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륜초 인근 조선통신사의 길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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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과 표로 보는 역사 시리즈/어원과 표로 보는 한국사, 한국문화

명륜초 인근 조선통신사의 길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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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륜초등학교 쪽 큰 오차로 한 편엔 검은 표지석 하나가 있습니다.

위치는 명륜초등학교 입구 건너편입니다.

조선통신사의 길

이곳은 1607년 조선통신사가 국서를 받들고 도착했던 길입니다.
조선통신사의 일본 왕래 400주년을 기리고 선린우호(善鄰友好) 정신을 다짐하며 여기 이정표를 세웁니다.

2007년 4월
사단법인 조선통신사 문화사업회
서울(숭례문) -(514km)-> 부산(부산포)

임진왜란이 끝난지 9년 뒤면서, 일본에 에도 막부라는 새로운 막부가 들어선 지 4년 뒤인 1607년, 에도 막부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지속적인 요청을 받은 조선은 제1차 회답 겸 쇄환사(제1차 (후기) 조선통신사)를 파견합니다. 그때 조선 조정으로부터 받은 국서를 받고 이곳에 도착했는데요. 그리고 곧 부산포로 향해 배를 타고 떠났습니다.

그 과정 중 이 땅을 지났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해 2007년 4월에 조선통신사의 길 표지석을 세웁니다.

 

아래는 우리역사넷통신사 관련 내용을 바탕으로 역대 통신사를 정리해 봤습니다.

연대 정사 부사 인원 비고
전기 조선통신사
1413(태종 13) 박분(朴賁) ? 미상  
1428(세종 10) 박서생(朴瑞生) 이예(李藝) 미상 통신사 규정에 가장 근접한 최초의 사행
1439(세종 21) 고득종(高得宗) 윤인보(尹仁甫) 미상  
1443(세종 25) 변효문(卞孝文) 윤인보(尹仁甫) 약 50  
1460(세조 6) 송처겸(宋處儉) 이종실(李從實) 약 100  
1479(성종 10) 이형원(李亨元) 이수동(李秀同) 미상  
1590(선조 23) 황윤길(黃允吉) 김성일(金誠一) 미상  
1596(선조 29) 황신(黃愼) 박홍장(朴弘長) 309  
후기 조선 통신사
1607(선조 40) 여우길(呂祐吉) 경섬(慶暹) 504 교린 체제 모색기 제1차 회답겸쇄환사
1617(광해군 9) 오윤겸(吳允謙) 박재(朴梓) 428 제2차 회답겸쇄환사
1624(인조 2) 정립(鄭岦) 강홍중(姜弘重) 460 제3차 회답겸쇄환사

3대 도쿠가와 이에미츠 취임 축하
(막부 새 쇼군 즉위에 따른
파견 전례의 양식화 시작)
1636(인조 14) 임광(任絖) 김세렴(金世濂) 478 교린 체제 확립기
 
1643(인조 21) 윤순지(尹順之) 조경(趙絅) 477 도쿠가와 이에츠나 탄생 축하
1655(효종 6) 조형(趙珩) 유창(兪) 485 4대 도쿠가와 이에츠나 취임 축하
1682(숙종 8) 윤지완(尹趾完) 이언강(李彦綱) 473 교린 체제 안정기
5대 도쿠가와 츠나요시 취임 축하
1711(숙종 37) 조태억(趙泰億) 임수간(任守幹) 500 6대 도쿠가와 이에노부 취임 축하
1719(숙종 45) 홍치중(洪致中) 황선(黃璿) 475 8대 도쿠가와 요시무네 취임 축하
1748(영조 24) 홍계희(洪啓禧) 남태기(南泰耆) 477 9대 도쿠가와 이에시게 취임 축하
1764(영조 40) 조엄(趙湄) 이인배(李仁培) 477 10대 도쿠가와 이에하루 취임 축하
1811(순조 11) 김이교(金履喬) 이면구(李勉求) 328 교린 체제 와해기 11대 도쿠가와 이에나리 취임 축하
(대마도 역지통신으로 거행)

15세기에 6번, 16세기에 2번, 17세기에 7번, 18세기에 8번, 19세기에 1번으로 조선 전기 통신사까지 포함한다면, 총 20번의 통신사절이 조선에서 일본을 방문했다가 다시 조선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조선통신사는 일본과 조선의 외교 관계를 보여주는 사절단으로 조선 후기 역사에서도, 일본 에도 막부 역사에서도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외교 부문 내용입니다.

 

이렇게 기념할 만한 통신사 표지석을 부산 동래구 명륜동에서 마주할 수 있어서 뿌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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