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가야의 창립자이자 김해 김씨의 시조의 무덤, 김해 수로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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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가야의 창립자이자 김해 김씨의 시조의 무덤, 김해 수로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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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김해시 왕릉길 26(서상동 312)에는 수로왕릉이 있습니다.

수로왕릉의 안내판과 문 우측의 하마비

수로왕릉(首露王陵)
경상남도(慶尙南道) 김해시(金海市) 서상동(西上洞)
 서기 42년 구지봉(龜旨峰)에서 탄강(誕降, 탄생)하여 가락국(駕洛國, 금관가야(金官伽倻))을 세운 수로왕(首露王)의 묘역으로서 납릉(納陵)이라고도 불린다.
 그 규모는 지름 22m, 높이 6m의 원형봉토분으로 능비, 상석, 문무인석, 마양호석(馬羊虎石, 말, 양, 범 모양의 돌) 등이 갖추어져 있으며, 경내에는 숭선전(崇善殿), 안향각(安香閣), 신도비각(神道碑閣) 등이 배치되어 있다.
 납
(納陵) 정문에는 파사석탑(婆娑石塔)과 유사한 흰 석탑을 사이에 두고 인도에서 흔히 보이는 쌍어문양이 새겨져 있어 수로왕비 허황옥이 아유타국에서 왔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을 연상케 한다.
 <삼국유사><가락국기>는 199년 수로왕이 158세로 돌아가자 대궐의 동북쪽 평지에 빈궁(殯宮)을 짓고 장사지낸 뒤, 주위 300보의 땅을 수로왕묘(首露王廟)로 정했다고 기록되어 있어 현재의 수로왕릉이 평지에 있는 것과 능역이 설정되었던 점에서 일치하고 있다.
 조선 선조 13년(1580년) 영남 관찰사 허엽이 왕릉을 크게 수축하여 상석, 석단, 능묘 등을 갖추었고 인조 25년(1647년) 능비를 세웠으며, 고종 15년(1878년)에는 숭선전의 호를 내리고 능묘를 개축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수로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숭선전에는 춘추(春秋)로 제향을 올리고 있는데, 이 숭선전 제례는 경남 무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되어 있다.

개방시간
하절기(3월~10월)
동절기(11~2월)
3월, 10월 4월~9월
08:00~19:00 08:00~20:00 09:00~18:00
관람료
무료

정문으로 들어가면 홍살문(紅箭門)이 나옵니다. 이 홍살문이 옆에 길이 있다면 그 양쪽 길로 다녀야 합니다.

수로왕릉 안내도입니다. 뒤의 정원까지 합치면 그 규모가 매우 큰 편입니다.

홍살문을 지나 가락루로 들어가면 본격적으로 수로왕릉의 여러 곳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가락국 연화대석도 볼 수 있고, 

가락국태조왕숭성전납릉후릉중수비, 가락국태조왕릉중수기적비, 가락국태조왕릉중건신도비명이 세워져 있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가장 오른쪽에 있는 신도비명에는 태양문(太陽紋)이 그려져 있는데요. 이는 인도의 아요디아(Ayodhya, 아유타)에서 유래한 문양이라고 하네요.

신도비각(神道碑閣)
가락사와 숭선전사가 기록된 비석으로, 1885년(고종 22년)에 3칸으로 창건되어 1926년 과 1954년 두 차례에 걸쳐 중수가 이루어졌고, 1988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되면서 보수되었다. 

3기의 비석 오른편에 위치한 가락사와 숭선전사가 기록된 비석의 비각(碑閣, 비석의 집)인 숭신각(崇神閣)을 보고

오른쪽으로 돌면 저 멀리서도 크게 보이는 수로왕릉이 보입니다!

김해 김씨와 허씨의 시조이자 가락국(금관가야)의 초대 국왕인 수로왕의 무덤인 수로왕릉입니다. '납릉(納陵)'이라고도 부르죠.

그 납릉의 정문이 바로 납릉정문(納陵正門)입니다. 이 납릉정문의 오른편 위에는 석탑을 가운데 두고 두 마리의 물고기가 마주보는 문양인 신어상(神漁像)이 있습니다.

옆의 작은 문을 통과하고 처음으로 '인을 숭상하는 문'인 '숭인문(崇仁門)'이 보입니다. 이 문을 지나면 수로왕과 왕후 허씨를 모시는 '숭선전(崇善殿)'과 '향을 봉안하는 각'인 '안향각(安香閣)'이 있습니다.

이 숭선전에서 무형문화재로도 지정된 숭선전제례가 열리는데요. 이는 가락국의 시조인 수로왕과 왕후 허씨를 봉안하고 향화를 받드는 제례입니다. 음력 3월 15일의 춘향대제와 9월 15일의 추향대제로, 1년에 2번 열립니다. 

