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원문
竹島の日を定める条例 |
(趣旨) 第 1 条 県民、市町村及び県が一体となって、竹島の領土権の早期確立を 目指した運動を推進し 竹島問題についての国民世論の啓発を図るため 、 竹島の日を定める。 (竹島の日) 第 2 条 竹島の日は、 2 月22日とする。 (県の責務) 第 3 条 県は、竹島の日の趣旨にふさわしい取組を推進するため、必要な 施策を講ずるよう努めるものとする。 |
附 則 この条例は、公布の日から施行する。 |
2. 번역문
다케시마의 날(竹島の日)을 정하는 조례 |
(취지) 제1조 현민(県民), 시정촌(市町村) 및 현(県)이 일체(一体)가 되어, 다케시마(竹島, 독도)의 영토권(領土権)의 조기확립(早期確立)을 목표로 한 운동을 추진하고 다케시마 문제(竹島問題, 독도 문제)에 대한 국민세론(国民世論, 국민여론)의 계발(啓発)을 꾀하기(도모하기) 위해, 다케시마의 날(竹島の日)을 정한다. (다케시마의 날(竹島の日)) 제2조 다케시마의 날(竹島の日)은 2월 22일로 한다. (현(県)의 책무) 제3조 현(県)은 다케시마의 날(竹島の日)의 취지에 어울리는 대책[取組]을 추진하기 위해, 필요한 시책(施策, 시행책)을 강구하도록 힘쓰는 것으로 한다. |
부칙 이 조례는 공포한 날부터 시행한다. |
3.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을 정하는 조례> 제정(2005)
3-1. 2005.03.16,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을 정하는 조례> 제정
2005년 3월 16일, 시마네현 의회(島根県議会)의 2월 정례 회의의 마지막날이었습니다.
이 날,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竹島の日)로 지정한다'는 의원 제안 조례인 <다케시마의 날을 정하는 조례(竹島の日を定める条例)>를 다수의 찬성으로 가결(可決, 통과) 시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그들의 입장을 파헤쳐봤습니다.
3-2.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을 정하는 조례>의 취지
시마네현이 발표한 '<<다케시마의 날을 정하는 조례> 제안 이유 (설명)(「竹島の日を定める条例」提案理由(説明) )>'에 따르면, '다케시마는 역사적으로도 국제법적으로도 시마네현 오키군의 섬으로 우리나라(일본)의 고유 영토임은 명백하다, 대한민국이 반세기에 걸쳐 그 섬을 불법점거를 이어가고 있고, 지금까지도 접안 시설 설치, 국립공원 지정 검토 등 실표지배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며 일본 측이 보는 상황을 전하고 있습니다.
잇달아 '다케시마(竹島, 독도)의 영토권(領土権)의 조기확립(早期確立)을 목표로 한 운동을 추진하고 다케시마 문제(竹島問題, 독도 문제)에 대한 국민세론(国民世論, 국민여론)의 계발(啓発)을 꾀하기(도모하기) 위해, 다케시마의 날(竹島の日)을 정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인식을 일본 국민에게 널리 알리기 위함이었죠...
그런데 이와 관련되어 시마네현이 일본 정부에서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도록 의견서를 냈지만, 묵묵부담이었던 상황도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에 '시마네현이 일본 정부가 '다케시마의 날'을 공식 제정할 때까지 직접 현 자체에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제정한다'라고 발표합니다.
4. 왜 2월 22일일까? 그리고 2005년에 제정했을까?
그런데 왜 하필 2월 22일일까요?
