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5.3 동의대학교 사태 등 공무로 돌아가신 부산경찰을 추모하는 부산경찰 추모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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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5.3 동의대학교 사태 등 공무로 돌아가신 부산경찰을 추모하는 부산경찰 추모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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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청 왼편, 이렇게 부산경찰청이라고 적힌 안내석 뒤편엔 동백광장이란 광장이 있다.

현충시설지정서
관리번호 : 40-2-19

현충시설지정서

명칭 : 부산경찰 추모공간
소재지 : 부산광역시 연제구 중앙대로 999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74조의2 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위와 같이 현충시설로 지정합니다.

2011년 6월 8일

국가보훈처장

이렇게 2011년 6월에 국가보훈처장의 허가로 현충시설이 된 이곳은 바로 '부산경찰 추모공간'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부산경찰 추모공간
Busan Police Memorial Hall

관리번호   40-2-19
관리자      부산지방경찰청
소재지      부산광역시 연제구 중앙대로 999

 6.25전쟁 당시 조국수호를 위해 장렬히 전사한 경찰관들과 공무 수행 중 순직한 경찰관들의 넋을 기리고 고귀한 희생정신을 길이 계승하고자 2009년 10월 13일 『동의대사건 순국경찰관 추모비』를 먼저 건립하였으며, 이어서 청사 1층 로비에 설치했던 『명예의 전당』을 2011년 5월 2일 이곳 동백광장으로 이전하여 『부산경찰 추모공간』으로 다시 구성하였다.
 추모공간 전면은 1989년 5월 3일 동의대사건으로 순국한 7인의 경찰관들을 위한 추모비로 흉상과 함께 이들의 충정을 나타내는 참수리 날개와 무수한 격자들이 모여 만들어진 태극으로 음양오행을 형상화하였으며, 항상 시민의 편에서 열린 마음으로 시민과 함께 하겠다는 의지를 중앙대로를 향해 15° 가량 기울게 설치하여 표현하였다.
 추모공간 후면은 경찰이 지향하는 5가지 가치(忠, 信, 勇, 義, 仁)를 형상화하고, 순국경찰관들의 이름을 명각한 9개의 돌 벽으로 추모의 물결을 표현하고 있으며, 사물의 이치를 꿰뚫어보는 예리한 참수리의 눈을 벽면에 배치하고 부리를 형상화한 중앙석을 배치하여 정의로운 법집행과 경찰의 곧은 기개를 표현하고 있다.

이 부산경찰청 앞 동백광장에는 '부산경찰 추모공간'이라는 현충시설이 자리하고 있다.

동백광장 입구로 들어가 바로 오른쪽으로 꺾으면

계단 위칸에 위치한 추모공간이 나타난다.

우선 바로 앞의 석판을 읽어봤다.

동의대 사건 순국경찰관 추모비

학내 입시부정 사건을 규탄하는 동의대학교 학생들의 불법 폭력 시위를 진압하던 중 납치되어 동의대 도서관 7층에 감금됨 전경 5명을 구출하기 위해 1989년 5월 3일 오전 5시 15분경 경찰이 진입하자 시위학생들이 미리 뿌려놓은 시너 등 휘발성 물질 위에 화염병을 던져 방화함으로써 최동문 경위, 박병환 경사, 정영환 경사, 조덕래 경사, 모성태 수경, 김명화 수경, 서원석 수경 등 경찰관과 전경 7명이 사망하고 10명이 중화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하였다. 순직경찰관 4명은 2계급, 전경 3명은 수경으로 특진되었고, 전원 보국훈장광복장이 추서되었으며 장례는 대한민국 경찰장으로 거행되어 대전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동지들의 순국 20주기를 맞이하여 소중한 목숨을 바친 영령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영원히 기리며 그 명예를 드높임과 동시에 법질서 확립의지를 굳건히 하고자 동의대 사건이 발생했던 부산지역에 추모공간을 조성해야 한다는 뜻을 모아 부산지방경찰청 앞 동백광장에 국민의 정성과 동료들의 마음을 담아 이 추모비를 세운다.

2009년 10월 13일

사건의 시작은 1989년 3월, 동의대학교 영문과의 한 교수가 "우리 대학 입시에 부정사례가 있어 진상규명을 요구했으나 학교 측이 이를 은폐하고 있다"는 양심선언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렇게 동의대학교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총장실 점거농성, 노동절 집회 시위 등을 펼치면서 일이 커졌는데, 특히 한 학생이 학교 인근 가야 파출소에 화염병 10여 개를 던져 화재가 나기도 했다. 경찰은 이를 진압하고 자신들을 보호하고자 공포탄으로 학생들에게 겁을 주며 시위대 해산을 유도했다.

 

1989년 5월 2일, 학생 일부는 전날 파출소 습격으로 공포탄 발사를 규탄하는 대회를 열고 또 화염병을 던지며 항의했는데, 그뿐만이 아니라 전투경찰 5명을 학내에 감금하고 폭행까지 했다. 그리고 학생들은 사로잡은 5명의 전투경찰을 1일 시위 때 잡혔던 8명과 교환하자고 했다.

 

그러나 법적으로 1명은 풀어줄 수 없었고, 경찰은 그들을 구하기 위해 학교로 진입해 사로잡힌 전투경찰을 구출하려고 했다. 그렇게 경찰은 학교 도서관으로 진입했고, 그 과정에서 그들을 구출하려던 3명이 불에 타 사망했고, 4명이 추락사하게 된다.