숭선전(崇善殿) 안향각(安香閣)
가락국 시조 대왕과 왕후 허씨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올리는 전각. 가락국 2대 도왕 원년(서기 199년)에 창건되어 1698년에 새로이 제각을 건립하였고, 1792년 4칸으로 중건, 1878년에 숭선전으로 선액(宣額)되면서 3칸으로 건립되었다. 1926년과 1954년 두번에 걸쳐 중수되고 1973년에 보수되었으며, 1987년 능 전면에서 현위치로 이건되었다. 춘추대제전에 예조(禮曹)에서 보내온 향(香)과 축(祝, 축문)을 봉안하는 곳. 1792년(정조 16년)에 2층 3칸 건물로 창건되었으나, 1824년에 1칸으로 건립되어 1932년 한번의 중수가 이루어졌고,1987년 현위치로 이건되었다.

그 옆칸에는 '덕을 숭상하는 문'인 숭덕문(崇德門)이 있고, 그 문으로 들어가면 가락국(금관가야) 왕 중 수로왕을 제외한 8명의 왕(2~9대)을 모시는 숭안전(崇安殿)이 있습니다.

숭안전(崇安殿)
1988년 신축되어 8왕조 2대 도왕(道王), 3대 성왕(成王), 4대 덕왕(德王), 5대 명왕(明王), 6대 신왕(神王), 7대 혜왕(惠王), 8대 장왕(莊王), 9대 숙왕(肅王)과 왕비의 위패가 봉안된 전각(殿閣)

숭안전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북쪽부터 차례로 전사청, 서원청, 서고가 있고, 남쪽으로는 포덕문, 숭모재, 숭경문이 있습니다. 아쉽지만 이번 방문에서 포덕문, 숭모재, 숭경문은 가지 못했습니다.

서원청(書員廳)
춘추대제시 사용하는 제구 및 제기를 보관하는 장소1700년(숙종 26년)에 서원청으로 창건되었다가 1969년 제기고로 개칭되면서 건립되었다. 1980년 중건되었고 1987년 현 위치로 이건되었다

전사청(典祀廳)
춘추대제시 제수(음식)를 만들거나 보관하는 장소. 1700년(숙종 26년)에 창건되었고 1792년 중수가 있었으며, 1795년과 1935년, 1980년 3차례에 걸쳐 중건 되었다. 1988년 현 위치로 이건 보수되었다.

전사청, 서원청을 지나 북쪽의 협문을 지나면 큰 정원이 나타납니다.

수로왕릉 경내 고인돌
수로왕릉 내에는 2기의 고인돌이 있다. 조선시대에 제작된 <김해부내지도>에도 수로왕릉 뒤편에 치석(䐉石)으로 표시된 고인돌이 그려져 있다.

2기의 고인돌은 받침돌이 없는 바둑판식이다. 이곳의 고인돌은 덮개돌의 크기가 길이 2m, 너비 1.6m, 두께 0.6m로 비교적 작은 편에 속한다.

넓은 정원의 오솔길을 따라 쭉 가다보면

왼편엔 고직사가 오른편엔 유물전시관과 가락영상관, 화장실 등이 보입니다.

유물전시관 방향으로 가면 연지(淵池)의 풍경도 눈에 들어오네요.

이 연지의 한편에는 '양산 화원 헌수자 방명비'와 '가락국시조왕릉참배기념헌수(재일본 가락 오사카 종친회)' 헌수 기념비 2기가 있습니다. 양산은 그렇다 치더라도 오사카에 아직도 가락국을 기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유물전시관에는 가야, 수로왕릉, 그리고 그 제사와 관련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가락영상관에는 가락국과 수로왕과 관련된 다양한 영상체험시설이 있는 듯 합니다.

고고(古Go)가야 체험존
(가야역사 문화자원에 ICT첨단기술을 접목하여 스마트한 체감형 관광 서비스)
체험시설 VR의자형, AR매직미러, 투명OLED홀로그램, VR라이더, 가상스튜디오(온라인 사전예약제)
운영시간 평일(월~금) 09:00~18:00
* 공휴일 휴관
이용문의 (055)330-3378
담당부서 김해시 스마트도시담당관((055)330-2671)

 이렇게 연지를 돌아 입구로 다시 나왔습니다. 금관가야의 창립자이자 김해 김씨와 허씨의 시조인 수로왕의 무덤은 이렇게 잘 가꾸어 지금까지도 많은 걸음이 오고가는 곳입니다. 지금도 그 후손들은 앞서 말했듯 음력 3월 15일(춘향대제)과 9월 15일(추향대제) 두차례에 거쳐 제사를 지내고 있어 많은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높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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