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교동 1에 위치한 경주 계림을 찾았습니다.
경주 계림(慶州 鷄林, Gyerim Forest, Gyeongju) |
계림은 신라 김씨의 시조인 알지(閼智)의 탄생 설화가 전하는 숲으로, 신라를 가리키는 옛 이름의 하나이기도 하다. 면적은 7,300m2으로 원래 시림(始林), 구림(鳩林)이라 하였으나, 알지가 태어나자 닭이 울어 알렸다고 해서 그 때부터 '계림(鷄林)'이라 불렀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탈해왕 9년(서기 65년)에 왕이 금성(金城) 서쪽 시림에서 닭 우는 소리를 듣고, 날이 밝은 후에 신하인 호공(瓠公)을 보내어 살피도록 하였다. 호공이 사림에 이르러 살펴보니, 금으로 된 조그만 꿰짝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흰 닭이 그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왕에게 보고하자 왕이 사람을 시켜 궤짝을 가져다 열어 보게 하니, 그 안에 자태가 빼어난 사내아이가 있었다. 왕은 하늘에서 보낸 아이라 하여 거두어 길렀더니 그 아이는 총명하고 지략이 뛰어났다. 그리하여 '알지'라는 말이 '아이'를 일컫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탈해왕은 알지를 태자로 삼았으나, 알지는 파사(婆娑)에게 왕위를 양보하였다. 그 후 알지의 7대손이 왕위에 올랐는데, 그가 미추왕이다. 이후 내물왕부터 신라가 망할 때까지 김알지의 후손이 나라를 다스렸다. 김알지의 탄생 설화가 전하는 계림은 지금까지도 신성한 곳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곳에는 조선 순조 3년(서기 1803년)에 세운 김알지 탄생기록비가 있다. |
엄청 거대한 밑동과 뒤쪽에 살짝 자라고 있는 나무가 바로 약 1300여년 된 회화나무입니다. 정말 오래된 나무죠. 그 전체 모습을 볼 수 없어 이젠 아쉽습니다만, 뒤쪽에 조금 남아 있는 부분을 보니 끈질긴 생명력을 잘 보여주죠~
회화나무 |
계림 첨성대(瞻星臺)와 월성(月城) 또는 신월성(新月城) 사이에 있는 숲으로 왕버들·느티나무·팽나무 등의 고목이 울창하게 서 있는, 신라 건국 당시 부터 있던 곳이다. 현재 계림에는 약 100여 주의 고목이 우거져 있으며, 1803년(순조 3년)에 세운 비가 있다. 이 나무는 계림정문에 위치하고 있으며 둘레 직경 2m정도로 추정되고 수령은 약 1,300년 정도로 추정한다. 과거 줄기 및 수간에 우레탄 수술로 인한 고사가 발생하여 현재 치료방법은 친환경 공동충전 방법으로 치료 하였다. 수간부는 약 10% 정도 생존해 있으며 하부 그루터기는 남아있는 원형을 이전형태로 제작하여 옛 수형을 유추할 수 있도록 제작하였다. 한 자료는 괴화나무(槐花-)로 표기하는데, 발음은 중국발음과 유사한 회화로 부르게 되었다. 홰나무를 뜻하는 한자인 '槐'(괴)자는 귀신과 나무를 합쳐서 만든 글자이다. 회화나무가 사람이 사는 집에 많이 심은 것은 잡귀를 물리치는 나무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가. 그래서 조선시대 공궐의 마당이나 출입구 부근에 많이 심었다. 그리고 서원이나 향교 등 학생들이 공부하는 학당에도 회화나무를 심어 악귀를 물리치는 염원을 했다고 전해진다. |
이제 계림비각을 향해 갑니다. 가을쯤에는 이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그림 그리기 행사 등이 열리곤 하죠~
1803년에 세운 계림비각(雞林碑閣)입니다.
6각으로 된 비각 내부에 계림의 내력과 경주 김씨의 시조 김알지의 탄생, 김알지 이후 김씨 왕가의 계보와 치적, 글을 쓰게 된 동기 등을 기록한 경주김알지탄생기록비인 계림김씨시조탄강유허비(鷄林金氏始祖誕降遺墟)가 세워져 있죠. 비석은 앞 뒷면 빼곡히 적혀 있습니다. 경주신문에 따르면 이 비문은 당시 규장각 직제학으로 있던 남공철(1760~1840)이 지었다고 하네요.
비각 뒤에는 우물터가 있습니다. 큰 참느릅나무가 담쪽으로 휘어져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죠. 한 때는 우물물이 펑펑 쏟았다고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물이 나오지 않는 우물터가 되었습니다. 참고로 언론인 김유경, 역사학계 등에 따르면 김알지의 우물에 관한 기록이 없는 만큼 이 우물터는 원래부터 있었던 우물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기 때문에 주의해서 감상하셔야 합니다.
어쨌든, 경주 김씨의 시조이자 신라계 김씨의 시조, 신라 김씨 왕조의 초대 왕 김알지가 태어났다는 이곳 신라의 핵심적인 숲 계림은 아직까지 그 많은 나무들 아래에서 사람들에게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그런 산책하기 좋은 숲으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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