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어(季語), 계절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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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일본어

계어(季語), 계절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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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온천 여행을 가고 싶다는 작은 바램에 시간날 때마다 일본어를 공부중이다. 이제서야 책 N5를 다때었고, 지금은 일본 노래들을 들으면서 조금씩 일본어 능력을 키워가고 있다.
올해 초 일본어로 간단한 인사정도밖에 몰랐던 나는 지금은 간단한 자기소개, 물품 구입과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일본 사전을 읽으며 그 내용의 절반은 번역기 없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최근 들은 일본 노래들의 가사를 정리하며 어휘를 늘려가던 중 계어(季語, きご)에 대해 푹 빠지게 되었다.
계어가 무엇인지,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정리해보려고 한다.

 

1. 계어란 무엇인가?

계어(季語)

하이쿠(俳句)에서 계절과 결부되어 그 계절을 나타낸다고 정해져있는 말.
렌가(連歌)와 하이카이(俳諧)에서는 계절말(季詞, きことば) 혹은 계절의 말(季の詞, きのことば)라고 부른다.
계제(季題, きだい), 사계의 말(四季の詞, しきのことば), 계(季, き)라고도 한다.

하이쿠는 일본의 전통적인 시구의 하나 혹은 그 양식을 뜻하며, 우리나라의 시조(時調)와 비슷하다.

하이쿠에 대해서는 이 글(https://mspproject2023.tistory.com/307)을 참고하자.

 

Christopher Tin(크리스토퍼 틴) - 창으로 보이는(窓から見える)

턴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인 문명(Civilization)의 주제곡을 만든 작곡가 크리스토퍼 틴(Christopher Tin)의 노래를 듣던 중 우연히 듣게 된 일본어 곡이다. 이 곡의 가사는 일본 전통 정형시인 하이쿠

mspproject2023.tistory.com

눈(snow)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계절이 떠오르는가? 겨울이 떠오를 것이다.

동풍(東風)은? 봄이 생각나지 않는가?

이렇게 일본 시가에서 특정 계절을 나타내는 단어들을 계어(季語)라고 한다.

 

2. 계어가 늘어나다(계어의 역사)

이미 계절과 관련된 단어들은 7~8세기에 지어진 <만요슈(万葉集, 만엽집)>에서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계어(季語)라는 것이 확정된 것은 헤이안 시대 말기부터였다.

11세기, 헤이안시대의 승려이자 카진(歌人, 와카(和歌)나 탄가(短歌)를 짓는 사람) 노우닌(能因, 988~1050/1058)은 그의 저서 <노우인우타마쿠라(能因歌枕, 능인가침)>에서는 150개의 계어를 월별로 분류했으며, 1124년에 완성된 킨요와카슈(金葉和歌集, 금엽화가집)에서 달(月)을 가을의 계어로 설정하면서 '5개의 경물(五箇の景物)'을 정하였다. 이때부터 아래의 다섯개의 단어는 일본 시가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5개의 경물(五箇の景物)
  벚꽃(花)
여름 호토토기스(時鳥) : 두견
가을 츠키(月) : 달
모미지(紅葉) : 붉은잎, 단풍
겨울 유키(雪) : 눈

가마쿠라 시대에 렌카(連歌)가 성립되었고, 렌카를 부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연상 범위를 한정할 필요성이 생기며 계어는 필수적인 요소로 정해지게 된다. 이때부터 렌카에서 5-7-5로 구성되는 첫 번째 문장인 홋쿠(発句, 발구)는 반드시 그때의 계절에 맞추어 읊어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난보쿠쵸시대(南北朝時代)에 니조 요시모토(二条良基)가 지은 <렌리히쇼우(連理秘抄, 련리비초)>는 40여개의 계어가 수록되어 있었지만, 이후 무로마치 시대에 들어서는 더 많은 어휘들이 정리되었다. 에도시대인 1627년 사토무라 죠하(里村紹巴)가 지은 렌가시호우쇼우(連歌至宝抄, 련가지보초)에는 270여개의 계어가 정리되어 있다. 이후부터는 계어의 본래 의미(本意)를 정리되기 시작했다.

