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팔달로2가에 위치한 수원시 남문종합관광안내소 앞에는 동상 1기와 비석 2기가 있습니다.
백선행(白善行) 1848~1933 여성 사회 사업가 |
경기도 수원에서 출생했다. 7세에 부친을 여의었으며, 14세에 결혼했으나 2년만에 과부가 되었다. 평양으로 이주, 근검절약하여 거부가 되었다. 3.1 운동에 충격을 받고 모든 재산을 사회사업에 바치기로 공식발표한 뒤 민족교육에 헌신하였다. 조선총독부가 주는 표창은 거절하였다. 86세로 서거하여 1만명의 애도객이 운집한 가운데 여성 최초로 사회장이 엄수되었다. |
비석에 적혀 있듯, 1848년 경기도 수원에서 아버지 수원 백씨 백지용(白持鏞)과 어머니 김씨의 장녀로 태어나고 곧 평양 중성(中城)으로 이주해서 살다 7세에 아버지를 잃고, 14세 때 안재욱(安裁煜)과 결혼해 가정을 이뤘으나, 2년만에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친정으로 돌아와 홀어머니를 모시며 사업과 갖은 일을 하며 악착같이 재산을 불렸습니다.
그가 만달산(晩達山) 부지를 사들여 1900년대에 일본인 시멘트 생산업자 오노다(小野田)씨에게 넘기면서 평양 갑부가 되었죠. 그러던 중 1919년 3.1운동이 터졌는데, 이에 충격받고 모든 재산을 사회사업에 바치기로 공식발표한 뒤, 평양 일대의 각급학교 지원의 육영사업과 시민들을 위한 문화시설로 평양공회당(1929~1933)을 신축합니다.
백선행 1848~1933 |
상상을 초월하는 근면과 검박, 절약으로 마련한 거금을 제민족, 제나라를 위하는 선한 일에 고스란히 바치여 인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은 평양의 애국적 녀인(여인) |
이 건물은 지금은 박물관과 기념관으로 쓰인 백선행기념관(1933~)으로 쓰이고 지금도 평양의 명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 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1925년 광성소학교(光成小學校)에 1만 4000여 평과 숭현여학교(崇賢女學校)에 전답 2만 6000평을 기증해 재단법인의 기초를 세웠으며, 1927년엔 미국선교사 S. A. 모펫(S. A. Moffet, 馬布三悅)이 설립한 창덕소학교(彰德小學校)에도 부동산을 내놓아 교육재단을 만들도록 주선해 기백창덕보통학교(紀白彰德普通學校)로 발전시키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학교에 민족교육의 토대를 만들어 주었던 분이죠.
미래의 백선행 (?) |
이곳은 미래 백선행의 흉상을 세울 곳임 "나도 될 수 있다" |
그리고 그 오른편엔 미래의 백선행을 위해 미리 준비해둔 자리도 있습니다. 이렇게 수원시 팔달문 동편의 관광안내소 앞 광장에 세워진 석상을 보며, 그의 민족 교육의 열의를 잠시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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