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초연대기>에 나오는 크리비치족과 추드족은 어떤 민족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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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초연대기>에 나오는 크리비치족과 추드족은 어떤 민족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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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브의 크리비치 부족에 속하는 추드인이 이윽고 그들(바랴크, 바랴기)에게 말했다.
'우리의 온 땅이 크고 부유한데, 그러나 거기에는 질서가 없습니다. 와서 우리들을 다스려주십시오!'

그리하여 그들은 세 형제와 그 친구들을 뽑았고, 그들은 모든 루시인을 데리고 함께 이주했다.
맏이인 류리크는 노브고로트에 자리잡았고, 둘째인 시네우스는 비옐로셀로에, 셋째인 트루보르는 이즈보르스크에 자리잡았다.
이 바랴기 인들로 하여 노브고로트 지역은 루시의 땅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노브고로트의 현재 주민은 바랴기인의 후손인데, 그러나 그전의 주민은 슬라브족이었다.

- <지나간 세월의 이야기(원초연대기)> 중  이무열 작가 번역 내용(출처 : <러시아사 100장면(이무열)>)

1. 크리비치족(Кривичи́)

다우가바 강, 드네프르 강, 볼가 강의 대략적인 위치 (지도 출처 : 구글맵)

크리비치족(Кривичи́, криви́чи)8~12세기에 다우가바 강, 드네프르 강, 볼가 강의 상류 지역에 살던 동슬라브 부족 연합체였습니다.

크라비치족의 주 거주지인 러시아의 이즈보르스크와 스몰렌스크, 그리고 벨라루스의 폴라츠크 지역 (지도 출처 : 구글맵)

이들은 당대 다른 민족들처럼 농사, 목축, 공예에 종사했으며, 주로 현재의 이즈보르스크, 스몰렌스크, 폴라츠크 지역에서 모여 살았다고 전합니다. 독일 언어학자 맥스 바스머(Max Vasmer, 1886~1962)에 따르면, 그들 민족의 조상인 크리부(Крив, Кривъ)란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크리부의 후손들'이란 어투를 가진다고 보면 됩니다.

9~10세기경 동유럽 민족. 연두색 지역이 슬라브족의 영토이며, 노란색은 핀-우그리아족, 위쪽 왼편의 살구색은 발트족, 아래 연갈색은 튀르크족을 나타낸다. 우측 아래 노란색과 초록색이 섞인 것 그 외 민족들의 거주지를 표현한 것이다. (출처 :&nbsp;&nbsp;Коряков Ю. Б.)

이 크리비치는 슬라브인의 거주 지역의 남쪽에서 성장한 크리비치는 점차 영역을 넓히며 동슬라브 중에선 어느새 가장 큰 부족 공동체로 성장합니다. 그렇게 동쪽과 북쪽으로 확장하면서 고대 발트족과 핀-우그리아족 인구의 상당 부분을 동화시키면서 발트 해 인근의 다우가바 강과 현 우크라이나 지역의 드니프로 강뿐 아니라, 프스코프와 스몰렌스크와 같은 주요 민족적 거점이 되는 지역과 트베리, 모스크바 등으로까지 영역을 확장하게 됩니다. 그렇게 그들은 크게 북쪽에 거주하던 프스코프 크리비치와 남쪽에 거주하던 폴라츠크-스몰렌스크 크리비치로 나뉘어졌죠.

 

이후 키예프 루시가 형성되었을 때, 일부는 그들에게 동화되어 현재의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의 조상이 된 것으로 보이며, 몇몇은 발트해 지역의 다른 부족들과 함께 벨라루스인을 구성하게 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2. 추드족(Чудь)

