스콧 O. 로저(Scott O. Rogers)가 이끄는 연구팀은 2013년 7월에 핵산 염기서열 분석을 수행했고, 얼음과 호수에서의 미생물의 대사 경로를 추론할 수 있었다고 발표했다. 그들은 3,507개의 독특한 유전자 서열을 발견했고, 그 서열의 약 94%는 박테리아에서 왔고 6%는 진핵생물(Eukarya)에서 왔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했다. 로저 박사와 연구팀은 이 곳에서 계속 생물의 존재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는데, 2020년 연구에서 그들은 호수에서 남극 연안을 따라 흔하게 발견되면서 부동단백질을 생성하는 돌대구(Lotella rhacina)와 97% 이상 유사한 rRNA 염기서열을 발견했다. 이것은 바스또끄 호수에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어종에 대한 첫 번째 보고였다!

 

색다른 발견도 있었다. 2005년에는 호수의 중심부에서 섬이 발견되었으며, 2006년 1월에는 이 호수의 서쪽 부근에서 동경 90도 호수(Озеро 90°E)와 소비에트 호수(Советская)가 발견되었다. 이 가까이 모여있는 3개의 빙저호는 빙저강(氷底江)으로 연결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2006년 1월에 발견된 동경 90도 빙저호와 소비에트 빙저호

바스또끄 호수 유역는 돔 C(Dome C) 지역과 빙저 산맥인 감부르찌브 산맥(Горы Гамбурцева) 사이의 수백 킬로미터 폭의 대륙 충돌 지역 내에 있는 작은 구조상의 특징이며, 호수의 물은 70m 두께의 퇴적물 층에 안겨져 있어, 만년설이 형성되기 전 남극 대륙의 기후와 생명에 대한 독특한 기록을 담고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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