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학이 살았던 동래의 학소대와 법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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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학이 살았던 동래의 학소대와 법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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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산동에 위치한 우성베스토피아 

우성베스토피아 아파트 입구에 '우아한 선학처럼 아름답게-'라는 표어가 있듯 복산동(복천동+칠산동) 일대에는 '학소대'라는 지명이 유명합니다. 그럼 그 학소대의 흔적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바로 지금의 법륜사가 있는 '동래구 칠산동 239-2'가 학소대가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입니다.

큰 교차로를 지나 동쪽으로 꺾어 조금 올라가면

학소대(鶴巢臺)
옛날 학(鶴)이 이 언덕으로 많이 찾아 들고 또 많은 둥지(巢)를 얽고 보금자리로 삼아서 학소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곳.

'학소대' 표지석과 그 왼편에 '법륜사(法輪寺)'라고 적힌 입구석이 보입니다.

이곳으로 올라가봤습니다.

'대한불교 조계종 동래포교당 법륜사'와 '유아학교 법륜유치원'이라고 적힌 현판이 입구에 걸려 있습니다.

조금 올라가면 '법륜유치원'과 '법륜회관'이 보입니다.

부산역사문화대전에 따르면 법륜사은 사회복지법인 관음원을 설립하고, 또 1983년 지역 최초로 불교 유치원인 '법륜유치원'을 열었는데, 이 두 곳 모두 법륜회관에 있다고 합니다. 즉, 법륜회관은 법륜사의 사회복지 및 아동교육을 위해 설립한 곳이죠.

일주문인 범종루입니다.

일주문은 2층 누각으로 지어졌으며, 2층에는 범종이, 1층에는 입구가 있는데, 이 입구로 들어가면 양쪽 벽면에 사천왕상이 아닌 사천왕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일주문인 범종루를 지나면 바로 2층 건물의 대웅전이 보입니다. 대웅전의 1층은 종무소(宗務所, 절의 사무소)와 요사(寮舍, 승려의 거처)가 있으며, 2층이 법당입니다.

대웅전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삼층석탑이 보이네요. 이 탑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했다고 합니다.

그 뒤의 건물은 학소대(鶴巢臺)라고 적힌 건물이 보입니다.

학소대 오른편엔 주차장이 있고, 그 옆엔 2개의 비석이 있습니다.

삼존석불조성기념비 앞면
삼존석불조성기념(三尊石佛造成紀念)
불기 2989년/서기 1962년  8월 15일 점안(點眼) 봉안(奉安) 법륜사(法輪寺) (포교당(布敎堂))

1962년 8월 15일, 포교당인 이 법륜사에서 삼존석불(三尊石佛)의 점안봉안식을 열어 삼존석불을 조성했던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입니다. 뒷면에는 관계자들의 법명, 이름 등이 적혀 있습니다.

이 '삼존석불 조성기념비' 오른편엔 '법륜사사적비(法輪寺事蹟碑)' 혹은 '범어사 내포교당 법륜사 사적비(梵魚寺萊布敎堂法輪寺事蹟碑)'가 있습니다. 이 비석엔 법륜사가 창건된 이후1988년이 비를 세운 것과 포교 의지가 적혀 있습니다.