추드족(Чудь)고대 러시아 부족 공동체 중 선 발트-핀인(Baltic Finnic peoples)에 속한 민족군입니다. 19세기말까지 러시아 제국의 공식 문서에서도 종종 발견된 민족명이나, 그 표현 방식과 민족 범위에선 다양한 차이를 보였는데요. 어떤 곳에선 추드(чудь)를 지금의 핀란드의 핵심 민족인 핀인(финны)으로 봤으며, 보디족(Водь), 추흐나족(Чухна), 수미족(Сумь), 에미족(Емь)이라고도 부르는 야미족(Ямь) 등으로 칭해지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이름은 '외지인의'라는 뜻의 чужо́й [추조이]나 чуждый [추즈듸-]에서 왔다는 의견과 '기적'이란 뜻의 чудо [추도]에서 왔다는 의견, '이상한(초자연적인)'이란 뜻의 чудный [추드늬-]에서 왔다는 의견 등이 있는데요. 아마 이 추드(чудь)란 말은 '이상한 외지인'이란 어투로 쓰인 표현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민족에 대한 기록은 역사 속에서 짤막 짤막하게 나오는데요. 그중 몇 가지 기록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지난 세월의 이야기(원초연대기)>에서 '859년, 바다를 넘어온 바랴크(варяги, 바랑기아인)는 추드족(чудь), 튀지족, 일리메니 슬로베네족(ильменские словене), 메랴족(Ме́ря), 크리비치족(Кри́вичи́)에게 공물(дань)을 부과했다. 한편 하자르(Хаза́ры)는 폴랴네족(Поля́не), 세베리야네족(Северя́не), 바차치족(Вя́тичи)에게 공물(дань)을 부과했다.'라는 기록이 나옵니다. 바이킹 중 바랑인(바랑기아인, 바랴크)이 슬라브 지역에 도달하며, 그들을 지배하기 시작했다는 내용이 보이는데, 이를 토대로 처음 인용한 내용이 이 내용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같은 책에서 ' 올레그(Олег)의 원정이 있던 882년, (그는) 바랴크, 추드족, 슬로베네족, 메랴족, 베시족(Весь), 크리비치족,  튀지족 자신의 많은 병사들을 이끌어, 스몰렌스크에 와서, 크리비치와 함께, (이) 도시를 장악했다."는 기록을 통해 이미 일부 추드족은 키예프 루스의 병사로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고대 슬라브인 중 한 부족 혹은 민족명칭이었던 '추드'는 지금은 민족적 특성을 확정하기는 어렵지만, 다양한 지명, 인명 등에 그 흔적은 남아 있습니다.

우드무르트인 가족 (출처 : https://nur.tatar/udmurty/)

우드무르트인(Удмурты) 중에는 추디야(Чудъя)나 슈디야(Шудья), 추드나(Чудна) 등의 이름을 가진 씨족이 있으며, 기독교도가 아닌 일부 코미인(Ко́ми)은 세례를 받지 않은 조상의 이름을 따 이름 짓는데, 이 때도 추도와 관련된 이름이 보입니다. 한편 그들의 땅엔 슈디야(Шудья)와 같은 지명이 많이 보이기도 하는데, 이를 통해 이들의 조상이 바로 그 추드족일 가능성이 보입니다.

<러시아 제국 내 알파벳 민족 목록(1895)>에 기록된 추드인. '핀인의 한 부족'로 기록하고 있다.

공식적으로도 1895년에 발간된 <러시아 제국 내 알파벳 민족 목록(Алфавитный список народов, обитающих в Российской Империи)>이란 보고서에서, 알파벳 목록 132번에 지금은 벱스인(вепсы)이라 불렸던 추드인(чудь)이 1865년 기준 13,250명이 있었다고 서술하고 있으며, 이후 인구조사를 위해 1926년, 1959년, 1989년에 편찬된 민족사전(Словарь народностей)들에서도 그들의 명칭이 보입니다. 이후 2002년, 2010년에서도 비슷한 조사를 통해 추드인이 일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도 있었는데, 특히 2010년 조사에선 북서 연방관구의 아르한겔스크 주 피네스키 라이온(Пинежский район)에서 추드인이 약 200명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페이푸스 호라고 널리 알려진 추드 호, 노브고로드의 한 도시인 추도보, 코미 공화국을 가로지르는 추치 강 (지도 출처 : 구글)

그 외 그들의 이름은 지명에서도 발견되는데요.

북서연방관구 노브고로드 주의 도시 추도보(Чудово), 러시아와 에스토니아에 둘러싸인 추드 호(Чудское озеро), 코미 공화국의 우신스크(Усинск)를 가로지르는 추치 강(река Чуть) 등이 그 예입니다.

 

이제 다시 돌아옵시다.

슬라브의 크리비치 부족에 속하는 추드인이 이윽고 그들(바랴크, 바랴기)에게 말했다.
'우리의 온 땅이 크고 부유한데, 그러나 거기에는 질서가 없습니다. 와서 우리들을 다스려주십시오!'

- <지나간 세월의 이야기(원초연대기)> 중 이무열 작가 번역 내용(출처 : <러시아사 100장면(이무열)>)

크리비치족과 추드족은 고대 슬라브를 구성하던 민족군의 한 분파였습니다.

<지나간 세월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들은 선주민이었지만, 바이킹에서 분파된 바랑인(바랑기아인, 바랴크)이 내려오면서 그들에게 자신들과 땅을 바쳐 통치받는 입장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기록 저편의 이야기를 추측해 보면, '바랑인이 맹공을 펼쳐 선주민 크리비치족과 추드족을 지배했을 가능성' 또한 있죠. 사실 관계는 교차 검증이 필요하지만, 당대의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으니,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로 봐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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