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상화>
<초상화(Портре́т, Portrait)>는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Никола́й Васи́льевич Го́голь, 1809~1852)의 <페테르부르크 이야기(Петербургские повести)>의 작품 중 죄 있는 예술가들에 대한 낭만주의 소설로, 2개의 개정판(redaction)이 존재합니다. 이 소설은 독일의 E. T. A. 호프만(E. T. A. Hoffmann, 1776~1822)의 <G의 교회당(Die Jesuiterkirche in G.)>와 <스퀴데리 부인(Das Fräulein von Scuderi)>의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고골의 <초상화> |
1835년판 | 1842년판 | |
수록처 |
<아라베스키(Арабески)> | <동시대인(Современника)> | |
변경사항 | 주인공 이름 | 체르트코프(Чертков) | 차르트코프(Чартков) |
환상적 요소의 부각 | 많이 부각됨 | 환상적 요소 삭제 이후, 사실적 요소 삽입 |
|
내용의 변경 | 환상적, 신비적 내용 | 종교, 천벌, 속죄의 내용 | |
초상화의 사라짐 | 갑자기 어떤 존재에 의해 사라짐 | 도난 |
이렇게 바뀐 이유 중 하나는 고골이 젊은 시절은 할머니를 포함한 가족들에게서 민속적인 이야기에 영향을 많이 받은 반면, 커서는 기독교에 심취하게 되며 모든 기준을 기독교로 맞추었고 교훈 전달을 주로 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2. <초상화>의 줄거리
2-1. <초상화> 1부의 줄거리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는 젊은 예술가 차르트코프(Чартков) 는 집 임대료를 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슈킨 드보르(Щукин двор)의 조그만 가게에서 20 코페이카(копе́йка) 짜리의 잘 알려지지 않은 한 아시아풍의 옷을 입고 있는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여윈 청동빛의 얼굴을 한 노인의 초상화를 구입합니다. 그 노인의 눈은 꼭 살아있는 듯했기에 차르트코프의 관심을 끌었던 것입니다.
집에 도착하고 나서 그는 그 그림 속 노인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인상을 떨쳐버릴 수 없었어요. 또, 밤에는 그 초상화와 관련된 악몽이 그를 괴롭히곤 했습니다.
어느 날 한 꿈에서, 그림 속 노인은 금화가 가득 든 꾸러미들을 들고 그림 밖으로 나왔는데, 그걸 본 차르트코프는 놀라고 맙니다. 그래도 돈을 더 벌고 싶었던 것인지, 그는 꾸러미 중 1000 체르보네츠(черво́нец)가 든 한 묶음을 잡습니다. 아침이 되어 집세를 내라고 독촉하는 집주인의 소리에 꿈에서 깬 그는 천천히 문으로 나가던 중, 그 꾸러미가 있던 것을 실제로 보게 되었고, 그 돈으로 집세를 냅니다.
차르트코프는 넵스키 대로(Не́вский проспе́кт)에 있는 호화로운 방으로 이사하여 뇌물을 주면서까지 신문에 광고를 냈고 그에겐 곧 많은 고객들이 찾아오게 됩니다. 차르트코는 유행을 선두 하는 예술가가 되고, 그 덕에 많은 초상화를 그립니다. 그는 자신의 모습을 실물보다 훨씬 예쁘게 그려달라는 고객들의 요구를 충족시키지만, 많은 그의 예전 지인들은 이젠 그에게서 원래 그가 가지고 있던 재능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차리죠... 그래서 그런가 차르트코프는 인간혐오를 가진 구두쇠가 되어버립니다...
한 전시회에서 전에 알던 한 사람의 그림을 봤는데, 그 그림은 진정으로 아름답고 숭고해 보였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작품이 실제로 완벽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차르트코프는 자신의 작업실에 갇혀서 그 작품과 같은 것을 만들려고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죠. 그렇게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졌다고 느낀 그는 예술적인 걸작들을 사서 하나하나 파괴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산 초상화 속 노인이 준 돈주머니 때문에 자신이 파멸한 것을 깨달았고, 그는 고통과 절망 속에서 숨을 거두었고, 그가 번 막대한 재산은 사라졌습니다.
2-2. <초상화> 2부의 줄거리
어찌된 일인지, 차르트코프가 샀던 아시아 노인의 초상화가 경매에 부쳐지게 됩니다. 사람들이 그 그림을 이질적이고 기분 나빠하면서도 누군가가 계속 가격을 흥정하고 있던 때, 화가 Б(художник Б)가 나타나서 이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해줍니다.
초상화 속 그는 한 때 모스크바의 콜롬나(Коло́мна)에서 살았던 고리대금업자였습니다. 그 사람에게 돈을 빌렸던 사람들에게 엄청난 이자를 받아내면서 돈을 빌린 사람들은 모두 불행한 죽음까지 당하게 됩니다. 그 근처에 살던 성상화가 Б의 아버지(Отец Б.)는 인색하고 쓸쓸히 지내는 고리대금업자에게서 초상화 하나를 그려달라는 주문을 받습니다. 착한 성격의 화가의 아버지는 이를 수락하고 초상화를 그려주기로 합니다.