법륜사사적비 정면
범어사 내포교당 법륜사 사적비(梵魚寺萊布敎堂法輪寺事蹟碑)
<화엄경(華嚴經)>에 말씀하시기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은 대자대비(大慈大悲)와 대희대사(大喜大捨)로서 그 머물 곳을 삼으며 또한 모든 법(法)이 평등한 것으로서 그 머물 곳을 삼는다'고 하였다.
우리 한민족은 일찌기 천부(天賦)의 지혜(智慧)로서 불교를 받아들여 신라(新羅)와 고려(高麗)에 이어 무상대도(無上大道)로서 그 머물 곳을 삼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불법(佛法)이 역사(歷史)와 더부러 거듭 되는 성쇠(盛衰)의 와중(渦中)에서도 이제까지 찬연(燦然)히 그 빛을 발하고 있음은 그 또한 머물 곳을 잘 알았기 때문이리라.
여기 금정산(金井山)의 맥(脈)이 흘러내리다가 끊어질 듯 한 곳에 남은 힘을 쏟아 학소대(鶴巢臺)를 만들었고 이에 의지(依支)하여 도시가 형성되고 발전하여 4백만 인구의 대부산(大釜山)을 이루게 된 것이다.
이렇듯 대도(大都)의 요소(要所)에 바야흐로 하늘에 닿을 듯 청정수려(淸淨秀麗)한 법왕궁(法王宮)을 건립하여 이제 그 준공(竣工)과 아울러 그간의 사적(事跡)들을 대강(大綱) 더듬어 본다.
법륜사(法輪寺)는 불기 2452년(서기 1908년)에 범어사(梵魚寺)에서 동래(東萊) 복천동(福泉洞)에 포교당으로 개설(開設)하여 '법륜사'라 칭(稱)하고 포교 활동을 하다가 불기 2483년(서기 1939년)에 진월화상(震月和尙)이 이곳 학소대로 옮기니 노송림(老松林, 오래된 소나무 숲)에 군학(群鶴)이 운집(雲集)하듯 청신불자(淸信佛子)가 모이는 영남(嶺南) 제일의 포교명당이 되었다.
불기 2506년(서기 1962년)에는 고암대종사(古庵大宗師)께서 주석(住錫)하시며 경주옥석(慶州玉石)을 빚어와 삼존불상(三尊佛像)을 봉안하신 이래(以來) 제운(齊雲), 고산(杲山) 등(等) 훌륭한 포교법사(布敎法師)들이 불음(佛音)을 연창(演唱)하며 도장(道塲)을 다듬어 왔다.
불기 2525년(서기 1981년) 초현주지(初現住持) 보해선래화상(寶海善來和尙)께서 부임(赴任)하자 시대에 부응(副應)하는 포교의 전당(殿堂)으로 발전시키고져 원력(願力)을 세워 중흥불사(中興佛事)를 발원하고 그 첫 사업으로 경내 서편(西便)에 법륜유치원(法輪幼稚園)을 설립하여 불기 2527년(서기 1983년) 6월 1일에 개원하였다.
그리고 다음 해 협소하고 퇴락(頹落)한 대웅전(大雄殿)을 중창(重創)하니 상하2층의 넓이가 108평이라 웅장(雄莊)한 본당(本堂)의 모습이 학소대 위에 우뚝하다.
계단(階段)은 불국사(佛國寺)의 청운백운교(靑雲白雲橋, 청운교와 백운교)를 본따 신라의 미를 구현(具現)한 것이다.
2년간의 공사를 마치고 준공을 보게 되니 청신도속(淸信道俗)이 함께 환희하는 바라.
이는 불보살(佛菩薩)의 크신 감응(感應) 아래 보해화상(寶海和尙)의 원력과 선남선녀(善男善女)의 지극한 신심(信心)의 결실이라 하겠다.
불기 2531년(서기 1987년)에는 사천왕문(四天王門)과 범종루(梵鐘樓)를 고쳐 짓고 범종(梵鐘)을 새로 주조(鑄造)하였으며, 불기 2532년(서기 1988년) 4월 24일 버마국(미얀마) 랑군시(양곤) 마하시 수도원(脩道院) 원장 우판디타비왕사(U Paṇḍitabhivamsa) 스님께서 거해(巨海) 스님을 통해 전해주신 부처님 진신사리(眞身舍利) 30과(顆)와 태국(泰國, 타이) 방콕시 대리석사(大理石寺, Wat Benchamabophit) 주지 프라붓디옹사므니 스님으로부터 봉정(奉呈)받은 3과(顆)를 합하여 33과를 삼층석가탑(三層釋迦塔)을 조성하여 봉안하고 경내를 정리(整理)하니 면목이 일신(一新)된 포교의 대가람이 되었다.
그간의 전법역사(傳法歷史)로서 특기(特技)할 만한 일은 불기 2475년(서기 1931년)부터 시작(始作)된 화엄산림법회(華嚴山林法會)가 이제 반백년을 넘어 56회(囬)를 이어오면서 동산대종사(東山大宗師), 무불대선사(無佛大禪師), 관응대선사(觀應大禪師), 고암대선사(古庵大禪師) 등 고승(髙僧), 석덕(碩德, 덕 높은 승려)들이 화엄(華嚴)의 중중무진(重重無盡) 법계(法界)를 연창하였다.
신도법회(信徒法會)는 지장회(地藏會), 관음회(觀音會), 정신회(正信會) 등이 매월 정기법회(定期法會)를 봉행(奉行)하고 있으며 법륜불교청년회(法輪佛敎靑年會)는 불기 2512년(서가 1968년)에 창립하였고, 법륜불교고등학생회(法輪佛敎髙䓁學生會)는

