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월사와 같이 금정산성을 지키던 국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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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과 표로 보는 역사 시리즈/어원과 표로 보는 한국사, 한국문화

해월사와 같이 금정산성을 지키던 국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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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금정구 금성동 산성마을에서 금정산성 북문가는 길목에 '국청사'가 있습니다. '나라(國)를 맑게(淸)하는 절(寺)'이란 뜻이죠.

인근의 풍경입니다. 차도만 보이구요. 도로 남쪽으로 식당과 집들이 들어서있죠.

절 입구에는 큼지막하게 '신라고찰(新羅古刹) 국청사(國淸寺)'이란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국청사
국청사는 신라시대 의상대사(625~702)가 창건하였으며,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금정산성을 방어하는 승군 작대*의 승장병(만홍승장, 성관승장)이 거주한 사령부였다. 숙종 29년(1703)에 금정산성 보수 이후 후 승당(僧堂)·선당(禪堂) 등 승려들의 거처를 많이 건립하였는데, 전체가 거의 100칸 규모였다. 이곳에는 부산시 문화재자료 제44호 국청사 금정산성승장인(金井山城 僧將印)과 보물 부산 국청사 청동북[釜山 國淸寺 靑銅金鼓]이 있다. 국청사에서는 국난 극복에 앞장섰던 고귀한 의·승군의 혼령을 극락으로 보내기 위해 천도재를 지내면서 호국사찰로서의 정통성을 이어왔으며, 1982년 연못 가운데 지장보살 본원 3층 석탑을 조성하였다.

*승군 작대(僧軍作隊) : 승려들로 조직된 군 부대

의상대사 (출처 : 법보신문)

7세기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이 절을 창건했고, 이후 부산 북부 승군의 중심지로 쭉 이어왔던 역사적인 조계종 사찰이죠.

한 때 해월사와 함께 금정산성을 방어했던 대표적인 부산의 호국 사찰이었구요. 산성을 지키는 승병장이 이곳에 거주해 승군사령부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출처 : 카카오맵

대략적인 절의 구조는 이렇습니다.

일주문에는 '금정산(金井山) 국청사(國淸寺)'라고 적힌 팻말이 있습니다. 일주문 오른편에는 차량 진입로가 있습니다.

일주문 왼편엔 밭이 있구요. 돌로 된 길과 계단을 따라가면 절이 나옵니다.

길의 왼편에 공덕비와 부처님상, 그리고 탑비 하나가 있습니다.

1872년(숭정기원후오임신(崇禎紀元後五壬申)) 중춘(仲春, 음력 2월)에 범어사에서 세웠다는 이 비는 '부사정현덕 영세불망비(府使鄭顯德永世不忘碑)'입니다. 1870년 6월부터 1873년 12월까지 동래부사로 있었던 그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으로, 동래읍성을 개축한 것, 결역(結役, 전결(田結)에 대한 추가징수세)을 줄인 것, 국청사를 중건한 것, 군사훈련을 강화한 것 등 시구에서 그의 각종 업적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지장보살본원탑비(地藏菩薩本願塔碑)'가 있습니다.

오른편의 연못엔 탑이 있습니다. 부산역사문화대전에 따르면 '1982년 승려 창봉(蒼鳳)과 혜성(慧醒)이 경내에 있는 연못 중앙에 3층 석탑을 조성하였다'고 하네요. 이제 좁고 운치있는 길을 따라 가줍시다.

이쪽으로도 길이 있는 듯 하지만, 안전하게 돌계단으로 올라갔습니다.

계단을 다 오르면 바로 앞에 대웅전이 보입니다!

대웅전의 왼편엔 요사채로 쓰이는 듯한 건물이 있구요. 그 아래엔 해우소로 보이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이 대웅전입니다. 가운데 길은 주지스님과 부처님이 나다니는 길이기에 왼쪽, 오른쪽 작은 돌계단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대웅전의 오른편에는 종무소가 있구요. 종무소의 오른편, 주차장 쪽에는 부처님의 보물을 모시는 보장각(寶藏閣)이 있습니다.

그 주차장을 따라 쭉 내려가면, 또 다른 해우소가 보이구요. 그 오른편으로는 여름엔 풀로 덮여 있는 연못 위의 삼층석탑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작아보이지만, 금정산성을 지키던 신라 때부터 있던 국청사 답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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