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운대구 재반로64번길 16에는 압해 정씨 대사서공파 재송문회의 재실인 장산재가 있습니다.
당나라 출신의 정덕성(丁德盛)은 835년 당 선종(唐 宣宗, 810~859)에게 간언하다가 높으신 분들의 심기를 건드려 현재의 전라남도 신안군에 위치한 압해도(押海島)로 유배오게 됩니다. 이후 당 정부에서 유배를 철회했으나, 그는 그냥 신라 땅에서 계속 살기로 결심합니다.
그렇게 여러 후손들을 낳게 되었고, (다수설에 따르면) 이 성씨에서 나주 정씨, 창원 정씨, 영광 정씨, 의성 정씨가 분파되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그 후손 중 창원파에 속하는 정덕손(丁德孫, 1502~1570)이 있었고, 그는 예천군수가 됩니다. 이후 조광조의 실각으로 조정에 간언을 하다가 쫓겨나게 되었죠. 그렇게 그는 동래 기장 지역으로 옮겨 살며 대사성공계의 입향조가 압해 정씨 동래입향조가 되었습니다.
세로로 긴 형태를 보입니다. 실제 대지 면적은 1,320㎡(약 399.3평)이라고 하네요.
부산역사문화대전에 따르면 '부산 현존 재실 중 전통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재실이라고 합니다.
첫 대문에는 '예를 숭상하는 문'이란 뜻의 숭례문(崇禮門)이 있습니다. 그 다음 왼쪽으로 돌면 솟을대문으로 지어진 '옷깃을 바르게 하는 문'이란 뜻의 정금문(正襟門)이 있습니다.
그 곳을 들어가면 장산재(萇山齋)가 있습니다. 여기서 조상에 대한 제사를 준비합니다.
그 뒤로 돌아가면 '엄숙하고 가지런하게 하는 문'인 숙정문(肅整門)이 있습니다.
숙정문으로 들어가면 '조상을 영원히 그리는 단'인 영모단(永慕壇)이 있습니다. 여기서 제사를 지내죠. 간언을 하다가 타국과 타향으로 와 후손을 남긴 압해 정씨 사람들을 기리는 재실은 부산 해운대구 재송동에도 있습니다. 매년 음력 10월 둘째주 일요일에 압해 정씨 대사서공파 재송문회 문중들이 모여 그 조상들에 대해 예를 갖춘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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