법륜사사적비 앞면 기준 왼편
(불기) 2511년(서기 1967년)에, 법륜불교중학생회(法輪佛敎中學生會)는(불기) 2527년(서기 1983년)에, 법륜불교어린이회(法輪佛敎어린이)는 (불기) 2520년(서기 1976년)에 창립하여 매주 정기법회를 열고 신심(信心)을키우고있다.
그리고 법륜유치원의 귀여운 원아들도 매월 정기적으로 법회를 열어 자비(慈悲)로운 불음(佛音) 속에서 자라고 있다.
법륜사의 이와 같은 지역사회에서의 혁혁(爀爀)한 활동과 막중한 책무는 앞으로 한국불교에 큰 빛이 되리라 믿는다.
이제 그 역사의 전환점(轉換点)에 서서 바라는 바는 사세(寺勢, 절의 형세)가 날로 융창(隆昌, 융성)하고 불일(佛日)이 증휘(增輝)하여 이 땅에 불국토(佛國土)가 이룩되어 법계(法界) 함령(含靈, 중생)이 다 함께 성불(成佛)하기를 발원하면서 본찰(本刹, 이 절)의 사실(史實)을 금석(金石)에 새겨 길이 만대에 전하려 한다.

불기 2532년(서기 1988년) 무진 10월 일
금정산인(金井山人) 무비(無比) 적음(識)
마와사문(磨瓦沙門) 기현(奇玄) 씀(書)

비석의 뒷면에는 '법륜사 중흥불사 시주'라고 적혀 있고, 시주한 사람의 명단이 적혀 있습니다. 비석 정면 기준 오른편에는 관련 불교계 인사들의 지위와 법명,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대웅전에서 입구 범종루를 바라본 모습입니다. 

대웅전 내부에요. 경주옥석으로 만들어 1962년에 점안식을 거친 삼존석불이 중앙에 있습니다.

대웅전 2층 뒷편으로 한 바퀴 돌아봤습니다. 이렇게 대나무숲이 많이 보이는데, 이로 인해 여기가 학소대였을 것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극락전(極樂殿)입니다. 이 절 건물 중 가장 길고 큰 건물인 것 같아요!

극락전의 뒷편에는 해우소(화장실)이 있습니다. 여기서 뒤로 돌면~

대나무와 다른 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란 수풀이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절에서 나오기전에 한 컷 찍어봤습니다.

절에서 내려와서 바로 앞 골목으로 쭉 들어가면 복천동 고분군과 복천박물관이 나옵니다.

<부산역사문화대전>에 따르면 이 학소대의 지형은 부산 복천동 고분군이 학의 몸통이 되고, 동래읍성 서장대가 왼쪽 날개, 동장대가 오른쪽 날개로서 학이 날개를 활짝 펴고 목을 쭉 빼고 동래의 진산인 망월산[구월산]을 향해 날아가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이를 이미지화 시켜보면 위와 같구요. 또, 일대가 학소대였음을 짐작할 수도 있습니다.

 

학이 많이 살고 둥지를 틀던 소나무가 많던 학소대.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 흔적은 이제 법륜사라는 사찰의 뒷편의 소나무와 대나무 정도로만 남아 있습니다. 물론, 생태학 산업화 측면에서 보면, 인간의 주택지 개발로 인해 학이 원래 살던 곳이 사라졌다고 볼 수 있어 아쉽고, 그 학들의 후손들은 어디로 갔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던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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