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속물적이고 탐욕적인 인간의 속내를 들여다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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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속물적이고 탐욕적인 인간의 속내를 들여다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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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

출처 :&nbsp;labirint

<코(Нос)>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Никола́й Васи́льевич Го́голь, 1809~1852)이 1832년부터 1833년까지 쓰고, 1836년에 잡지 <동시대인(Совреме́нник)>에서 발표한 풍자적 넌센스 문학 작품이자 환상 소설입니다.

 

2. <코>의 등장인물

코가 없어 손수건으로 코 부분을 가리고 돌아다니는 코발료프 (출처 : rushist)와 그의 가족 계보

플라톤 쿠지미치 코발료프(Платон Кузьмич Ковалёв) 혹은 짧게 코발료프(Ковалёв)는 이 소설의 핵심적인 인간 주인공이자, 8등관 관리입니다. 그는 스스로를 소령(майор)이라고 즐겨 불렀죠. 니콜라이 고골은 그를 네프스키 거리를 자주 산책하는 한가한 놈팡이면서 크게 출세하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 묘사합니다. 어찌 보면 노력 없이 인생에서 최대한 즐거움을 얻으려 했던 소설 <네프스키 거리>의 '피로고프(Пирогов)'나 희극 <검찰관> 헬레스타코프(Хлестаков)와 비슷하죠~ 

참고로 그의 성은 '대장장이(blacksmith)라는 뜻의 кова́ль [까발리]에서 유래했습니다.

야코블레비치(우측) (출처 : онлайн-читат)

이반 야코블레비치(Иван Яковлевич) 혹은 짧게 야코블레비치(Яковлевич)는 말끔하지 않은 이발사로, 무서운 술고래이면서 단정치 못 평범한 러시아 장인이었습니다. 그는 매일 다른 사람들의 턱을 면도했지만, 자신의 턱은 그러지 않아서 수염이 흘러내렸던 사람이죠. 후록코트(Сюртук)는 입지 않는 것으로 추정되며, 얼룩 묻고 칼라가 반질반질한 단추가 거의 다 떨어진 연미복(фрак)을 입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야코블레비치(Яковлевич)는 야훼를 믿는 종교에서 12지파를 이뤘다는 야곱(Яков)에서 유래했습니다.

 

프라스코비야 오시포브나(Прасковья Осиповна)는 이반 야코레비치의 아내입니다.

5등관이 된 코 (출처 : tigrangrigoryansite)

코(Нос)는 이 소설의 핵심적인 사물 주인공이자, 코발료프가 잃어버린 그의 코입니다. 그는 값비싼 제복과 판탈롱 바지(панталоны)를 입고 장검(шпа́га)을 차고 있었으며, 5등관이었습니다. 그는 가짜 여권을 가지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그 보다 서쪽에 있던 리가(Ри́га)로 가려고 했지만, 한 경계근무를 열심히 하는 경관에게 잡혀 그의 주인인 코발료프에게 다시 가게 됩니다. 처음에 그는 원래 자리로 돌아가지 않았으나, 4월 7일 아침, 그는 신비스럽게도 얼굴의 원래 위치로 돌아왔습니다.

 

도시 경관(Квартальный надзиратель)은 기품있는 외모를 가진 경찰관으로, 구레나룻이 있고, 모자를 쓰고, 대검을 차고 있습니다. 이반 야코레비치가 강으로 무언갈 던진 것을 알아차린 사람이 이 사림이구요. 또, 가짜 여권으로 리가로 떠나려는 코(Нос)를 막은 사람입니다. 여러모로 책임감 있고 관찰력이 뛰어난 경관인 것 같네요.

 

신문사 관리(чиновник)는 신문 광고를 접수하는 관리인데, 코발료프가 자신의 코가 실종되었다는 내용을 신문에 실어달라는 요청을 거부합니다. 그런 장난성 기사를 실으면 신문 구독률이 떨어질 것이라 생각했다네요?

 

경찰국장(пристав)은 설탕과 지폐를 좋아했던 경찰의 높으신 분으로, 코발료프가 코를 찾아달라고 뇌물 없이 그를 찾아왔으나, 마침 그땐 그가 좋아하는 오후 낮잠 시간이었기에 거절하고 잠을 청하죠...

 

의사(Доктор)는 코발료프가 자신의 코를 들고 붙여달라고 찾아갔지만, 코가 없어도 살 수 있다면서 코를 붙이는 수술을 거부합니다. 그러면서 차라리 그 코를 다른 사람에게 파시는 것이 어떻냐는 제의를 했던 의사였죠.

 

이반(Иван)은 코발료프의 하인이자, 매우 어리석고 게으른 사람입니다. 이반 야코블레비치와 헷갈리지 않게 단순히 '이반'으로만 불립니다.

 

3. <코>의 줄거리

3월 25일, 아침 식사를 하던 이발사 이반 야코블레비치와 그 부인은 그가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에 면도한 8등관 코발료프의 코를 빵에서 발견하고, 그 코를 천으로 싸서 이사키예프 다리(Исаа́киевский мост)의 물속으로 내던진다.

없어진 코를 보며 놀란 코발료프 (출처 : онлайн-читать)

그리고 같은 날, 잠에서 깨어난 자신을 스스로 소령이라 칭하는 8등관 코발료프는 코에 난 여드름을 살피기 위해 거울로 다가갔는데, 코가 있어야 할 장소에 없는 겁니다! 그는 이 사실을 신고하려고 경찰국장을 찾아가는 길에, 금색으로 수놓은 제복을 입고, 대검을 차고, 모자를 쓴 자신의 5등관 '코'를 마주칩니다. 한편, 그 코는 마차에 올라 카잔 대성당(Казанский собор)으로 가서 깊은 기도를 하죠.