 

에도시대에 하이카이(俳諧)가 성립되며 실생활에서 쉽게 보고 알 수 있는 것들까지 계어가 되어 그 단어의 양은 현저히 많아지게 된다. 1636년, 노노구치 류호(野々口立圃)가 지은 가장 오래된 하이카이(俳諧) 계제집(季題集)인 <はなひ草(はなひぐさ/하나비구사)>에는 590개의 계어가, 1648년 기타무라 키긴(北村季吟)이 지은 <山之井(やまのい, 야마노이)>에는 1,300개의 계어가, 1803년 쿄쿠테이 바킨(曲亭馬琴)가 지은 <俳諧歳時記, 하이카이사이지키, 배해세시기>에는 2600개의 계어가 실려있다!!

 

메이지 시대에 하이쿠(俳句)의 근대화를 행한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 1867~1902)는 17자로 구성된 하이쿠의 짧음 속에서 계절의 연상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생각을 계승한 타카하마 쿄시(高濱虚子, 1874~1959)는 하이쿠의 주제는 사계(四季)를 반영하는 자연물이어야 한다는 이념인 카쵸후에(花鳥諷詠, 화조풍영)를 강조했지만, 당시 시대 분위기에 따라 쇼와시대 초기에 계절을 배제한 채 도시나 전쟁 등 사회적 소재를 다루는 신흥 하이쿠 운동이 일어나면서 계절이 들어 있지 않은 하이쿠인 무키하이쿠(無季俳句, 무계배구)도 많이 등장하게 된다.

 

대일본제국이 홋카이도, 오키나와, 타이완 등의 지역으로 식민지를 확장하면서 야자(椰子)나 물소(水牛)와 같은 각지의 풍물이나 행사, 문화 등을 표현하는 단어들도 계어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일본계 이주민이 많던 브라질이나 하와이에도 해당 지역의 풍속을 반영한 새로운 사이지키(歳時記, 세시기 : 하이카이세시기)를 편찬하기도 했다. 현대에도 하이쿠를 짓는 하이진(俳人, 배인)이 여러 곳에서 계어를 들여오고 있으며 2018년 기준으로 5,000개 이상의 계어가 존재하게 되었다.

 

3. 계어의 종류

계어는 그 특성에 따라 3종류로 나눌 수 있다. 아래 표를 참고하자.

사실적 계어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사실에 따라 정한 계어 봄 : 벚꽃(花)
겨울 : 눈(雪)
지시적 계어 대상 앞에 계절을 나타내는 말을 붙여서 직접적으로 계절을 표현하는 계어 봄 : 봄비(春の雨)
여름 : 여름뫼(夏の山)
가을 : 추풍(秋風)
규정적 계어
(약속적 계어)
실제로 여러 계절에서 볼 수 있는 대상일지라도 전통적인 미의식에 기초해 특정 계절을 나타내자고 약속한 계어 봄 : 개구리(蛙)
가을 : 달(月), 벌레(虫)
겨울 : 화재(火事)

또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5개로 나눌 수 있다. 전통적으로는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이었지만 서구화가 진행되던 메이지 시대에 서기(西)를 도입하면서 음력(陰曆)의 계절감과 서양력(西洋曆)의 계절감 사이에 차이가 생기자 정월(正月) 계어를 신년(新年) 계어라고 부르면서 별도로 취급되었다.

사계(四季) 계어 신년(新年) 계어
봄 계어 여름 계어 가을 계어 겨울 계어 정월(正月) 계어

각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뉜 계어는 또 그 안에서 7개의 범주로 구분된다.

시후(時候 : 기후) 천문(天文) 지리(地理) 생활(生活) 행사(行事) 동물(動物) 식물(植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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