그런데 그가 고리대금업자의 초상화를 그리는 동안, 특히 무서운 눈매에서 화가는 이해할 수 없는 공포를 느끼기 시작하고 결국 일을 그만두고 늙은 노인의 집에서 도망칩니다.
다음날, 고리대금업자는 죽고 하인은 화가에게 미완성 초상화를 화가의 아버지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화가는 그림에서 이상한 변화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불태우려고 했죠.
그런데 그의 친구가 그 화가를 설득해 그림을 가져갔고, 그는 그것을 그의 조카에게 팔았습니다. 그런데 그 조카도 폭력적
이게 변했고, 질투와 광기에 빠져버린 것이죠. 이 소식을 들은 화가는 너무 힘들어서 수도원 생활을 시작했고, 영혼을 깨끗하고 순수한 상태로 만들려고 노력을 다하다가 사망합니다.
이후에도 고리대금업자의 초상화를 소유했던 모든 사람들은 불행에 시달렸으며, 아버지는 죽기 전에 화가 Б에게 제발 그의 초상화를 찾아 파괴하라고 요청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 그림을 찾아 여기까지 왔는데요. 그래서 자신의 일을 끝내려고 뒤를 돌아봤지만, 그 초상화는 도난당해 사라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소설은 끝나는데요. 이는 곧 새로운 저주와 타락, 그리고 악행이 끊이지 않고 일어날 것을 예견하는 듯합니다.
3. <초상화>의 문학적 특징과 분석
이 작품은 악한 존재(악마)가 세상을 어떻게 물들이는가에 대해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화가 차르트코프는 악마의 유혹에 굴복해 잠시 부와 영광을 얻었지만 결국엔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하고 자기 파멸해버리며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이 때 계기가 된 것은 '초상화'라는 악마성이 뛰어난 존재였죠. 사실 그 초상화 속 인물이 밖으로 나오면서 가지고 왔던 돈 보따리는 차르트코프를 어떻게든 지옥으로 끌고가려는 작은 유혹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네요. 그 초상화 속 인물은 그렇게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을 자극해 한 인간이 절대 그것을 벗어나기 힘들게 만드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럼에도 2부에 나오는 성상화가 Б의 아버지(Отец Б.)는 처음엔 악마성을 띈 고리대금업자의 부탁같은 유혹을 받아들여 그림을 그리다가 결국 그의 눈에서 무언가를 깨닫고 도망칩니다. 그러나 악마는 끝까지 움직입니다... 고리대금업자가 죽은 뒤에는 그의 하인이 그에게 직접 그림을 가져다주죠. 왜 그랬을지를 악마와 관련해서 생각해본다면, 악마는 그 성상화가 마저도 타락시키고 싶어했던 것 같습니다.
이후 그 초상화는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기위해 성상화가가 그림을 없애려 하자, 그의 친구를 유혹해 또 그림을 세간에 전달하죠. 이 때 사용된 것이 '눈'입니다. 처음 차르트코프와 이 성상화가의 친구 모두 초상화의 눈을 보고 그림을 사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악마의 눈은 '자신들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까지 한답니다. 그런 식으로 악마와 인간의 눈을 통해 악마의 저주는 계속 되었습니다. 이후 영혼이 정상적으로 돌아온 아버지의 요청으로 그 그림을 없애기 위해 경매장에 찾아온 성상화가의 아들 화가 Б를 얕보기라도 한 듯, 그가 이야기를 할 때 또 다른 누군가를 시켜 유유히 사라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상화가는 자신이 모든 것을 일으킨 주범이 아닌가 고뇌하다가 수도원으로 가서 죄를 뉘우치고, 열심히 기도하며, 순수한 영혼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렇게 초상화가 타락시키고 싶었던 한 화가는 결국 신의 품으로 들어가 진정한 예술가가 되었죠. 니콜라이 고골은 이 역설적인 상황을 통해 예술가라면 꼭 악을 선으로 승화시키는 재능이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강력히 어필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영혼을 순수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죠. 그의 기독교적 세계관이 잘 들어나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선'은 사실 질서정연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악'은 기존의 봉건주의적 질서를 타파하고 새로운 무질서를 만들어내는 일종의 카오스라고도 볼 수 있죠. 이 관점에 따르면 '악'이 그렇게 나빠보이진 않습니다만, 니콜라이 고골의 세계관에선 '악마(이 소설에선 악마 '까쉐이'와 유사한 악마)'는 '인간을 신과 분리시키고, 영원한 고통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죽음적 존재'로 여겨지기 때문에 그 '무질서'는 악하다라는 결론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너무 평범하고, 때묻은 사람들이 유혹에 더 쉽게 빠진다는 걸 느꼈고, 그래서 여러모로 무서웠던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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