자신보다 관등이 높아진 코에게 정중히 이야기를 건네는 코발료프 (출처 : онлайн-читать)

코발료프는 그를 따라 가서, 자기보다 높은 관직을 가진 그 코에게 제발 돌아와 달라고 요청하죠. 그런데 그 코는 자신은 자기 자신이라면서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자리를 벗어나죠. 그렇게 코발료프는 잠시 절망에 빠지죠...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싣지 않겠다는 신문사 직원 (출처 : онлайн-читать)

코발료프는 자신의 코 실종 소식을 전하기 위해 신문사에 갔지만, 그러한 추잡한 발표가 신문의 평판을 해칠까 봐 거절당했습니다. 또, 그는 경찰국장에게 달려가지만, 그는 잠을 자야 한다며 그를 쫓아내죠.

 

코발료프가 슬퍼하며 집으로 돌아오는데 갑자기 한 경관이 종이에 싸인 코를 들고옵니다. 코발료프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죠. 경관은 가짜 여권을 가지로 리라로 가려는 코를 직접 잡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정말 감사해하던 코발료프는 이제 코를 자신의 얼굴에 다시 붙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의사까지도 그 의술은 힘들 것 같다고 했죠ㅜㅜ

 

그렇게 시간이 흐른 4월 7일 아침, 자고 일어난 그의 거울 앞엔 코가 붙어 있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며, 그의 삶은 원래대로 돌아오게 됩니다.

 

4. <코>의 예술적 특징과 평가

'코'가 페테르부르크 거리를 걸어다닌다? 이건 현실에선 말도 안 되는 환상성을 보여줌과 동시에 '사람'의 기관인 '코'가 움직인다는 것은 곧 '코를 가진 사람'이 걸어 다닌다고 표현한 제유법을 잘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이런 환상적인 '코'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교계에서 외모를 중요시했던 허영심 강한 코발료프는 그의 코가 사라지자, 당장 '사교계의 부인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에 대해서만 걱정하고 있습니다. 코의 기능이나 역할은 잘하는지에 대해선 전혀 관심이 없단 것이죠...  '우뚝한 코'는 '멋진 남자, 아름다운 남자, 밤을 즐겁게 해줄 만한 남자'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죠. 이는 곧 코발료프의 자존심이자 욕망이었구요. 그런 것들이 외적으로 사라져버린 코발료프는 크게 지탄에 빠지게 됩니다. 이렇게 보면 그 시절 니콜라이 고골이 생각했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허영심이 강한 사람들이 사는 도시, 곧 비유적으로 표현하면 영혼없는 허영의 도시, 환영에 둘러싸인 가짜의 도시였다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도시의 사람의 신체부위인 코로 상징하고 있는 것이죠.

이런 모습은 곧 상트페테르부르크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속물적이면서 탐욕적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코'는 러시아어로 нос [노스]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단어를 뒤집어 버리면 сон [손] 그러니까 '꿈'이 됩니다.

조주관 교수의 이야기에 따르면, 원래 이 소설의 제목도 '꿈(сон)'이었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이 소설은 '한 봄밤의 코와 관련된 환상적인 꿈 이야기'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꿈이라는 걸 짐작해 주는 작은 단서 하나가 있는데요.

연도 1582~1699 1700~1799 1800~1899 1900~2099
그레고리력(신력) 4월 7일
율리우스력(구력) 3월 28일 3월 27일 3월 26일 3월 25일

꿈에 나타난 날짜입니다. 야고블레비치가 코발료프의 코를 빵에서 발견한 것은 3월 25일, 그리고 그의 코가 다시 붙은 것을 확인한 것은 4월 7일입니다. 딱 이렇게만 보면 보통은 13~14일이 걸려 진행된 일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 사실 여기엔 작은 함정이 있습니다. 사실 3월 25일과 4월 7일은 각각 율리우스력과 그레고리력으로 같은 날이라고 해요. 이렇게 같은 날짜를 다른 달력의 월일로 표시함으로써 독자들은 이게 꿈이 아닌 실제 일어난 환상적인 이야기였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후 이 정보를 접하고 나서 다시 읽으면 단순한 '코에 관한 꿈'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한편, 5등관 '코'와 그 코의 원래 주인인 8등관 '카발료프'가 만나는 장면은 정말 웃기면서도 슬픕니다.

카발료프는 자신보다 신분이 높은 코에게 굽신거리며 제발 자신에게 돌아와달라고 요청합니다. 어째서 그는 자신의 신체 부위 중 하나일 뿐인 코에게 그렇게 조아린걸까요? 또 왜 그렇게 코를 가지고 싶어했을까요? 관등주의를 비판하는 관점에서 본다면, 그건 그저 코발로프가 관료 사회에 이미 물들었고, 그 또한 그런 높은 지위를 얻고 싶어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가치는 곧 숫자일 뿐인 관등에 의해 정해진다는 믿음을 보여주고 있죠. 이런 사회는 보통의 사회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모두가 수직적 상승 욕망에만 빠져, 주변을 보지 못하고, 오로지 자신의 숫자를 업그레이드 시키는 것에만 몰두한다면, 그 사회는 점점 고착화되어 발빠른 세계 속에서 뒤쳐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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