1989년 5월 3일 원인불명의 화재로 경찰을 납치한 시위학생을 구하려다 7명이 사망했다. 사진은 당시 화재 현장. (출처 : MBC)

해당 비문에 '시위학생들이 미리 뿌려놓은 시너'라는 문구가 존재하는데, 법적으로 시너가 뿌려져 있었다는 것은 거짓으로 판명 났으며, 화염병 정도는 있었다고 한다. 어쨌든 원인불명의 화재로 젊음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 7명의 경찰이 사망한 것은 사실이었다...

여기는 추모공간 전면이다.

그 옆에는 이렇게 당시 동료 경찰 구출을 하다 희생된 7명의 경찰의 흉상도 새겨져 있다.

왼쪽부터 수경 김명화, 수경 모성태, 수경 서원석, 경위 최동문, 경사 박병환, 경사 정영환, 경사 조덕래의 흉상이 있다.

 [참고]

수경(
首警) : 국군 병장에 해당하는 전투경찰(현재 폐지)의 계급
경위(警衛) : 일반직 공무원 6급에 준하는 경찰공무원의 계급
경사(警査) : 일반직 공무원 7급에 준하는 경찰공무원의 계급

오월 삼일 가야골에
새벽 정적을 깨우는 소리
"피랍 대원 구출하라!"

긴급 명령 받은 대원들
교문 안 가파른 경삿길을
단숨에 달려갔네

거기 아직 미명(未明)의 시야에
유령처럼 다가서는 도서관 건물 칠층
다섯 동료 억류돼 있는 그 곳

지체 없이 구출 작전 시도했지만
굳게 잠긴 철문들과 겹겹이 쌓인 장애물들
난공(難攻)의 장벽이었네
그러나 동료 구출 일념으로 진입한 농성장엔
이미 그들 피랍 대원 이끌고 옥상으로 도피하고
텅 빈 공간만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인화성 액체 뿌려진 그곳 바닥 위에
그들이 투척한 화염병 불씨
순식간에 불바다 이뤘으니

그 밀폐된 공간 뜨거운 화염 속에
젊음의 요람기를 미처 펴보지도 못한 채
산화해간 꽃다운 일곱 호국 전사들...

우리 모두 님들의 희생 헛되지 않게
자유 민주 수호, 민생 안정의 첨병으로서
국가 소명 완수를 위해 전진해 나가리다
그대들 떠난 지 어느덧 스무 해
해마다 핸 맺힌 설움 다시 도져
핏빛 장미 울음 터뜨릴 무렵 오월이 오면

현충원 찾아 추모제단 마련하곤 했지만
그 어떤 애절한 추념사, 진혼곡인들
님들의 고혼을 어찌 달랠 수 있었으리까

이제사 님들의 살신호국(殺身護國)정신 기리고자
여기 본향의 뜨락에 추모상 세우노니
고(故) 일곱 순국 경우들이여!
부디 고이 영면(永眠)하옵소서

2009년 10월
지헌 김송심

2013년, 부산서부서 경우회장이면서 퇴직경관 김송심씨는 부산경찰 추모공간 제막식에서 처음 공개된 추모시를 쓰기도 했다. 그 시가 바로 위의 시다.

추모 공간 뒷편은 이렇게 거꾸로 된 U자로 되어 있다. 그 가운데는 원기둥 몇 기가 세워져 있다.

명예의 전당


명예의 전당은 6.25 전쟁 시 조국을 수호하다 산화한 전사 경찰관들과
공무수행 중 순직한 경찰관들의 넋을 위로하고 후배 경탈관들의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해 2008.2.28. 청사 내 1층 로비에 처음 건립
하였으나 2009.10.13. 건립한 5.3 동의대 사건 순국 경찰관 추모비와
같은 장소에 추모공간을 조성하여 부산경찰의 정신적 표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모두의 뜻에 따라 이 곳 동백광장에 다시 세우다.

명예의 전당에는 9개의 검은 석비가 세워져 있고, 그 비에 흰색으로 공무 수행 혹은 적과 교전 중 순국하신 부산경찰분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아래 맨 오른쪽 비석부터 왼쪽 방향으로 적힌 이름을 차례차례 사진과 함께 정리했다.

의용 김성수 1952.09.02 적과 교전 중 전사
의용 김영상 1952.09.02 적과 교전 중 전사
경사 이경섭 1952.09.02 적과 교전 중 전사
의용 신유택 1952.09.02 적과 교전 중 전사

1952년 9월 2일에 사망했다고 알려진 3명의 의용경찰과 1명의 경사는 기장군 철마면에서 일어난 나암봉 전투에서 북한군과 교전하다가 사망한 분들이다. 이들을 기리는 위령비와 추모비가 현재 철마체육공원에 '철마 순직 경찰·의용경찰 추모비'라는 이름으로 위치하고 있다.

사망 계기 사망일 직책 및 성함
5.3 동의대 사태 순국 1989.05.03 경위 최동문
경사 박병환
경사 정영환
경사 조덕래
수경 모성태
수경 김명화
수경 서원석

이곳에서도 기념공간 전면에 흉상으로 있었던 동의대 사태 때 사망한 7명의 경찰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조화에 가려 보이지 않는 분들의 이름과 돌아가신 날짜는 아래와 같다.

경사 이상문 1997.06.21 독립유공자
경위 노영준 1998.08.     독립유공자
경사 김학선 2009.06.09 독립유공자

비 하나에 총 39명해서 지금까지 282명의 부산경찰의 이름과 순국일이 적혀 있다.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갔건만 6.25 전쟁부터, 5.3 동의대 사태, 그리고 최근 2022년 6월까지 적과의 전투나, 공무 수행 중, 경찰계 국가유공자로서 사망하신 분들의 이름을 찬찬히 읽어 내려가니 이 부산의 치안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던 경찰들의 흔적이 엿보여 고마웠고, 또 목숨 걸고 범죄와 적군을 진압하려 했던 사람들의 노력이 정말 하늘을 비추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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