<오키도(隠岐島)에서 떨어진 서북 85해리에 있는 무인도를 다케시마(竹島)라 짓고 시마네현 소속 오키도사의 소관으로 함> |
메이지 38년(明治三十八年, 1905년) 1월 28일 내각총리대신(화압) 법제국장(인) 외무대신(화압) 대장대신(화압) 해군대신(화압) 문부대신(화압) 체신대신(화압) 내무대신(화압) 육군대신(화압) 사법대신(화압) 농상무대신(화압) |
별지(別紙) 내무대신 청의(請議) 무인도(無人島) 소속에 관한 건을 심사하는데 오른쪽은 북위 37도 9분 30초, 동경 131도 55분 오키도(隠岐島)에서 떨어진 서북 85해리[浬]에 있는 무인도(無人島)는 타국에서의 점령하거나 인정한 흔적 없이 일작(一昨, 재작) 36년 본방인(本邦人) 나카이 요자부로(中井養三郎, 1864~1934)인 자에 있어서 어사(漁舎, 고기잡이 막사)를 만들어 인부를 옮겨 엽구(猟具, 사냥도구)를 갖추고 해려엽(海驢猟, 강치 사냥)에 착수하여 이번 영토 편입 아울러 대하(貸下)를 출원(出願)하게 하고 이 때 소속 및 도명을 확정할 필요있음을 이유로 해도(該島, 그 섬)을 다케시마(竹島)라고 이름하여 이제부터 시마네현(島根県) 오키도사(隠岐島司, 오키 섬 행정관장)의 소관으로 한다고 이름에 따라 심사하는데 메이지 36년(1903년) 이래 나카이 요자부로인 자가 해도(該島, 그 섬)에 이주해 어업에 종사하게 하는 것은 관계서류에 따라 명확한 곳은 국제법상 점령의 사실이 있는 것으로 인정하는 것을 본방(本邦) 소속으로 하고 시마네현 오키도사의 소관으로 하여 지장[差支] 없다고 생각함에 따라 청의(請議)의 통과[通] 각의(閣議) 결정되어 가능하다고 인정한다. |
내무성에 통첩(通牒) 메이지 38년(1905년) 2월 2일 (인) |
'<<다케시마의 날을 정하는 조례> 제안 이유 (설명)(「竹島の日を定める条例」提案理由(説明) )>'에 따르면, '1905년 1월 28일 각의(閣議, 내각의 의사를 결정하기 위해 여는 의회)에서 '(독도를) 정식으로 다케시마(竹島)로 임명하고, 시마네현(島根県) 오키도사(隠岐島司, 오키 섬 행정관장)의 소관으로 하는 결정'과 같은 내용을 발표합니다.
이에 당시 시마네현지사(島根県知事) 마츠나가 타케키치(松永 武吉, 1869~1936)가 1905년 2월 22일, <시마네현 고시 제40호(島根県告示第40号)>를 발표하며, '다케시마'를오키도사(隠岐島司)의 소관으로 한다고 공시해 버립니다.
<메이지 38년 시마네현 고시 제40호(明治38年島根県告示第40号)> |
시마네현(島根縣) 고시(告示) 제40호 북위 37도 9분 30초 동경 131도 55분 오키도(隠岐島)에서 떨어진 서북 85해리[浬]에 있는 도서(島嶼)를 다케시마(竹島)라고 칭하고 이제부터 본현(本縣, 시마네현) 소속 키도사(隠岐島司)의 소관으로 정한다. 메이지 38년(1905년) 2월 22일 |
이를 근거로 문서상으로 독도는 다케시마라고 불리게 되며 시마네현에 편입되었습니다.
그리고 100년이 지난 2005년 3월, '시마네현 고시 제40호 공시 100주년'을 맞아 시마네현은 그들의 '다케시마 수복 운동'을 널리 알리고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다케시마의 날(2월 22일)'을 정한 것입니다. 2005년에 이를 제정한 것과 2월 22일을 독도의 날로 정한 나름의 이유가 있었네요...
대한제국은 1900년부터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를 발표해 울릉도를 포함한 지역을 '강원도 울도군'으로 정했으며, 휘하 '울릉전도, 죽도, 석도'를 관할케 했습니다.
그런데 1904년, 한 일본 어부가 동해 상에서의 독점 어업권을 가지기 위해 대한제국 정부가 아닌 일본제국 정부에 올린 요청문(<량코섬 영토편입 및 대하원(りゃんこ島領土編入並に貸下願)>)으로 시작해, 일본이 이전 대한민국에서 발표한 <대한제국 칙령 제41호(1900)>을 무시한 채 1905년, 이 섬을 '무인도'라고 임의 판단하여 일본의 '시마네현 오키도사'에 소속시켜 버린 겁니다.
이번 글을 통해 일본에서 '독도는 1905년에 <시마네현 고시 제40호>을 통해 일본령으로 편입되었는데? 그전까진 무인도라고 했어!'라는 주장을 통해 '그건 일개 어부가 주장한 내용이고, 그 이전 1900년 대한제국은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를 통해 해당 섬을 강원도 울도군에 편입시켰다'라고 반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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