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호산동의 순천 김씨 횡성공파 호산종친회 재실 경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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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호산동의 순천 김씨 횡성공파 호산종친회 재실 경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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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달서구 호산동 산호경로당 옆에는 이전 파산마을임을 기억하기 위해 세운 파산마을 표지석과 2기의 기념비와 기공비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경모재'의 위치를 알리는 표지석도 세워져 있는데, 이를 보고 이 마을의 경모재를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지도를 켰습니다.

아...지도에 이름이 표시되어 있지 않네요...그래도 '대구 달서구 호산동 144'라고 검색하고 가시면 '경모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곳은 '순천 김씨(順天金氏) 횡성공파(橫城公派) 호산종친회(虎山宗親會)'의 건물과 함께, 경모재가 있습니다.

경모재(景慕齋)
순천김씨 횡성공파 호산종친회 재실
대구광역시 달서구 호산동 144번지
이곳 호산동(옛지명 : 경상북도 달성군 성서면 파산동) 1990년대 들어서 산업단지와 계명대학교가 이전하여 개발되기 전에는 순천김씨(順天金氏) 집성촌이었다. 시조는 전남 순천을 본향으로 두고 신라시대 인가별감(引駕別監)을 지낸 총(㹅, ?~?)이며, 세종때 도승지를 지낸 충정공(忠貞公) 유양(有讓, ?~?)의 셋째 아들 횡성공(橫城公) 사성(嗣成)이 중시조이다.

사성이 횡성현감에 봉직하던중 계유정난(1453)으로 종친 좌의정 종서(宗瑞, 1383~1453)가 화를 당하고 단종이 폐위되었다. 사성은 이에 낙담하여 관직을 버리고 경북 고령으로 낙향하여 초야에 묻혀 살게 되었다. 그 후 사성의 8대손 옥(㓇+土)이 달성군 성서면 파산동 황사봉 기슭에 터를 잡고 살게 되었으니, 이분이 호산종중의 입향조이다.

이 마을에서 옥의 8대손(항렬 : 연(淵)), 9대손(항렬 : 동(東)), 10대손(항렬 : 섭(燮))이 일가를 이루어 살아가던중, 계명대학이 들어서며 선조들이 일군 논밭과 선산이 개발되고 친족들이 흩어져 살게 되었다. 이에 후손들은 선조들의 뜻을 보존하고 기리기 위하여 호산종친회를 결성하고 성주 대가에 선산을 새롭게 마련하였으며, 삶의 터전이었던 이곳에 재실을 짓고 선조들을 우러러 사모한다는 의미로 경모재라 이름지었다. 마을 입구에는 옥의 6대손 종원(鍾遠, 일명 종도)의 처 김해 김씨의 시부모에 대한 효심을 칭송하는 효부각이 있다.

기품있는 재실의 모습입니다. 잔디도 잘 정리되어 있구요!

심원문(尋源門)이라는 대문이 웅장하게 서있습니다. 이 문으로 들어가면 뒤로 보이는 경모재(景慕齋)가 나오겠지요!

순천김씨 횡성공파의 재실 경모재는 웅장하면서도 소박한 그런 모습을 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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